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최근호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표지모델로 올리고 ‘시 황제(Emperor Xi)’란 제목을 붙였다. 공산당을 상징하는 빨간색 넥타이를 맨 시진핑의 초상화는 중국을 세계의 톱 자리로 끌어올리려는 그의 강인한 의지를 담고 있다.

타임지 동아시아 특파원 겸 중국지국장인 한나 비치는 이 커버스토리에서 “시진핑은 대담하면서도 (발을 땅에 디딘) 현실적 인물로, 지난 수십 년간 중국의 다른 어떤 지도자보다 빠르게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의 권력은 전임 장쩌민과 후진타오를 능가한다”고 평가했다. 그녀는 인민일보 글을 인용해 “1세대 지도자 마오쩌둥이 중국 인민을 일어나게 했고, 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이 중국 인민을 부유하게 했다면, 시진핑은 중국 인민을 강하게 만들고 있다”고도 했다.

시진핑은 2년 전 중국공산당 18차 당대회에서 국가 지도자가 된 뒤 2년이란 짧은 기간에 기존의 중국 정치 관례를 모두 깨는 파격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그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그가 겸직한 직위는 10개에 달하며, 관할 범위는 정치·경제·군사·외교·언론은 물론 사법까지 미치고 있다.

2년 전 후진타오로부터 △당총서기 △중앙군사위 주석 △국가주석을 차례로 이어받은 그는 지난해 말과 올해 사이 △국가안전위원회 주석 △중앙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 조장 △중앙외사영도소조 조장 △중앙대만공작영도소조 조장 △중앙인터넷안전소조 조장 △심화국방군대개혁영도소조 조장 △중앙재경영도소조 조장을 맡았다.

이에 따라 국가재정과 정부개혁 문제는 이제 리커창 총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소조에서 시진핑의 최종 재가를 받아 집행되는 구조로 바뀌었다. 이는 정치·군사·외교는 국가주석이, 경제는 총리가 맡던 관행을 깬 것이다. 게다가 지난 10월 말 열린 중앙정법공작회의에 시진핑 주석이 총서기 자격으로 참석해 ‘중요 강연’을 함에 따라 법원·검찰·경찰 등 사법부를 총괄하는 중앙정법위(서기 멍젠주)마저 직접 챙기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마오쩌둥 시대부터 지금까지 중국 정치는 10명 이하의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국가 대사를 합의·결정하는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은 이런 체제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도자들보다 훨씬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지만, 덩 사후 장쩌민 시대부터는 9인의 상무위원이 내부 회의에서 똑같은 한 표를 행사하는 구조가 굳어졌다. 9인이 동등한 권력을 누리는 ‘집단 대통령제’ 같은 것이다. 이는 지금의 시진핑 시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시진핑이 전임자들과 달리 막강한 파워를 거머쥐게 된 까닭은 먼저 그의 등장 과정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시진핑은 전임자 후진타오와 권력기반부터 달랐다. 덩샤오핑에 의해 발탁된 후는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을 세력기반으로 하지만, 임기 내내 상하이방과 태자당의 견제를 떨치지 못했다. 그의 전임자였던 장쩌민은 2002년 말 퇴임하면서 후에게 당 총서기직과 국가주석직은 물려주면서도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2년간 내주지 않았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의 경구에 따라 장은 권력연장을 위해 군권을 틀어쥐고 군 인사에도 영향력을 미쳤다. 장은 또 자신의 심복인 저우융캉에게 사법기관을 총괄하는 중앙정법위 서기를 맡겨 후진타오를 견제하게 했다. 후는 저우에게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처지에 있었다. 장의 ‘상왕(上王) 행세’가 가능했던 것은 9인의 상무위원 중 자신이 발탁한 인물의 수가 많아 표결에서 유리했기 때문이다. 후진타오가 아무리 자기 의도대로 국정을 운영하려 해도 다른 상무위원들이 반대하면 추진할 수가 없는 구조였다.

