영국 런던 버킹엄궁이 있는 지역 세인트 제임스에는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 하나 있다. 젠틀맨 클럽이 즐비하고 고가의 그림을 파는 화랑과 고급 식당 사이로 창이 높은 현대식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 뒤로는 세계에서 몇 개 안 되는 남성용품만 파는 거리인 제르민 스트리트가 있고, 남성용품의 최고봉 던힐 본점이 있다. 차(茶)와 왕궁 식품 납품 백화점으로 유명한 포트넘 앤 메이슨 백화점도 주변에 있다. 고색창연한 거리에 생뚱맞게 위치한 이 현대식 건물이 항상 ‘영국의 유력 경제주간지’라는 접두사가 붙는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사옥이다.

올해로 창간 171주년(1843년 9월 2일 창간)을 맞은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잡지계의 불가사의로 불린다. 세계의 종이매체들이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빈사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이코노미스트만 30년째 독자 수가 늘고 있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세계 잡지 업계가 ‘이코노미스트를 배우자’는 말을 한 지도 10년이 더 됐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이코노미스트가 대단하긴 한가 보다. 이코노미스트의 자기 자랑을 한번 들어보자.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디지털 독자 10만을 포함해서 매주 154만9161부를 판매했다. 2012년에 비해 5.81% 성장한 수치다. 특히 판매의 80%가 외국에서 이루어졌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 54%, 영국을 제외한 유럽 19%, 기타 200여개국에서 13%, 그리고 영국 14%다. 특히 홈그라운드인 영국 내의 판매 신장이 눈에 띈다. 영국에서 이코노미스트는 2011년 하반기 처음으로 판매부수 20만부를 넘겼다. 이는 전년도 하반기에 비해 11% 성장한 수치다. 이후 영국 내 판매부수는 증가하고 있다. 2014년에는 전반기 6개월 동안 시사잡지 중 가장 발행 부수가 많았다.(22만3730부·인쇄 20만1950부+디지털 2만1780부) 작년 하반기에 비해서 1.2%가 상승했다. 종이잡지는 전년보다 3.5% 떨어졌으나 디지털은 무려 147%가 늘었다. 종이잡지가 감소한 숫자보다 디지털의 증가가 더 컸다. 이런 성장을 바탕으로 이코노미스트그룹은 2013년 3억4500만파운드 매출에 6800만파운드의 이익을 내서 잡지 업계의 선망과 질시의 대상이 됐다. 사람들은 이코노미스트를 잡지계의 ‘애플(Apple)’이라고 부른다. 애플처럼 시대 변화에 맞춰 계속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애플처럼 컬트(cult)라고 불리는 광신의 추종자들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코노미스트 신도들은 자신들의 이코노미스트 숭배를 이렇게 표현한다.

‘이코노미스트를 읽고 있으면 스마트해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는 가지고만 있어도 스마트해 보인다.

이코노미스트를 읽으면 내가 스마트해지는 것 같다.

이코노미스트를 읽으면 정말 스마트해진다.’

이들은 “이코노미스트를 읽는 일은 특별난 것”이라고 말한다. ‘타임(TIME)’이나 ‘뉴스위크’는 오늘도 수천만 명이 마시고 있는 스타벅스 커피지만, 이코노미스트는 루왁 커피라는 말이다. 이런 말도 있다. ‘출장 가는 길에 공항에서 읽을 것을 단 한 권만 산다면 그건 반드시 이코노미스트여야 한다’ ‘무인도에서 단 한 권의 읽을 것을 투하받는다면 단연코 이코노미스트여야 한다’. 무인도에서도 이코노미스트만 읽으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이코노미스트를 말하는 가장 유명한 말 중에 또 하나는 ‘이코노미스트는 눈앞의 미래를 보여 주지는 않지만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을 밝게 해준다’이다.

