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체인저, 글로벌 현상(phenomenon), 다이어트 프로그램…’.

포켓몬고(Pokemon Go)가 미국에 출시된 지 3일 뒤인 7월 10일부터 미디어에 오르내린 수식어들이다. 기존의 비디오·모바일 게임을 양적·질적으로 압도한 절대지존, 미국·호주·유럽 등 포켓몬고가 출시되는 곳이라면 불어닥친 광풍, 좁고 어두운 실내가 아니라 산보와 드라이브를 겸해 자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행동형 게임’을 찬미하는 말들이다. 출시된 지 1주일 만에 트위터보다 더 많은 접속률을 보이는 것은 물론, 최근 미국에서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는 사교 앱 ‘틴더(Tinder)’보다도 더 많은 다운로드 실적을 자랑한 것이 포켓몬고다.

포켓몬고 서비스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는 한국에서도 난리다. 7월 15일 기준으로 100만명이 포켓몬고 앱을 다운로드받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보면 외국의 광풍이 신기하지만, 외국에서 보면 한국의 특이한 열기가 한층 더 흥미롭다. 7월 15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은 ‘한국의 포켓몬고 유저들이 비무장지대(DMZ)를 넘나들며 게임을 즐기고 있다’고 1면에 보도했다. 포켓몬고 유저들이 DMZ 인근인 속초에 몰려가는 현상을 이런 제목으로 다뤘다. 미국인에게 DMZ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국경과 같은 살벌한 현장이다. 그런 곳에서조차 포켓몬고 광풍이 분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보여진다.

50대인 필자는 포켓몬고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포켓몬과 거리가 먼 세대다.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작은 괴물을 주인공으로 한 다양한 포켓몬 게임이 시중에 나온 것은 1996년이다. 현재의 30대부터 시작된 세계다. 그러나 ‘운 좋게도’ 필자는 포켓몬을 뒤늦게 터득할 수 있었다. 미국에 사는 9살짜리 초등학생 조카 덕분이다. 어린이와 가까이 지내는 방법으로 포켓몬만 한 것도 없다. 로열티 때문이겠지만, 미국에서 포켓몬 캐릭터는 엄청 비싸다. 5㎝ 크기의 캐릭터 하나에 9달러, 대략 1만원 선이다. 필자의 경우 포켓몬 캐릭터의 성격이나 이름은 몰라도 어디에 가면 ‘왕창’ 값싸게 구입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중국산 제품이 주류인 이베이(eBay)다. 3㎝ 크기의 포켓몬 캐릭터의 경우 대략 100개에 20달러 선이다. 국제배송 비용도 포함된 가격이다. 질적으로 조잡하기는 하지만, 로열티를 신경쓰지 않고 마구 찍어내기 때문에 저렴하다. 조카와 만날 때마다 “공부 잘하라”고, 혹은 심부름을 시킨 뒤 칭찬하면서 한두 개씩 캐릭터를 건네준다. 포켓몬 캐릭터나 카드는 미국에서 어린이가 가장 좋아하는 최상의 선물 중 하나다.

포켓몬 헌팅 명소 된 센트럴파크

조카를 통해 알게 된 것은 미국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포켓몬의 위력과 저력이다. 도심부 초등학교의 경우 포켓몬을 모르면 서로 대화가 어려울 정도다. 경쟁하듯 캐릭터를 끌어모으고, 카드와 비디오를 통한 게임도 즐긴다. 초·중·고등학교에서 포켓몬 카드와 캐릭터는 도난 대상 1호에 올라 있다. 포켓몬고는 그 같은 환경에서 등장한 ‘게임 체인저’이자 글로벌 현상이다.

포켓몬고 광풍은 지난 주말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에서도 실감했다. 어린이부터 10~30대에 걸친 유저들이 곳곳에 몰려다니면서 포켓몬 포획에 나서고 있었다. 언뜻 보면 휴대폰으로 통화하는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모바일 기기의 화면과 현실공간을 비교하면서 게임에 집중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센트럴파크 내에는 포켓스톱(Pokestop), 즉 포켓몬이 많이 발견되는 휴식 공간이 30여개에 달한다고 한다. 이 주변은 예외 없이 유저들이 몰려 있다. 포켓볼(Pokeball)을 날려 포켓몬 포획에 성공한 사람들의 비명소리도 곳곳에서 터져나온다. 모두가 빙 둘러앉아 열심히 정보를 교환하는 모습도 흥미롭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포켓스톱 30군데를 전부 섭렵하는 부지런한 유저도 있다. 뉴욕을 대표하는 휴식 공간이 아니라, 포켓몬을 대량으로 잡아들일 수 있는 헌팅 장소로 변해가는 공간이 바로 2016년 한여름의 센트럴파크다.

