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를 먹는 장순이 곁으로 다가간 장다리.
먹이를 먹는 장순이 곁으로 다가간 장다리.

지난 9월 17일, 에버랜드의 동물원 로스트밸리에서 스물아홉 살 동갑내기 기린 부부의 은혼식이 열렸다는 기사를 접했다. 평균 수명이 30년인 기린이 25년간 부부의 연을 이어가며 18마리의 자식들을 낳았다는 것은 인간으로 치면 그야말로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백년해로’를 한 셈이다. 올해 나이 스물다섯인 내게 기린의 25년간의 결혼생활은 일생만큼이나 긴 시간처럼 다가왔다.

은혼식의 주인공 ‘장다리·장순이 커플’을 27년간 키운 사육사는 바로 김종갑(47)씨다. 김씨는 말하는 코끼리 ‘코식이’를 길러낸 사육사로 이미 미디어에 소개된 바 있는 베테랑 사육사다. 코식이는 오랜 기간 김씨와의 교감을 통해 그의 육성과 비슷한 음역대로 사람의 말을 흉내 내는 에버랜드의 스타 동물 중 하나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9월 23일, 에버랜드의 로스트밸리에서 김씨와 장다리·장순이 커플을 직접 만나봤다.

개장시간에 맞춰 찾은 로스트밸리에는 기린 부부가 기지개를 켜고 나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사육사들이 정성스레 준비해 놓은 당근과 풀잎들을 암컷 장순이는 맛있게 뜯어먹었고, 수컷 장다리는 그런 장순이에게 계속해서 얼굴을 비벼댔다. 기린 부부의 애정표현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김종갑씨는 “저도 장다리·장순이 커플을 보고 있으면 부러울 때가 있어요”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릴 적 닭 길들이며 동물과 친해져

현재 에버랜드에는 기린 13마리가 있다. 장다리·장순이 커플이 낳은 18마리의 새끼 중 일부는 부산, 광주 등 국내 다른 동물원에 보내졌다. 예전에는 해외에서 동물을 사들여오는 것이 어렵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그 과정이 까다로워져 다른 동물원에서 요청이 많아졌고 장다리·장순이 커플의 새끼들이 전국으로 보내진 것이다. 결국 이 기린 부부가 우리나라 기린계의 시조가 되는 셈이다.

일본에서 태어난 장다리와 장순이는 두 살이 되던 1987년에 나란히 한국으로 보내졌다. 당시 동물원에는 이 두 새끼기린 외에 다른 기린이 없었기 때문에 둘은 부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김씨는 두 기린이 서로 가까워지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처음부터 둘이 아무 탈 없이 잘 지낸 것은 아니에요. 장다리가 장순이를 많이 괴롭혔었죠. 장순이를 계속 따라다니고 밀치기도 하면서 못살게 굴었는데 6개월 정도가 지나니까 둘이 친해지더라고요.”

김씨는 사육사 생활 초반부터 코끼리나 기린과 같은 대형동물을 맡았다. 보통 오랜 기간 사육사 생활을 하다 보면 보살피는 동물의 종류가 달라지는데 유독 김씨는 경력을 시작하던 시절부터 같은 종류의 동물들을 사육하고 있다. “사육사를 한다면 제일 큰 동물들을 맡아보고 싶었어요. 초반에는 제가 보살피던 동물들에 애착이 커서 다른 동물들은 맡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오히려 제가 동물들한테 잡혀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오랫동안 돌봐 온 동물들이다 보니 이제 와서 다른 사육사들한테 맡기기도 어렵더라고요.”

큰 동물을 돌보는 것은 육체적으로 고된 일이다. 덩치가 작은 동물에 비해 많이 먹고, 또 많이 먹는 만큼 많이 배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김씨는 사육사 생활을 시작하고 체중이 15㎏이나 빠졌다. 사육사 생활만 27년째인 베테랑인데도 여전히 빠진 살이 다시 붙지 못할 정도로 일이 많다. 열대 동물들과 생활하다 보니 생기는 어려움도 있다. “코끼리나 기린들이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기 때문에 온도가 조금만 떨어지거나 비바람이 불면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날이 쌀쌀하고 흐린 날에는 동물들 상태가 안 좋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저도 이제 열대 동물처럼 따뜻한 날씨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인터뷰 도중 기린이 다가오자 김종갑 사육사가 먹이를 주고 있다.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인터뷰 도중 기린이 다가오자 김종갑 사육사가 먹이를 주고 있다. ⓒphoto 장은주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눈빛은 모든 걸 말한다

김씨가 사육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어릴 적 함께 자랐던 가축들 때문이었다. 경북 상주에서 나고 자란 김씨의 집에는 소, 돼지, 닭 등 가축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 토종닭을 무서워한다는 이유로 아버지께 혼이 났던 김씨는 닭 길들이기에 나서기로 결심했다. “막대기로 싸우고, 먹이 던져서 유인하고 이런저런 훈련을 하다 보니 동물들을 보살피고 훈련시키는 일이 재밌어졌어요. 자연스럽게 동물을 좋아하게 됐고 사육사라는 직업을 갖게 됐죠.”

김씨는 동물들의 상태를 관찰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간밤에 별 일은 없었는지 털 한 올 한 올까지 세심히 관찰한다. 동물원 개장시간이 되면 김씨는 동물들을 들판으로 내보내고 먹이를 챙겨준다. 그 이후로는 하루 종일 먹이를 준비하고 동물들의 상태를 수시로 점검한다. 김씨는 일과 중에서 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속적으로 애정을 갖고 관찰하다 보면 동물들 각자의 바이오리듬을 파악할 수 있어요. 같은 기린이어도 어떤 아이는 일어나자마자 먹이를 먹는데 다른 아이는 밖에 나와 휴식을 취하기도 해요. 만약 자신의 생활패턴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아이가 눈에 들어오면 그때부터는 집중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몸에 이상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김씨가 동물들을 관찰하면서 가장 눈여겨보는 부분은 눈이다. 사람도 눈빛을 보면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알 수 있듯 동물들의 컨디션도 눈빛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눈을 들여다보는 것은 말로 대화를 못하는 동물들을 이해하기 위한 김씨의 대화법이기도 하다. “사육사라는 직업은 참 내적으로 힘든 일인 것 같아요. 말 못하는 동물들에게 무언가를 해줘야 하니까요. 가끔 동물들의 눈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불쌍해 보일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내가 더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하며 동물들에게 더 잘해줘야겠다는 다짐을 해요.”

김씨는 결혼한 지 20년이 조금 넘었다. 동물들과는 가족들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낸 사이이기에 가족 못지않게 정이 들었다. 김씨는 두 기린이 만남을 시작할 때부터 15개월의 임신기간을 버티고 새끼를 낳는 순간까지, 늘 그들과 함께했다. 새끼들의 상태가 안 좋을 때는 인공포유를 하면서 부모 기린들과 함께 새끼들을 길러내기도 했다. 신혼 때는 “차라리 동물이랑 결혼하지”라는 아내의 푸념을 들었을 정도다. 앞으로도 계속 사육사 일을 해나가고 싶다는 김종갑 사육사는 끝까지 동물들 건강을 걱정했다. “세계 어느 동물원에 가도 저만큼 행복한 사육사가 없는 것 같아요. 동물들에게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동물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계속 살아줬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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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달해 인턴기자·연세대 신문방송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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