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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2414호] 2016.07.04

제주 신공항에도 神의 한 수?

2025년 성산 제2공항 개항 전까지 5년 공백 ‘정석비행장 차출론’ 부상

▲ 제주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의 정석비행장 활주로. 왼쪽 아래로 정석항공관이 보인다. photo 손치홍 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최근 동남권 신공항 입지선정을 두고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내린 김해공항 확장 결정은 ‘신(神)의 한 수’라는 평가다. 김해공항 활주로의 방향을 살짝 틀어 신공항 조성에 들어갈 수조원의 재정을 아꼈다. 추가적인 환경훼손도 막고 장기적으로 국책사업 유치를 두고 지역 간 감정이 악화되는 일도 막아냈다. 이번 결정으로 직접적인 피해를 본 사람은 공항 예정부지로 거론된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 땅을 투기한 투기꾼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아래서 이뤄진 가장 책임 있는 결정”이라는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이례적 호평도 나왔다.
   
   이에 신공항으로 추진 중인 제주 제2공항 역시 “기존 시설을 적극 활용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 대안으로 꼽히는 것이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의 한라산 기슭에 있는 정석비행장이다. 길이 2300m, 폭 45m의 활주로 1본과 길이 1500m, 폭 25m의 활주로 1본 등 총 2본의 교차활주로를 갖춘 민간 비행장이다. 2300m의 활주로를 사용하면 보잉 777, 보잉 737 등 중대형 여객기가 이착륙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제주도 정가에서는 ‘정석비행장 임시 차출론’도 공공연히 거론된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해 11월 국토부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제주 제2공항이 완공되기 전 정석비행장 사용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도 공항확충지원본부의 현학수 과장은 “정석비행장 차출론은 원론적인 차원에서 대안 중의 하나로 있는 것”이라며 “정석비행장과 사전협의가 이뤄져야 하는 부분”이라고 했다. “제주공항의 시설보완 및 확충을 통한 단기대책이 주가 되고, 그래도 모자랄 경우 정석비행장 활용을 검토할 것”이란 게 제주도 측의 입장이다.
   
   제주공항은 이미 포화상태가 된 지 오래다. 국토부 측은 “제주공항 단기인프라 확충사업을 통해 오는 2020년까지 수요에 대처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단기인프라 확충사업은 2015년부터 2018년까지로 모두 2640억원이 투입된다. 하지만 제2공항은 빨라야 2025년쯤에 개항한다. 국토부가 지난 5월 수립해 고시한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에 따르면, ‘제2공항 건설을 조속히 추진하여 2025년경 개항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제주공항 인프라를 단기 확충해 2020년까지 예상수요에 대응한다고 해도 제2공항 개항까지 5년간의 공백이 불가피하다. 그 사이에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등 동북아에서 열리는 빅이벤트가 줄줄이 예정돼 있다. 제주도를 찾는 항공 수요도 폭증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제주도에서 진행된 제주해군기지 등 국책사업의 경과를 보면 제2공항이 일정에 따라 순조롭게 조성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국토부에서 지난해 11월, 제2공항으로 낙점한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일대의 기류는 심상치 않다. 국책사업에 따른 강제이주와 소음피해 등을 걱정하는 현지 주민들의 반발로 반대위원회가 결성됐고, 마을 곳곳에는 ‘제2공항 결사반대’ 현수막이 내걸렸다. 한국항공대 주도로 이뤄진 공항부지 선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품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당 부지에 2000기가 넘는 무덤 등 지장물이 있어서 토지정비에도 난관이 예상된다. 막상 착공에 들어가서 포크레인과 덤프트럭 등 중장비가 투입되면 환경단체들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도 미지수다. 여기에 추가로 육지에서 직업 데모꾼들까지 몰려들 경우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정석비행장을 활용하면 제주공항의 포화상태를 단기간에 해소할 수 있다. 정석비행장은 지금이라도 비행기를 띄우는 데 문제가 없다. 정석비행장은 이미 2002년 한·일월드컵 때 활용한 전례가 있다. 서귀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중국 대 브라질 전을 관람하러 온 중국 방문객을 위해 임시 국제공항으로 사용한 것. 2002년 6월 8일과 9일 양일에 걸쳐 각각 중국 단체응원단 120여명을 태운 대한항공 전세기 보잉 737이 정석비행장에 착륙했다. 이후에도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 VIP 전용기를 맞이하는 공항으로 사용됐다. 이에 “소음피해가 덜한 정석비행장을 야간공항으로 활용하자”는 등의 주장이 제주발전연구원 등에서 꾸준히 제기됐다.
   