포켓몬고 광풍은 엄청난 돈을 약속하는 ‘미다스의 손’으로도 풀이된다. 잘 알려져 있듯이 포켓몬고 캐릭터를 만든 닌텐도(任天堂) 주식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7월 19일 도쿄 증시에서 닌텐도 주식은 주당 3만2700엔까지 상승했다. 포켓몬고가 출시되기 전에 비해 40%가량 치솟은 폭등세다. 일본만이 아니라, 미국 주식시장에서의 상승률도 비슷하다. 일본 증시 전체를 주도하는 블루칩인 것은 물론, 미국 증시에서도 IT 분야 대표주 반열에 올라섰다. 증시 전문가들은 당분간 닌텐도 주가는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한다. 닌텐도 주가가 한순간에 치솟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비즈니스 전망에 있다. 간단히 말해, 확실히 돈이 되는 게임이 마침내 등장했다는 점에서 월스트리트 투자가들이 흥분한 것이다. 과연 미다스의 손은 어디로 향해 갈까?

최상단계 갈 경우 1000달러 필요

디지털 세계가 그러하듯, 포켓몬고 비즈니스가 향후 어떤 식으로 구체화될지에 대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어렴풋한 전망이나 방향만이 가능하다. 포켓몬고 비즈니스는 크게 볼 때 포켓몬고 앱을 다운받아 게임을 즐기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시적 비즈니스’와, 앞으로 게임을 활용해 등장할 ‘거시적 비즈니스’로 양분될 수 있다. 먼저 미시적 비즈니스는 포켓몬을 포획하고, 기르고, 경쟁에 내세우기 위해 필요한 포켓코인(Pokecoin)을 통해 이뤄진다. 포켓몬을 포획하는 도구인 포켓볼에서부터, 포켓몬을 유인하는 신비한 향(Incense), 포켓스톱에서 포켓몬을 만나도록 도와주는 루어(Lure), 포켓몬을 부화시켜주는 에그 인큐베이터(Egg Incubator) 같은 것들이 포켓코인으로 사야 할 것들이다. 각자의 가격은 조금씩 다르다. 포켓볼 20개를 구입할 경우 포켓코인 100개가 필요한데 0.99달러가 든다. ‘루어’의 경우 1개에 포켓코인 100개가 필요하다. 포켓코인을 한꺼번에 많이 구입할 경우 할인도 해준다. 전체적으로 보면 싸게 느껴지겠지만, 포켓몬고 게임에 빠질 경우 만만치 않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 무엇보다 잡아들여야 할 포켓몬 캐릭터가 많기 때문이다.

포켓몬은 1996년 2월 일본에서 151마리가 등장한 이래 6세대에 걸쳐 전부 721마리가 등장한 상태다. 포켓몬 신자라면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7세대 포켓몬 19마리가 올해 11월 중에 발표될 예정이다. 따라서 올해 안에 모두 740마리의 포켓몬을 포켓몬고를 통해 포획할 수 있다.

필자의 조카가 그러하듯 포켓몬에 빠진 어린이라면 721개 캐릭터의 전모(全貌)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캐릭터마다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상한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물론, 비슷하게 보이는 캐릭터를 하나씩 구별해내고 각각의 성격과 파워, 습관도 전부 외운다. 포켓몬고는 한두 마리 잡고 적당히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한번 손대면 721마리 전부를 잡아들여야 직성이 풀리는 게임이다. 전부 잡는다고 해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싸움에 나서 질 경우 잡아놓은 캐릭터들이 그대로 사라지기 때문에 다시 잡으러 가야 한다. 포켓몬고는 721마리 캐릭터를 5단계로 나눠 방출하고 있다. 1단계는 포켓볼 1~2개로도 간단히 잡을 수 있지만 상위단계로 올라갈 경우 포켓몬의 방어능력도 향상된다. 5단계까지 올라갈 경우 포획, 부양, 싸움에 필요한 도구들의 비용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포켓몬에 대한 지식과 애정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후의 단계로 갈 경우 필요한 포켓코인의 가격은 1인당 1000달러는 가볍게 넘어설 것이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포켓몬고를 즐기는 사람들. ⓒphoto 뉴시스
캐나다 토론토에서 포켓몬고를 즐기는 사람들. ⓒphoto 뉴시스

