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저지주 유니언시티에서 주민들이 거리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뒤로 맨해튼이 보인다. ⓒphoto 연합
미국 뉴저지주 유니언시티에서 주민들이 거리에 쌓인 눈을 치우고 있다. 뒤로 맨해튼이 보인다. ⓒphoto 연합

눈도 미국답게 내린다. 1월 네 번째 주말, 미국 동부를 강타한 눈은 수도 워싱턴뿐만 아니라 미국의 심장 뉴욕까지 도시 기능을 마비시켜 버렸다.

도시 전체가 60㎝가 넘는 눈에 파묻혀 버렸다. 뉴욕과 뉴저지를 연결하는 다리와 터널은 주지사의 명령으로 차단되었다. 맨해튼 시내는 차량 운행 금지령이 내렸고, 이를 위반하는 사람은 바로 벌금을 부과받았다. 이런 강력한 행정력이 동원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민의 안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도시 기능을 유지·회복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행여라도 차를 가지고 나섰다가 길 한가운데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면 바로 그 순간 도로의 기능이 마비되고 차 한 대를 구하기 위해 도시 기능 회복에 투입되어야 할 행정력이 낭비되는 것이다. 주지사가 나서서 이렇게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이면에는 무엇보다 정확한 일기예보가 있다.

미국의 뉴스 시간에 생각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교통정보와 일기예보다. 대부분 자가용으로 출퇴근하는 미국인들에게 교통정보는 매우 중요하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교통정보를 보면서 교통사고나 공사 중인 도로를 피해서 다닐 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침 출근 전 헬리콥터와 도로에 설치된 CCTV 화면으로 제공되는 실시간 교통정보에 의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 교통정보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일기예보다. 한국처럼 뉴스 제일 마지막에 식당에서 꼭 주는 밑반찬 같은 정도의 일기예보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 일기예보를 보고 어떤 옷을 입고 출근할지, 우산을 휴대할지를 결정한다. 물론 이 비중의 차이는 두 나라의 기후조건 차이 때문일 것이다.

미국 생활 초기 나는 이 일기예보 때문에 혼란스러운 적이 제법 있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호들갑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 싶은데, 햇볕이 쨍쨍한데도 오후 2시부터 비가 내리니 우산을 반드시 준비하라느니, 6시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해서 다음날 10시경에 멈출 예정이고 대략적인 적설량은 이만큼으로 예상된다느니 마치 족집게처럼 예보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로 그 예측한 시간에 비가 오고 눈이 오는 것이 아닌가.

눈폭풍 조나스(1월 네 번째 주말 미국 동부를 강타한 눈폭풍 이름)가 미 동부에 도달하려면 아직 일주일도 더 남았을 무렵, 벌써 방송국에서는 이 눈폭풍의 위력을 전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역대급 눈폭풍이니 미리 잘 대비하라는 것이다. 도대체 아직 일주일도 더 남아 있는 지금 뭘 저 정도로 심각하게 그러나 싶다가도 정확한 일기예보의 위력을 경험한 나로서는 이번에는 좀 심각한가 보다 하는 정도였다. 이런 예보가 나오면 슈퍼마켓은 생필품을 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특히 생수는 동나기 일쑤다.

