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4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학내 게시판에 성추행 교수에 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photo 연합
지난 12월 4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학내 게시판에 성추행 교수에 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다. ⓒphoto 연합

대학가가 교수들의 잇따른 성추행 사건으로 연일 시끄럽다. 지난 9월부터 12월 초까지 한 달간 언론을 통해 성추행 사건이 알려진 대학은 서울대, 고려대, KAIST, 중앙대, 강원대 5곳에 달한다. 성추행 사건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대한민국 최고 지성(知性)이라 일컫는 대학교수들의 비윤리적인 행태가 드러나면서 국민적 공분이 들끓고 있다.

지난 11월 10일 한겨레신문의 보도를 통해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강석진(53) 교수의 성추행 혐의가 처음 알려졌다. 수학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저명한 강 교수는 지난 8월 1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4 세계수학자대회’ 초청 강연자 중 한 명으로 선정됐던 인물이다. 지난 7월 28일 강 교수는 서울 광진구 한강유원지 벤치에서 대회 준비를 위해 자신의 일을 돕던 인턴 여학생 A씨에게 “무릎 위에 앉으라”고 말하며 A씨의 가슴을 만졌다. 이후 A씨에게 수차례 상습적인 성추행을 일삼았고 결국 10월 말 A씨는 서울 도봉경찰서에 강 교수를 고소했다. 도봉경찰서는 강 교수를 소환 조사 뒤 기소의견으로 11월 9일 서울 북부지검 형사3부(윤중기 부장검사)로 송치했다.

검찰 수사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 이후 서울대 학생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서 자신도 강 교수에게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글들이 연이어 올라왔다. 강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피해학생은 A씨를 포함해 23명에 달했다. 23명의 피해학생들은 ‘서울대 K 교수 사건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피해자 X’를 만들어 지난 11월 26일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비대위의 한 관계자는 “강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로 학생을 불러 성추행을 했고 학생이 반발하면 자신의 지위를 내세우며 협박했다”고 증언했다. 다음 날인 27일 강 교수는 학교 측에 사표를 제출했고 서울대는 사표를 수리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피해학생들은 면직이 아닌 강 전 교수의 해임을 요구하며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지난 12월 1일 서울대는 비대위 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강 교수의 사표를 반려하고 학내 인권센터에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결국 지난 12월 2일 검찰은 인권센터가 진행한 진상조사를 참고해 강 교수에게 ‘상습 강제추행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현재 강 교수는 서울 성동구치소에 수감돼 있다.

이에 앞서 서울대는 불과 6개월 전 음악대학 성악과 박모(49) 교수가 성악과 학생을 수차례 성추행한 혐의가 드러나 지난 5월 박모 교수를 해임한 바 있다. 서울대는 올해 2차례 불거진 성추행 사건에 관련된 해당교수를 해임해 성추행 파문으로 굽혀진 자존심을 회복하려 하고 있다.

지난 11월 22일 서울 송파경찰서는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이모 교수가 여자 대학원생 B(23)씨를 3개월에 걸쳐 성추행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11월 6일 고소장을 제출한 B씨는 진술서를 통해 이 교수가 6월부터 키스를 하는 시늉의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요구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8월 19일과 23일에는 이 교수가 자신에게 강제로 입을 맞췄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교수는 B씨가 고소장을 제출한 다음날인 11월 7일 고려대 측에 사직서를 제출했고, 11월 26일 고려대 측은 이 교수의 사표를 수리했다. 하지만 고려대 일반대학원 총학생회에서 이 교수의 사표수리에 반발하며 학교 측에 이 교수의 사표를 반려하고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하지만 고려대 교무처 관계자는 “사립학교라 고용계약 관계인 학교법인이 교수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을 법적 근거가 없다. 총학생회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까지 이 교수는 면직처리돼 교수로 재취업이 가능한 상태다.

KAIST는 지난 9월, 지난해 8월 20대 대학원생 C씨에게 성추행을 행한 혐의를 받은 일반대학원 D 교수를 해임처리했다고 밝혔다. C씨는 5월 D 교수를 교내 성폭력위원회에 신고했고 D 교수가 자주 자신을 술자리로 불러내 무릎에 앉힌 뒤 입맞춤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KAIST 성폭력위원회는 진상조사에 착수했고 8월 31일자로 D 교수를 해임처리했다. KAIST는 앞서 8월 초 신문 인터뷰에서 성추행 사건과 관련한 교수들에게 “무관용 원칙(Zero Tolerance)을 적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KAIST 서남표 총장은 “KAIST에서 성추행 등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할 경우 적법한 절차에 따라 무관용 정신에 입각해 해당 교수에게 엄중히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1월 2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본관에서 ‘서울대 K 교수 사건 성추행 피해자 X’ 기자회견이 열렸다. ⓒphoto 조선일보 DB
지난 11월 2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본관에서 ‘서울대 K 교수 사건 성추행 피해자 X’ 기자회견이 열렸다. ⓒphoto 조선일보 DB

지난 12월 3일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E 교수의 성추행 혐의도 JTBC를 통해 보도됐다. E 교수는 지난 1월 초 연구실에서 20대 대학원생 F씨에게 3차례에 걸쳐 성추행을 한 혐의로 학내 인권센터에서 조사를 받았고 이후 별다른 징계 없이 강의를 진행해 오고 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E 교수는 7월 24일 F씨를 수차례 성추행한 혐의로 학내 인권센터로 신고를 받아 9월 12일 인권센터의 성폭력대책위원회에서 조사를 받았다. 9월 23일 학교 측은 E 교수의 성추행 혐의가 인정된다는 결론을 내렸고 E 교수는 10월 7일 사표를 제출했다. 하지만 최근 E 교수가 성추행 혐의 조사를 받은 뒤에도 버젓이 강의를 계속 진행하고 있어 논란이 불거졌다. 이에 지난 12월 4일 중앙대 교무처의 한 관계자는 “학기가 보름 정도 남은 상황에서 대체 인력을 구할 수 없어 이번 학기까지만 강의를 하도록 했다”고 해명했다. E 교수의 사표는 현재 중앙대 총장(이용구)의 승인 절차를 밟고 있는 중이다.