하루 접속 2400만, 시간당 66만달러

7월 20일 기준으로 포켓몬고 하루 접속량은 2400만에 달한다고 한다. IT 조사기관인 ‘테크 바이브레이터(Tech Vibrate.com)’에 따르면, 포켓몬고 게임 피크 시간 1분간 벌어들이는 수입이 1만1000달러 정도라고 한다. 시간당 66만달러를 벌어들인다는 의미다. 새벽이나 밤에 게임이 중단된다는 점을 감안해 하루 8시간 게임 기준으로 하루 수입이 500만달러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앞으로 포켓몬고가 중국·일본·동남아시아 등에서도 출시될 경우 수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고 볼 수 있다. 포켓몬고 안에서 이뤄지는 이런 비즈니스는 일찍이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한 미다스의 손이라 볼 수 있다.

포켓몬고가 갖는 거시적 차원의 비즈니스는 소규모 로컬 비즈니스로 시작될 전망이다. 포켓몬고 게임이 이뤄지는 현장에서의 비즈니스다. 포켓몬과의 경쟁이 이뤄지는 포켓짐(Pokegym·경기장)과, 포켓몬을 대량으로 만날 수 있는 포켓스톱 주변에 위치한 찻집, 식당, 편의점 같은 곳이 비즈니스의 현장이다. 포켓짐, 포켓스톱은 구글의 위치정보에서 처음부터 특정 지역으로 설정돼 있다. 갑자기 스마트폰을 든 사람들이 집 근처로 몰려든다면 ‘운 좋게도’ 포켓몬고 상권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애플 매장이나 스타벅스에서처럼, ‘쿨(Cool)’한 가게 하나가 들어서면서 주변의 경기가 ‘확’ 살아난다.

앞서 강조했듯이 포켓몬고는 방 안에서 하는 게임이 아니다. 이른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가 만들어 내는 현실공간을 돌아다니면서 행하는 활동형 소프트웨어다. 포켓짐, 포켓스톱을 찾아가는 유저들이 늘어나면 인근 가게들도 장사가 잘되기 마련이다. 강원도 양양을 비롯한 5개 지방자치단체가 포켓몬고 비즈니스 진흥을 위한 안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는 보도를 보면 알 수 있다. 사실 포켓몬고 비즈니스의 주체는 공공단체가 아닌 개개인이다. 무료 인터넷이 어디에 있고 포켓짐이 어디에 있느냐는 식의 행정적 안내는 각론이 결여된 죽은 안내서에 불과하다. 유저들이 몰리는 것을 이용한 창조적 비즈니스 전략들이 곧 선보일 것이다.

일례로 포켓몬고 유저를 끌어들일 수 있는 구체적 본보기로 ‘루어 무료 제공’ 같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포켓스톱에서 포켓몬을 유인하는 도구인 루어를 개당 최대 30분까지 쓸 수 있다. 시간당 두 개가 필요하다. 루어의 가격은 8개에 680포켓코인이다. 대략 한 시간에 1.19달러가 필요하게 된다. 시간당 불과 1500원 정도로 포켓몬고 유저들을 자신의 가게로 간단히 불러모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포켓스톱 근처에 있는 피자집이 ‘루어 무료 제공’이라는 광고를 충분히 할 수 있다. 아픈 다리도 식히고, 루어를 향해 몰려드는 포켓몬도 포획할 겸 피자집에서 휴식을 취하지 않을까? 물론 피자집에 들른 다른 유저와 정보교환도 할 수 있다.

피자집 주인 입장에서 집중해야 할 부분은 소셜네트워킹(SNS)에 관한 이해다. 트위터의 해시태그인 ‘#Pokestop ShinchonPizza’를 통하거나, 카카오톡 페이스북을 통해 포켓몬을 포획하는 유저들의 모습이나 관련 정보를 신속하게 올리는 일이 매출액 향상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SNS에 부지런히 올리고 쓰고 확장해 나가는 것이 포켓짐, 포켓스톱 주변 상권의 기본적 책임이자 의무가 될 전망이다.

