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정부군은 지난해 11월 23일(현지시각) ‘IS(이슬람국가)’가 장악했던 이란과의 국경 지대 디얄라주의 자라우라와 사디야를 탈환했다. ⓒphoto 연합
이라크 정부군은 지난해 11월 23일(현지시각) ‘IS(이슬람국가)’가 장악했던 이란과의 국경 지대 디얄라주의 자라우라와 사디야를 탈환했다. ⓒphoto 연합

무명에 가까웠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가 작년 6월 시리아와 이라크 일대에서 “신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이제 이 땅에 이슬람국가를 세우노라”라고 선포했을 때만 해도, 이슬람권 국가를 포함한 세계 각국은 야유를 쏟아냈다. 수니파 이슬람세계의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IS는 이슬람도 국가도 아니다”고 말했고, 미국 등 서방 정부들은 “테러단체에 불과하다”고 했다. IS의 예상치 못한 ‘국가 선포’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슬람이란 종교적 가치를 이용해 조직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자신들이 일개 테러단체가 아님을 과시하기 위한 술수”라고 했다.

이로부터 반년이 지난 지금, ‘이슬람국가 수립’에 대한 야유는 심각한 우려로 달라졌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은 IS에 대한 보고서를 지난해 12월에 이어 올 1월에 연거푸 내며 이들을 처음으로 “초국가적(transnational) 반란세력”이라고 지칭하고 “그 지배력이 이라크와 시리아 일대에서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전까지 뭇 테러단체처럼 ‘극단주의(extremist)단체’라고 하던 표현이 달라진 것이다. 이는 작은 차이지만, IS의 위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IS는 시리아 북부에서 이라크 북부까지 이어지는 점령지를 국가를 운영하듯 지배하고 있다. 아랍권 일간지 알하야트에 따르면 이들은 시리아 북부 라카를 수도로 삼고, 재정·교육·군사·정보 등 부문별로 행정조직도도 짜놓았다. 이라크 제2도시 모술 등 점령한 곳의 주민 수십만 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3만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조직원이 이탈하지 않도록 관리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이들은 화폐를 발행해 시범 유통하고 있으며, 선전용이지만 여권까지 발행했다고 한다.

이들은 또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석유 장사를 하고 있다. 니겔 잉스터 전 영국 정보부 MI6 국장이 “전략을 짜고 계획대로 움직이며 돈을 버는 모습이 마치 대기업을 떠오르게 한다”고 말할 정도다. IS는 그간 시리아 동부 디르 앗조르 같은 유전 지대를 집중 공략해 차지한 뒤 이곳에서 생산한 석유를 암시장에 팔아 테러 자금을 확보해왔다고 얘기되어 왔다. 유전 지대의 부족들과 동맹을 맺고, 석유 매매 수입을 분배하기도 했다. 미국 외교협회(CFR) 자료에 따르면, IS는 안전을 보장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주민들로부터 매달 800만달러(82억원)를 세금 명목으로 강제 징수한다. IS가 아랍권의 비공식적 송금시스템 ‘하왈라’를 통해 세계 곳곳에 숨어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로부터 테러 자금을 ‘수혈’받고 있다는 보도도 있다. 아랍어로 ‘옮기다’라는 뜻인 하왈라는 문서 없이 서로의 신뢰만을 근거로 거래하는 방식으로 중동·아프리카의 비공식적 ‘금융 체계’다. 유통 흔적이 거의 남지 않는 점 때문에 범죄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 알카에다가 2003년 인도네시아 발리섬 폭탄테러를 일으킨 ‘제마 이슬라미야’ 등에 테러자금을 지원할 때도 하왈라를 이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IS는 다른 국가의 외교에 대해 비난을 하고 이에 따른 조치를 실행에 옮길 정도로 주도면밀한 모습도 보인다. 지난 1월 2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중동 국가에 대한 지원 정책을 비난하면서 일본인 인질 살해 협박을 한 게 대표적이다. IS는 이날 주황색 죄수복을 입은 일본인 인질 두 명을 영상을 통해 공개하고 아베 총리를 지목하며 “72시간 안에 몸값으로 2억달러를 지불하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했다. 인질은 민간 군사회사 경영자인 유카와 하루나(湯川遙菜·42)씨와 프리랜서 언론인 고토 겐지(後藤健二·47)씨였다. 아베 총리가 중동을 순방하면서 “IS 대책 비용 2억달러를 포함해 중동 정세 안정화를 위해 25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히자, 납치해 억류하고 있던 일본인을 ‘협박 카드’로 꺼내놓은 것이다. 이에 비난 여론이 일자, IS는 곧장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이 금액(2억달러)보다 많은 돈을 하루에도 쓰고 있다”면서 “경제가 아닌 정신적인 싸움이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일본 정상의 활동 같은 국제 정세는 물론 보도 동향도 꼼꼼히 체크하고 있으며,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일이 있으면 재빨리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IS가 이같이 ‘국가 흉내’를 낼 수 있는 이유는 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알카에다는 9·11테러를 일으키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파괴적 테러를 벌였지만, 비밀조직 형태였다. 알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일대에 근거지를 은폐해놓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그 규모는 작은 마을에도 미치지 못했다. 조직원도 대규모로 한곳에 몰려 있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국가의 행정지역에 산발적으로 숨어있는 식이었다. 하지만 IS는 국가가 전쟁을 통해 다른 국가의 영토를 뺏어오듯, 전투를 벌여 시리아·이라크의 도시들을 차지했고, 이를 유지하고 있다. IS의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44)가 어디에 있는지는 불명확하지만, 이들의 점령지는 거의 명확히 구분이 된다. IS의 영토를 인정하는 국가가 단 한 곳도 없다고 해도, 눈에 보이는 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 내부적으로나마 국가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최근 IS가 아시안컵 축구경기를 시청한 10대 남성 10여명을 총살했다는 뉴스는 이들이 ‘국가 아닌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심한 폭정을 일삼고 있는지를 말해준다.

