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빛의 본성에 대한 수업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배운 빛의 성질에 대해 좀더 깊이 논의하기 위해 그림자를 생각해 봅시다.”

이렇게 시작한 광학(光學)에 관한 수업은 학생들의 흥미를 별로 끌지 못했다. 학생들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국에서 과학·수학 영재들을 모아놓은 학교가 아닌가. 나는 계속 수업을 진행해 나갔다. “둥근 공의 그림자의 모양은 무엇일까?” 모든 학생들은 ‘선생님이 왜 저런 질문을 하실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 “둥근 모양이요”라고 답했다.

과연 둥근 공의 그림자는 둥근 모양일까? 나는 학생들에게 긴 막대 모양의 광원(光源·빛을 내는 물체), 둥근 물체, 그림자를 볼 수 있는 스크린을 차례로 칠판에 표시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자, 다시! 둥근 물체의 그림자는 어떤 모양일까?” 그제야 학생들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한참 생각한 후에 “막대 모양이요”라고 대답하는 학생들이 하나둘 보였다.

우리는 학교에서 물체의 그림자가 생기는 원리는 빛이 직진하는 성질 때문이라고 배운다. 예외는 있다. 상대성이론에 의하면 빛은 질량을 향해 휜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물체의 질량 정도로는 빛이 휘는 현상을 관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광원으로부터 나온 직진하는 빛이 물체에 막혀 스크린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림자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배운 광원은 대부분 태양과 같은 평행광이거나 전구와 같은 점광원(點光源)이었다. 평행광이나 점광원에 대한 둥근 물체의 그림자는 둥근 모양이다. 그러나 광원의 모양이 긴 막대 모양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둥근 물체의 그림자는 긴 막대 모양이 되는 것이다. 긴 막대 모양의 광원이 상상하기 어렵다면, 점광원이 길게 합쳐진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물론 이것도 물체, 광원, 스크린 사이의 거리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므로 둥근 공의 그림자 모양은 둥근 모양으로만 규정할 수 없다. 우리가 원하는 모양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우리 대부분은 학교에서 그림자의 모양과 물체의 모양이 같은 상황만을 배웠다. 그래서 이처럼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문제 상황에 맞딱뜨리면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나 과학을 좋아하고 잘하는 학생들은 다르다. 현상을 지배하는 과학적 원리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한다. 그런 후에야 이 원리를 일반화하고, 자연현상에 적용해 새로운 문제를 해결한다.

최근 교육계에서는 사고력, 창의력, 직관이 중요한 키워드로 여겨진다. 이 키워드들은 ‘생각하기’와 연관돼 있다. 무엇이, 왜 그렇게 되는지 생각하기 위해서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과학은 생각의 힘을 기르기에 더없이 좋은 과목이다. 단순히 일상생활의 원리를 습득하기 위해 과학을 배우기보다 왜(why)라는 의문을 통해 과학적·논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공 모양 물체의 그림자가 공 모양이 아닐 수 있는 사실은 ‘빛은 직진한다’고 배운 초등학교 때의 과학지식만으로 얼마든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적 원리를 단순히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면서 배운다면 말이다.

김민철

경기과학고등학교 물리교사

김민철 경기과학고등학교 물리교사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