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익산시 신동에 위치한 솜리야학에서 이수안 공군 중위는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에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photo 공군본부
전라북도 익산시 신동에 위치한 솜리야학에서 이수안 공군 중위는 매주 목요일과 토요일에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photo 공군본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는데, 난 이미 들켜버린 왼손이 된 것 같아 부끄럽다. 이제 내 들켜버린 양손으로 더 열심히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지난 1월 22일 공군방공관제사령부 제8351부대 전자중대장 이수안(28) 중위가 전화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수안 중위는 지난해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선정한 ‘생활 속 작은 영웅들’ 중 한 명이다. 이 중위는 2014년 6월부터 지금까지 1년7개월째 전라북도 익산시 신동에 위치한 솜리야학에서 사회교사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솜리야학은 여러 가정 사정으로 정규학교를 다니지 못한 사람들이 검정고시를 보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곳이다. 말 그대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학생들의 평균연령은 40~50대로 높은 편이다. 주부부터 새터민, 뒤늦게 한글을 깨우치려는 70대 노인까지 학생들의 이력도 다양하다. 이수안 중위는 매주 목요일마다 일과를 마치는 오후 5시30분이 되면 누구보다 분주해진다. 부안에 위치한 근무지에서 50㎞가량 떨어져 있는 익산의 야학에 오후 7시30분까지 출근하기 위해서다. 이 중위는 하루 2시간의 사회 수업을 강의하기 위해 매주 왕복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해 오가고 있다. 근무가 없는 토요일에도 야학에 가서 수업을 한다.

고등학교 자퇴생에서 공군이 되기까지

그가 야학에서 봉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졌다.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해 1학년을 마치기 직전 자퇴를 했다. 당시 IMF로 인해 아버지가 실직을 하고 가세가 기울다 보니 도저히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학비 걱정 없이 학업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는데, 바로 공군이 운영하는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하는 것이었다. 나는 1년이 늦은 나이에 그곳에 입학해 나라의 혜택을 받으며 어려움 없이 공부를 이어갈 수가 있었다.”

IMF로 인해 학업의 끈을 놓을 뻔했지만 공군의 도움으로 공부를 마쳤으니 이제 그 고마움을 봉사로 갚아야 한다는 게 이 중위의 설명이다.

그는 공군항공과학고를 졸업하고 공군에서 부사관으로 복무하면서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싶었던 그의 꿈 역시 공군의 도움으로 이뤄졌다. 공군 학업장학생으로 선발되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군인 신분으로 명지대 전기공학과를 다니며 캠퍼스의 낭만을 누리기도 했고, 군대 밖의 다양한 친구들도 사귀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부사관이 아닌 공군 학사장교 130기로 다시 임관했다. 이 중위는 “고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나라의 도움으로 학비 걱정 하나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면서 “늘 아낌없이 받은 혜택을 어떻게 하면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 중위가 봉사하고 있는 솜리야학은 1982년 개교한 삼동야학을 근간으로 2010년 다시 문을 연 야학이다. 솜리야학이 위치한 전라북도 익산시의 경우 중학교 졸업 미만자 수가 4만5000명이 넘는다. 아직도 야학을 통한 교육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이 중위는 “특히 야학 같은 경우는 봉사를 시작하면 꾸준히 해야 한다”면서 “한두 번 하고 그만둬 버리면 학생들이 상처를 받는다”고 말했다.

그가 대학에서 전공한 과목은 전기공학이지만 야학에서는 사회와 역사를 가르친다. 사회과목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이 중위의 말이다. “전공을 살려 수학이나 과학을 가르칠 수도 있었지만 평소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학생들에게 교과서뿐만 아니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회현상, 역사관에 대해서 가르치고 싶었다. 사회와 역사를 바로 알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져서 학생들이 교과서 이상의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수업 위해 EBS 수업·학습만화 섭렵

학생들의 평균 나이대는 일반 중고등학교보다 두 배 이상 높은 편이지만 수업 집중도는 고3 학생들에 비해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학생들은 뒤늦은 나이에 펜을 잡은 만큼 짧은 시간 안에 검정고시에 합격하기 위해서 공부에 대단한 열정을 보인다. 그래서 이 중위도 전문 강사 못지않게 수업 준비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

“학생들 중 40~60대 여성이 많다. 대부분 어머니들이다. 수업 중에 지금까지 몰랐던 지식들을 새롭게 알아가는 어머니들의 환한 표정을 볼 때면 힘이 난다. 수업을 알차게 만들기 위해 틈 나는 대로 EBS 스타강사들의 강의를 본다. 역사를 쉽게 가르치기 위해서 역사학습만화 ‘WHY 시리즈’ 150권 세트를 100만원이 넘는 돈을 주고 구입했다.”

이 중위가 특히 수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어머니들이 자녀 뒷바라지를 하며 미뤄 두었던 학업의 꿈을 이제는 이룰 수 있게 도와주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노력은 결실로 나타났다. 지난해 그가 가르친 중등교육과정 학생 12명 모두가 중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제 그와 학생들은 올해 4월에 있을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 중위는 봉사를 하며 오히려 자신이 많이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억에 남는 제자 얘기를 들려줬다.

“지난해 중등 검정고시를 합격하고 현재는 고등반에서 열심히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20대 초반의 한 친구가 있다. 아픈 동생의 치료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낮에는 일용직으로 노동을 하며 밤에는 야학에서 공부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이 친구가 이곳에서 70대 할머니, 할아버지 다섯 분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교사 역할을 자진해서 하고 있다. 낮에 그 힘든 일을 마치고 자신의 공부까지 쉴 틈이 없을 텐데 여기서 받은 혜택을 자신도 돌려줘야 한다고 말하더라.”

이 중위는 백발의 노인들 옆에 붙어 앉아 손주처럼 한글을 가르쳐주는 그 학생의 모습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 모습에서 교육이 또 다른 교육을 낳는 선순환(善循環)의 희망을 봤다.

야학을 통해 베푸는 것보다 배우는 것이 더 크기에 왕복 2시간의 거리는 그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중위는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수업을 할 때가 많지만 수업을 하게 되면 불을 뿜듯 강의하는 힘이 솟는다”면서 “강의가 잘된 날은 뿌듯해서 피로가 풀리고, 강의가 잘 안 된 날은 문제점을 찾느라 피곤한지도 모를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수안 중위는 여건이 허락하는 한 야학봉사를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전화 인터뷰가 끝났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교육제도 안에서 부족한 부분인 야학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봉사에 함께 동참하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아들과 딸인 우리 학생들이 꿈을 이뤄 나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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