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 지하철 9호선 신논현역 인근 6층짜리 작은 빌딩. 해가 뉘엿뉘엿한 시간에 4층의 한 사무실 유리문을 열자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하얀색과 주황색과 노란색 페인트로 벽을 칠한 휴게실에선 나직하게 올드 팝송이 흘러나왔다. 검은색 양복에 파란 넥타이를 맨 50대 중반 남성이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푸른색 바람막이를 걸친 50대 후반 남성은 쉼터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커피를 마시며 인터넷 서핑을 했다. 복장은 달랐지만 모두 각자의 스마트폰을 수시로 체크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리운전 기사들이다.

승용차를 모는 성인치고 대리운전서비스를 한번도 이용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전국의 대리운전기사는 약 15만명, 시장규모는 연 4조원으로 추산된다. 기억하기 쉬운 전화번호로 홍보하는 업체가 속속 생겨나면서 경쟁도 치열해졌다. 몇 년 전만 해도 서울시내 대리운전 비용은 기본 3만원에서 시작했지만 현재 서울시내 대리 비용은 2만원을 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지난 5월 16일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12시간 동안 서울 서초구 사평대로 신논현역 부근에 있는 ‘휴(休)서울이동노동자 쉼터’(이하 쉼터)에서 대리기사들과 인터뷰를 했다. 쉼터는 대리기사들을 위해 지난 3월부터 서울시가 서울노동권익센터에 위탁해 운영하는 공간이다. 새벽 5시까지였던 기존 운영시간을 지난 13일부터 새벽 6시까지로 늘렸다. “첫차 시간까지 운영시간을 늘려달라”는 이용객들의 요구사항이 반영됐다.

일반인은 들어올 일이 없는 이 쉼터는 66㎡(20평)가량의 휴식 공간과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 공간, 대리기사들이 초보 대리기사를 가르치는 교육 공간으로 구성된다. 휴식 공간에는 14명이 동시에 앉을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한쪽 벽면에는 전동안마의자 4대와 건식족욕기 2대가 설치되어 있고, 데스크톱PC 3대도 놓여 있다. 체지방 측정기도 있다. 휴식을 위해 쉼터를 찾은 대리기사들의 피로를 풀기 위한 기구들이다. 한쪽 귀퉁이에는 공짜 믹스커피 자판기도 있다.

‘콜’ 타고 나가고 ‘셔틀’ 타고 들어오고

지난 5월 16일 오후 6시30분 쉼터에는 대리기사 3명이 앉아 있었다. 쉼터 직원이 기자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이용객은 방문일지를 작성하셔야 합니다.” “취재차 들렀다”고 하자 “기사들이 쉬는 곳이니 휴게실 이용에 피해가 가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이 돌아왔다.

이미 자리를 잡은 대리기사 2명 사이에 앉았다. 다른 대리기사가 기자를 힐끗 쳐다봤다. 30대 후반이 가장 젊은 축인 대리기사들 사이에서 20대 후반의 기자는 눈에 띌 만했다. 대리기사들은 보통 50대가 가장 많고 40대가 그 다음이다. 60대는 간혹 있고 막내뻘인 30대는 더 적다. 새로운 기사가 들어오면 서로 목례를 한다. 얼굴만 알거나 친하지 않은 이들이다. 가끔 친한 기사들끼리 만나면 쉼터 휴게실이 요란해진다. “오늘 몇 개 탔어?” “세 개.” “많이 탔네?” “싼 거야.” “집에 가도 되겠다.”

기사들은 콜을 ‘탄다’고 표현한다. “세 개 탔다”는 술 취한 이들의 자가용 세 대를 대신 몰았다는 뜻이다. 기사들이 보통 ‘타는’ 콜의 개수는 하루에 평균 서너 개다. 경력이 쌓인 대리기사는 하루에 5개 이상의 콜을 타는 경우도 있다. 회사에 내야 하는 한 달 5만~8만원가량의 보험료와 교통비, 식비, 커피값 등을 빼면 하루에 남길 수 있는 돈은 보통 5만원 안팎이다.