   이 같은 전례에 따라 제주공항에 취항하는 국제선 일부를 정석비행장으로 돌리는 방법도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제주공항 국제선을 이용하는 여행객은 199만명으로, 국내선 이용객(2424만명)의 8%가량에 그친다. 지난해 있었던 제주~일본 직항노선 폐지 움직임처럼 국제선 직항 수요는 많지 않다. 중국인 관광객이 폭증한다지만, 대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해 서울을 둘러보고 김포~제주 간 국내선을 이용해 입도하는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이들 중국 관광객은 국제선이 아닌 국내선 이용객으로 잡힌다. 제주공항의 폭증은 사실 국내선 탓인 셈이다.
   
   제주 직항 국제선을 이용하는 이용객은 대개 중국에서 저가항공을 타고 입도하는 단체 관광객이다. 중국의 2~3선 도시에서 오는 관광객들로 주로 관광버스를 통해 이동한다. 중국과는 국제운전면허를 상호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 이들 관광객은 렌터카 이용도 불가능하다. 제주공항의 포화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렌터카를 위한 대형 주차장 조성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사실상 지금 시설에 CIQ(세관, 출입국, 검역) 요원들만 확보하면 국제선으로 이용할 수 있다. 외국 공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저가항공 전용터미널처럼 활용하는 것이다. 지금은 가뜩이나 비좁은 제주공항에 국제선, 국내선이 한데 엉켜 있어 별도의 출입국과 보안검색, 면세점 운용 등으로 공간활용을 극대화하지 못하고 있다.
   
   정석비행장이 있는 제동목장은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와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걸쳐 있다. 정석비행장은 일제가 가미카제(神風) 특공대용 비밀비행장으로 지은 교래리비행장이 모태다. 1937년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제는 ‘불침항모’와 같은 제주도의 군사적 가치에 주목했다. 제주공항의 모태인 정뜨르비행장을 비롯해 알뜨르비행장, 진뜨르비행장 등 군용 비행장을 제주 곳곳에 조성했다. 지반을 단단하게 다져 비행기가 뜰 수 있게 한 활주로 형태였다. 교래리비행장도 일제가 최후의 발악을 하던 1945년 4월 조성된 비밀비행장이 시초라는 것이 정설이다.
   
   
   가미카제 특공대의 비밀비행장
   
   정석비행장의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면 대한항공 소유로 나온다. ‘정석(靜石)’은 한진그룹 창업주 조중훈(1920~2002)의 아호다. 1969년 박정희 대통령의 권유로 적자투성이의 국영기업인 당시 대한항공공사를 떠맡은 조중훈 회장은 1972년 불모지나 다름없이 방치되어 있던 지금의 표선면 일대 땅을 박흥식 화신백화점 사장으로부터 매입했다. 1944년 조선비행기공업을 세운, 한때 ‘조선 제일 갑부’ 박흥식이 조종사 훈련장으로 불하받은 땅이었다. 조중훈 회장은 1988년 이 땅을 조종사들을 양성해낼 기초비행훈련원으로 조성했다. 1995년부터는 비행훈련원의 대대적 확장에 착수했다. 그 결과 3년 만인 1998년 길이 2300m, 폭 45m의 활주로 1본과 길이 1500m, 폭 25m의 보조 활주로 1본을 갖춘 지금의 규모로 거듭났다.
   
