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브리지병원의 한 입원실에서 의사가 입원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런던 브리지병원의 한 입원실에서 의사가 입원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외국에서 살다보면 종종 문화충격을 받을 때가 있다. 내가 영국에 와서 처음 제대로 병원 신세를 지면서 겪은 충격은 문화충격의 단계를 넘어서 사고(思考)의 혼동 정도였다. 둘째 아이가 말을 겨우 할 때쯤 영국 풍토병인 뇌막염에 걸렸다. 영국 병원의 신속한 조치로 아이가 후유증 없이 회복되어서 나는 NHS(National Health Service·국가 의료보험)의 신세를 단단히 졌다. 그래서 누가 뭐래도 NHS의 옹호자라는 경험담을 주간조선(2244호)에 기고하기도 했다.

당시 겪은 충격은 여러 가지였다. 시간을 다투는 병의 진행을 적시에 효과적으로 막은 가정의의 진단, 병원 입원 절차와 치료가 정말 신속간결한 점 등 많다. 특히 생사를 오가는 혼수 상태의 아이를 두고 “집에 가서 쉬다 오라”는 간호사의 말은 절정이었다. 치료비가 전액 무료라는 것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퇴원 과정에서 막상 서류에 서명 하나 요구하지 않고 “그냥 가라”는 퇴원 절차를 접한 것도 정말 감동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안고 걸어 나오면서 느낀 이상한 심적 불편함이 아주 오래갔다.

당시 병원에서 몇 명의 의료진이 아이를 돌보는 사이 부모로서 할 일은 발을 동동 구르는 일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할 일 없이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뇌막염은 가벼운 접촉으로, 심지어는 환자가 기침을 할 때 튀는 침으로도 전염이 되기 때문에 아이가 입원한 방에 들어갈 수 없었다. 아이를 위해 해 줄 일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은 한국인 부모 정서로는 참기 힘들었다. 문자 그대로 좌불안석이었다.

저녁이 되자 간호사는 내게 “집으로 가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부모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으니 우리들에게 맡기고 집에 가서 쉬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오라”고 했다. 어안이 벙벙해서 “아니, 말도 못하는 혼수 상태의 아이를 병원에 맡겨 놓고 집으로 가라고요?”라고 반문하자 간호사는 이상하게 쳐다봤다. 당시 내 상식으로는 ‘병상 옆에서 환자 수발은 부모가 들어야 한다’였다.

한국 경험으로 볼 때 보호자는 환자 근처에 대기하고 있어야 마땅했다.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의 수시 부름에 즉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각종 검사 수발은 물론 수술 동의서나 본인 부담의 검사, 약 사용에 대한 동의를 시간에 늦지 않게 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생사를 오가며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이를 두고 집으로 가라니? 도저히 말도 안 되는 처사였고 문화충격이었다. 얼떨결에 집으로 돌아가다 ‘아! 여기서는 이러는구나!’ 하는 큰 깨우침이 왔다. 병실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어 봐야 도움이 안 되는 상황에서 부모 등을 밀어 집으로 보내는 영국 의료진의 냉철한 합리주의는 그때나 지금이나 정서상으로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내 아이 같은 중환자의 경우 환자 1명당 간호사 한 명이 배당되어 24시간 밀착 간호를 한다. 결국 환자 한 명에게 하루에 3명이 배당되는 셈이다. 부모나 간병인이 옆에서 수발드는 것보다는 전문가인 간호사들에게 맡겨 놓은 것은 누가 봐도 합당한 일이다. 사실 영국 병원의 경우 병실 근처에는 앉아 있을 의자도 없고 환자 보호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은 더더욱 없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영국에서는 환자의 모든 치료나 간호를 병원이 맡는다. 당연히 영국 병원 병실 내에는 보호자나 간병인이 없다. 물론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자비로 간병인을 두는 경우가 있다고는 하지만 부자들이 가는 사립병원이나 1인용 병실에서 예외적으로 벌어지는 일일 뿐이다.