반면 시진핑은 태자당 세력뿐 아니라 장쩌민이 좌장으로 있는 상하이방의 지지 위에서 권좌에 올랐기 때문에 정치기반이 탄탄했다. 정치적 대립관계에 있던 공청단의 좌장인 후진타오는 리커창을 후계자로 밀었으나 상무위원 수에서 밀려 불가능하게 되자 시진핑에게 당·정·군 3대 권력을 한꺼번에 물려주는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장쩌민 같은 ‘상왕’ 노릇으로 후임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시진핑은 후의 결단 덕분에 취임 초기부터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태자당 출신의 시진핑과 공청단 좌장인 후진타오가 손을 잡게 된 결정적 계기는 ‘보시라이 사건’이었다. 중국 최고 지도부는 보시라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공산당 집단지도체제가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9인의 상무위원이 국정에 공동책임을 진다는 것은 곧 ‘무책임’도 용납된다는 뜻이다. 또 정치국 상무위원은 모두 당 총서기와 같은 권한을 누리면서 상호견제가 어려워지는 상황을 초래했다. 정법위 서기 저우융캉이 경찰·검찰·법원을 틀어쥐면서 국가주석 이상의 권한을 누리며 엄청난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상황의 재발을 막기 위해 공산당 지도부는 18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 수를 9명에서 7명으로 줄여 이전보다 의사결집이 용이하도록 했다. 또 상무위원이 맡아오던 정법위 서기직을 정치국원에게 맡겨 정법위의 지위를 격하하고 권한도 축소했다. 이 같은 개혁은 “지도부의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적했다.

보시라이-저우융캉에게 정치적 생명을 위협당한 시진핑은 두 호랑이(고위 권력자)에 대한 비리조사를 단행하면서 ‘반부패’를 정치구호로 삼아 여론의 강력한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비리특권층에 대한 과감한 숙청을 통해 정부나 관료에 대한 국민의 팽배한 불만이 약화·배출되는 효과를 얻고 있다. 특히 ‘집단 대통령’의 하나였던 저우융캉 전 상무위원에 대한 비리조사 사실을 공개함으로써 ‘상무위원은 처벌하지 않는다(刑不上常委)’는 그동안의 묵계까지 깼다.

이는 퇴임한 지도자들 가운데 가족의 부정축재 혐의가 외신에서 거론된 장쩌민, 리펑, 원자바오, 자칭린 같은 전임 지도자들까지도 꼼짝 못하게 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후진타오 시절 자주 공개석상에 등장해 ‘상왕’ 행세를 했던 장쩌민은 시진핑 시절에는 고령으로 건강까지 악화되면서 조용히 지내고 있다. 이는 곧 중국 현대정치의 특성 중 하나였던 원로들의 막후정치가 크게 약화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시진핑의 권력집중이 가속화하면서 총리 리커창의 존재감마저 희미해지고 있다. 처음엔 정치적 필요에 따라 상무위원들의 합의로 시진핑에게 권력을 몰아주었지만, 이제는 그의 막강한 권력과 카리스마 앞에 다른 상무위원, 심지어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리커창조차 도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시진핑은 같은 상무위원이지만 ‘상무위원 이상의 특별한 존재’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서방 언론은 그를 ‘중국의 황제’라 부르기에 이른 것이다.

올 2월 초 시진핑은 러시아 TV와의 인터뷰에서 “먹기 좋은 고기는 다 먹어 치웠다. 모두 씹기 힘든 딱딱한 뼈만 남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저우융캉을 필두로 하는 ‘석유방’ 등이 권력을 남용해 천문학적 숫자의 재산을 축재한 현상을 비꼰 것이다. 시의 언급대로 중국 당·정·군 고위인사들의 부패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저우의 경우 900억위안(약 15조5000억원)에 달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는 공산당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사태를 막는 데는 총리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며 국가주석이 직접 챙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중국 지도부가 판단을 내린 듯하다. 시진핑에게 모든 권한을 집중하는 것은 국내적으로 이런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국제 상황도 중국에 강력한 리더의 출현을 부르고 있다. 미국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회귀’와 일본 아베 정부의 재무장 및 우경화는 중국의 부상에 강력한 장애물로 등장했다. 전임 후진타오 같은 우유부단한 지도자보다는 강력한 대외정책을 펴나갈 카리스마 있는 리더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특히 군부는 강경한 대외정책과 군비확장정책의 선두에 서 있다. 시진핑이 군부대 시찰에서 “언제든지 전쟁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전쟁을 하면 반드시 승리하는 군대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시진핑이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할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요소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응’이라는‘중국의 꿈’을 제시하여 국민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1인당 소득이 7000달러에 육박하면서 국민은 ‘빵’ 이상의 가치와 보람을 원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이런 염원이 ‘민주화 요구’로 분출되지 않도록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적극 조장하고 있다. ‘중화민족의 부흥’은 국민적 자긍심을 고취하여 공산당 통치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하는 정치 슬로건이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지도부는 서방식 민주주의가 갈등과 비효율로 인해 중국 실정에는 맞지 않는다는 이데올로기도 적극 전파하고 있다. 넓은 영토에 다민족국가인 중국에서 직접선거 민주주의를 도입하면 민족 간·지역 간 갈등으로 국가가 분열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고 이것이 지식인층에 먹혀들고 있다. 시진핑은 당대회나 전인대에서 “다른 나라에서 나쁜 경험을 배우지 않을 것이며, 다른 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베끼지도 않을 것”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타임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은 내부 회의에서 “서양의 7가지 가치와 싸워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7가지 가치란 서구 시민사회, 자유시장, 민주주의, 독립된 미디어, 언론 자유, 인권, 사법부 독립 등을 말하며, 이러한 가치가 공산당체제를 위협하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서방 민주주의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아닌 중국식 공산당 통치체제의 고도화에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서구식 가치의 중국 침투를 막고 사상도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시진핑 정치의 반개방성과 폐쇄적 속성을 보여준다.

