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에게 조용히 눈을 감고 지난 삶을 돌아보게 한다. 자신의 지난 삶이 전반적으로 행복했다고 느끼는 사람, 지금 행복한 사람, 앞으로 행복할 것 같은 사람을 각각 손들어 보라고 했다. 앞으로 행복할 것 같다는 학생은 꽤 됐지만, 행복했거나 행복하다고 손을 드는 학생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질문을 바꾸었다. 무엇이 행복을 방해하는지, 어떤 일이 행복을 막을 것 같은지 물어보았다. 원인은 다양했다. 성적, 부모님 잔소리, 진로·진학, 그냥(이유 없이), 형제 사이의 관계, 이성 문제, 외모, 교우 관계, 경제력 등. 그런데 한 번 더 깊숙이 물어보면 본질은 같았다. 행복을 방해하는 원인은 ‘비교’였다.

학생들이 제일 듣기 싫은 말은 비슷하다. “누구는 ~한다던데 너는 어떠니?” “자랄 때는 안 그러더니 왜 그러니?” “누구는 너 나이 때 ~했는데 너는 뭐하는 거니?” “누구는 이번 경시대회에서 금상 받았다더라” “누구는 이번 시험에서 전교 몇 등 했다더라” “지난번 시험은 OO점이더니, 이번 점수는 이게 뭐니?”

전쟁도 억지시킬 위력을 가졌다는 중2병. 도무지 예측불가라 달리 방도가 없다는 무시무시한 이 병. 어찌해야 할까? 예방약도 치유약도 없는 것일까? 분명 원인이 있을 텐데 학부모도, 아이들도 그 원인을 모르겠다고 한다. 중2병을 앓는 학생들과 대화하다 보면 원인이 보인다. 학생들이 가장 아파하는 이유는 ‘비교에 숨겨진 부모님의 강요’다.

그런데 이 비교는 ‘포장된 강요’의 다른 이름이다. 차라리 직접적인 강요이거나 정중한 부탁이라면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거절도 해보고 하소연도 할 수 있으니 마음에 부담이 적다. 그런데 포장된 강요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포장된 강요는 간접적인 강요로,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그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 보니 마음에 부담이 크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실체 없는 강요로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다.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실체 없는 분노와 짜증을 표출하는 이유다. 그럼 약은? 약은 없을까? 가장 큰 원인을 알았으니 치유약도 있지 않을까? 물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비교하는 말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다. 대신 직접적인 요구나 명확한 부탁을 하는 식으로 대화법을 바꾸면 중2병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7월, 시험이 끝났다. 여름방학을 기다리는 부모와 학생 사이는 서로 다른 기대로 마주보며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들처럼 긴장감이 흐른다. 이 긴장의 사이에서 나는 오늘 학부모님들께 한바탕 약을 팔 예정이다. 중2병을 치유하는 약, 바로 인정·긍정의 처방약이다. 자녀와의 긴장관계를 편안하고 행복한 관계로 바꾸어 주는 첫걸음은 바로 자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더 나아가 긍정의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자녀를, 상황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마음이 중2병 치유의 첫걸음이라면 할 만하지 않은가. 너무 쉬워 오늘 지금 바로 연습하고 시작할 만하지 않은가. 조급해하지 마시라.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다 보면 분명 누군가와 비교하는 마음이 줄어들 것이다. 자연스럽게 자녀와 행복한 관계가 형성되고, 중2병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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