영국 병실에서는 한국 병원 다인실에서 환자와 간병인들이 얽혀서 일으키는 혼란을 볼 수 없다. 최근 한국에 가서 노쇠한 아버님 간병을 한 달간 하고 돌아온 교민 수간호사 A씨는 한국 병실의 이런 혼란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고 한다. 6인실의 좁은 공간에 환자를 포함해 12인이 주거를 하고 있는 상황은 환자의 휴식이 불가능하다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위생문제가 너무 심각했다는 것이 A씨의 말이다. 특히 “외부에서 온 보호자나 간병인들이 병실을 출입할 때 손을 소독하지도 않고 환자를 만지거나 음식물을 취급하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영국 병원은 10여개의 병실이 하나의 단위로 존재하는 병동(ward)에서 밖으로 나가지 않고 병실 사이를 옮겨갈 때도 반드시 손을 소독하고 들어가 환자를 치료해야 한다. 자신이 간호하는 환자는 그렇다 쳐도 같은 병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에 대한 배려 때문에라도 최소한 병실에 출입할 때는 손을 소독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전혀 그런 고려가 없어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병실 환자 옆에서 보호자나 간병인들이 거주를 해야 할 상황이라면 이들에게 간단한 위생교육은 시켜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A씨는 말했다. 간병인이 엄연히 정식 직업의 하나로 존재한다면 자격증은 몰라도 병원 상주를 위한 간단한 위생교육은 이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냐는 의문도 표시했다.

영국에도 정식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정규 간호사 말고 ‘건강간호보조사(HCA·Health Care Assistant)’가 있다. 간호보조사는 직업훈련이나 자격증을 사전에 취득해서 병원에 취업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단 병원에 취직을 하면 병원이 자체 프로그램으로 훈련을 시키고 외부 간호 학교 등에 위탁교육을 시켜서 인력을 양성한다. 단계를 거쳐 교육을 연수하고 나면 급료도 올라가고 직급도 올라간다. 결국 이들이 간호사들을 도와 보호자를 대신해 간병인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물론 정규 간호사들도 정기적으로 보완보수교육을 받아야 한다. 위생·안전 교육을 포함해 응급구조 훈련을 받아야 한다. 만일 이를 게을리하면 경고 대상이고 승급 승진 누락에 결국 해고로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철저하게 의료훈련과 위생교육을 받은 전문 인력들만이 근무를 하는 영국 병원 내에서도 교차감염(cross infection)을 통해 웬만한 항생제는 듣지도 않는 수퍼버그(super bug)가 퍼진다고 난리다.

A씨는 한국에서 간병인·보호자·환자가 같이 뒤섞여 있는 모습을 참을 수 없어 넉넉하진 않지만 아버님을 1인실로 모시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교차감염의 위험은 환자뿐만이 아니라 간병인, 보호자 심지어는 문병을 오는 환자 가족이나 친지들도 해당된다는 뜻이다. 한국처럼 위생이 엉망인 병실에서는 아버님은 물론 자신도 위험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무리해서 1인실로 옮겨 드렸다고 했다.