방송 일주일 전부터 계속 경고

미국의 재난 구호품 중 인기 있는 제품이 가정용 소형 자가발전기이다. 정전이 되면 전화 한 통화로 거의 두세 시간 내에 복구가 되는 한국과 달리 미국의 전기 복구는 상당히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미국의 교외지역은 나무가 대단히 많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이 나무들의 뿌리가 그렇게 깊지 않다는 점이다. 바람에 무너진 나무를 보면 이렇게 큰 나무의 뿌리가 겨우 이 정도였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뿌리가 얕은 아름드리 나무의 가지 사이로 전선이 이어져 있다. 강풍이 불어 나무가 넘어지면 전선은 여지 없이 잘려나간다. 바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가지에 눈이 쌓여 그 무게로 부러지기라도 하면 역시 가느다란 전선은 버틸 재간이 없다. 이렇게 어이없이 정전이 되면 여름은 버틸 만하지만 겨울은 정말 위험하다. 그래서 자가발전기를 구비하는 가정이 상당히 많다.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테슬라를 만든 머스크가 가정용 대용량 배터리를 개발한 것이다. 에너지 저장 시스템(Energy Storage System·ESS)이라고 불리는 이 배터리는 비교적 고가인 400만원대에 가격이 책정되었지만 생산도 되기 전에 수만 대가 예약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센트럴파크 적설량 기준으로 역대 3위라고 한다. 방송국에서 일주일 전부터 계속 경고했던 것이 그대로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 예보를 기초로 각 자치단체들은 제설 장비와 제설용 소금가루를 준비했고, 눈이 멈추자 신속하게 제설작업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 제설작업은 공무원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민간업자와 계약을 체결하고 도로 제설작업을 맡긴다. 주로 겨울에 일감이 없는 건설업체들이 일을 하기는 하지만 개인도 참여할 수 있다. 트럭 앞에 제설용 장비를 부착하여 길거리 제설 작업을 지원한다.

1월 24일에는 뉴욕주 지사, 뉴저지주 지사, 뉴욕 시장 등이 수시로 방송에 나와서 눈이 내리는 상황, 도로 현황, 긴급 재난지역 선포 등을 시시각각 전해 주었다.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절대로 집 밖에 나오지 말 것, 차를 가지고 도로에 나서지 말 것을 수시로 강조하였고, 괜히 용감한 척하지 말라는 주의를 덧붙인다. 1월 24일은 토요일이라 출근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다행이었다. 만약 평일이었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렇게 재난이 선포되면 직장 상사도 직원들을 강제로 나오게 할 수 없다. 우선 출퇴근용 대중교통이 없기 때문에 나올 수도 없거니와 괜히 나오라고 했다가 사고라도 나면 회사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재난지역으로 선포되면 관공서와 은행이 문을 닫고 식당도 대부분 문을 닫아 버린다. 더군다나 온라인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오늘날 굳이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기 집 앞 눈은 스스로 치워야 하는 미국에서 백설(白雪)은 낭만이 아니라 고통이다. 밤새도록 제설차량들이 큰 길에 쌓인 눈을 길가 쪽으로 밀어붙이는 바람에 우리 집 주차장 출입구 쪽은 언덕이 하나 생겨 버렸다. 저 눈을 다 치워야 우리 차를 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집 앞 인도에 쌓여 있는 눈도 치워야 한다. 내가 선량한 시민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치우지 않으면 시에서 벌금 딱지를 보내오기 때문이다. 제설용 삽을 들고 집을 나서서 무려 두 시간을 쉬지 않고 삽질을 한 후에야 겨우 차가 움직일 수 있는 통로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인도를 치우는 데 또 30분. 무려 두 시간 반의 사투를 벌인 끝에 집에서 외부로 향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이 삽질이 두려워 가정용 자동 제설 장비를 사기도 하고 아르바이트 삼아 삽을 들고 눈을 치우러 다니는 사람들을 활용하기도 한다.

눈이 닥치기 전부터 미리 준비하였고, 눈이 내리는 동안 도로까지 통제하면서 제설작업에 전력투구했지만 맨해튼 길거리는 여전히 눈 때문에 걸어가는 것이 택시보다 빠를 지경이다. 입구가 막혀버린 배수구 근처에는 녹아내린 눈으로 웅덩이가 생겨 건널목을 건너다 물에 텀벙 빠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정을 비난하는 언행은 찾기 힘들다. 아마도 정보에 대한 신뢰, 행정에 대한 신뢰가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황효현

경기텍스타일센터 뉴욕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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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현 경기텍스타일센터 뉴욕사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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