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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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 사이에서는 내가 돌팔이처럼 생각될지도 몰라요.”

김선규(62)씨가 농담처럼 던진 첫마디였다.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김씨는 현재 대한제암거슨의학회 환우회장을 맡고 있다. 대한제암거슨의학회는 암을 비롯한 만성 난치성 질환자를 위한 식이요법 등 생활습관 개선을 치료에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의사들의 모임이다. 그가 이 모임에 참가하는 암 환자를 대표해 환우회장을 맡은 것은 그 역시 남다른 암 투병 경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창 건강할 44세 나이에 직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그로부터 무려 18년 동안 재발 없이 건강을 유지했다. 암 투병 고비인 5년 생존 바늘귀 문을 뚫고도 한참이나 지났다.

놀랍게도 그의 생존비결은 항암치료가 아니다. 그는 수술 직후 입원을 거부하고 보낸 3년간의 ‘지리산 요양 생활’이 암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믿고 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지난 1월 25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위치한 그의 병원을 찾았다.

3월 병원 개원을 앞두고 김선규씨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5년 전 운영하던 연세가정의원을 접고 잠시 쉬었다가 이번에 다시 새 병원을 연다. 그는 암에 걸렸던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한 모습이었다. 그는 자신이 암에 걸렸던 가장 큰 이유로 “잘못된 라이프스타일”을 꼽았다. 1991년 서울 은평구에 개원한 병원이 잘돼 하루 환자만 200~300명씩 몰렸다. 그는 “바쁘고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밤새 술 먹고 새벽까지 잠 한숨 안 자고 출근했다”고 회상했다. 오죽했으면 친구들에게 “오전엔 비몽사몽하니 진료받으려면 오후에 찾아오라”고 할 정도로 무절제한 삶이었다. “술안주로 곱창, 삼겹살 등 기름진 음식을 자주 섭취하니 몸무게 105㎏을 금세 넘겼어요. 임신 8개월이냐 놀림받을 만큼 배가 남산만 하게 나왔었죠.” 현재 그는 키 178㎝에 몸무게 73~75㎏을 유지 중이다.

1998년 봄, 잦은 설사가 이어졌다. 약을 먹어도 도무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맥주로 인한 술병’이라 생각했지만 증상은 계속됐다. 아직 젊다 생각했고 스스로가 가정의학과 의사였기에 암일 거란 의심을 추호도 못했다. 결국 차일피일 미루다 “검사 안 받으면 단식투쟁하겠다”는 가족들의 강권에 못 이겨 동료 의사의 병원을 찾았다. 뜻밖에도 검사를 하던 동료는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결국 “종합병원 가서 확인하라”는 말을 들었다.

부랴부랴 모교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대장내시경을 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시뻘건 덩어리’, 그것도 족히 7~8㎝는 돼 보이는 암이 김씨의 직장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직장암 3기였어요. 그것도 이미 임파선으로 번져 생존율이 30~40%에 불과했죠.” 결국 그는 7㎝ 암 덩어리와 함께 직장 20㎝를 도려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문제는 수술 직후였다. 체력적으로 힘들어 몸무게가 30㎏이나 줄었다. 항문이 헐 정도로 잦은 설사가 계속됐다. 김씨는 입원치료를 망설였다. “의사 생활하면서 항암치료하는 암 환자들 많이 봐왔었죠. 항암치료 받는다고 백 프로 낫는 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생활의 질이 떨어지는 병원 생활을 하고 싶진 않았어요.”

결국 항암제 투여, 방사선 치료라는 전형적인 코스를 뒤로한 채 지리산으로 떠났다. 병원 치료가 아닌 잘못된 생활습관을 개선하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아직 학교를 다녀야 하는 아이들과 아내를 집에 남겨두고 운영하던 병원도 청산했다. 그리고 지리산 자락에 조용한 흙집 하나를 지어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일과는 단순했지만 많은 것이 변했다. 가장 먼저 먹는 게 변했다. 술과 기름진 안주로 점철됐던 이전과 달리 붉은 육류 섭취를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였다. 가급적 오리 등 가금류, 신선한 생선을 먹었다. 직접 텃밭에서 가꾼 유기농 채소도 식탁에 올렸다. 틈날 때마다 지리산을 돌아다니며 취나물, 쑥, 돌미나리 등을 뜯었고 이를 위해 식물도감 공부까지 했다. 거기에 지리산 약수, 깨끗한 공기까지 더해지니 점점 몸에 힘이 붙었다. 설사 때문에 집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던 상태도 점차 호전됐다.

