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허절벽(Cliffs of Moher)은 아일랜드 서남쪽 클래어주 골웨이 해안에 있다. 3억년 전에 얕은 바다였다가 사암이 계속 쌓이면서 최고 높이 200m가 넘는 절벽이 8㎞나 생겨버렸다. 숫자로는 짐작이 되지 않는다.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 낯선 나라에 낯선 절벽이지만, 해리포터 시리즈 팬이라면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2009)의 배경으로 나온 절벽을 알아차릴 수 있다. 절벽 곳곳에 ‘사마리탄 전화’ 안내판이 걸려 있다. 자살 충동을 느끼면 투신하기 전에 전화하라는 얘기다. 별명이 ‘자살절벽’이다.

지난해 스코틀랜드가 독립 기미를 보이자 찰스 왕세자가 아일랜드 신페인당 대표를 만났다. 행여 있을지도 모르는 북아일랜드 독립 운동을 사전에 방지하고자 함이다. 아일랜드와 잉글랜드의 악연은 길고 깊어서 이런 이벤트로 두 나라가 친구가 되기는 쉽지 않겠다. 아일랜드는 800년 가까이 잉글랜드에 지배당했다. 19세기 중반에는 감자 전염병이 번져서 대기근으로 이어졌다. 소고기와 양고기가 흘러넘쳤지만 모조리 잉글랜드가 수탈해갔다. 800만 인구 가운데 150만명이 굶어죽고 100만명이 신대륙으로 떠났다. 그때 한 영국 기자는 “한 명도 빠짐없이 전 국민이 거지인 나라는 아일랜드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지금 인구는 400만명이다.

자살절벽으로 소문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안전장치다. 이 웅장한 절벽에 안전장치가 없다. 구경도 당신 책임, 죽어도 당신 책임이다. 쇠사슬로 아슬아슬하게 막아놓은 벼랑 끝에 서면 ‘콱 죽어버려?’ 하는 충동이 무의식 속에서 솟아오른다. 그때 반드시 친구가 있거나 아니면 사마리탄 전화를 붙잡아야 한다. 충동을 이겨낸 사람들은 벼랑 끝에 다리를 걸치고 앉아 사진을 찍고 키스를 하고 희희낙락하는데, 도무지 흉내 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렌즈=캐논EF 70-200㎜, 셔터스피드=1/100초, 조리개=f5.6, 감도=ISO100, 2014년 3월 촬영

박종인 조선일보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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