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날, 교실의 만냥금 화분에 새로 나고 자란 새싹이 아홉 개나 보인다. 두 달 전쯤 학생들과 함께 만냥금 열매를 따서 여기저기 화분 옆 빈자리에 꾹꾹 눌러 심어 놓은 것이 무더운 여름 빈 교실에서 홀로 싹을 틔우고 자란 것이다. 대견하고 기뻤다. 학생들도 몰려들어 신기한 듯 화분을 살핀다. 작은 화분에 심은 식물 중에는 말라 죽은 것들이 더러 있지만, 큰 화분에서 자란 식물들은 대체로 싱싱하다. 지난 겨울방학에도 마찬가지였다. 작은 화분의 식물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많이 죽었지만, 큰 화분의 식물들은 비교적 싱싱하게 잘 자랐다. 화분이 클수록 흙이 많아서, 수분을 많이 머금을 수 있고, 더위나 추위로부터 뿌리를 지켜준 듯하다.

쉬는 시간 고등학교 선생님 한 분이 찾아오셨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회복과 성장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시행한 결과, 학생들의 자기만족도, 성적, 학교생활 전반에 걸쳐 많은 발전이 있었다며 웃음이 가득했다. “가정환경이 어려워도 누군가 자신을 믿어주는 확실한 대상이 있다고 대답한 학생들의 성취도가 높았습니다. 부모님이 자신을 믿어주지 않더라도 할머니나 수녀님 등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고 대답한 학생의 성취도가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선생님은 학기 초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할 만한 프로그램에 대한 자문을 청했고, 나는 ‘회복 프로그램’을 제안했다. 행복한 장면을 구체화하는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제안을 수용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가장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을 상상하고 체험하게 하고, 여행이나 시청각 매체를 통해 본 경치 중에서 멋진 곳을 골라 충분히 느낄 시간을 갖게 했다. 또 학생들을 믿고 자율적으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가게끔 했다.

학생들은 과거의 행복한 장면을 떠올리기 어려워한다. 미래의 행복과 기쁨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 느끼기는 더 어려워한다. 그러나 현재 생활 속에서 그림 그리듯 구체적으로 장면을 떠올리며 함께 기쁨을 느끼고, 찾아보게 하면 비교적 쉽게 따라한다. 현재화된 생생한 체험을 그대로 기억 속에 저장시켜 나중에 필요한 때에 쉽게 떠올려 기쁨의 근원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상상할 때에는 그 경치 속으로 들어가서 아름다운 풍광은 물론 피부를 스치는 바람, 함께하는 사람들의 환호성 등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같은 방식으로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거나 감탄을 듣고 싶다면 그 장면을 구체화하고 그 기분을 느끼게 해야 한다. ‘행복한 장면 구체화시키기’는 행복한 기억들이 학생들의 마음에 행복의 씨앗으로 뿌려지도록 돕는다.

누구나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면 행복하고 힘이 난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된다. 행복을 마음에 심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훌륭한 자산이 된다. 깊고 넓은 화분의 흙이 성장의 바탕이 되듯 학생들의 행복한 추억, 행복하다는 믿음, 누군가 자신을 믿어 준다는 느낌은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든든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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