대리기사는 보통 스마트폰에 대리운전 애플리케이션(앱)을 3~4개씩 내려받아 사용한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이 ‘로지’다. 대리기사 10명 중 8명은 이 앱을 사용한다고 보면 된다. ‘콜마너’ ‘아이콘’ 등도 대리기사가 많이 사용하는 앱이다. 앱 종류에 관계 없이 한 달 사용료는 1만5000원이다. 앱을 여러 개 깔면 콜을 받을 확률도 높아지지만 그만큼 고정지출도 커진다.

대리기사들은 언제나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작은 화면을 들여다보느라 목디스크에 걸릴 지경이라고 한다. 금액과 행선지 등 조건이 괜찮은 콜은 화면에 뜨기가 무섭게 사라진다. 경쟁자는 서울시내 2만명의 대리기사다.

대리기사가 주로 활동하는 시간대는 황혼 무렵부터 새벽까지다. 콜이 뜨는 시간은 지역마다 다르다. 강남을 기준으로 보면 역삼역 인근, 뱅뱅사거리, 신사역 부근은 저녁 9시면 한창 콜이 많이 뜬다. 주로 40대 이상 중년층 손님이 많다. 교보타워 사거리 인근의 콜은 다른 지역 콜이 줄어들 시간쯤 뜨기 시작한다. 20~30대 젊은이들이 주 고객이다.

오후 8시가 되자 쉼터가 떠들썩해졌다. 총 20명 정도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에 9명이 모였다. 머리에 포마드를 바르고 은테 안경을 쓴 30대 후반의 대리기사 한 명이 종이 뭉치를 들며 외쳤다. “여러분 여기 주말에도 열게 건의사항에 씁시다.” 그는 높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하며 종이를 돌렸다. “이름 안 쓰셔도 되니까 한 분씩 써주세요. 글씨가 다 달라야 하니까.” “그러면 여기 직원들 근무시간이 길어지지 않겠냐”는 다른 대리기사의 말에 쉼터 직원은 “파트타이머라도 더 뽑겠죠”라고 했다. 여기저기서 “그래 맞아” “줘봐 나도 한 장 쓰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날 대리기사들의 화두는 대기업 카카오의 대리운전 업계 진출이었다. 카카오는 대리운전 서비스 앱인 ‘카카오 드라이버’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현재 프로그램을 시험 중이다. 이미 면접을 보고 프로필을 제출했다는 대리기사도 있었다. “다른 앱을 쓰면 매달 납부해야 하는 7만원 안팎의 보험료를 대신 내주니 좋다”는 의견에서부터 “55세 이상 대리기사는 받지 않아 기분이 나쁘다”는 의견까지 갑론을박이 오갔다.

이날 저녁 8시쯤 ‘로지’ 앱에 뜬 교보타워사거리에서 염창동을 갈 대리기사를 찾는 콜은 2시간이 지나도록 주인을 찾지 못했다. 거리에 비해 너무 싼 일명 ‘똥콜’인 데다 ‘(여)’까지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여)’는 여자 대리기사를 찾는다는 의미다. 여자 대리기사를 찾는 콜은 일반적으로 5000원이 더 붙는다.

지난 5월 16일 오후 6시 ‘휴 서울이동노동자 쉼터’ 내 풍경. ⓒphoto 배용진
지난 5월 16일 오후 6시 ‘휴 서울이동노동자 쉼터’ 내 풍경. ⓒphoto 배용진

하루 저녁 6~7㎞ 걸어야

저녁 9시가 넘자 기사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콜이 많이 뜨기 시작하는 이 시간대에 대리기사는 주로 거리에 나가 콜을 기다린다. 매일 밤 10시쯤 강남역 뱅뱅사거리 주변부터 논현역 일대까지 이어진 대로변에는 수백 명의 대리기사가 운집한다. 이 구간의 중심이 신논현이다. 대리기사들은 주로 근처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에서 휴대폰을 충전하며 대기한다. 밤에 신논현역 1번출구나 3번출구 근처에서 양복을 입고 가방을 들지 않은 채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보며 길을 걷는 40~50대 남성을 만난다면 그는 대리기사일 확률이 매우 높다.

