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들은 보통 사춘기의 절정을 지나는 아이들이다. 학교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활화산처럼 아이들이 내뿜는 열기와 활기로 늘 시끌벅적하다. 말썽도 끊이질 않는다. 서로 싸우고, 선생님에게 대들고, 심지어 물건까지 훔친다.

하지만 천방지축에다 말썽만 피우는 줄 알았던 아이들이 대견스러워 보일 때가 있다. 10여년 전 전형적인 ‘서민 동네’ 남자중학교의 1학년 담임을 맡은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 반에는 유달리 작고 산만하고 까불대는 아이들이 많았다. 4월에 교생 선생님이 우리 반에만 오게 되었는데, 젊은 여자 교생 선생님을 본 아이들은 너무 흥분한 나머지 허접한 농담으로 교생 선생님 소개와 종례를 계속 방해했다. 학기 초 잠시 보였던 얌전하고 정돈된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마치 동네 건달들처럼 행동하는 아이들이 실망스러웠고 화가 났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학생이 교무실로 나를 찾아 달려왔다. “선생님! OO가 교실에서 설사를 했어요. 빨리 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이건 또 무슨 일인가’ 하면서 교실로 달려갔는데, 지적 발달이 약간 떨어지는 학생이 멍한 얼굴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앉아 있었고 의자 밑으로는 그 아이의 배설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나도 당황스러워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데 서너 명의 아이가 그 아이를 일으키고는 “저희가 화장실에 데리고 가서 씻길게요” 하며 조심조심 그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문제는 의자 위와 교실, 복도 등 사방에 떨어진 오물이었다. 내가 배설물을 치우기 위해 고무장갑을 끼고 있는데 우리 반에서 가장 장난이 심하고 떠들기만 하던 아이가 오물로 흥건한 의자를 들고는 화장실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아이들 몇몇은 휴지를 가져와서 바닥의 오물을 닦고 또 몇몇은 대걸레로 교실과 복도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여러 번의 걸레질로 교실이 겨우 정상화되자 아이들은 사물함에서 갈아입을 체육복 바지와 비닐봉지를 찾아와 화장실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그 아이에게 건네주러 갔다.

이상한 일은 평상시에는 그렇게 떠들고 흥분하면서 작은 일에도 소란을 피우던 우리 반 아이들이 이 사건에서는 너무 침착하고 마치 훈련받은 아이들처럼 행동했다는 점이다. 그날 이후 아무도 그 아이를 욕하거나 교실에서 냄새난다고 투덜거리지 않은 것은 더 신기했다. 그 아이는 2학년이 되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였지만 그때도 학급 아이들이 나서서 잘 처리해주었고 졸업할 때까지 왕따를 당하거나 놀림을 당하는 걸 보지 못했다.

나는 그때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립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존경심까지 든다. 몇 년 전 그보다 교육환경이 더 좋다는 다른 학교에서 겪었던 경험 때문인지 그 아이들의 배려심이 더 돋보인다. 담임을 맡았던 그 학교에도 선천적 장애로 인공 항문을 달고 있는 남학생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반 아이들은 장애 학생한테서 냄새가 난다고 투덜대면서 장애 학생을 따돌렸다. 장애 학생도 아이들에 대한 반항심을 키우며 괴로워했다. 반 아이들에게 정상인과 다른 장애우들의 어려움을 설명해주면서 도와주며 잘 지낼 것을 당부했지만 배려심은 쉽게 키워지지 않았다. 남을 이해하고 감싸주고 스스로 나서서 도와주던 그 아이들은 도대체 뭐가 달랐던 걸까. 그 고운 심정은 어디서 길러진 걸까. 선생님들도 아이들한테 배울 때가 종종 있다.

강재남

서울 중계중학교 교사

강재남 서울 중계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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