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3일 직장인 심마니 4명이 경상북도 김천시의 한 산에서 산삼을 발견한 뒤에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임채억, 조영재, 조영윤, 박호선씨.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6월 13일 직장인 심마니 4명이 경상북도 김천시의 한 산에서 산삼을 발견한 뒤에 활짝 웃고 있다. 왼쪽부터 임채억, 조영재, 조영윤, 박호선씨.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심 봤다~”

외마디가 산 중턱에 메아리쳤다. 산에 오른 지 네 시간 만이었다. 40대 후반 직장인 심마니 조영재씨가 탄성을 질렀다. 조씨가 탄성을 지른 곳에는 20년 된 산삼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주변에는 7~8년 된 어린 삼 서너 개가 자라고 있었다. 연두 빛깔의 다섯 잎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잎 위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빨간 열매가 흔들릴 때마다 진한 향기가 코끝을 자극했다. 산삼은 가운데 세 잎은 크고, 양 끝의 두 잎은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 특징이다. 조씨는 조심스레 손으로 산삼 주변의 흙을 퍼내기 시작했다. 산삼이 나무 뿌리에 얽혀 있어 캐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조씨는 조급하게 삼을 캐려고 하지 않았다. 잘못하다가는 ‘파삼(跛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씨는 무전기를 꺼내들어 “좌표 찍어줄 테니까 이리로 와서 도와줘”라고 말했다. 10분 뒤 흩어져 있던 동료 심마니 3명이 산삼이 발견된 장소로 달려왔다.

지난 6월 13일 김천시의 한 산에서 발견한 산삼 세 뿌리.
지난 6월 13일 김천시의 한 산에서 발견한 산삼 세 뿌리.

주말이면 산에 오르는 직장인 심마니

지난 6월 13일 경상북도 김천시의 한 산에서 직장인 심마니인 임채억(48)·조영재(47)·조영윤(40)·박호선(39)씨 4명을 만났다. 기자는 이들과 함께 산에 올라 산삼을 찾아나섰다. ‘직장인 심마니’란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취미나 투잡으로 심마니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들에게서 심마니 하면 떠오르는 나무 지팡이와 바구니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두 손에는 GPS(위성항법장치)와 스마트폰이 들려 있다. 스마트 기기는 직장인 심마니들에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도구다. GPS로 산의 지형을 파악하고, 저장된 빅데이터를 활용해 산삼을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을 ‘스마트 심마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들은 오랜 세월 누적된 경험과 오감(五感)을 이용해 삼을 찾는 전통 심마니와는 다르다.

스마트 심마니는 GPS를 이용해 처음 가는 산이라도 지형을 쉽게 파악한다. 또한 지금까지 산삼이 발견된 장소들이 GPS에 고스란히 저장돼 있다. 10년 전후 경력의 스마트 심마니들이 찾은 산삼은 평균 200~300개. 이는 모두 삼을 찾으며 각자가 지난 몇 년간 누적해온 정보들이다. 이들은 필요에 따라 서로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스마트 심마니 중에는 산삼 관련 빅데이터가 저장된 GPS를 거래하는 경우도 있는데, 정보가 많을수록 비싸다.

그렇다면 평범한 직장인들이 심마니로 변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박호선씨는 10년 전 ‘만성골수성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처방약을 먹어도 몰려드는 피로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박씨는 병원 6인실에 누워 같은 백혈병 환자들과 대화하는 게 전부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산삼을 구해다가 먹었다. 당시 산삼은 수백만원에 달하는 큰 금액이었다. 병실에 함께 누워 있던 다른 환자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박씨는 신기하게도 점점 상태가 호전돼갔고 결국 퇴원할 수 있었다. 박씨는 “난 아직도 내 몸이 좋아진 건 산삼 때문이라고 믿는다”며 “비싼 산삼을 직접 사기는 힘드니 내가 직접 캐기로 마음먹고 캐기 시작한 지 7년째”라고 말했다.

환자인 박씨가 처음 산을 타는 건 쉽지 않았다. 50m만 올라도 숨이 벅차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래도 희망을 품고 1년간 꾸준히 산에 올랐으나 박씨의 눈에는 산삼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산에서 직장인 심마니 임채억씨를 만나게 됐다. 임채억씨는 박씨의 사정을 듣고 난 뒤, 그에게 산삼 캐는 비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비법은 바로 GPS를 이용해 산삼을 찾는 것이었다. 이날 기자가 만난 직장인 심마니 4명 모두 몇 년 전 산삼을 캐다 동료가 된 사이이다.

GPS를 이용해 산삼을 찾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를 바탕으로 산삼이 많이 발견된 산을 추려나간다. 산삼이 많이 발견된 산일수록 새로운 삼이 추가로 발견될 확률이 높아서다. 시기는 4월 하순부터 10월까지 산삼이 많이 발견된다고 알려져 있다. 산이 정해지면 GPS를 바탕으로 산의 지형을 파악한다. 산삼은 산의 동쪽이나 북쪽 면 골짜기의 바람과 습기가 잘 통하는 곳에서 자란다. 경험에서 얻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물가 바로 옆은 산삼이 잘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너무 습해도 안 되기 때문이다.

