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황은순 선배와 ‘결정장애’에 관해 썼습니다. 황 선배는 쇼핑 분야를, 저는 교육 분야를 맡았지요. 결정장애 취재,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황 선배와 기획 회의를 거듭했고, 그 정도면 취재 준비가 충분하다 싶었지만, 파면 팔수록 취재거리가 고구마 줄기 캐듯 달려나왔습니다.

결정장애는 단순히 몇몇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시대 대부분이 앓는 질병입니다. 결정장애 사례를 묻는 질문에 주위의 반응은 같았습니다. “어? 그거 내 얘긴데?” ‘자장면을 먹을지, 짬뽕을 먹을지’ ‘머리를 오늘 밤에 감을지 내일 아침에 감을지’ 같은 단순한 결정에서부터 ‘이 남자와 결혼을 할지 말지’ ‘회사를 옮길지 말지’ 등 일생일대의 중대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쉽사리 결정을 못하고 끙끙 앓는 ‘21세기형 햄릿’은 주위에 널렸습니다.

결정장애의 원인에는 외재적 원인과 내재적 원인이 있더군요. 외재적 원인은 시대적 환경에 있습니다. 정보 과잉 시대의 숱한 선택지들은 결정장애자들을 양산합니다. 무수한 갈림길에서 길을 잃지 않는 것이 어쩌면 더 희귀한 사례일지 모릅니다. 내재적 원인을 파 보니 결정장애의 원흉은 ‘엄마’더군요. “너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라면서 앞에서 이끄는 ‘리더형 엄마’들 말입니다. 엄마가 모든 걸 결정해 주니 아이는 결정할 기회를 박탈당하는 거죠. 공병호 박사는 ‘모성애 강한 엄마’가 대한민국을 결정장애 공화국으로 만든다고 지적합니다.

결정장애는 인생을 두고두고 괴롭힙니다. 10대에는 자기주도적 학습을, 20대 이후에는 직장에서 효율적 업무를, 30대 이후에는 제대로 된 가장 노릇을 못하게 만듭니다. 정답은 ‘자기주도적’ 태도 배양에 있더군요.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엄마의 ‘인내심’입니다. 조금 느리고 서툴더라도 스스로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심 말입니다.

저부터 변하기로 했습니다. 챙겨주는 엄마 노릇,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지난주부터 두 아들 스스로 옷을 골라 입게 했습니다. 코디 감각은 꽝이고, 날씨에 영 어울리지 않는 옷을 꺼내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입과 손이 근질거립니다. 하지만 꾹 참았습니다. 시행착오를 통해 나아지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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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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