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갓길 버스 안, 뒷좌석 아주머니가 주말에 떠날 가족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평소 가족 여행을 싫어하는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이번 속초 여행은 신이 나서 기다린다고 한다. 포켓몬고 게임 때문이다. “속초의 무슨 호텔에는 켄타로스인가 뭔가가 떴고, 속초 엑스포타워 쪽에는 망나뇽이 떴고, 미뇽도 뜬다”면서 포켓몬을 많이 잡아 자랑할 생각에 신나 있단다. 아주머니도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을 아들의 모습이 상상되는 듯 들떠 있다.

본인이 바라는 일을 하면 즐겁고 흥이 난다. 곁에서 지켜보는 이도 절로 흥이 난다. 나도 그렇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원하는 꿈을 세우고, 신이 나서 그 꿈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 큰 보람과 함께 행복에 들떠 흥이 난다. 하지만 현실을 보자. 학기 초에 학생들에게 꿈 발표를 시키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

“저의 장래희망은 변호사입니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선생님도 되고 싶고요. 아무튼 내가 관심 있고 잘하는 것을 하려고 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 꿈은 살아가는 동안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잔뜩 긴장해 있고, 쭈뼛거린다. 자신이 간절히 원해서 세운 꿈이라면 이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설렘과 호기심, 기쁨과 행복이 있을 텐데,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학생들은 꿈을 의무이자 해야 할 과업 중 하나로 여기는 것 같다.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이 “이것을 꿈으로 삼으면 좋겠다”고 어릴 때부터 부추겨온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행을 싫어하는 아이가 자신이 찾고 싶은 몬스터를 만나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여행길에 기꺼이 나서듯, 아이들도 스스로 세우고, 꼭 이루고 싶은 꿈이라면 신나서 그 길을 가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한 학생은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소설 ‘보물섬’의 주인공 짐이 낯선 여행객의 옷가방에서 한 장의 ‘보물지도’를 발견하고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학생의 말처럼 꿈이 보물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면, 그 여정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자부심이자 기쁨으로 여기고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할 것이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보물을 찾아 항해하는 보물선 선장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꿈을 보물찾기 과정으로 인식하도록 돕는 ‘꿈 세우기 작업’을 한다. 자신이 세운 꿈을 오감으로 생생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상상력을 최대한 동원하여 자신이 세운 꿈을 상상하고,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의 오감으로 보고, 듣고, 맛보고, 느껴 보게 한다. 그리고 꿈 발표를 다시 시키면 이렇게 바뀌어 있다.

“제 장래희망은 변호사입니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여 ◯◯대학교에 진학하겠습니다. 제가 법정에서 어려운 사람을 위해 변론하는 장면을 상상합니다. 열정적 변론에 이마에서는 땀이 흐릅니다. 저의 변론 덕분에 무고한 어려운 사람이 죄를 벗고 감사해 하는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방청객들이 보내는 격려의 박수 소리도 들립니다. 변호사 생활을 열심히 하고 나이가 든 후에는 대학 강단에 서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있을 겁니다.”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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