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일인 4월 13일 오전 11시,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서울약령시(藥令市)는 흐린 날씨만큼이나 썰렁했다. 서울약령시를 관통하는 약령중앙로에는 약재를 손질하는 상인들만 이따금 눈에 띌 뿐, 물건을 보러 다니는 손님은 한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고산자로를 사이에 두고 약령시와 마주 보고 있는 경동시장이 채소나 옷가지를 사러 온 손님들로 붐비는 풍경과 대조적이었다. 서울약령시 2번 출입구 앞에서 30년간 약재상을 운영해 온 60대 여주인은 “여기는 전혀 희망이 없는 곳”이라며 “예전에는 그래도 일요일이면 손님이 많았는데 지금은 주말에 사람이 더 없다”고 했다.

서울약령시는 한국의 한약 유통 거래량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국내 최대 한방시장이다. 한의원, 한약국, 약업사 등 800여개의 한방 관련 상가가 밀집돼 있다.

하지만 서울약령시는 국내 한방시장 침체에 따라 긴 불황을 맞고 있다. 홍삼, 비타민 등 건강기능성 식품이 쏟아진 데다 한약재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심해지면서 벌어진 일이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의 2013년 발표에 따르면, 한약·한약재 시장은 소비자 5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소비자 시장 성과지수’ 조사 결과에서 54.6점을 받아 주요 10개 시장 중 가장 성과지수가 낮은 시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한약과 한약재는 비교 용이성과 신뢰성, 만족도 등의 항목에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여기에 지난해 터진 ‘가짜 백수오 파동’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지난해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일부 건강식품 업체의 백수오 원료에서 각종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이엽우피소가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백수오는 자양강장의 효능이 있는 약재로 ‘흰머리를 검게 하는 약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로 인해 생긴 ‘한약이 건강을 오히려 해칠 수 있다’는 우려는 약령시에 치명타를 입혔다. 서울약령시협회에 따르면 가짜 백수오 사태 당시 소매 기준 매출액은 평시에 비해 30% 수준까지 떨어졌다.

실제로 기자가 찾은 서울약령시는 한산했다. 대로변인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 2번 출구 주변에는 그나마 오가는 손님이라도 있었지만, 약령시 골목 안에서 한약재를 찾는 손님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한 약재상은 “제기동은 서울시에서 노인들이 가장 많이 오는 곳”이라며 “노인들은 한약재에 관심이 있어도 구매력이 없으니 반대편에서 쪽파나 푸성귀를 좀 사는 수준이지 약재를 사러 골목에 들어오지는 않는다”고 했다.

침체된 곳은 서울약령시만이 아니다. 대구 중구 남성로에 있는 대구약령시도 경기침체에 따라 영세 업소들이 문을 닫으면서 긴 불황을 맞고 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약재시장인 이곳은 1990년 중반까지 전국 곳곳에서 몰려든 한약재를 판매하기 위해 약업사, 한약방, 제탕·제환원 등 한방 관련 업소 230여개가 밀집돼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부터 한약재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현재 한방 관련 업소는 200곳에도 못 미친다.

서울 동대문구는 침체된 약령시를 살리기 위해 지난해 3월부터 서울약령시 약령중앙로 중앙에 한방산업진흥센터를 건립하고 있다. 지하 3층~지상 3층 규모로 총 연면적이 9730.5㎡(2948평)에 달한다. 한방산업진흥센터에는 한의약박물관, 한방의료체험시설, 한방체험공방 등 각종 한방 관련 체험시설이 들어선다. 현재 3분의 1 정도가 지어졌으며 2017년 1월 3일이 완공 예정일이다.

지난 4월 12일 오후 서울약령시 길가에서 시민들이 약재를 구경하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지난 4월 12일 오후 서울약령시 길가에서 시민들이 약재를 구경하고 있다. ⓒphoto 한준호 영상미디어 차장대우

“나아질 턱이 없다” vs “입점 움직임 있다”

동대문구는 서울약령시 인근에 ‘한방타운’을 조성해 “서울약령시를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관광명소로 육성하겠다”는 계획이다. ‘한방타운’의 핵심이 한방산업진흥센터이다. 한방산업진흥센터 지하 1~3층은 공영주차장과 기전실, 박물관 하역장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지하 면적만 7000㎡(약 2000평)를 넘는다.

동대문구는 “한방산업진흥센터는 우리 전통의학인 한방의 이미지를 잘 살린 한옥형으로 설계돼 매력적인 외관을 자랑하며 지역과 연계한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통해 내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동대문구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최상철 동대문구 언론팀 주무관은 “그동안 약령시 주변에 주차할 만한 공간이 없다는 민원이 많았다”며 “공영주차장을 지으면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상인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서울약령시 2번 출입구 앞에서 약재상을 운영하는 50대 남성은 ‘한방산업진흥센터가 들어오면 한약시장이 활성화되겠냐’는 물음에 “나아질 턱이 없다”며 “대로변 가게들은 그나마 장사가 되는 편이지만 골목 안의 가게들은 요즘 다 죽었다”고 했다. 약령중앙로에서 20년 동안 한약방을 운영한 70대 여성 김모씨도 “외국인들이 한약을 사 먹겠나”라고 반문했다. 20년 동안 약령시에서 한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한 상인도 “7~8년 전쯤 버스정류장 위치가 옮겨지면서 사람들의 동선이 바뀌었다”며 “이대로 있다가는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고 했다.

약령시 건너편의 경동시장에서 지난해까지 채소 가게를 운영한 70대 여성은 “그거 들어온다고 손님이 늘겠냐”며 “전체적으로 이 동네에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매년 가을 약령시에서 열리는 축제에 남진·현숙 같은 이름 있는 가수들이 오곤 했는데 작년 가을에 한 축제는 ‘거지 축제’였다”며 “예산이 없어 이름 없는 애들 모아다 춤추는 수준이었는데 누가 그거 보러 오겠냐”고 했다. 동대문구는 1995년부터 약령중앙로에서 매년 10월 ‘서울약령시 한방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반면 한방산업진흥센터 설립이 서울약령시의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 상인도 일부 있었다. 약령중앙로 인근 골목의 가게 앞에서 만난 한 60대 여성 약재상은 한방산업진흥센터가 서울약령시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 “주차장을 무료로 운영하면 손님이 좀 늘 수도 있지 않겠냐”며 “이미 한방산업진흥센터 근처에 입점하려는 움직임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침체된 서울약령시를 살리려는 동대문구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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