그는 “규칙적인 운동을 위해 시작한 태극권으로 몸을 풀고 명상을 하다 보니 오히려 암에 걸린 게 전화위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비 온 뒤 햇빛이 반짝 나며 나무 이파리가 빛나는 걸 보며 생각했어요. 이게 천국이구나. 오히려 내가 암에 걸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죠. 암이 아니었으면 평생 동안 좁은 진료실에 살았을 텐데.”

그러나 그는 “내 방법을 무조건 따라하면 오히려 역효과”라고 설명했다. “내 지리산 이야기 듣고 무턱대고 산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개중 흙 한 번 손에 안 묻혀 본 도시 토박이들은 심심해서 짧으면 일주일, 길어도 한 달 이상을 못 견뎌요. 익숙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스트레스죠.”

그는 암을 이기려면 중요한 건 ‘무얼 먹느냐’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암 진단 받으면 보통 죽었다 생각해 엄청난 스트레스로 사람이 축 처져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면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생활개선 의지를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저 역시 처음 지리산에 갔을 때 항암치료 안 받는 게 과연 맞나 많이 불안했어요. 결국 그 불안을 극복했기에 병도 극복할 수 있었죠.”

그는 요즘 틈날 때마다 노래방을 다닌다. 우울하거나 스트레스 받을 때 한두 시간씩 노래를 부르면 일종의 음악치료가 된다. 그는 암 걸리기 전 여유 없어 못했던 취미생활에 눈을 돌렸다. 특히 “지루한 운동보다 게임하듯 다른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이 좋다”며 테니스, 배드민턴 등을 추천했다.

그는 암 환자들 대부분이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의사들은 보통 수술 후 생활에 대해선 세세히 말해주지 않아요. 진료가 바쁘기도 하고 사실 잘 모르기도 하고. 한국 의사들이 많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무조건 불신하고 극단적인 방법에만 매달리면 곤란해요.” 그는 “과장되고 왜곡된 정보에 홀려 오히려 치료 가능성을 망치는 경우가 제일 안타깝다”고 했다. 그가 암환자협회, 대한제암거슨의학회 활동 등을 통해 암 환자들의 수술 후 생활에 대한 상담과 조언을 지속해 온 이유이기도 하다.

“내 건강의 주체가 돼라”

그는 결국 모든 암 치료의 근본은 “내 몸을 내가 치료한다는 주체적인 자세”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리산에서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그때 생활습관의 70~80%를 꾸준히 유지 중이다. 비결은 ‘직접’에 있다. 직접 유기농 음식과 제철음식을 챙겨 먹고 한식과 발효식품, 채식 위주의 식생활 유지를 위해 손수 요리도 한다. 이제는 스트레스 해소용이 아닌 건강을 위한 약주로 막걸리를 직접 담가 먹는다. 2004년 초 발효식품을 연구하는 대학원 과정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요리학원에서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 김장철 부모님 집 김치도 대신 담가 드렸다고 한다.

그는 “우리 몸은 딱딱하게 만들어 놓은 몸이 아닌 살아있는 생물”이라면서 “현대인들은 자동차나 외식문화같이 움직이지 않는 생활이 늘어나 병을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암 환자들은 가족들이 다 해주려고 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건 오히려 건강 회복을 방해하는 일”이라면서 “스스로 건강의 주체가 돼 생활습관을 직접 챙겨야만 최상의 조건이던 원래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선규씨가 말하는 암 극복 3원칙

1. 잘못된 생활습관, 특히 비만 부르는 식습관은 개선해야 한다. 붉은 육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먹고 가급적 가금류와 신선한 생선을 섭취하라. 제철음식과 발효식품, 유기농식품 위주의 한식을 골고루 먹어라.

2. 직접 몸을 움직여라. 구석기시대부터 우리 몸은 사냥 체질로 길들여졌다. 문명에 기대면 병이 생긴다. 함께할 수 있는 운동(테니스·배드민턴 등)과 명상, 호흡 운동(태극권·요가·단전호흡 등)이 좋다.

3. 가장 중요한 건 스트레스 관리다. 암 환자일수록 불안한 마음과 극단적인 태도를 버릴 수 있어야 한다. 못 해봤던 취미생활이나 종교활동에 눈을 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윤수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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