강원대학교도 지난 12월 3일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G(62) 교수를 춘천경찰서에 고발했다. 지난 8월 양성평등센터에 ‘G 교수가 학과 사무실과 복도 등에서 여학생들에게 상습적인 성추행을 했다’는 피해신고 2건이 접수되어 강원대에서 진상조사위원회가 열렸고 G 교수를 면직처분했다.

하지만 피해학생과 학부모들은 학교 측의 징계를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G 교수에 대한 진상조사와 해임조치를 촉구했다. G 교수의 면직처분을 놓고 학내 여론의 비난이 거세지자 12월 3일 강원대학교는 G 교수를 춘천경찰서에 고발조치했다.

잇따른 대학교수들의 성추행 파문으로 얼룩진 대학가, 하지만 은폐되고 묵인되기 쉬웠던 교수들의 ‘권력형 성추행’ 문제에 대한 폭로가 계속 이어지는 것에 대해 교육계에선 한편으로 ‘불행 중 다행’이라는 시각도 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2월 1일 교수신문 칼럼을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대학 내 성추행 사건을 대하는 심정은 고통스럽지만 사건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고, 드러나게 하고 또 드러내려는 노력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환경이 다행스럽다. 추락해 갈 수 있는 대학의 지적·도덕적 권위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제28대 총학생회 성명서

고려대는 성폭행 혐의 교수 사표수리 취소하고 조사 재개하라

지난 11월 29일 고려대학교는 대학원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양성평등센터와 경찰 양측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공과대학 이 교수의 사표를 수리했습니다. 지도 제자인 대학원생에게 지속적으로 사귀자는 요구와 강제추행 혐의를 받고 있는 이 교수는 양성평등센터와 대학에 의거 조사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학교는 교수의 사표를 수리함으로써 퇴직금, 향후의 재취업 기회까지 보장해주었습니다. 교수라는 직위를 악용하여, 교수라는 권력 앞에 전적으로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대학원생의 인권을 유린한 교수라면, 다시금 강단에 서는 일이 없도록 강력 조치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학교는 대학원생이 학교 내에서 최약자의 위치에 처해 있으며, 학교는 인권 유린 및 탄압으로부터 약자를 보호해줄 구조적 여건은커녕 한 줌의 성의도 갖추고 있지 않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이번 사건은 명백하게 권력관계에서 발생한 성추행입니다. 교수라는 그 지위 하나만으로, 이 교수는 태연하게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대학원 사회, 특히 이번 사건이 발생한 이공계 대학원에서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의 권력 불평등이 몹시 심각한 수준에 달해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생의 학업과 연구, 노동과 임금, 진로와 미래 등 삶의 많은 부분들이 교수 개인과의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지도교수를 변경하는 일은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한번 정해진 지도교수와의 관계가 어긋나면 대학원생의 삶 전체가 어긋나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대학원생들은 교수와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교수에게 부당한 착취, 폭언, 폭행을 당하더라도 침묵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입니다. 피해자의 신고 이후 양성평등센터의 조사가 시작되자 이 교수는 연구실 대학원생에게 “교수는 연구실 관련 모든 행사와 일상생활에서 성추행 또는 성희롱 관련 어떤 행위도 절대 하지 않았다”라는 진술서를 써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중략) 서울대, 중앙대, 카이스트처럼 대학인권센터를 설치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인권 전문가가 상주하는 인권센터의 운영을 통해 피해자가 일상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돕고, 가해자에게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해야 합니다. 인권 유린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만큼, 문제의 해결 또한 일상적으로 가능하게끔 접근성 높은 인권센터의 설립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러나 학교는 이러한 제도적 해결에 나서기는커녕, 가해 지목자의 사표를 수리하고 해당 사건을 등한시함으로써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약자의 인권 보호에 관심이 없는 사회, 약자의 인권 침해를 ‘어쩔 수 없는’ 일 취급하는 사회, 그것이 현재의 대학 사회입니다. 학문의 전당이라는 이곳이, 어째 동물의 왕국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대학원생의 인권이 유린되는 사건 자체의 재발을 막기 위해 구조적 문제의 해결 또한 중요하고 시급합니다. 교수와 대학원생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가 개선되어야 합니다. 대학원생을 권력의 최약자로 남겨 두어서는 안 됩니다. 대학원생이 지도교수를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는 제도와 환경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또 등록금 및 생활비 마련을 위해 교수 개인에 의존하지 않도록 국가ㆍ학교 차원에서 대학원생의 장학금과 생활 임금을 보장해야 합니다. 교수와의 관계 바깥에서도, 대학원생이 자신의 학업과 연구를 확장할 수 있도록 연구자로서의 대학원생의 지위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구조적 해결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교수와 대학원생이 가해자-피해자의 불편한 관계에 처할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대학원생과 교수의 관계가 지금의 불평등한 관계를 벗어날 때, 학문의 길을 함께 걷는 선학과 후학으로서 상호 존중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략) 고려대학교는 즉각 이 교수의 사표수리를 취소하고 조사를 재개하십시오. 또한 장기적으로 대학원생 인권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나서십시오. 일반대학원 총학생회는 인권의 사각지대에 처한 대학원생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알리고 또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그 무엇보다 부당한 피해를 겪고 있는 대학원생의 곁에서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일에 힘쓰겠습니다.

김민섭 인턴기자·연세대 법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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