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영재학교의 체육대회는 어떨까. 공부벌레들만 모였으니 별 재미가 없지 않을까 하고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축제를 방불케 할 정도로 활발하고 분위기가 방방 뜬다. 우리 학교 체육대회는 거의 전 과정을 학생 스스로 주관하고 운영한다. 학생들은 모두가 주인공이 된 체육대회를 만든다. ‘청홍 양면 뒤집기’ ‘단체 줄넘기’ ‘여왕 닭싸움’ ‘단체 응원전 경영대회’ 등 단체전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중 ‘단체 응원전 경연대회’는 체육대회의 백미이자 하이라이트다. 1·2·3학년 2개 반이 한 팀이 되어 수십 명의 학생이 음악에 맞춰 단체안무를 선보이는 것이다. 학생들은 신기하리만큼 이 응원전에 목을 맨다. 문제는 시간. 시험이 끝난 직후에 체육대회를 하기 때문에 응원전 준비기간이 단 이틀밖에 없다. 놀랍게도 학생들은 이 이틀 동안 기적에 가까운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팀을 짜고 음악을 선정해 안무를 짜고, 유니폼을 정하고, 각 학생별 안무를 분배해 단체연습을 하는 이 모든 과정이 이틀 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체육대회 당일, 학생들은 몇 달을 연습해온 팀처럼 하나가 되어 그렇게 응원전을 펼친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가슴 뭉클한 감동이 몰려든다.

어떤 팀은 걸그룹 아이오아이(I.O.I)의 ‘픽미’에 맞춰 개성 있는 안무를 선보이기도 했고, 어떤 팀은 별 모양 대열을 만들어 자신들의 꿈을 담기도 했다. 또 어떤 팀은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기도 했다. 검은 유니폼을 맞춰 입고 우렁찬 기합 소리를 넣어서 일사불란하게 응원전을 펼치던 팀도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다. 단합과 조화 면에서 치자면 한 팀 한 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이 광경을 보면서 놀라움과 의문이 생겼다. 왜 학생들은 단체 응원전에 목을 맬까. 체육대회의 한 프로그램일 뿐인데 왜 유독 단체 응원전에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을까. 한정된 시간에 결과물을 내려면 쉽지 않기에 대충 할 수도 있을 텐데, 또 단체전이니 한 명쯤 묻어가도 대세에 지장이 없을 텐데 어쩌면 이렇게 예외없이 혼신의 힘을 다할까. 몇 년간 의문을 품고 생각해봤지만 이렇다 할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다 올해 그 답을 어렴풋이 찾아냈다. 학생들의 응원전을 가만히 보다가 ‘아하!’ 하고 발견해낸 사실이다. 이들의 동작은 같았지만 같지 않았다. 한 명도 안무를 틀리지 않아서 통일성 있게 보였지만 각각의 구성원은 자신만의 몸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었다. 손짓과 발짓, 표정과 몸놀림은 저마다 달랐다. 이 동작은 각자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팀에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학교 생활은 개인전과 단체전의 연속이다. 공부는 개별활동이고 연구와 동아리는 단체활동이다. 나 혼자만 잘해서는 공동의 목표를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없다. 이들의 안무는 영재학교 학생들은 이기적이지 않을까라는 편견을 불식시키는 퍼포먼스였다. 이기기 위한 응원이 아닌,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려는 응원에 목매는 과학도들. 이 광경에서 우리나라 과학 발전의 밝은 미래를 보았다.

김민철

경기과학고등학교 물리교사

김민철 경기과학고등학교 물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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