영국의 한국인 역사도 거의 40년에 가까워지는 관계로 한국인 중 영국 의료 시스템에 정식으로 진입해서 자리를 잡은 의료인들이 생기고 있다. 영국에서 태어난 교민 2세 중에서 의사가 나온 지는 꽤 오래되었다. A씨는 성인이 되어 건너온 1세대 교민 중에서 영국 간호사 자격증을 따서 중책을 맡고 있는 경우다. 한국에서 간호사를 하다가 영국으로 와서 다시 교육을 받고 정규 간호사가 된 분도 있다. 현재 영국 한인촌 킹스턴병원 수술실에서 근무하는 B씨가 그런 경우이다. 이런 분들로부터 양국 병원 시스템에 대한 비교를 들으면 문화충격을 해소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B씨는 한국에서는 의사가 해야 하는 일을 간호사가 많이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 간호사들의 수준이 높아서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의사가 해야 할 일을 일손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일을 쉽게 생각해서 무책임하게 간호사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냐고 했다. 이로 인해 한국 간호사들이 본연의 업무를 소홀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B씨는 “간호사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내가 한국을 떠나 오던 당시보다는 엄청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간호사들이 제대로 자신들의 일을 못하고 있어 환자나 가족들로부터 호평을 못 받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B씨는 자신이 일하는 영국 병원의 경우 병상이 남더라도 환자를 더 이상 안 받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어떤 환자는 전적으로 간호사 한 명이 매달려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환자가 연거푸 생기면 방법이 없다고 한다. 해당 병동 간호사들의 수용 능력을 넘어서는 환자를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 결정은 순전히 ‘병동 매니저(ward manger)’의 권한이다. 법적으로 몇 명의 환자에 간호사 한 명이라는 규정은 없지만 현재 입원하고 있는 환자의 상태를 보아 상황에 맞추어 입원 환자 수를 결정한다.

법적으로 영국 의료 양로원의 경우 노인 4명당 간호사 1명을 고용해야 하지만 킹스턴 한인촌 인근 병원들은 평균적으로 4명에서 7명의 환자를 간호사 1명이 돌보도록 내부 규정으로 되어 있다. 중환자실의 경우는 환자 1명에 간호사 1명이다. 특정 병원에서 환자를 받지 못하면 지역을 관장하는 응급센터에서 인근 병원에 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 앰뷸런스로 환자를 이동시킨다.

B씨는 “영국인은 병원에 환자를 믿고 맡긴다”고 했다. “영국인은 기대 수준 이상으로 병원이 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자신이나 가족을 맡긴다”고 자신 있게 얘기했다. 영국 병원은 불필요하게 환자를 잡아 놓지도 않고 필요 없는 검사를 남발하는 일도 없다고 했다. 영국에서는 수술을 받더라도 주사나 수액을 계속 맞아야 하는 경우가 아니고 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상황이면 퇴원시킨다고 했다. “한국 병원에서는 수액을 너무 남용하는 것 같다”는 지적도 했다. B씨는 “비전문가인 보호자나 간병인이 환자를 돌보다가 문제라도 생기면 병원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병원은 가족이 환자를 돌보는 일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영국에서도 가족이 환자를 돌보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최근 활발하다. 2005년과 2008년 사이 간호사 부족과 병원제도의 잘못으로 환자가 400명에서 최대 1200명까지 ‘불필요하게’ 사망한 스탠퍼드병원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세계 최고의 국민 의료보험 제도라는 영국 NHS도 역사가 60년이 된 탓에 관료화에 따른 문제가 많다. 경제난과 노인인구 증가로 인한 사회복지제도 개혁에서 NHS는 맨 처음 수술대에 올라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개혁이란 말은 결국 줄인다는 말이다. 그래서 NHS 의료진의 숫자가 줄어들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많다. 영국에서는 안 그래도 근무조건에 비해 저임금이어서 의사나 간호사를 구하기 힘들다. 병원에서 영어가 안 통한다는 게 영국 할머니들의 단골 불평인데, 앞으로 더더욱 외국 의료진이 영국 병원에 가득 찰 것이라고 영국인 모두가 걱정이 태산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나온 게 가족들이 환자를 돌보는 것은 어떠냐는 논의다.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추세는 아니나 언론이나 온라인에서 과거보다 자주 보인다. 결국 환자 가족들이 자구책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뜻이다. 물론 가족 간병에 대한 호불호는 분명하게 갈린다. 간호사들은 대개 가족의 간병을 찬성하는 편이다. 어떤 간호사는 언론에 “내가 14개 병상을 책임지고 있는데 어떻게 모든 환자들을 제대로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화장실 데려가고 약 챙겨 먹이고 할 수 있느냐”고 호소한다. 결국 환자 중 누군가는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실토한다. 간단한 일상적인 간호는 가족들이 할 수 있게 하면 환자의 정서안정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취지다. 또 간호사들의 일을 줄여줘 그들이 다른 전문적인 일에 시간을 쓸 수 있게 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전문적인 지식과 훈련을 받은 간호사들이 간호와 간병을 해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현재는 가족 간호에 대해 반대가 더 크다.

