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photo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두 아들을 홍역으로 잃은 어머니는 아들을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마흔하나의 나이에 딸을 낳았고, 딸은 집안의 구박덩어리가 됐다.

딸은 어머니께 호되게 혼나는 날이면 동치미 독 옆에 앉아 눈물을 훔쳤다. 새하얀 눈이 쌓인 동치미 독 뚜껑을 열면, 시큼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딸은 홀린 듯이 무 한 조각을 덥석 집어 베어 물었다. ‘아그작!’ 귀를 울리는 소리와 함께 입속 가득 새콤달콤한 즙이 퍼졌다. 어머니가 만든 동치미 맛을 보는 순간 서러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렸을 때 그를 위로해준 건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 아닌 음식이었다. 구박덩어리였던 딸은 훗날 한국 명문가 며느리들의 요리 스승이 됐다. 바로 ‘옥수동 독선생’으로 유명한 심영순(76) 요리연구가다.

지난 9월 5일 서울 성동구 옥수동의 심영순 요리연구원을 찾았다. 이날은 추석을 앞두고 수강생들의 송편 빚기 수업이 한창이었다. 40여명 정도의 수강생들이 4~5명씩 팀을 이뤄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심영순 연구가는 팀별로 맞춤식 수업을 진행할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50대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요리에는 내공이 쌓인 주부들이었지만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나왔다. 늘 마트에서 사먹던 송편을 직접 빚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워 보였다. 송편 모양은 삐뚤빼뚤하고, 옆구리가 터지는 바람에 속 재료가 흘러나왔다. 심영순 연구가의 설명을 들은 후에야 모양을 갖춘 송편을 빚기 시작했다. 흰색, 쑥색, 호박색의 먹음직스러운 송편들이 그릇에 담겼다.

“수강생 대부분이 주부9단들이지만 집에서 송편을 직접 빚는 경우는 드물지. 집 앞 마트만 가면 송편뿐만 아니라 온갖 농산물들이 깔끔하게 포장된 채로 팔리고 있으니 얼마나 편해. 그렇지만 마트의 농산물들을 볼 때면 농부의 땀이 전혀 연상되지 않아 지금도 불편해.”

추석을 앞두고 대형마트 대신 재래시장을 찾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심영순 연구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마트는 카트 안에 상품을 툭툭 던져 놓고, 바코드를 긁기만 하면 장보기가 싱겁게 끝난다. 하지만 손님의 표정과 상인들의 기분에 따라 2000원어치가 3000원어치가 되는 곳이 재래시장이다. 오늘 날씨부터 한 해 농사 이야기까지 주고받으며 유쾌해지는 곳이다. 시시콜콜한 대화 같지만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공부하는 곳이 재래시장이다.

심영순 연구가는 먹거리에 대한 철학도 분명했다. “자연은 공장이 아니라서 똑같은 모양으로 대량생산을 할 수 없다. 크고 작고, 예쁘고 못생긴 것들이 섞여 있는 것이 진짜 좋은 먹거리다.” 심 연구가는 지하철 입구나 노상에서 푸성귀를 팔고 있는 할머니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초라해 보일수록 직접 산에 올라가서 캐온 것이거나 텃밭에서 기른 작물일 가능성이 높아서다.

가정주부서 명문가 요리 스승이 되다

심영순 연구가가 요리의 기본인 식재료에 신경을 쓰는 이유가 있다. 1992년 남편이 공무원으로 퇴임한 이후 농사를 직접 지어본 게 계기였다. 처음에 사과나무를 심었지만 약을 치지 않았더니 벌레가 먹어 결국 망했다. 다른 작물인 땅콩을 심었지만 마찬가지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농사꾼의 계획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여기서 심 연구가는 큰 교훈을 얻었다. 모든 농산물이 가뭄, 홍수, 태풍 등 자연과의 사투 끝에 탄생한다는 것을 알았다. 농사가 없으면 요리도 없는 것이니 그 가치를 잘 알고 요리에 임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심영순 연구가가 처음부터 요리 스승으로 이름을 날린 것은 아니었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가 요리 스승이 된 계기는 딸의 반찬을 맛있게 만드는 어머니로 소문나면서부터다. 셋째 딸이 다니던 유치원 선생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유치원 선생은 다짜고짜 “어머니 모임에 나와 반찬 만드는 법을 강의해 달라”고 했다. 이미 심영순 연구가의 반찬 솜씨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본격적으로 요리를 가르친 건 1970년대부터다. 30명으로 시작한 강의는 수강생이 급속도로 불어났다. 소문이 나자 명문가에서도 심씨를 찾기 시작했다.

