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1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진행된 수술로봇 다빈치 SI를 이용한 신장암 수술 장면.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지난 11월 11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진행된 수술로봇 다빈치 SI를 이용한 신장암 수술 장면.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지난 11월 11일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본관 4층 수술실에서 신장암에 걸린 한 40대 여성의 수술이 있었다. 이날 수술은 연세대 의대 비뇨기과 최영득 교수가 미국 업체 인튜이티브 서지컬이 개발한 수술로봇인 다빈치 SI를 이용해 진행했다. 세브란스병원은 단일의료기관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로봇수술을 했을 정도로 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최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로봇수술 트레이닝센터의 센터장이다. 이날 최 교수는 로봇수술 장면을 직접 보고 싶다는 주간조선의 취재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오전 10시30분 30㎡ 남짓한 수술실에 들어가 보니 최 교수를 비롯해 8명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한 팀을 이뤄 수술을 하고 있었다. 수술실 중앙의 수술대 위에 환자가 누워 있었고, 그 주변으로 수술로봇과 7명의 스태프들이 환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최 교수는 수술실 한쪽에 있는 콘솔에 앉아 로봇을 제어해 수술을 하고 있었다. 최 교수가 앉아 있는 콘솔에는 3D로 환자 몸속을 볼 수 있는 비전 시스템과 두 개의 집게팔이 달려 있었다. 콘솔에 달려 있는 집게팔에 의사가 손가락을 끼워 로봇팔을 제어하는 방식으로 수술을 했다. 다른 의사와 간호사는 최 교수의 지시에 따라 수술을 돕고 있었다. 로봇수술이 이뤄지는 수술실 분위기는 ‘개복’수술을 하는 수술실의 분위기와는 확연하게 달랐다. 최 교수를 비롯한 수술팀의 분위기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적어도 의사의 손이 들어갈 정도로 배를 가르는 개복수술과 달리 직경 8㎜ 정도의 구멍 네 개를 뚫고 그 속으로 세 개의 집게손과 한 개의 카메라를 넣어 수술을 진행하는 로봇수술은 외관상으로만 봐도 환자가 받을 ‘수술 스트레스’가 적어 보였다. 수술 스트레스란 수술 후 깨어난 환자가 겪게 되는 신체적 후유증이다.

로봇수술의 관건은 한 개의 카메라와 세 개의 로봇팔을 의사가 얼마나 자신의 손처럼 능숙하게 다루느냐로 보였다. 수술 부위를 육안으로 직접 보거나 자신의 손으로 만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교한 제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콘솔에 앉은 최 교수는 이런 우려가 ‘기우’라는 듯 능숙한 손놀림으로 집게팔을 제어하고 있었다. 로봇수술 시스템 위에 달려 있는 화면으로 비치는 환자 몸속 집게는 사람의 손가락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정교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오히려 최 교수의 수술 속도를 팀원들이 받쳐주지 못하자 한 차례 고성이 터져나왔다.

“그거 하는데 뭐 그렇게 오래 걸려!”

신장 부근 수술 부위의 봉합이 어느 정도 끝나자 최 교수가 말을 건넸다. 그는 “사람의 손이 닿기 어려운 곳까지 로봇 집게손이 들어가기 때문에 수술이 훨씬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로봇수술도 결국은 해부학적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개복수술 경험이 많은 의사들이 잘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 여자 골프선수들이 타고난 손감각으로 LPGA를 휩쓰는 것처럼 로봇수술 분야도 한국 사람들이 세계 최고”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로봇수술로 17분 만에 수술을 끝낸 적이 있다”며 “아마도 기네스북이 있다면 올라갔을 것”이라고 웃었다.