과연 이코노미스트가 어떤 잡지길래 171년 동안 살아 남았을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성장해 가고 있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이코노미스트에는 사진도 없고 텍스트만 가득 차 있고 기사들도 소위 말하는 ‘딱딱한 기사(하드뉴스·hard news)’ 밖에 없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성공의 비결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이렇게 말한다. ‘이코노미스트의 모든 성공의 요인은 우리 이코노미스트의 DNA 속에 이미 들어 있다. 1843년 우리의 첫 기사는 브라질에 관한 기사였다. 누구도 브라질에 대해서 관심이 없을 때였다. 이렇게 이코노미스트는 정치, 경제, 혁신, 기술, 과학, 사회풍조가 어우러져 돌아가는 세상 일을 다루면서 그들을 서로 상호연결해 왔다. 그러는 중에 세계는 이코노미스트가 예측한 방향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우리를 영향력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의 힘은 결국 이코노미스트를 읽고 있는 ‘특별한’ 독자에게서 나온다. 물론 그들이 내는 구독료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입고 먹고 자는 모든 것들이 광고주들에게는 관심 사항이기도 하다. 또 이들이 가진 사회 각 부문에 대한 영향력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럼 이코노미스트의 ‘특별한’ 독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정기 구독자 87%가 수입이 17만8000달러를 넘고, 평균재산이 168만8000달러이다. 독자의 25%는 회사 대표, 부장을 포함한 간부급까지 합하면 전체 독자의 46%다. 최고의 엘리트 독자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코노미스트의 마케팅 전략의 결과다. 이코노미스트는 자신들의 독자, 즉 고위 정치인, 고위 기업인, 금융 고위층은 외롭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누구에게서 충고를 받기가 어려운데 그들이 비밀스럽게 도움을 받는 게 바로 이코노미스트라는 자랑이다. 그러면서 그 예로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 외무장관 그렌빌 경을 든다. 그는 “나는 어떤 문제에 부딪혀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이코노미스트 다음 호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미국 전 대통령 우드로 윌슨도 이코노미스트의 애독자 겸 신봉자로 유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공격적으로 광고를 한다. ‘왜 당신은 이코노미스트를 반드시 읽어야 하는가’라는 광고의 답으로 ‘나는 이코노미스트를 읽지 않았다! 42세의 견습생’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한다. 이를 광고 전문가들은 ‘무엇을 함으로써 얻는 것이 있다는 것보다, 하지 않음으로써 잃는 것이 있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더 적극적으로 반응한다는 이론에 근거한 접근 방법이라고 얘기한다. 그래서 이코노미스트 독자가 되어야 할 사람인지 아닌지를 테스트 할 질문까지 나왔다.

△매일 일어나는 세상 일에 대한 지식도 있고 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좀 더 알고자 하는 것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식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가, 이런 세 가지의 질문 중 두 개 이상 “예스”라고 대답했다면 이코노미스트를 구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코노미스트는 “당신이 이코노미스트를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당신이 반드시 알아야 할 중요한 정보를 정리해서 한꺼번에 제공해 준다. 물론 당신은 이코노미스트에 나오는 모든 기사를 다 읽을 필요는 없다. 당신이 좋아하는 두세 개만 읽어도 충분하기 때문”이라는 충고까지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런 기사들을 제공해 주고 있다는 자부심이다.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는 어떤 것인가. 이코노미스트는 워낙 유명한 제호 때문에 유리하기도 하고 아주 불리하기도 하다. 사람들은 보통 이코노미스트라는 단어 때문에 경제지라고 단정해 버린다. 그런데 이코노미스트의 기사 중 경제, 비즈니스, 금융 기사는 비중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 차라리 정치·사회 기사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동시에 과학·기술·책·예술이 골고루 배치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런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대형 시사잡지 타임과 뉴스위크는 왜 이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나’라는 의문은 이코노미스트의 성공을 다룰 때 항상 등장하는 질문이다. 이를 이코노미스트는 “품위와 수량은 동행할 수가 없다”는 말로 답변한다. 타임과 뉴스위크는 합쳐서 700만의 독자를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그 광범위한 독자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하드뉴스’를 빼고 흥행산업과 라이프 스타일 기사 같은 잡동사니를 이것저것 넣다 보니 특성이 전혀 없는 비빔밥이 되었다는 말이다. 자신들은 포기할 독자는 포기하고 특별한 독자들의 구미에 맞는 ‘그들이 버린 기사’를 다루다 보니 ‘그들이 버린 독자’들이 이코노미스트로 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자신들만의 기사를 그냥 다루지 않고 아주 독특하게 다룬다. 전 편집장 루퍼트 페난트리는 위트 있게 이코노미스트의 역할을 집약해서 정의했다. “금요일의 뷰페이퍼(뉴스만을 논평 없이 다루는 신문인 뉴스 페이퍼가 아니라 의견(view)을 말하는 뷰 페이퍼(views paper)라는 말)로서 평균 이상의 수입과 평균 이상의 마음과 평균 이하의 시간을 가진 독자들이 자신의 의견과 우리의 의견을 이코노미스트에서 비교 시험해 볼 수 있다. 우리는 세계를 대상으로 세계에 관한 의견과 논쟁을 전해줌으로써 전문가들을 설득하고 아마추어를 독자로 삼는다.”

