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정복 시대가 머지않았다. ‘암은 불치병’이라는 인식이 바뀌고 있다. 우리나라 암 환자 5년 상대생존율(이하 생존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5년 생존율 100%’란 5년 동안 암 환자 생존율이 일반인과 동일한 것으로 완치에 해당한다.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와 국립암센터에서 발표한 ‘국민 2013년 암발생률, 암생존율 및 암유병률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09~2013) 발생한 암 환자 5년 생존율이 69.4%다. 바야흐로 암 환자 10명 중 7명이 완치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오는 2월 4일은 UICC(국제 암 억제 연합)에서 제정한 ‘세계 암의 날(World Cancer Day)’이다. 세계인이 암과의 전쟁을 선포한 이래 가장 뛰어난 정복 성과를 보인 국가는 터키다. 세계표준인구로 보정한 2013년 터키의 인구 10만명당 암 발생률은 205.1명으로 OECD 평균(270.3)보다 한참 아래다. 한국은 그보다 높은 285.7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미국(318.0)과 호주(323.0)와 비교했을 때 결코 나쁜 성적은 아니다. 무엇보다 2011년부터 지속적으로 우리나라 암 발생률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더 이상 암 판정은 ‘사망선고’가 아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기대수명 81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6.6%다. 중앙암유병통계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13년까지 암 치료 중이거나 완치 후 생존하고 있는 암경험자가 약 140만명에 달한다. 우리나라 전체 국민(5150만여명) 37명 중 1명이 암에 걸려 봤다는 이야기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 중에서는 11명당 1명이, 그중 남자는 8명당 1명이, 여자는 14명당 1명이 암을 경험했다. 이제 암은 더 이상 낯선 질병이 아니다. 당뇨나 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의 하나로서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흔해진 만큼 정복도 쉬워졌다. 완치율이 높아 ‘효자암’ ‘로또암’으로 불려온 갑상선암의 5년 생존율은 남녀 전체로 두고 봤을 때 무려 100.2%에 달했다. 동일 연령대 비환자가 5년 동안 생존할 확률보다도 더 높다.

단순히 치료가 쉬운 암만이 아니다. 갑상선암을 제외한 여타 암 종류 또한 1993년 이후 5년 생존율이 지속 향상했다. 특히 위암의 정복 성과가 두드러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대한민국 40대 남성 사망원인 1위가 바로 위암이다. 갑상선암을 제외하면 한국인이 가장 많이 걸리는 암이기도 하다. 2001~2005년(57.7%) 대비 2009~2013년(73.1%) 위암 환자 5년 생존율은 여타 암 중에서도 가장 많은 15.4%포인트의 증가 수치를 보였다. 대한민국 남성들에게 죽음의 사신(死神)과도 같았던 위암의 위상이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20여년 만에 암 정복 성과가 가능했던 원인은 무엇일까. 국립암센터 이강현 원장은 “과잉진단 논란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갑상선암과 전립선암, 위암은 조기 진단해 치료하면 완치에 가깝다”고 말했다. 특히 조기진단만 되면 “대장암과 자궁경부암은 암 발생 자체를 줄일 수 있으며 위암은 90% 이상 완치, 유방암도 유방 모양 그대로 완치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췌장암, 폐암, 간암의 치료가 어려운 이유도 “전조증상이 거의 없어 조기진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남성 흡연율 감소, B형 간염 예방접종 시행, 자궁경부검진 등 국가 암 예방정책 활성화, 생활습관 개선 등이 완치율 증가의 주요 요인으로 손꼽힌다. 이 원장은 “암 증상이 나타날 정도로 경과되면 이미 치료가 어려운 상태”라며 “국립암센터의 국민암예방수칙 등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암 예방 생활습관 실천만으로도 암을 예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만성질환으로서의 암 관리는 더욱 수월해질 전망이다. 화순전남대병원 소속 ㈜박셀바이오 대표 이제중 교수(혈액내과)는 “표적치료제, 면역치료제 등 암 치료법의 발전이 생존율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이끄는 연구팀은 최근 자연살해세포(Natural Killer Cell)를 활용한 차세대 면역세포치료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임상승인을 받아 큰 주목을 받았다. 이 교수는 “1990년대부터 활발한 연구가 이뤄진 표적치료제는 부작용이 심했던 기존 항암제와 달리 암세포 성장 관련 유전자만 공격해 정상세포 손상이 현저히 적다”고 설명했다. 면역치료제 또한 주목받는 항암 약물치료 중 하나다. 이 교수는 “2000년대부터 활발히 연구된 면역치료제는 암세포 면역회피물질이 면역세포에 들러붙는 걸 방해해 인체의 자연치유력을 높여줘 암 환자들의 생존율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두 치료제 모두 국내외 임상연구와 상용화 연구가 활발하다”면서 “이미 시판 중인 이뮨셀-엘씨(Immuncell-LC, 녹십자셀) 외에도 몇몇 면역치료제가 상용화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까운 미래에 암은 예방과 치료가 완벽히 가능한 병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기술 발전과 달리 보장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불균형 때문에 아직까지 신약 가격이 환자들에게 큰 부담”이라면서 “생존율을 더 높이려면 기술뿐 아니라 제도적 뒷받침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제 암은 서서히 인류에게 정복당하고 있다. 특히 철저한 예방과 관리만 뒤따른다면 충분히 극복 가능한 병이란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간암(5년 생존율 31.4%), 폐암(23.5%), 췌장암(9.4%) 등은 여전히 가공할 치사율을 보이고 있다. 주간조선은 암과의 사투 끝에 건강을 쟁취해 돌아온 암 극복 경험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말기암에 걸리고도 사(死)의 고비를 건너 생(生)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그들의 전략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국민 암예방 수칙 10계명

1. 담배를 피우지 말고, 남이 피우는 담배 연기도 피하기

2. 채소와 과일을 충분하게 먹고, 다채로운 식단으로 균형 잡힌 식사하기

3. 음식을 짜지 않게 먹고, 탄 음식 먹지 않기

4. 술은 하루 두 잔 이내로 마시기

5 .주 5회 이상, 하루 30분 이상, 땀이 날 정도로 걷거나 운동하기

6. 자신의 체격에 맞는 건강 체중 유지하기

7. 예방접종 지침에 따라 B형 간염 예방접종 받기

8. 성 매개 감염병에 걸리지 않도록 안전한 성생활 하기

9. 발암성 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작업장에서 안전 보건 수칙 지키기

10. 암 조기 검진 지침에 따라 빠짐없이 검진 받기

윤수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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