포켓몬고가 제시할 수 있는 가장 큰 비즈니스 기회로 대형업체의 시각적 광고도 빼놓을 수 없다. 포켓몬고 게임에 활용하는 지도를 보면 곳곳에 등장하는 포켓몬과 주변의 포켓짐, 포켓스톱이 전부다. 스타벅스 커피숍, 맥도날드 햄버거, 켄터키 후라이드치킨 같은 점포는 나타나 있지 않다. 지도상에 이러한 정보를 간단히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포켓몬고 유저들이 찾아갈 수 있는 인기 업소가 될 수 있다. 레스토랑이나 찻집뿐만 아니라 영화관·백화점·양복점·구두점 같은 광고도 이 지도에 삽입할 수 있다. 개인이 소장한 박물관, 기념관에 관한 정보를 포켓몬고 지도상에 첨가할 경우의 광고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 모든 광고는 물론 공짜가 아니다. 유저가 직접 찾아가는, 지도를 기반으로 한 위치추적 광고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포켓몬고는 무한대에 가까운 비즈니스 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일본의 캐릭터 자원 무궁무진

포켓몬고가 글로벌 현상이 된 배경과 이유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될 수 있다. 위치기반 증강현실을 기존의 비디오 게임과 연결시킨 기술혁신은 포켓몬고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다. 손가락만이 아니라 발로 걸어다니며 행하는 가상과 현실을 혼합한 게임이란 점에서 기존의 패턴을 뛰어넘은 새로운 진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부분은 단순한 기술적 측면이 아니라 닌텐도가 가진 무한한 캐릭터의 힘이라는 측면이다. 다시 말해 소프트웨어와 콘텐츠의 위력이다. 기술이 적용될 수 있는 원천이자 원료에 관한 부분이다. 닌텐도 주가가 한순간에 상승한 데는 닌텐도가 포켓몬 외에도 다양한 캐릭터를 갖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 수퍼마리오, 젤다, 동키콩 시리즈 등 비즈니스를 확장할 수 있는 캐릭터의 힘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알려진 닌텐도 캐릭터에 포켓몬고 기술을 활용할 경우 또 다른 글로벌 현상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의미다. 무대에 오를 글로벌 스타들이 즐비하게 기다리고 있는 상태에서, 조명을 화려하게 비출 고난도 기술을 첨가하기만 하면 된다. 포켓몬고는 직원 수 5000명에 불과한 닌텐도의 주가를 끝없이 끌어올리는 선발대와 같은 존재다.

닌텐도가 자랑하는 풍부한 캐릭터는 일본 캐릭터산업 전체에 해당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포켓몬고로 전환될 수 있는 무궁무진한 자원을 가진 나라가 바로 일본이다. 만능 도구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도라에몽(ドラエモン)에서부터, 특별시계를 통해 요괴와 만나 싸우는 요카이워치(妖怪ウォッチ), 닌자(忍子)들의 복수극에 해당하는 나루토(ナルト), 거인 괴수와의 전쟁을 그린 진격의 거인(進擊の巨人) 같은 캐릭터는 대표적 예이다. 이들 캐릭터는 글로벌 차원의 인기 상품이기도 하다. 어린이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익숙한 캐릭터들이다.

일본산 캐릭터들은 어떻게 세계에서 통하는 경쟁력을 갖게 됐을까. 여러 가지 배경에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무궁무진한 스토리에 있을 듯하다. 캐릭터 자체가 인상적이기도 하지만, 캐릭터가 보여주는 스토리나 배경도 무궁무진하다. 벽에 장식된 예쁜 그림이 아니라 노래하고 말하고 애교를 부리면서 눈물도 흘리는 다재다능한 모습이 ‘메이드 인 재팬 캐릭터’들의 특징이다. 일본 어린이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답 중 하나가 만화가다. 캐릭터산업의 기반이 탄탄하고 확실하다는 의미다.