이코노미스트는 뉴스를 다루면서도 결코 단순 사실만 전하지 않는다. 사실과 함께 대책까지 말해 준다. 기존의 언론매체의 뉴스 기사는 일어난 사실들만 나열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이코노미스트는 “그런 언론의 독자는 정보에 밝은 사람(more informed person)일 뿐 자신의 의견을 가진 사람(opinionated person)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독자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다수 언론은 불편부당을 고급지의 금과옥조로 지향한다. 이코노미스트는 그것을 과감하게 깼다. 이코노미스트의 기사는 상황 설명이 길지 않고 변명도 없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서 결론을 낸다. 기사 길이도 짧다. ‘문제를 파헤치는 데 망설임이 없고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데 두려워하지 않는다(It’s not afraid to prescribe action, not simply to describe the problem)’는 게 이코노미스트의 말이다. 말랑한 인터뷰 기사도 없고 두루뭉술한 흥미 본위의 탐사 기사도 없다. 순수하게 하드뉴스밖에는 없다. 이코노미스트의 장점은 요컨대 이렇다. ‘독자들에게 보여줄 사건의 사실을 나열하고 확실한 향후 방향 혹은 대책 같은 결론까지 독자에게 보여 준다.’ 그러나 기자가 자신이 내린 결론의 정당성을 더 높이기 위해 반드시 독자가 알아야 할 중요한 사실을 빠트린다거나 왜곡하면 독자들은 기자의 농단에 놀아나기가 쉽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의 ‘특별한’ 독자들은 지식과 경험이 많고 여행 경험도 풍부해 기자가 낸 결론을 무조건 따라가지 않는다. 결국 독자는 ‘나는 이 결론에 동의하는가(Do I agree with this conclusion?)’ ‘결론에 사용된 사실들, 그의 분석을 뒷받침하는가(Do the stated facts support his analysis?)’ 하는 물음을 가지게 된다. 이코노미스트 역시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전혀 몰랐던, 그냥 나열된 사실과 자료만을 읽고 ‘아! 나는 이런 것들을 알았다’ 하는 지적 욕구의 만족에만 머물게 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기자의 기사를 분석하게 만들고 비판하게 만들어 ‘생각하는 독자’를 만든다는 뜻이다. 그렇게 해야 바쁘고 중요한 일을 하는 이코노미스트의 선별된 독자들이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지거나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이코노미스트를 통해 얻게 된 이코노미스트 독자들은 더욱 이코노미스트를 좋아하게 된다. 여기에 바로 이코노미스트 성공의 제일 중요한 비밀이 숨어 있다.

