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통령제이지만 현대 그리스는 한때 왕정국가였다. 1829년 터키로부터 독립한 후 유럽 열강의 복잡한 정치 놀음 끝에 왕정국가가 되었다가 역시 복잡한 국내 정치에 의해 대통령제로 바뀌었다. 왕궁은 대통령궁으로 바뀌었고, 1843년 헌법이 공포된 왕궁광장은 헌법 광장으로 바뀌었다. 다 바뀌었다. 하지만 왕정 당시인 1868년 창설된 왕실 근위대 에브조네스(Evzones)는 불변이다. 대통령궁 앞 무명용사의 무덤에서 벌어지는 근위병 교대식도 불변이다.

에브조네스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처음 등장한다. ‘보병대’라는 뜻이다. ‘에브’는 ‘훌륭한’, ‘조니’는 ‘벨트를 한’이라는 뜻이다. 에브조네스는 ‘훌륭한 벨트를 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니, 군복을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있다. 2차 대전 이후 정규군은 해체되고 의장대로 재편됐다.

여러 가지 선발 기준 가운데 눈에 확 들어오는 기준은 외모다. 키는 186㎝ 이상이어야 하고 외모가 준수하며 건강하고 힘이 있어 보여야 한다. 훈련기간에 가장 강조하는 덕목은 인내력이다. 도무지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한 시간에 한 번씩 교대식이 벌어지는데, 그 교대식 사이에는 관광객이 놀려도, 비상사태가 닥쳐도 움직이면 안 된다. 고약한 관광객들을 말리기 위해 경찰이 따로 근무한다. 시위대가 화염병을 던져도 그냥 서 있어야 하고 테러리스트가 폭탄을 던져도 서 있어야 한다. 실제로 그랬다. 2001년 시위 때 그랬고 2010년 테러 때 그랬다.

15분에 한 번씩 두 병사가 자리를 교대하는데, 교대하러 걸어가는 걸음마를 ‘게이트(Gait)’라고 한다. 이거, 웬만한 슬로비디오 동작보다 느리고 크다. 팔은 어깨 위까지 올리고 반대편 다리는 허리보다 높이 올린다. 손과 발이 최고점에 올랐을 때 몇 초 정도 동작을 멈춘다. 허공에 멈춘 방울 달린 군화를 보며 관광객들은 숨이 막힐 정도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치마는 주름이 400개다. 주름 하나는 1년이다. 치욕스러운 오스만제국 치하 세월이 400년이다. 주름을 다 펼치면 30m가 넘는다고 한다. 대한민국 헌병 하이바(헬멧)만큼 정성 들여 다리고 주름을 잡는다. 초점거리=70mm, 셔터스피드=1/80초, 조리개=f9.0, 감도=ISO125, 2015년 3월 촬영

박종인 조선일보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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