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12년 7월 헤링스도르프에서 열린 기독민주당 선거 캠페인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photo 뉴스1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12년 7월 헤링스도르프에서 열린 기독민주당 선거 캠페인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photo 뉴스1

2014년 세계 지도자 중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가장 돋보인다. 보수 성향의 독일 일요신문인 빌트암존탁이 최근 실시한 국민 여론조사에서 ‘메르켈이 총리직을 계속 맡아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74%에 달했다. 독일 최대 공영방송인 ARD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67%가 “메르켈 총리가 국정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율은 40%대였고,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로 떨어졌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12월 10일 집권당인 기민당 전당대회에서 96.7%라는 압도적 당원 지지율을 얻어 당 대표를 연임하게 되었다. 3선이 끝나는 2017년이 되면 메르켈 총리는 12년을 집권하게 된다. 이는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의 11년 집권(1979~1990)을 뛰어넘는 기록이다.

메르켈 총리가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이유는 리더십과 실적에 있다. 국제무대에서 그는 새로운 외교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미국·유럽 대 러시아의 대결구도를 불러온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에는 ‘신냉전’ 기류가 닥쳤다.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라는 카드를 빼들었고, 러시아는 유가 하락과 루블화 폭락으로 디폴트 위기까지 내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메르켈 총리는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서방의 리더로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마주 앉아 우크라이나 사태를 정치적으로 풀기 위해 노력 중이다.

메르켈은 또 유럽연합(EU)의 안정과 성장에서도 리더십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2008년 터진 재정위기를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 남부국가들이 개혁과 긴축재정을 통해 극복해 가는 와중에서 독일은 모범을 보였다. 이들 국가에 대한 최대 지원국인 독일은 정부가 먼저 긴축재정으로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메르켈은 언론과 만나는 자리에서 여러 번 “유럽 최대 규모의 경제국가인 독일이 모범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범국가로 유럽을 선도할 때 독일 경제가 다시 견고해질 것으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긴축을 외치면서도 세금을 인상하지 않아 독일 국민은 메르켈을 신뢰한다. 게다가 독일은 5%대의 낮은 실업률을 자랑하고 있다. 유럽의 젊은이들이 직장을 얻기 위해 독일로 향하고 있다. 독일은 현재 유럽 경제의 버팀목이다. 독일의 재정 상태는 유로화지역 16개국 중에서 가장 좋다. 유럽국가 중 독일만이 독야청청하고 있다. 최근 6년 동안 독일은 연평균 2~3%의 경제성장률을 보여주었다. 통일 이후 한때 ‘유럽의 환자’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았으나 다시 유럽 경제의 기관차로 도약했다.

메르켈 총리는 내부 개혁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노동·의료·연금 등 사회·경제 각 분야의 개혁을 통해 독일 경제는 더욱 경쟁력을 확보했다. 독일은 수출을 통해 가장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경상수지 1등 국가다. 또한 미국을 제치고 가장 이미지가 좋은 나라로 선정되었다. 이같이 강하고 행복한 독일의 중심에 메르켈 총리의 리더십이 있다.

2015년 메르켈 총리의 최대 과제는 지금 같은 황금기를 ‘현상 유지’하는 것이다. 독일 국민의 절대 다수는 “독일 역사상 이보다 더 자유스럽고, 이보다 더 평화스럽고, 번영의 시대를 구가한 적이 없다”고 노래한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2015년 세계 경제는 다시 불안정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러 간 신냉전, 중동의 정세 불안, 중국의 경기 침체, 유가 하락과 세계 경제 디플레이션 조짐이 주된 원인이다. 독일의 대표적 연구기관인 독일경제연구소(DWI)는 ‘독일 경제의 황금시대가 지나가고 2015년 경제비상등이 켜졌다’고 전망한다. 국제정세, 즉 러시아, 중동국가 등 산유국의 불안한 경제 상황이 독일 수출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국내 소비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기업도 투자를 줄이고 생산도 감소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독일 자동차의 수출 침체와 해외 투자 감소도 중요 요인으로 꼽고 있다. 경제 강국 독일이 다시 위기를 맞게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15년의 도전에 맞서기 위한 메르켈의 전략은 무엇인가? 국내적으로 기민당과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공고히 하면서 실적을 내는 것이 급선무다. 국내 정치가 안정되지 못하면, 곧바로 경제 및 사회가 영향을 받는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2014년 최저 임금제와 연금 개혁에 성과를 낸 메르켈은 2015년에는 여성 인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을 위해 다양한 제도와 지원 및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여성의 경제 및 사회활동에 대한 참여가 새로운 성장 동력이자 복지이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 스스로가 여성이기도 하지만, 이는 중도좌파인 사민당의 정책과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2015년 에너지 분야와 신재생산업에 대한 드라이브도 더욱 강력하게 걸 방침이다. 독일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계기로 2023년 세계 최초 ‘탈핵 국가’가 되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선언했다. 원전 에너지에서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저소비형 경제사회 구축과 신재생에너지 활성화 방안에 국가 자원을 집중하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산업에서 1등 국가로 도약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에너지 문제 해결과 더불어 경제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에 대한 성과를 내야 할 시기가 2015년이다. 환경기술과 신재생산업이 신성장동력이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

전후 독일 정부는 좌·우를 막론하고 ‘완전 고용’을 최고 목표로 삼았다. 일자리가 최고 정책이자 복지라는 것이다. 메르켈 정부는 젊은층 일자리 창출을 위해 ‘유럽에서 창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를 내걸었다. 이같은 흐름을 계속 이어가 2015년에도 새로운 일자리 창출과 신성장동력 발굴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둔다는 전략이다.

메르켈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평화 및 경제공동체인 유럽연합이 더욱 안정과 성장의 공동체로 발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아데나워, 빌리 브란트, 헬무트 콜이 추구해온 “유럽통합이 진정한 유럽대륙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는 정책노선에 충실하고 있다. 2015년 세계·유럽 경제가 어려워진다면 유럽과 독일 내 분리주의자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제1차 및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에서 보듯 유럽에서 민족주의 기승은 파멸을 의미한다. EU(유럽연합) 통합을 위한 메르켈의 리더십이 주목받는 이유다.

독일의 유명한 미래전망 분석기관인 프로그노제(Prognose)는 “지난 6년 반 동안 독일 경제는 호황기였으나, 향후 6~7년간 독일 경제는 어려워진다”면서 “2020~2030년에 독일 경제는 다시 황금기를 맞게 된다”고 전망한다. 이런 전망에 따르면 메르켈이 향후 어려운 경제 시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2015년은 메르켈 총리 집권 10년 차이자 차기 집권을 위해 시동을 거는 해다. 국내외 도전과 과제를 해결하고 4선에 성공하면 독일의 위대한 정치가 반열에 오르게 된다. 건국의 아버지 콘라트 아데나워, 비전의 정치가 빌리 브란트, 독일 통일의 주역 헬무트 콜에 이어 유럽통합과 독일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위대한 정치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김택환 경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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