최 교수는 “로봇수술이 너무 간단한 것 같아 박 기자가 개복수술과의 차이점을 잘 모를 것”이라며 이후에 예정된 수술실로 기자를 데리고 갔다. 원래 취재 일정에도 잡혀 있지 않았고, 로봇수술과 개복수술을 한날한시에 언론에 공개하는 것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생긴 이래로 처음이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신장암 수술이어서 비교가 용이했다. 개복수술은 말 그대로 배를 갈라서 하는 수술이다. 일반인에게는 수술 장면 자체가 익숙지가 않지만, 의사들에게는 고전적 수술법이자 익숙한 방법이다. 배를 가르고, 살가죽을 고정시킨 상태에서 의사의 손이 사람 몸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이 고전적 수술은 누가 봐도 환자의 몸이 수술 후 회복 때까지 힘들 게 분명했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로봇수술 트레이닝센터장인 최영득 비뇨기과 교수.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로봇수술 트레이닝센터장인 최영득 비뇨기과 교수.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미국 의료장비 회사의 제품인 ‘다빈치 수술로봇’이 가장 빛을 보고 있는 병원이다. 범위를 넓혀 우리나라 전체로 확대해도 수술로봇을 다루는 한국 의사들의 실력은 세계 정상이다. 국내 여러 의사들이 다빈치 수술로봇을 이용해 새로운 수술법을 개발했고, 이것이 세계적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존스홉킨스대학이나 MD앤더슨병원을 포함해 전 세계 2500여개 병원(2012년 말 기준)에서 같은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지만, 국제 의료계에서는 한국 의료진을 가장 주목하고 있다. 한국 의사들이 국제학회에 초청되어 다른 나라 의사들 앞에서 ‘라이브 수술’을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지난해에는 영국 공영방송 BBC가 최규석 경북대학교 대장항문외과 교수의 로봇수술 장면을 방영하기도 했다.

한국 의사들의 활발한 수술법 개발에 고무된 인튜이티브 서지컬도 한국에 대한 직간접 투자를 늘리기 시작했다. 지난 4월에 개발해 미국에서만 공개한 최신 로봇수술시스템인 다빈치 XI의 경우 세브란스병원에서 비임상연구를 통한 수술법을 개발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측의 연구를 통해 수술법이 개발되면 이것이 곧 세계적 표준 수술법이 되는 셈이다.

수술로봇을 이용한 직장암 수술법을 개발한 세브란스병원 민병소 외과 교수는 “비뇨기과, 산부인과, 일반외과 분야에서 확고한 수술법이 없었는데 우리나라 선생님들이 많이 참여를 하시면서 수술법이 많이 개발됐다”며 “현재는 아예 구멍을 뚫지 않고 항문을 이용한 직장암 수술 등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은 2009년 6월 국내에서는 최초이자, 아시아에서는 홍콩에 이어 두 번째로 국제 로봇수술 트레이닝센터를 설립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센터 설립 후 전 세계 의사들을 대상으로 로봇 시스템의 사용법과 수술기술을 익힐 수 있는 연수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연수를 시작한 이후 2014년 현재까지 33개국에서 1042명의 의료진이 교육을 받았다. 프로그램은 베이직 코스와 어드밴스드 코스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코스에 따라 하루에 2300달러에서 3000달러를 받고 있다. 현재 아시아와 유럽에서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수술로봇(다빈치 S, SI, XI)이 모두 있는 곳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이 유일하다. 아직까지 큰 규모는 아니지만 그 증가세가 가파르다. 교육을 받은 전문의들은 대부분 중동과 아프리카, 유럽 등에서 왔으며 한 번 교육을 받고 간 전문의들이 소속병원의 레지던트를 다음 교육에 참가시키는 등 그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측이 기자에게 공개한 트레이닝센터는 가장 최근에 완공된 최신식 건물 지하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총 3대의 수술로봇을 갖추고 있었다. 기자가 방문한 날도 중국 내몽골 지역에 있는 츠펑대학 부속병원 소속 의사가 이곳에 와서 연수를 받고 있었다. 이에 대해 세브란스병원 측은 주간조선에 “매년 전 세계의 많은 외과의들이 다양한 로봇수술 교육을 받기 위해 지속적으로 방문하고 있으며, 새로운 로봇수술 개발 및 기술 교육에 있어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의 허브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로봇수술을 계기로 한국 의료기술의 우수성을 접하게 되는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세계 최고의 수술로봇 제조업체의 제품이 한국 의료진에 의해서 빛을 발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 의료진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나 의료기기산업의 발전은 더딘 편이다. 세브란스병원 측의 설명에 따르면 한국 의료진의 우수한 로봇수술 기술들이 해외에도 알려지면서 한국 병원에 와서 로봇수술을 받으려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전립선암 수술의 경우 기존 복강경 수술로 받을 경우 이후 요실금이 발생하거나 성기능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로봇수술의 경우 이런 후유증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로봇수술을 선호하는 환자가 늘고 있고, 이러한 환자 중에 한국에 와서 로봇수술을 받기 원하는 외국인들이 많다는 것이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민병소 외과 교수가 최신 제품인 다빈치 XI를 시운전하는 모습.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민병소 외과 교수가 최신 제품인 다빈치 XI를 시운전하는 모습.