IS는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을까. 이들은 작년 6월 모술을 시작으로 이라크 북부와 중부를 공략하면서 세를 크게 불렸다. 이라크 북·중부는 수니파 이슬람 신자가 다수로 시아파가 권력을 잡고 있는 이라크 정부에 반감이 있어, 수니파 단체인 IS에 쉽게 동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사담 후세인 정권 때의 군 출신으로 반정부 성향인 세력들이 IS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이라크 정부군이 병력 규모 면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었는데도 IS의 공격에 효과적으로 맞서기 어려웠다. 미국이 작년 8월 IS에 대한 공습을 개시해 영국·캐나다 등 동맹국과 함께 5개월이 넘도록 공격을 하고 있지만, 전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IS 지도부와 핵심 병력들이 마을 민간인과 뒤섞여 있어, 공습이 어렵다. 영국군은 “최신 전투기를 출격시켰지만 목표물을 잡지 못해 아무 성과 없이 돌아온 적이 많다”고 곤혹스러움을 털어놓은 적도 있다. 이로 인해 공습 작전만으로는 IS 격퇴가 어렵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이후 미국은 중장기전으로 갈 계획으로 전환했다. 미군 군사 전문가를 통해 쿠르드족(族) 병력과 이라크 정부군을 충분히 훈련시킨 뒤 대대적인 지상전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자국군이 시리아와 이라크에 투입돼 IS와 직접 싸울 경우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될 수 있고 시리아 등 현지 주민의 반미 정서가 일어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월 20일 신년 국정연설에서 “미국은 중동에서 (2003년 이라크전쟁 등) 또 다른 지상전을 벌이는 대신 아랍국들을 포함한 대규모 연합군을 편성해 IS를 약화하고 궁극적으로는 파괴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라크 정부는 IS 사태가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갈등에서 불거진 면이 있는 만큼 내각을 개편하는 등 IS가 점령한 지역의 수니파 주민의 마음을 사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성일광 건국대학교 중동연구소 연구원은 “IS는 미군 고성능 차량 ‘험비’나 장갑차는 물론, 스커드 미사일도 노획해놓는 등 각종 무기를 대량으로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토착 세력과 결탁도 한 이들을 완전 격퇴하는 데에는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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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석조 조선일보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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