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은 언어 이전에 역사예요. 고려말 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어요. 우리가 없어져도 자료를 남겨 놓으면 후대의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어요?”

지난 1월 21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와 연결된 전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엄 안토니나(65)씨의 한국어는 유창했다. 그는 사마르칸트 국립외국어대 한국어과 학과장을 지내다 2013년 은퇴했다. 부모님은 연해주에서 살다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 때 사마르칸트에 정착한 고려인이다. 그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한국어를 사용했다. 학교에 다니고부터는 줄곧 러시아어로 공부했다. 그는 고려말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고려말 사전을 만들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중이다.

중앙아시아 고려인들이 사용한 언어의 뿌리는 함경도 지역이다. 1860년대 함경도 일대에서 연해주로, 다시 중앙아시아로 이주하며 모진 역사를 겪어야 했던 만큼 150여년 동안 언어도 많은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 그는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전혀 뜻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한국어와 다른 고려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신맛을 뜻하는 시쿠다처럼 발음이 변한 것도 있지만 부추를 염지라고 하는 것처럼 전혀 상관관계가 없는 것도 많아요. 찐빵을 만티라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나온 말인지 궁금하잖아요? 찾아보니 중국어에 비슷한 말이 있어요. 양배추와 고기를 넣어 찐만두처럼 만든 요리를 ‘배고재’라고 해요. 아무리 찾아봐도 어원을 알 수 없는 거예요. 우연히 위구르 식당에 갔는데 메뉴에 적혀 있더라고요. 고려말에는 중국, 위구르, 러시아가 뒤섞여 있어요. 언어도 언어지만 그 안에 삶과 역사가 녹아 있어요. 고려말을 통해 고려인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고 싶어요.”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에게 수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살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소수민족으로 살다 보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컸다. 우즈베키스탄인도 아니고 러시아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인도 아니었다. “러시아 문화 속에 살지만 러시아 민족이 될 수는 없잖아요. 핏줄은 속일 수 없으니까. 결혼할 때가 되면 그런 고민에 다시 한 번 정면으로 부딪히게 되죠. 고려인끼리보다 러시아 등 다른 민족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아요. 결국 큰 민족 속에서 고려인의 존재는 없어지게 되는 거죠.”

그가 한국을 처음 찾은 것은 2005년 7월 국립국어원에서 있은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공항에 내려 이상하게도 안도감을 느꼈다고 한다. “낯선 곳이 아니라 내 집에 돌아온 것 같았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로 인정받는 느낌이었어요. 그런 기분은 평생 처음이었어요.” 사진 속 그녀는 화려했다. 통화 중에 그에게 “멋지다”고 말했더니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 그의 화려함에도 이유가 있었다.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해 보이기 위해 화장과 패션을 눈에 띄게 하는 것이 고려인 여성들의 생존법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고 힘을 주어 말했다. 그만큼 뿌리에 대한 절실함이 전해졌다.

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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