대리기사들은 저마다 선호하는 코스가 있다. 60대 초반 대리기사 이환표씨는 교보타워사거리 근처에서 노원구로 가는 코스를 좋아한다. 거리가 멀어 금액을 많이 받을 수 있고, 노원역이나 수락산역 등 번화가에서 다시 콜을 잡아 신논현으로 돌아오기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집이 노원구 상계동이라 그쪽 길눈은 손금 보듯 환하다는 점도 한몫을 한다. 그는 20대 후반의 기자를 꼬박꼬박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이 시간부터 대리기사들은 수도권 각지로 흩어진다. 용인, 수원, 인천 등 손님이 원하는 방향과 지역에 따라 수십㎞를 달린다. 돌아올 때는 가까운 역에서 버스나 지하철을 탄다. 생판 와본 적 없는 곳에서 길을 찾다 보니 하루에 6~7㎞ 걷기는 예삿일이다.

오전 12시30분부터는 ‘셔틀’ 봉고차가 다닌다. 대리기사들의 발인 셔틀은 수도권의 각 지역 거점에서 강남을 잇는 봉고차다. 분당, 인천, 일산, 의정부 등 노선이 다양하다. 3000원을 내면 10분에서 15분 간격으로 다니는 이 셔틀을 탈 수 있다. 대부분의 셔틀이 모이는 곳이 신논현역 인근 교보타워사거리다. 매일 새벽 2시면 대리기사 수백 명이 신논현역 부근에 모인다.

새벽 2시가 되자 쉼터에 모여든 대리기사의 숫자도 10명이 넘었다. 이 시간이면 쉼터에 4대 있는 전동안마의자는 만석이다. 자리가 비기 무섭게 다음 이용자가 올라선다. 여럿이 이용하다 보니 일회용 발싸개도 제공된다. 일회용 발싸개는 하루에 수십 명이 이용하는 전동안마의자 사용자들을 위해 쉼터에 서 위생상 지급하는 물품이다. 전동안마의자와 건식족욕기에 앉아 잠깐 눈을 붙이면 밤새 노동에 시달린 발의 통증도 덜해진다.

대리기사는 족저근막염, 관절염 등 각종 질환에 노출돼 있다. 매일 평균 7㎞를 걷다 보니 벌어지는 일이다. 쉼터에 있는 전동안마의자, 건식족욕기 등은 대리기사들이 발 건강을 지키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

쉼터가 가장 붐비는 시간은 새벽 3시부터 4시까지다. 쉼터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커피 한 잔에 하루의 피로를 푼다. “오늘 한 콜도 못 탔다.” “내가 살 테니 한잔 하자.” 곳곳에서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야구 중계가 있는 날이면 컴퓨터로 함께 경기를 보기도 한다. 아쉽게도 쉼터에 TV는 없다. 안마의자에 앉은 기사들은 이내 코를 곤다. “다른 기사분도 쓰셔야 한다”는 쉼터 직원의 목소리에 화들짝 깬 늙수그레한 대리기사의 눈은 시뻘갰다.

첫차가 다니는 시간이 되니 대리기사들이 하나둘 집으로 향했다. “수고하세요.” “내일 봅시다.” 부족한 수면을 보충해야 다음 날 운전도 문제없이 할 수 있다. “오늘도 수고하셨다”는 인사를 나누며 쉼터 직원들도 문을 나섰다.

이날 쉼터를 찾은 대리기사는 총 40여명. 모두 남성 대리기사였다. 서울시는 내년 중으로 퀵서비스기사를 위한 2호점과 대리기사를 위한 3호점을 각각 을지로입구와 합정역 인근에 연다. 이 쉼터에는 여성 대리기사를 위한 공간도 추가할 예정이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콜’을 확인하는 한 대리기사. ⓒphoto 배용진
스마트폰 앱을 통해 실시간으로 ‘콜’을 확인하는 한 대리기사. ⓒphoto 배용진

스마트폰은 대리기사의 ‘총’

대리기사들이 꼽는 쉼터의 가장 좋은 점은 마음껏 눈치보지 않고 휴대폰 충전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햄버거 가게나 카페를 찾아야 했다. 햄버거 하나 시켜놓고 밤새 죽치고 앉아 있어야 했다. 쉼터가 생긴 뒤로는 눈치를 볼 일이 없다.