   1998년 확장 준공식 당시 기사를 살펴보면 “제2공항으로 육성할 것” “보조공항으로 사용할 것”이란 말이 나온다. 남북 방향으로 난 2300m 활주로를 이용하면 제주 취항 저가 항공사(LCC)의 주력 기종인 보잉 737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보잉 747의 착륙도 가능하다. 보잉 747 점보기 2대를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주기장도 갖추고 있다. ‘공항’이란 이름이 안 붙었다뿐이지 높이 25m의 관제탑을 비롯해 활주로, 주기장, 격납고까지 갖춘 공항에 다름아니다. 남쪽 방향 활주로는 전파를 쏘아 비행기의 안전한 착륙을 유도해주는 계기착륙장치(ILS)까지 갖추고 있다. 하지만 번듯한 공항시설을 활용하지 못하고 현재 한진그룹 정석인하학원 산하 한국항공대의 비행교육장으로만 사용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항공대는 과거 경기도 고양의 수색비행장에서 실시하던 비행훈련을 모두 정석비행장으로 옮겨왔다.
   
   정석비행장은 지난해 국토교통부 의뢰로 항공대와 국토연구원, 유신이 실시한 ‘제주 공항인프라 확충 사전 타당성 검토’에서도 제2공항 후보지로 선정된 성산읍과 함께 31개 후보지 중 한 곳으로 올랐다. 하지만 2단계 후보지 평가에서 탈락했다. 항목별 평가에서 10점 만점을 받은 성산에 비해 공역(1점), 기상(2점), 환경(2점) 등에서 현저히 낮은 점수가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 정석비행장 북쪽으로는 부대오름, 부소오름 등 크고작은 오름들이 있다. 당시 제주 공항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 검토연구를 총괄한 김병종 한국항공대 교수는 정석비행장의 제2공항 활용 가능성을 일축했다. “정석비행장 남측으로는 민항기가 접근 가능하지만 북측은 오름들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민항기 접근이 불가하다. 북측으로 민항기 접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오름을 없애야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기존에 있는 제주공항과의 공역이 중첩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반쪽 공항이 된다.”
   
   국토교통부도 김병종 교수와 같은 입장이다. 국토교통부 나웅진 공항정책과장은 “정석비행장도 후보지에 포함됐었는데 장애물 때문에 북측에서 비행기가 진입하지 못한다”며 “바람 방향 때문에 양쪽에서 진출입을 해야 하는데 한쪽을 못 쓰는 김해공항과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석비행장은 해발고도 351m 지점의 한라산 중간산에 있다. 정석비행장 남북 방향 주 활주로 북쪽에 있는 부대오름과 부소오름의 해발고도는 각각 468m, 469m에 불과하다. 해발고도 2m 지점의 낙동강 삼각주에 있는 김해공항이 활주로 북쪽의 돗대산(380m), 신어산(630m) 등으로 인해 받는 압박감과는 수준 자체가 다르다. 게다가 정석비행장은 사전타당성 검토 기준이 된 남북 방향 활주로뿐만 아니라 서북 방향에서 동남 방향으로 길게 뻗은 1500m의 교차활주로 1본이 또 있다. “보조활주로는 짧아서 비행기가 뜨고 내리지 못한다”는 것이 국토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교차활주로를 연장하고 보강해 사용하면 북쪽 오름에도 걸리지 않고, 바람 방향에 따라 활주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높이 555m의 제2롯데월드타워를 피하기 위해 활주로 각도를 일부 조정한 경기도 성남의 서울공항과 같이 장애물을 극복하는 방안도 있다.
   
   활주로 보강이나 활주로 방향 조정은 제2공항을 신설하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이 상식이다. 허허벌판에 3200m의 활주로 1본을 새로 신설하는 것에 비해 환경파괴도 덜하다. 하지만 정석비행장은 환경평가 항목에서 아예 활주로를 새로 깔아야 하는 성산(10점)에 비해 현저히 낮은 2점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점수가 나왔다. 주변 읍사무소(남원읍)와의 거리를 기준으로 한 공공지원시설 항목에서도 1점이란 최저점이 나왔다. 공공지원시설의 기준점을 실질적 지원을 할 수 있는 제주도청을 기준으로 했다면 제주도청과 더 가까운 정석이 훨씬 높은 점수가 나왔을 터였다. 결과적으로 정석은 제2공항 후보지로 선정된 성산과 경쟁에서 80 대 56의 큰 점수 차로 패했다.
   
