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한국의 남자 간호사 수는 지난 2월 16일 1만명을 넘었다. 1962년 최초의 남자 간호사인 조상문(80)씨가 간호사 면허를 발급받은 이래 54년 만이다. 최근 남자 간호사의 급증세는 무섭다. 현재 일선에 배치된 남자 간호사의 수는 전체 간호사 중 3% 내외지만, 최근 치러진 ‘간호사 국가시험’의 합격자 중 남자는 10%에 달한다. 2001년에는 전체 간호학과 정원 대비 2.8%에 불과하던 간호학과 재학생 중 남학생 비율도 2014년에는 전체의 15%로 증가했다.

지난 2월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소아수술실 앞에서 김장언(56) 대한남자간호사회 회장을 만났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 소아수술실에서 11년째 수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 회장은 2013년 창립된 대한남자간호사회의 초대 회장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최근 남학생들이 간호사 직업을 선호한다는 걸 짐작만 했는데, 현실적 수치로 나타나니 남자간호사회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뿌듯하다”고 했다.

기자는 지난해 12월 ‘메르스 사투, 전사가 된 천사들’이라는 제목으로 주간조선 2387호 송년호 커버스토리에 대전 건양대병원 간호사들을 소개한 적이 있다. 이 기사에 기자는 “간호사들도 누군가의 어머니이고 딸이다”라는 표현을 썼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당시 간호사의 고충을 자세히 설명했다는 점에서 많은 독자들이 공감을 표했지만, 일부 독자들은 이 표현을 문제 삼아 “간호사가 여자만 있냐”는 항의를 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들은 김장언 회장은 “기자님이 실수를 하셨네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 우리 병원은 가장 치열한 병원 중 하나였습니다. 삼성서울병원 환자들이 우리 병원으로 이송되면서 환자가 밀려들었죠. 이 환자들을 위해 투입된 간호사들 중 남자 비율이 전체 서울대병원의 남자 간호사 비율에 비해 월등히 높았어요. 아무래도 남자 간호사들이 육체적으로 강인하면서도 적극적인 편이니까요. 남자 간호사들이 수고해 주면서 병원 경영진에게도 칭찬을 많이 받았고, 상황이 끝나고 열린 병원 자체 행사에서는 남자 간호사 중 상당수가 상장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여자 간호사들이 잘해 줬지만, 성별의 차이에서 오는 약한 부분도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런 부분을 우리 남자 간호사들이 채워주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김 회장은 “어릴 때부터 ‘인생은 짧으니 뭔가 흥미진진한 일을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며 간호학과를 선택한 계기를 밝혔다. 그는 고3이던 1977년, 신문에서 “서울대 간호학과에 남학생이 입학했다”는 기사를 읽고 간호학과에 관심을 가졌다. 첫 해에는 부모님의 권유에 따라 서울대 교육계열 입학시험을 쳤지만 떨어진 후, 이듬해 서울대 간호학과에 시험을 쳐 입학했다. 김 회장은 “병원 일도 쳇바퀴 같은 면은 있지만, 간호사 일이 흥미진진한 면이 있어 그때 선택을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 회장은 남자 간호사가 최근 급증하는 이유로 취업난을 첫 번째로 꼽았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되고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안정적인 직종인 간호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그 근거로 “4년제 대학을 나오고도 다시 간호대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예전에 비해 많이 늘었다”며 “최근 간호학과 입학 커트라인이 높아진 이유도 이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일반인의 인식 변화도 남자 간호사 숫자가 늘어나는 이유로 꼽았다. 성별에 따라 남녀의 직업적 영역이 어느 정도 구분됐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성별 구분이 희미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입학할 때 서울대 의대 정원이 150명이면 여학생이 5명 정도밖에 없었다”며 “지금은 의대에 여학생이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직업 환경과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여성이 주도적으로 사회 전면에 나서면서 남자도 자연스럽게 여성 영역에 녹아든다는 것이다.

- 남자 간호사의 강점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는 물리적 힘을 강점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건 표면적인 것이다. 정서적으로도 남자 간호사가 필요한 면이 있다. 예를 들면 우리 병원 혈액암병동 수간호사 중 남자 간호사가 한 명 있다. 간호 생활을 병실 근무부터 시작한 후배인데, 이 친구는 한번 병실에 들어가면 나오질 않는다. 너무나 대화가 자연스럽고 특히 중년 여성 환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환자들이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 남자 간호사들은 여자 간호사와 또 다른 세세한 면이 있다. 이제 남자 간호사들이 병실에서도 많이 근무하기 시작했다. 선입견 없이 본다면 여자나 남자나 서로가 하는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 환자나 보호자들 반응은 어떤가.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예전에는 ‘의사 선생님이시네요’ 했다가 명찰 보고 ‘어, 간호사시네요’, 이런 경우도 많았지만 이제는 그런 게 거의 사라진 편이다. 아무래도 요즘 분들은 어릴 때부터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남자 간호사를 익숙하게 접해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 남자 간호사들의 어려움은 무엇인가. “군복무다. 일반 대학생들처럼 대학 생활을 하다 군에 다녀온 후 복학을 하면 학업을 쫓아가기가 대단히 어려워진다. 간호학과는 스스로 시간표를 짜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표를 반드시 들어야 졸업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4년 동안 배워야 하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남학생들은 본격적으로 전공 수업을 듣기 전인 1학년 때 군대를 미리 갔다 오는 추세다. 졸업하고 군대를 가면 취업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간호장교 제도가 있긴 하지만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너무 적어 어려움이 있다.”

- 남자간호사회가 최근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사안은 무엇인가. “‘공중보건간호사’ 제도다. 우리나라는 도·농 간의 의료 격차가 크다. 현재 지방의 의료 사각지대를 커버하는 것이 공중보건의사 제도인데, 여의사가 많아지면서 공보의가 줄고 있다. 이들을 대신해 의료 취약지대를 커버할 수 있는 것이 공중보건간호사다. 간호학과 남학생들이 현역으로 복무하는 대신 지방 보건소에서 3년간 의료근무를 하는 제도다. 신경림 의원(새누리당)이 이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국방부의 반대로 통과가 미뤄지고 있다.”

-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의료취약지대 사람들을 돕고 남자 간호사의 군복무 문제를 해결하는 이상의 목적도 있다. 공중보건간호사 제도가 생기면 간호사가 3년 동안 의료 취약지대에서 근무하면서 의료 경험과 임상기술이 발전한다. 그중에서는 그 지역에 정이 들어서 복무기간이 끝나도 남는다는 사람이 분명히 나올 것이다. 이를 통해 끊임없이 취약지대에 의료인력이 제공되는 선순환이 일어난다. 공중보건간호사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국민건강권을 위해 아주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 간호학과를 지망하는 남학생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남자 간호사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방향을 제시해 줄 필요성을 느껴 남자간호사회를 설립했다. 선배로서 현장에서 오래 경험을 한 우리가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또 남자 간호사들이 활동할 영역을 점점 확대해 갈 책임이 있다고 느낀다. 남자간호사회 내부조직인 교수협의회가 2월 26일 창단한다. 남자 간호사가 하나둘 학계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꾸린 조직이다. 남자 간호사가 제도권 내에 들어왔다는 방증이다. 이를 통해 연구와 학술 활동도 활발히 진행할 예정이다. 간호의 길은 넓고 다양하니 간호학과를 지망하는 남학생들은 주저 없이 들어오라고 적극 추천한다.”

배용진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