대리기사는 늘 스마트폰 배터리가 부족하다. 매일 스마트폰을 끼고 살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마트폰 배터리를 ‘탄창’이라고 부른다. 대리기사에게 스마트폰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의 ‘총’이다. 스마트폰에 다운받은 대리운전 앱으로 콜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총에 탄창이 없으면 생업 전선에 나설 수 없다. 배터리가 60%만 되면 벌써 마음이 다급하다. 콜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저녁 시간에 배터리가 부족하다면 그날 영업은 꽝이다.

전체 규모 152㎡(46평)인 쉼터에는 14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 테이블 위에는 동시에 휴대폰 10여개를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와 충전기가 놓여 있다. 더 이상 추운 거리를 떠돌아다닐 필요는 없다. 물론 “휴게실에 있으면 마음이 풀어져 일이 안 된다”는 기사들도 있다. 이런 ‘투사’들은 거리로 나가 콜을 기다린다. 다 요즘 날씨가 따뜻한 덕분이다.

쉼터 한쪽에는 ‘서로배움터’라는 이름의 대리기사 교육장이 있다. 주로 ‘대리운전 달빛기사카페’ 운영진이 1:다(多)로 신규 기사들을 가르친다. ‘달빛기사카페’는 대리기사가 주로 모이는 온라인 카페다. 많은 대리기사가 여기서 운전 노하우를 공유하고 운전하다 겪은 에피소드를 털어놓는다.

대리기사 숫자는 계절별로 편차가 크다. 날씨가 좋은 봄·가을엔 대리기사가 많고, 덥거나 추운 여름·겨울엔 줄어든다. 진입장벽이 워낙 낮고 개인사업자라 휴무가 자유롭기 때문이다. 당분간 일을 쉬고 싶다면 등록된 회사에 전화해 “몸이 안 좋으니 쉬고 싶다”고 하면 그만이다. 다시 하고 싶으면 언제라도 재등록할 수 있다.

대리기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진상’(술 취해 행패 부리는 손님)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언론 보도가 늘고 대리운전이 대중화되면서 대리기사가 친숙해진 것이 요인이다. ‘매너 있는’ 손님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쉼터 빌딩 옥상에서 만난 40대 후반의 대리기사는 며칠 전 태운 손님이 “나도 대리했어서 대리기사 보면 그냥 못 보낸다”며 1만5000원 거리를 달리고 5만원을 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한 번씩 잊을 만하면 진상을 만난다.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돈이 없다”며 “배 째라”고 나오는 경우는 그래도 양반이다. 술에 잔뜩 취한 커플이 대리기사가 운전하는 차 뒷자리에 앉아 섹스를 하는 경우도 있다. “차 안이니 자제해달라”는 기사의 요구가 반복되길 수차례. 그래도 멈추지 않자 기사는 주유소에 차를 두고 내려버렸다.

대리기사가 가장 난감해하는 상황은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이용객이 잠들어서 깨지 않는 경우다. 여성 손님은 물론이고 남성 손님도 몸에 손을 대거나 흔들어 깨울 수 없다. “지갑이 없어졌다”는 등 시비가 붙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돈인 대리운전 기사들에게 술 취해 잠든 손님은 또 다른 어려움이다.

베테랑들은 이 경우에도 나름대로의 요령이 있다. 13년 경력의 60대 대리기사 이모씨는 아무리 깨워도 손님이 일어나지 않을 땐 차량 내부 히터를 최대 출력으로 틀어놓고 나와 담배를 피운다. 만일을 대비해 창문은 살짝 열어둔다. 여름에는 히터를, 겨울에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트는 게 요령이다. 담배 한 대가 다 타기 전에 “아저씨!” 소리가 들리면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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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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