   
▲ 제주 제2공항 예정지인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주민들이 공항건설 반대 집회를 열고 있다. photo 뉴시스

   부지매입 등 협의절차 간단
   
   무엇보다 정석비행장은 주인이 확실한 사유지다. 주인만 동의하면 부지매입과 보상 등 공항조성에 필요한 여러 협의절차를 훨씬 앞당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제2공항이 들어서는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일대는 부지 주인들이 일일이 갈라져 있다. 해당부지에 있는 주택과 토지뿐만 아니라 무덤 등의 지장물 등을 일일이 찾아서 보상과 이장절차 등을 협의해야 한다. 부재(不在)지주가 있을 경우 이들과 연락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정석비행장을 활용하게 되면 자연히 공항 확장 등에 따르는 보상절차 역시 간단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혈세 투입 없이 토지교환 형식으로 공항 용지를 확보할 수도 있다. 가령 국내 15개 공항 가운데 놀고 있는 공항을 조종사 교육장으로 전환해 대한항공 측에 제공하고, 정석비행장을 대신 받아서 제2공항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전국 15개 공항 가운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에 있는 공항은 한두 곳이 아니다. 이 경우 토지보상에 필요한 수조원의 현금이나 채권도 필요없고, 등기부등본상에서 소유주만 간단히 바꾸면 된다. 감정차액에 해당하는 부분만 현금이나 채권 등으로 제공하면 그만이다. 한진해운 사태로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는 한진그룹에 유동성을 일시 공급하는 일석이조(一石二鳥) 효과도 있다. 물론 조중훈 회장 이래 한진그룹이 제주도에 보여온 애착은 걸림돌이다. 조중훈 회장은 일찌감치 제주도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제동목장을 비롯 칼(KAL)호텔 2곳도 제주도에 세웠다. 제주민속촌도 한진그룹 소유다. 대한항공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조종사 비행훈련시설이 필요하다”며 “정석비행장은 사유지고 이와 관련해 협의를 진행 중인 사안은 없다”고 밝혔다.
   
   토지보상금으로 풀리는 막대한 돈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부작용도 없다. 제주도는 제2공항 개발 등에 따른 지가상승을 막기 위해 성산읍 전역을 지난해 11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둔 상태다. 107㎢에 달하는 막대한 면적으로, 오는 2018년 11월까지 3년간이다. 제주도 공항확충지원본부의 현학수 과장은 “제2공항과 관련해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고, 그 이후에나 기본계획이 수립된다”며 “보상절차는 제2공항 기본계획이 수립되는 2~3년 뒤에야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에서 제주 제2공항 조성에 들어갈 것으로 추산하는 비용은 4조1000억원가량이다. 막대한 돈이 제주도에 풀리면 사실상 제로금리인 상황에서 유일한 투자처인 부동산 매입으로 이어지고 추가적인 지가상승을 부추길 염려가 있다. 성산읍 온평리 일대는 제2공항 건설을 앞두고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일례로 제2공항 예정지 인근의 한 소형 리조트의 개별공시지가는 ㎡당 4만5800원에서 7만9900원으로 1년 만에 70% 이상 뛰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2공항 개발로 인한 제주도의 환경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토부가 비용이 9조4000억원가량 들 것으로 추산되는 기존 제주공항의 대폭 확장 대신 4조1000억원이 드는 제2공항 방식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성산읍 온평리 일대를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는 일이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2007년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지정된 제주 고유의 경관훼손과 식생파괴는 불을 보듯 뻔하다. 국토교통부 나웅진 공항정책과장은 “예전에 정석비행장에 비행기가 내린 적이 있지만 상시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며 “정석비행장 활용에 대해서 아직 검토하고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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