이렇게 독자들이 자신의 기사를 계속 의심하고 분석한다는 사실을 기자가 알면 기사 작성에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어 더 좋은 기사가 나온다. 기자들은 독자들 앞에 요리 재료를 나열해 놓고 요리 만드는 방법을 보여 주면서 요리를 만들고 그리고는 맛은 이렇다고 평까지 한다. 그러면 이코노미스트의 독자는 그 기자의 요리평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고 계속해서 논쟁을 하면서 나름대로 요리 실력을 키워가는 것이다. 이렇게 이코노미스트는 자신들의 독자를 그냥 수동적인 뉴스 소비자보다는 능동적인 분석가로 만든다. 공평무사를 사시로 삼는 언론보다는 확실하게 색깔을 드러내는 언론이 독자로부터 더 사랑받고 디지털 시대에도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점을 이코노미스트는 보여준다. 이렇게 이코노미스트는 정예의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사랑을 받는다.

런던 세인트 제임스에 있는 이코노미스트 사옥.
런던 세인트 제임스에 있는 이코노미스트 사옥.

사실 이코노미스트의 성공은 충실하고 다양한 기사가 제일 큰 원인이지만 거기에는 ‘보이지 않는 광고’가 발휘한 힘이 크다는 점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광고는 ‘입소문 광고(word of marketing)’이다. 이렇게 이코노미스트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독자들은 당연히 주위에 권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이뤄진 이코노미스트의 강의실, 교실, 연구실로의 진출은 놀라울 정도이다. 심지어는 세계의 많은 학교들이 영어 교과서로 이제는 타임이나 뉴스위크를 버리고 이코노미스트를 사용한다. 이코노미스트는 학생들의 멘토인 교수나 교사, 그리고 부모들이 권하는 잡지이다. 새로운 지식을 찾고 있고 새로운 세상을 찾아나서 새로운 생활과 습관을 만들어 가는 학생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일이 이코노미스트의 자체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존 독자들에 의한 새 독자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의 성공은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코노미스트는 ‘잡지계의 애플’답게 미래 대비를 잘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준비는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금까지 영국 주간 시사잡지 중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오랫동안 수위를 지켜 온 정치 가십잡지 ‘프라이빗 아이(Private Eye)’는 평균 21만8000부로 항상 1등이었는데 2014년 들어 이코노미스트에 2등으로 밀리고 말았다. ‘프라이빗 아이’는 2013년 전반기에 비해 부수가 2.6% 줄었고 전년도에 비해서는 2% 줄었다. 종이잡지 판매는 이코노미스트도 줄었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디지털 독자가 늘어난 반면 온라인이 없는 프라이빗 아이는 감소폭을 어디서도 보충할 수 없었다. 잡지 업계에서 디지털로의 이동이 빨라지고 있는데 이코노미스트는 일찍부터 이에 대비한 것이 주효해서 계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또 앞으로도 계속 성장이 예상된다.