이런 위치가 파악되는 곳마다 GPS에 좌표를 찍어둔다. 그리고 찍어둔 좌표를 중심으로 산을 타는 것이다. 쉽게 말해 GPS를 이용해 산삼을 발견할 확률을 높이는 셈이다. GPS의 오차범위는 5~10m 정도다. GPS가 이끈 좌표에 도착하면 그 주변을 샅샅이 뒤진다. 만약 그 주변에 산삼이 있다면 사진을 찍어 그대로 GPS에 위치를 저장한다. 10년이 되지 않은 어린 삼은 캐지 않는 게 심마니들 사이에서의 불문율이다. 산삼의 나이는 줄기에서 몸통으로 이어지는 부분에 나이테처럼 생긴 마디의 개수를 보고 계산한다. 전통 심마니들은 산삼을 발견한 장소를 기억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주변 큰 나무에 돌을 끼워 놓거나, 나뭇가지를 부러뜨리는 방법이다. 위장하기 위해 산삼의 잎을 하나 떼거나 주변 다른 풀로 삼의 주변을 덮기도 했다.

스마트 심마니들의 필수품인 ‘GPS’.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스마트 심마니들의 필수품인 ‘GPS’.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산삼보다 더 귀한 것

이날도 마찬가지로 직장인 심마니들은 GPS로 산의 능선을 먼저 파악했다. GPS에는 산의 낭떠러지와 같은 위험한 길이 그대로 표시됐다. GPS는 산에서 최대한 안전한 길로 이끄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산삼을 캐기 위해서는 등산로가 아닌 비탈길로 가야만 했다. 곧바로 GPS가 가리키는 좌표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섭씨 30도에 육박한 날씨 탓에 땀이 이마 위로 비오듯 흘러내렸다. 산행을 시작한 지 30분 만에 기자의 옷은 땀에 흠뻑 젖었다. 직장인 심마니들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가파른 산길을 올라갔다.

그 뒤를 쫓는 기자의 눈에 띈 것이 있었다. 바람에 하늘거리는 연두 빛깔 다섯 잎을 가진 식물이었다. 사진으로 봤던 산삼과 영락없이 닮아 있었다. 기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산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임채억씨는 기자에게 “그건 산삼이 아니라 가시오가피”라며 “다섯 잎이 비슷해 보이지만 가만히 보면 잎의 크기가 산삼과 다르다”라고 말했다. 실제 가시오가피의 다섯 잎의 크기는 모두 동일하다. 하지만 산삼은 가운데 세 잎은 크고, 양 끝의 두 잎은 상대적으로 작다. 그래서 심마니들 사이에서는 가시오가피를 가리켜 “3초의 행복”이라고 한다. 잠시나마 산삼인 줄 알고 행복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허탈해하는 기자의 발 앞으로 길이 1m가량의 뱀이 스르륵 지나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심마니들은 산에서 뱀을 만나거나 말벌을 만나는 등 위험에 노출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너무 놀라 넋이 나간 기자에게 조영재씨는 “뱀을 봤으니 오늘 산삼을 분명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조씨에 따르면 뱀의 주변에는 산삼이 자주 발견된다고 한다. 물론 이는 조씨의 경험에서 우러난 말이다. 산에 오른 지 벌써 2시간이 흘렀다. 아직까지는 큰 수확이 없었다. 정말 GPS를 이용해 산삼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때였다. 그 순간 “심 봤다”라는 말이 들려왔다. 20년 된 산삼을 주변으로 7~8년 된 어린 삼이 서너 개가 자라나고 있는 산삼 밭을 발견한 것이었다.

GPS를 이용해 삼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심마니’라고 검색하면 뜨는 크고 작은 카페 수만 100개가 넘는다. 임채억씨는 “주 5일제가 되면서 주말에 취미로 심마니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면서 “이제는 자동차로 전국 어디로든 GPS로 산 구석구석을 쉽게 살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직장인 심마니들이 산삼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얼마일까. 임씨는 “산삼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은 차량 기름 값 정도면 된다”라며 “대부분의 산삼은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눠준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산삼은 돈벌이 대상이 아니었다.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좋은 산삼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컸다. 이들은 “욕심을 비워야 큰 삼을 만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산삼 외에 다른 버섯이나 약초 등을 봐도 함부로 캐는 법이 없었다. 자연을 최대한 지킨다는 것이 그들의 원칙이다.

이들은 전통 심마니들이 거치는 소위 ‘근신 생활’을 하지 않는다. 전통 심마니들은 산에 들어가기 전, 집 대문 앞에 두 줄의 황토를 깔아 부정한 사람의 출입을 막고 바깥 출입을 삼갔다. 또한 우승하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의 ‘심마니 습속의 변화 양상’이란 논문에 따르면 전통 심마니들이 산을 타기 전에 지켜야 할 금기사항이 많다. 최대한 몸을 사리며 일주일 전부터 부부관계를 피하고 번잡한 결혼식이나 돌잔치 등에도 가지 않았다. 또 산에 오르는 날은 가족에게도 비밀로 했다. 하지만 직장인 심마니들에게 이러한 근신 생활과 금기들은 먼 나라 얘기다. 조영윤씨는 “산삼을 캐러 갈 때 오히려 가족들이 더 많이 응원해 줄 정도”라며 “삼을 캐서 가족과 지인들에게 나눠줄 때 그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산삼 찾기는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산삼을 통해 더 끈끈해지는 동료애도 산삼을 찾는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기자가 만난 직장인 심마니 4명이 한결같이 한 말이 있다. “물론 오래된 좋은 산삼을 보면 같이 간 일행들 사이에서도 서로 갖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순간의 욕심 때문에 사람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산삼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또 산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 같다.”

키워드

#현장
김태형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