한 환자 가족은 치매환자의 예를 들며 가족 간호를 찬성했다. 치매환자나 중풍으로 인한 마비환자들의 식사는 거의 고문에 가깝다고 한다. 음식을 삼키기가 어렵기도 하지만 시간도 많이 걸린다. 누가 옆에서 찬찬히 돌봐주지 않으면 건강을 해치게 된다. 아무리 간호사가 많아도 환자 한 명에게 오래 시간을 할애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럴 경우 환자 가족이나 개인 간병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환자를 일으켜서 걷게 하고 말을 걸어서 지각과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일손이 부족한 간호사들에게 맡겨서 될 일이 아니라는 주장도 나온다. 일반 환자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특수 환자는 가족이나 간병인의 도움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반대 측에서는 전혀 다른 의견을 낸다. 그런 일들을 가족들이 하면 전문가들이 일관성 있게 하는 수준과는 분명 차이가 난다고 비판한다. 만일 가족 간병을 제도적으로 허용하기 시작하면 지역의료공단은 옳다구나 하고 간호사를 줄일 것인데 그렇게 되면 결국 환자를 더 방치하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논지다. 급기야 가족이 없는 환자는 제대로 간호를 못 받고 방치되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지 모른다는 걱정이다.

집안에 환자가 발생했다고 생계가 걸린 일을 중단하고 산적한 가사를 팽개치고 집에서 3~4시간 걸리는 병원으로 가서 NHS가 하던 일을 가족이 대신 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된다는 반박이 아직 영국에선 중론이다. 다른 의견을 내는 이들도 그런 반박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지는 않는다. 영국인의 생각에 이것은 가족으로서의 사랑과 의무와 이기심과는 다른 문제라는 뜻이다. 당연히 국가가 보살펴 주어야지 개인 생활이 있는 가족이 어떻게 전적으로 돌보느냐는 논지다. 만일 이 논의가 여론조사에 붙여진다면 가족 간호 반대가 과반수 이상 나올 듯하다. 이런 영국인의 일반적인 정서로 보아 영국에서 가족 간병이 전반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영국 의료제도가 처한 어려움을 보여주는 논쟁이다.

영국에서는 사회복지 대상이냐 아니냐를 따질 때 수혜자 본인의 상황만 고려하지 한국처럼 부양가족이 있는지 그 가족의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는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백만장자의 부모가 각종 복지혜택을 받고 사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자식이나 가족이 다른 가족을 보살피고 안 보살피고는 개인들 사이의 문제이지 국가가 이래라저래라 할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부모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자식들이 간병을 하지 않는다고 영국인은 비난하지 않는다. 이같은 사회적 인식 때문에 국가가 당분간 계속해서 환자 간병을 책임지겠지만 열악한 재정 상태에서 얼마나 제대로 된 간호가 이루어질지 의심의 눈초리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영국도 이제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노령인구가 늘어가고 사회복지 부담을 짊어질 젊은 인구는 줄어들고 있어 시한폭탄이 폭발 시점을 향해 가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들의 추가 부담이 없으면 무한정한 복지가 이제는 더 이상 불가능한 시점에 와 있다는 주장이 사회 전반적으로 호응을 얻고 있다. 보수당 정부의 강력한 사회복지 개혁이 힘을 얻는 배경이다. 그 결과 개혁으로 서민들을 다 죽인다는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보수당은 지난 5월 총선에서 단독 재집권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결국 언젠가 영국 병원 병실에서도 가족 보호자나 간병인을 볼 날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영국에 처음 와서 겪었던 오래전의 충격이 새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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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하 재영칼럼니스트·‘영국인 재발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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