포켓몬끼리 싸우더라도 결코 피를 흘리지 않고 단순히 사라져가는, ‘평화적’ 장면 설정도 일본 캐릭터의 공통점 중 하나다. 모두가 집단으로 움직이면서 문제에 대처하는, 이른바 ‘협업(Collaboration)’에 기초한 스토리 설정은 20세기 말 태어난 전 세계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 Generation)에 어울리는 가치관에 해당한다. 포켓몬에서는 721개 캐릭터를 대표하는 왕이 따로 없다. 아무리 강해도 미약한 포켓몬 여러 마리가 힘을 뭉치면 이길 수 있도록 설정된 것이 스토리의 포인트 중 하나다. 화(和)에 기초한 일본식 사고가 캐릭터 게임에까지 이어지는 셈이다.

이런 다양한 캐릭터와 그들이 갖는 스토리의 배경에는 일본 전통도 숨어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일본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신(神)의 나라다.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일본은 8백만신의 나라이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항상 강조한다. 다양한 신이 인간과 어울려 있고 이들이 갖는 스토리도 무궁무진하다. 포켓몬 캐릭터들의 기원에는 이런 일본의 전통이 깃들어 있다.

엄청난 사건이나 현상이 나타날 경우 등장하는 것으로 음모론을 빼놓을 수 없다. 믿거나 말거나지만, 포켓몬고 열풍이 일면서 ‘CIA 관련설’까지 등장했다. 음모론의 출발점은 포켓몬고를 위치기반 증강현실로 만들어낸 IT회사 ‘니안틱(Niantic·www.nianticlabs.com)’이다. 201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탄생한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로, 한순간에 미국 IT업계의 최대 블루칩으로 올라선 곳이다. 이미 신문·방송을 통해 보도됐지만, 포켓몬고의 아트디렉터로 활동한 한국계 인물이 일하는 곳이 바로 니안틱이다.

CIA 음모론의 진실은

창업 7년째인 니안틱이 블루칩이 되면서 이 회사에 대한 ‘신상털기’가 체계적으로 이뤄진다. 신상털기의 중심이 된 곳은 인터넷 자유와 국제 헤게모니 반대를 주장하는 싱크탱크 ‘케이트혼(www.Katehon.com)’이란 곳이다. 케이트혼이 주목하는 부분은 니안틱의 창업자이자 현 CEO인 존 한커(John Hanke)다. 케이트혼에 따르면 존 한커의 니안틱은 원래 ‘인큐텔(In-Q-Tel)’이라는 회사가 제공한 자금으로 설립됐다고 한다. 인큐텔은 국제사회에 잘 알려진 CIA 자금운용회사라고 한다. CIA 돈으로 회사를 세웠고 7년 만에 대히트를 친 작품이 바로 포켓몬고란 것이다.

음모론은 니안틱을 통해 개개인의 위치추적 정보를 CIA가 한눈에 파악할지 모른다는 데까지 나아갔다. 현재만이 아닌 과거 동선도 한순간에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전에 시리아에 갔다왔는지, 시리아 어디에서 활동했는지 등을 포켓몬을 통해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행동반경만이 아니라 위치추적을 통한 행동 패턴이나 취향까지도 확보해낼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위치추적 정보의 실시간 확보 여부는 니안틱이 이미 개발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통해 증명될 수 있다는 것이 음모론자들의 주장이다. 2013년 개발된 ‘인그레스(Ingress)’란 히트 비디오 게임 소프트웨어다. 전체적으로 포켓몬고와 비슷한 게임으로 구글의 자금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위치정보를 기반으로 한 양방향 게임으로, 게임에 나서는 사람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게임 소프트웨어를 통해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아낼 수 있다. 게임 상대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게임을 지켜보면서 위치정보를 간단히 확보할 수 있다. 인그레스가 구글 플러스에 연결돼 있을 경우 게임 참가자에 관한 위치정보를 기반으로 주소나 이름과 같은 개인정보가 제3자의 손에 간단히 넘어갈 수 있게 된다는 설명이다. 포켓몬고가 3년 전에 나온 이 게임에 비해 진일보한 기술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인그레스를 통한 개인 위치정보가 보다 더 업그레이된 상태에서 활용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CIA 입장에서 본다면 포켓몬고야말로 테러나 국가안보에 관한 가장 확실한 정보원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존 한커가 CIA 자금운용회사와 연관을 맺고 있을 경우 CIA와의 정보교환은 결코 불가능한 현실이 아닐 것이라고 음모론자들은 주장한다. 이런 CIA 음모론이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CIA가 아니라 하더라도 다른 제3자에 의해 악용될 수 있는 것이 위치기반 증강현실에 기초한 소프트웨어란 점이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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