심영순 연구가는 “사람들은 재벌가라고 하면 뭔가 특별하고, 거창한 음식을 먹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전혀 아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검소함을 뛰어넘는 절제가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심영순 연구가는 현대가에 방문했을 때 식탁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식탁은 합판 3개를 이어 붙여 천을 덮어 사용했고, 정주영 회장의 밥상에 오르는 반찬은 소박했다. 밥상에는 고등어조림, 콩나물, 김치가 전부였다. 심영순 연구가는 현대가의 며느리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성북동 자택을 건축할 당시 일화를 들려줬다. “당시에는 집에 돌출 창을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 밖으로 돌출된 창에 화분 같은 것을 놓으면 예뻤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이를 만드는 것조차 정주영 회장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였다.” 심 연구가는 한 기업의 회장 부인은 설거지할 때 떠오르는 밥풀을 모아 풀을 만들어 사용할 정도라고 했다. 심영순 연구가는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추석이나 특별한 날에 음식을 남기고 버리는 것이 큰 문제”라며 “반찬도 하나의 요리라고 생각하면 함부로 못 남긴다”라고 말했다.

심 연구가에 따르면, 어느 재력가 집안의 며느리는 자신의 도움 때문에 삶이 바뀌기도 했다. 심 연구가는 친정이 가난하고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댁에서 푸대접을 받은 재력가 며느리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느 날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70명의 손님을 집에 초대할 테니 잔칫상을 차리라고 했다. 당시 며느리는 사색이 되어 심영순 연구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심영순 연구가는 그 집에 찾아가 수십 가지의 요리를 뚝딱 해냈고, 모두 며느리가 만든 것처럼 일을 꾸몄다. 그날 집에 찾아온 손님들은 며느리에 대해 칭찬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시아버지는 마음의 문을 열게 됐다.

심 연구가는 한식을 알리는 자리라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한복을 입는 이유도 한식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지난 7월에는 자신의 한식 인생을 담은 ‘심영순, 고귀한 인생 한 그릇’(인플루엔셜)을 출간했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는 이유에 대해 심영순 연구가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 한식을 만들지 않으면 결국 한식도 사라지게 된다. 우리들은 후손에게 한식의 근원이 되는 농사를 활성화시키고, 이를 통해 건강한 먹거리가 풍성해지도록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음식은 단순한 먹거리 이상의 사랑이고 또 교육이 되기 때문이다.”

심영순의 토란국

재료

1. 토란 800g

2. 육수(양지머리) 3/4컵, 청장 1큰술, 소금 약간, 참기름 1작은술, 향신즙 1/2큰술

3. 미나리 초대 2장, 새송이 1송이, 대파채 2컵

4. 편육 200g, 청장 1작은술

5. 육수(양지머리) 10컵, 청장 1큰술. 호렴 1/2큰술, 진간장 1작은술, 맛소금 1/3작은술, 향신즙 1/2큰술

만들기

❶ 토란은 장갑을 끼고 껍질을 벗겨 끓는물에 삶아 한 번쯤 물을 갈고 70% 정도만 삶아 익힌다.

❷ 2번 재료를 넣고 다시 완전히 졸여 놓는다.

❸ 미나리는 꼬챙이에 끼워서 물기를 살짝 바르고 밀가루와 백란을 입혀 파랗게 지져낸다. 자연송이는 마름모꼴로 썬다. 대파는 어슷 썬다.

❹ 편육은 마름모꼴로 얄팍하게 썰어서 무쳐 놓는다.

❺ 5번 재료가 끓으면 위의 재료를 모두 넣고 살짝 끓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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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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