전 이코노미스트 CEO 앤드루 라시바스는 인터뷰에서 이코노미스트의 디지털 성공을 이렇게 설명했다. “온라인을 통해 얻은 아주 중요한 지식은 디지털 기사를 독자들이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종이보다 더 열중해서 읽는다는 것이다.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실제 참여까지 한다는 점이다. 독자들은 온라인상에서 만나, 나누고, 참여하고, 논의하고, 논쟁하기를 원한다. 종이잡지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이렇게 온라인 잡지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는 종이에서 디지털로 아주 빠르게 옮겨 갈 것으로 예상했는데 실제 보기와는 아주 다른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종이에서 옮겨 가는 것이 아니라 종이에도 있고 온라인상에도 존재한다. 결국 플랫폼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완전히 옮겨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에서 여러 개의 플랫폼으로 옮겨 간다는 점을 우리는 유의해야 한다. 우리 이코노미스트는 종이와 디지털을 동시에 원하는 독자에게는 구독료를 더 받는다. 신규 독자의 반은 두 종류를 다 원하고 돈을 더 낸다. 나머지 반에서 정확하게 반반으로 종이와 디지털을 원한다. 세상은 이렇게 종이와 디지털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사실 이런 일은 우리에게도 상당히 큰 놀라움이었다. 디지털 환경에서 태어나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젊은 세대들도 종이잡지는 상당히 매력적이고 특별하다고 느껴서 종이잡지를 선택하는 경향이 다시 살아나고 있음을 본다. 이런 자료를 보기 수년 전에 누군가 종이의 운명이 얼마나 남았을 것 같으냐고 물었다면 지금보다 아주 짧은 기간을 예상했을 것이다. 아직도 사람들은 종이의 필요성을 느끼고 즐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는 ‘그렇다면 모든 인쇄미디어들이 이미 디지털로 기운 상황에서 이코노미스트만 특이한 존재라는 말인가’라는 질문에 ‘그건 아니다’라고 말한다. “지금 사람들이 시사뉴스를 보기 위해서는 완전히 온라인으로 돌았다.(라시바스는 특별히 ‘허핑턴포스트’를 지칭하지는 않았으나 분명 마음속에 두고 대답을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잡지 ‘뉴요커(NewYorker)’처럼 뭔가를 읽기 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독자로 두고 있다. 완전히 다른 경험을 우리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진과 글을 같이 보는 ‘보그(Vogue)’ 같은 호화 패션잡지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우리 독자는 어떤 독자보다 훨씬 더 지적 수준도 높고 여행도 많이 하고 경험도 많다. 독자들 서로뿐만 아니라 우리와도 소통하기를 원한다. 그런 독자들의 요구는 온라인에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디지털(아이패드·킨들·태블릿PC) 기기들이 나오기 전, PC를 통한 온라인만 있을 때 이미 준비를 시작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013년 초 자신들을 광고할 PR회사를 ‘Atmosphere Proximity’로 바꾸었다. 이 회사가 디지털 전문회사라는 점을 높이 샀다. 이로써 이코노미스트는 디지털에 중점을 두겠다는 방향을 대내외에 공표한 셈이다. 이코노미스트의 2014년 전 세계 판매 부수(매주 155만8119부) 중 종이잡지는 145만5261부이고 디지털이 10만2858부이다. 미국으로만 보면 89만7849부 중 83만1978부가 종이, 6만5871부가 디지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동종의 어떤 다른 잡지보다도 디지털 쪽으로는 준비가 잘되어 있다. 방증은 많다. 매주 61만3967개의 기기에서 이코노미스트 앱을 통해 접속이 이루어지고 있고, 트위터 280만, 페이스북 110만, 구글 서클 160만 등 도합 550만의 SNS 팔로어가 있다. 매달 320만명이 이코노미스트의 웹사이트를 방문하는 것도 큰 힘이다. 뿐만 아니라 이코노미스트는 부단히 독자 편의를 위해 새로운 노력을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잡지를 MP3 형태로도 만든다. 잡지 전체 기사가 음성으로 나온다. 장거리 운전이나 다른 일, 예를 들면 요리를 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듣기에 안성맞춤이다. 실제 많은 독자가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어떤 성향의 잡지인가. 역대 16명 편집장의 면면을 보면 이코노미스트의 성격을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들 모두가 중산층 지식인이었다. 1대부터 3대까지 초창기 34년간의 편집장들은 특히 진보적 배경을 갖고 있었다. 초대 편집장이자 창업자인 제임스 윌스는 제모공으로 시작해서 독학했고 사업에 성공해 은행가가 된 자수성가형이다. 영국 국교회가 아닌 퀘이커교도 집안 출신이다. 다음 편집장 리처드 허튼도 영국 국교회가 아닌 기독교 종파 중 하나인 유니테리언 목사의 아들이며 영국 최초로 무종교인도 갈 수 있는 대학교 UCL(University College London)을 나왔다. 창업자 윌스의 사위인 3대 편집장 월터 바주트도 허튼과 비슷한 출신이다. 중산층 은행가의 아들로 또한 UCL을 나왔다. UCL이란 대학교는 잉글랜드에서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가 거의 600년간 독점해 온 대학교 교육을 처음으로 깨뜨리면서 두 대학교와는 달리 무종교인들이 공부할 수 있게 개방한 대학이다. 거의 모두가 국교도인 영국 지배계급이 ‘신이 없는 대학교(Godless University)’라고 놀렸다. 그만큼 획기적인 대학교였다. 해서 교풍이 종교를 기본으로 한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와 달리 자유로운 사상을 추구하는 신지식 중산층이 주로 갔다. 이런 이유로 이코노미스트는 당시 사회 분위기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분위기는 지금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후 편집장 9명이 옥스브리지(Oxbridge·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교를 함께 부르는 명칭) 출신이다. 특히 옥스퍼드 출신이 6명이다. 영국인들은 옥스퍼드의 교풍을 체제순응형이라며 케임브리지의 체제개혁형과 비교한다. 이코노미스트의 편집장 중에 옥스퍼드 출신이 많다고 체제순응형 혹은 보수적이라고 말하기는 좀 어렵지만 영국인들은 이코노미스트를 정치적 균형에서는 보수 쪽으로 기운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기타 사회적 이슈에서는 시대에 맞게 진보적이라고 본다. 영국의 거의 모든 언론은 정치적 색깔을 창간 때부터 분명히 하고 이후 계속해서 지켜나간다. 그것이 고정독자를 잡아 놓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코노미스트는 특이하게 정치적 색깔이 뚜렷하지 않다. 이코노미스트가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에 대한 논쟁은 때에 따라 다르고 사안에 따라 다르고 또 비판하는 평자마다 다르다. 예를 들면 이코노미스트는 2005년 선거에서는 노동당을, 2010년에는 보수당을 지지했다. 이코노미스트의 지지 덕분은 물론 아니겠지만 우연찮게도 이코노미스트의 지지를 받은 두 당은 모두 해당 선거에서 이겨 집권을 했다.