로봇수술을 포함한 의료관광이 늘기 위해서는 의료서비스산업 강화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신지호 전 의원이 주간조선에 기고했던 것처럼 한국은 인도와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서 의료관광산업의 경쟁력이 턱없이 떨어지는 편이다. 우수한 인력을 가지고도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는 대표적 사례다. 그나마 로봇수술 기술이 다른 아시아 국가를 압도하기 때문에 한국에 와서 로봇수술을 받는 사례가 점차 늘어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의료기기산업의 측면으로 봐도 한국의 경쟁력은 한참 뒤처져 있다. 지난해 전 세계 의료기기 생산규모는 3284억달러로 이는 전년 3077억달러 대비 15.8%가 증가할 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 중 시장 규모로만 보면 한국이 미국, 일본, 독일 등에 이어 11위로 작년보다 2단계 상승했다. 인튜이티브 서지컬을 비롯해 올림푸스, 스트라이커 등 세계적 의료기기 제조업체들이 한국 의료진의 우수성을 활용하기 위해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 개발되는 의료기기의 경쟁력은 걸음마 수준이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한 직원은 “한번은 한 방송사에서 수술실에 들어가 있는 모든 제품을 국산과 외국산으로 나누어 구분해 봤는데, 97%가 외국 제품”이라며 “그나마 나머지 3%도 식염수 같은 소모품”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의료기술과 의료기기산업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것은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 보면 확연하게 드러난다. 한국 의료진들의 의료기술의 경우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80~90% 수준까지 쫓아왔고, 일본을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민병소 교수는 “인튜이티브 서지컬사가 다빈치 시스템 트레이닝센터를 한국에 세운다고 했을 때 일본 의학계가 굉장한 충격을 받았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의료기기산업은 일본의 3분의 1 수준도 안 된다고 보고 있다. 일본에는 올림푸스, 캐논과 같은 세계적 의료기기 생산업체들이 국가 경제를 견인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세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의료기기 업체가 마땅치 않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의료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하면 ‘원격의료’ 같은 프로세스 측면에서 접근하는 일이 많은데, 의료기기산업을 발전시켜야만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몇 해 전에도 정부와 함께 의료기기 발전을 위한 팀을 만들어서 추진했는데 이렇다 할 결과물이 나온 게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현재 한국 의료산업은 정부의 종합적 대책이나 지원 없이 의료기관이나 의료기기업체 간의 각개전투로 이뤄지고 있다. 연세대학교도 최근 몇 년간 다른 국가 지자체와 병원 계약을 잇따라 성사하는 등 성과를 올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나라로 치료를 받으러 오겠다는 외국 환자들을 제도적 뒷받침이 안 돼 수용하지 못하고 있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변양규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우리나라에서 의약품·의료기기 분야의 글로벌 챔피언을 탄생시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정부의 전폭적 지원”이라며 “정부의 지원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의료산업의 R&D 지원 강화와 효율적 규제시스템의 확립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했다.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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