지난해 7월 시진핑 주석은 후베이성 우한의 수해현장을 방문했다. 당시 시 주석은 바지를 걷어 올리고 왼손에 우산을 든 채로 현장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중국 언론을 통해 널리 퍼진 이 사진은 올해 ‘중국 뉴스사진 최고상’을 수상했다.

또 중국의 우주왕복선에 ‘중국의 꿈’ 음악 CD를 실으면서 CD 속에 시진핑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의 노래 ‘희망의 초원에서(在希望的田野上)’도 넣었다. 담당 부서에서 최고 권력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영부인의 노래를 넣었다고 볼 수 있다. 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1월 13일 ‘신(新)설계사 시진핑’이란 기사에서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의 ‘총설계사’였다면 시는 새로운 단계의 개혁노선의 ‘신설계사’라고 칭송했다. 시진핑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아랫사람들이 비위를 맞추고 우상화하는 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제리 헨드릭스 전 미 해군장성은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시진핑은 중국을 세계의 중심에 놓으려 하는 동시에 자신을 중국의 중심에 놓으려 한다. 이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대 이후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시진핑이 베이징의 골목길 식당을 찾아 주민들과 어울려 만두를 먹는 모습도 국민에게 ‘친근한 지도자’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고도로 계산된 연출이라고 타임은 지적했다.

‘현대판 황제’로 등극 중인 시진핑은 중국을 어디로 이끄려는 것일까. 그가 내세운 ‘중국의 꿈’은 공산당 창당 100년이 되는 오는 2021년까지 전면적인 소강(小康)사회를 건설하고, 신중국 출범 100주년인 2049년까지 부강하면서도 민주적이고 문명적이며 조화로운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애매한 중국식 용어로 표현된 ‘중국의 꿈’은 쉽게 말해 2049년까지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 최강대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의 발전속도로 보면 미국 추월 시기는 더욱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경제 규모에서 미국을 추월해 세계 1등 국가로 도약하는 것은 시진핑 임기 2022년 이전인 2018년을 전후로 이루어질 것으로 연구기관들은 예측한다.

국내적으로 시진핑 시대는 ‘경직된 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학문과 사상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고 언론자유를 제한하며, 인터넷에 대한 검열도 강화될 것이다. 홍콩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중국 지도부는 공산당 일당체제를 위협하거나 대체할 가능성이 있는 새로운 정치체제의 출현을 금기시하고 있다. 사회통제를 위해 공산당은 지난 10월 열린 18기 4중전회에서 ‘법치강화’를 내세웠다. 이는 권력자의 법의 남용을 막으면서 동시에 비판적 인사에 대한 탄압도 가능하게 한다. 홍콩 명보는 중국 당국이 기자들에게 기밀준수 서약을 강요하고 대학교수들에게 강의주제를 제한하는 지시를 내린 것을 들며 “법치가 사상규제라는 의식의 법치화로 나타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시진핑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본인이 모든 사안을 직접 챙기는 것은 일사불란한 의사결정과 신속한 집행에는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성과가 좋지 않거나 집행과정에서 비리나 문제점이 드러나면 시 주석의 리더십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는 공산당의 리더십 약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1인 통치체제는 국민에게 ‘선물’을 안겨주어야 지속된다. ‘현대판 황제’ 시진핑이 국내적으로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성장과실의 분배를 통해 사회안정을 이뤄내고, 국제적으로는 미국 등과 평화로운 지구촌을 만들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할 수 있을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지해범 조선일보 동북아시아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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