이코노미스트로서는 여론의 방향을 잘 잡았다거나 승자 편에 서는 데 재빠르다는 평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때 처음에는 영국과 미국의 개입을 지지하고는 나중에는 “시작부터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일반 사안에서는 아주 진보적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동성결혼, 마약 합법화, 공공장소의 금연, 아동체벌 중지, 자유이민, 외국노동자 환영, 부모의 교육 선택권 지지, 총기규제, 앰네스티 운동 등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자유경제와 시장경제를 믿고 자신들을 ‘극단적 중도(extreme centre)’라고 주장한다. 심지어는 ‘과격 중립(The radical centre)’이라고까지 중립성을 강변한다. 동시에 자신들은 ‘특권과 거만과 예단의 적’이라고 자부한다.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 같은 보수를 지지하기도 하고 베트남전을 지지하기도 했다. 동시에 해럴드 윌슨 영국 수상과 빌 클린턴을 지지하기도 했다. 진보적인 문제에 협조하기도 하고 아주 오래전부터 사형제도 반대, 수형제도 개혁과 탈식민지화를 주장하기도 해왔다.

이렇게 이코노미스트의 성향은 어떻게 보면 일관된 것 같지도 않고 모호하다. 그것이 이코노미스트의 매력이긴 하다. 그런 때문인지 이탈리아 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을 비판하는 이코노미스트를 가리켜 ‘이코뮤니스트(Economist+Communist)’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이코노미스트의 좌파적 시각을 비난한 것이다. 카를 마르크스도 이코노미스트를 금융귀족들의 유럽판 기구라고 혹평한 바 있다. 하지만 마르크스도 자본론을 저술할 때 이코노미스트를 경제 관련 주요 자료원으로 이용했다.

이코노미스트의 대단한 영향력은 독자 편지란을 보면 알 수 있다. 세계 각지의 독자들이 이코노미스트의 기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편지로 써서 보내면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게재한다. 최근호(10월 11일자)의 독자 편지란에는 한국 기획재정부 대변인의 반박이 실렸다. ‘한국 기업들이 엄청난 사내유보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하지 않고 있고 가계소득이 늘어나지 않고 있다’라는 기사에 대한 반박이었다.

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영국인 재발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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