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트리와 꽃이 놓여진 단원고 2학년 9반 교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크리스마스 트리와 꽃이 놓여진 단원고 2학년 9반 교실.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2월 16일 서울 상암동에서 서울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안산으로 향했다. 45분 남짓 달려 조남JC에서 다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15분가량을 가자 안산시가 눈에 들어왔다. 처음 방문한 곳은 안산시 단원구에 위치한 화랑유원지. 이곳에는 세월호 실종자들의 넋을 기리는 합동분향소가 마련돼 있었다. 그 잔인했던 4월 16일로부터 약 8개월이 지난 지금, 이곳이 유일하게 세월호 희생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영하 8℃의 추위 탓인지 합동분향소를 찾는 조문객은 없었다. 4월만 해도 하루 평균 1만명의 조문객이 다녀갔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조용했다. 이곳을 지키는 경찰, 취재를 하러온 몇몇 언론사 관계자들과 유가족들만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순찰을 돌던 경찰관에게 물으니 “방문자가 많지 않다”고 했다.

발길을 돌려 합동분향소에서 차로 8분 거리에 있는 단원고등학교를 방문했다. 단원고의 학생·교사 261명은 세월호 침몰사고로 사망·실종됐다. 단원고로 향하는 도로 인근의 담벼락에는 그날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다양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지난 11월 한양대 학생 등 자원봉사자들이 세월호 사고 당시 구조된 단원고 생존자들의 회복을 돕자는 취지에서 담벼락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아직 정규 수업이 끝나지 않았을 시간인데 그림이 가득한 담벼락 옆으로 빨간색 점퍼를 입은 단원고 여학생 한 명이 지나갔다. A(17)양은 다른 학생들보다 1시간30분 일찍 학교를 나섰다고 한다. 추워진 날씨에 종종걸음으로 단원고 앞 원고잔공원로를 향해 걸어가던 A양은 “수업은 5시에 끝나는데 저는 심리상담 치료 때문에 먼저 나오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A양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으로 세월호 사고 당시 구조된 단원고 75명의 생존자 중 한 명이다. A양은 이날 오후 4시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에 상담치료가 예약돼 있다고 했다. A양에 따르면 단원고 분위기는 점차 밝아지고 있다고 한다. A양은 “최근 학내 분위기는 사건 직후보다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 수업에 집중하고 공부하고 있어요. 가끔 유가족들이 학교에 오시는데 오늘은 오지 않으셨어요”라고 말했다.

오후 4시5분, 검정색 점퍼의 파란색 가방을 멘 2학년 1반 남학생 B(17)군이 단원고 정문 뒤 언덕 아래로 내려왔다. B군도 세월호 사고 당시 구조된 단원고 생존자 중 한 명으로 지난 6월부터 고대 안산병원에서 심리상담치료를 받고 있다. B군은 기자에게 “지금 2학년은 4개 반으로 한 반에 20여명이 있다”고 했다. 사고 전 10개 반 325명이었던 2학년 학생 수가 이렇게 줄어들었다는 설명이었다.

B군은 “아직 (희생자들이 공부하던) 교실은 그대로 놔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분위기는 나아지고 있는데 아직은 조금 힘든 것 같아요. 제가 치료를 받으러 가야 해서…”라며 오후 4시30분으로 예약돼 있는 치료를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단원고 전광수 교감은 주간조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아직 충격에서 회복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자체 스쿨닥터가 대기한다”며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원하는 경우 치료를 위한 조퇴를 허용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단원고 2학년 희생자 학생들이 공부하던 교실은 생존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모두 그대로 보존하기로 잠정 결정된 상태다. 유가족들은 희생된 2학년 학생들의 ‘영혼 졸업’을 원하고 있다고 한다. 전 교감은 “생존자 학생들과 다른 학년 학생들의 학업을 위해 4개의 2학년 반을 새로 편성했다”고 말했다. 희생자들이 공부하던 기존의 10개 교실은 그대로 놔두고 새로 4개 교실을 만들었다는 설명이었다.

2학년 생존자 학생들이 졸업할 때까지 보존될 2학년 희생자들의 교실을 찾아가 보았다. 교실 밖 복도에는 연말을 맞아 중앙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놓여 있었다. 복도와 교실 벽 곳곳에는 희생자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붙어 있었다. 희생자 학생들이 사용하던 책상 위에는 꽃바구니와 간식거리, 편지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사고 전 밝게 웃던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선물들 사이로 보였다.

학교 주변에서 만난 1학년 아이들은 비교적 밝아 보였다. 단원고 정문 앞 편의점은 야간자율학습 전 군것질을 하며 재잘대는 1학년 학생들로 붐볐다. 몇몇 아이들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깔깔대기도 했다. 3학년 학생들은 수능이 끝난 탓에 1교시만 마치고 하교를 한다. 편의점의 아르바이트생 이모(18)씨는 단원고 3학년생으로 지난 11월 수시로 서울권 소재 모 대학에 합격해 방과 후 아르바이트를 하는 중이다. 그는 “학교 분위기가 많이 나아졌다”며 “학교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단원고등학교 교무처의 한 관계자는 주간조선과의 통화에서 “단원고등학교 내 전체적인 분위기는 좋아지고 있다”며 “학교 수업 또한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말고사가 12월 18일부터 시작된다”며 “요즘 2학년 학생들은 모두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내년 2월 9일엔 3학년 졸업식, 1월 12일엔 1·2학년이 종업식을 한다.

단원고 주변 상인들을 만나봤다. 주변 상인들 말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는 ‘금기어’가 된 지 오래다. 익명을 요청한 단원고 근처 우성 3차 아파트 상가 ‘문구나라’ 주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건 이후로 절대 그 사건을 입 밖에 꺼내지 않아요. 모두 없었던 일처럼 지내죠. 학생들이 많이 없어진 것이 느껴지긴 해요. 동네가 많이 조용해졌어요. 하지만 다들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지내요.”

익명을 요청한 같은 상가 슈퍼마켓 주인도 이에 동의했다. 그는 “사건 직후보다는 동네 분위기가 조용하다”며 “너무 조용해지다 보니 단원고등학교 1학년생들이 전학갔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근 분식집 주인은 “단원고 학생들 얼굴도 많이 밝아지는 것 같다”며 “그런 모습 보면서 힘내고 장사한다”고 했다. 그는 “학생들이 최근 우리 가게를 많이 찾아서 기분 좋다”라고 말했다.

추운 날씨 탓인지, 세월호의 여파 때문인지 카메라에 담았던 단원고 주변의 풍경은 움츠러들어 있었다. 합동분향소는 인적이 끊겼고 인근 상점도 행적이 드물었다. 드문드문 보였던 행인들도 잔뜩 웅크린 모습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취재 중 만난 유가족들과 학교 관계자들은 말을 아꼈다. 언론과의 접촉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었다. 때문에 취재팀의 분위기도 덩달아 무거웠다.

하지만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단원고 2학년 교실의 풍경은 슬픔과 따뜻함이 공존했다. 못다 핀 영혼을 위로하는 애절한 마음의 편지와 글들이 교실과 복도를 가득 메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상처 입었을 생존자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려는 정성도 학교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김정현 기자 / 김민섭 인턴기자·연세대 법학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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