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의 다윗상
미켈란젤로의 다윗상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일까? 위대한 국가나 기업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하는가?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는 150개 이상의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페르시아제국의 정치 틀인 ‘왕정’과는 다른 새로운 정치 형태를 실험하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8세기부터 경제적인 자유를 찾아 자발적으로 소아시아(터키) 해변으로 건너가 집단거주지를 건설한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기원전 6세기에 이란에 등장한 페르시아제국과 충돌한다. 페르시아제국은 막강한 왕정과 군사력으로 5세기 초에 이미 중앙아시아, 중동, 소아시아, 이집트 지역을 점령하여 23개 나라를 통치하는 제국이 되었다. 페르시아제국이 그리스인들의 해변도시들을 무력으로 점령하여 자신들의 통치 안으로 편입시키려 하면서 갈등이 발생했다. 그리스인들은 페르시아제국에 근본적 약점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바로 왕정이었다.

그리스인들은 모든 인간이 세상에 다른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그 신분은 공동체인 도시(polis)에서 자기 나름의 ‘아레테(arete)’를 실현하기 위한 바탕이라고 생각했다. ‘아레테’는 고대 그리스어로 ‘덕’ 혹은 ‘탁월함’으로 번역한다.

리더의 자질 아레테

‘아레테’는 그리스어에서 ‘선 / 탁월함 / 남성다움 / 힘, 용기 / 덕 / 성격, 명성, 영광 / 위엄’이란 의미뿐만 아니라 ‘기적 / 경의 / 경배의 대상’이란 의미도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지도자는 아레테를 어김없이 발휘한 자들 중 투표를 통해 선출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하지 않고 자신의 왕권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행위를 ‘바바로스’, 즉 ‘야만적’이라고 정의하였다. 영어 단어 ‘바바리안(barbarian)’이 여기서 파생하였다. 즉 ‘야만인’은 자신만의 고유한 아레테가 무엇인지 모르는 인간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아레테는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의미한다. 굴뚝의 아레테도 있고, 황소의 아레테도 있고, 사람의 아레테도 있다. 아레테는 그것이 무엇을 묘사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왜냐하면 사물이나 사람에게는 자신에게 고유한 아레테가 있기 때문이다. 아레테의 원래 의미는 ‘자신의 삶을 우주의 질서에 맞게 연결시킨 것’이다. 인간 자신이 시공간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를 묵상을 통해 깨달아 그런 삶을 추구하는 삶을 바로 아레테라고 부른다.

‘아리스토크랫(Aristocrat)’이란 영어단어는 흔히 ‘귀족’으로 번역되는데, 숨겨진 본래 의미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깨달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바로 이들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하는 일이 천직이라고 깨닫고 묵묵히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모두 아리스토크랫이다. 기원전 750년 호메로스는 450년 이상 구전으로 내려온 서사시를 문자로 옮긴다. 고대 그리스에는 다소 난해한 음절문자인 선형문자 A와 선형문자 B가 있었으나, 그들이 수백 년간 노래한 서사시를 기록하는 데 적합하지 않았다. 이들은 페니키아인들로부터 배운 셈족의 알파벳을 차용하여 이 노래를 적었다. 이 노래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다. 이들은 각각 두 명의 위대한 영웅들의 아레테를 찬양하고 있다.

‘일리아스’의 주인공은 바로 아킬레우스다.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전쟁 영웅으로 아레테를 발휘한다.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를 함락시키러 갔지만, 아킬레우스의 도움 없이는 그 전쟁을 이길 수 없다. ‘일리아스’에 처음으로 등장한 아레테라는 개념은 바로 아킬레우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용맹성’을 의미한다. 후에 등장하는 그리스 교육과 그리스 올림픽은 바로 이 육체적 탁월함인 아레테를 연마하는 장소이다.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우스와는 다른 아레테를 지녔다. 그는 자신의 말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말솜씨를 지녔다. 그는 트로이전쟁서 아킬레우스처럼 죽지 않고 살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고향인 아타카로 항해하는 동안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사이렌과 같은 여신의 유혹을 대화로 설득하여 자신의 뜻을 이룬다. 아레테는 육체적인 탁월함뿐만 아니라 자신의 말을 통해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언변의 탁월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플라톤은 아레테를 ‘인간 노력의 탁월함’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아레테를 가르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내면에서 노력하는 과정에 서서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아레테는 자신이 최선을 이루겠다는 결심과 노력이다. 운동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최선을 다하겠다는 지속적인 마음이다. 자신이 무엇을 이루어야겠다는 확신, 이를 지속적으로 완성해 나가려는 겸손에서 아레테는 시작한다. 그리스 교육체계는 암기가 아니라 참여다. 매일매일 체육관에서 운동을 통해 육체를 연마하며 그동안 알지 못하던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자신의 무식을 인정하는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무아(無我) 상태를 연마하여 정신적인 최선을 지향한다. 거기에는 사지선다가 없다. 시험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성적이 아니라 경쟁이다. 이들은 육체적으로 올림픽 경기를 통해 경쟁하는 것처럼, 시·산문·연극·음악·그림·연설을 통해 아레테를 연마했다.

아레테는 어떻게 연마하나

아레테를 가장 많이 연마한 자들인 아리스토크랫은 자신에게 주어진 육체적·정신적 환경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을 끊임없이 한다. 타인의 다양한 마음을 진실로 이해하고 그들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연습이 바로 공부다. 이런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자신의 것처럼 상상하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다. 이에 따라 공동체는 그를 지도자로 인정하여 자연스레 그를 ‘선’과 ‘존경’의 화신으로 여긴다. 이 존경을 그리스어로 ‘티메(time)’라고 부른다.

육체적·정신적으로 최선을 지향하는 노력이 바로 아레테이다. 스스로 최선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레테는 떠나버린다. 오랜 연마를 통해 아레테에 이른 이에게 공동체는 존경심인 티메를 선사한다. 티메는 사람이 타인의 다양한 입장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무아의 능력으로 그에게 서서히 쌓이는 신의 선물과 같은 것이다. 티메는 지도자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우리 주위에는 자신이 무얼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이 없는 ‘야만인 지도자’가 많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가는 여러 길 중에 하나는 아레테를 가르치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아레테를 깊이 연마해야 티메가 오며, 티메를 지닌 사람이 지도자가 되기 때문이다.

기원전 13세기경 이집트에서 이주한 사람들을 ‘히브리인’이라고 부른다. ‘히브리인’이란 말의 의미는 ‘국경을 넘나드는 사람들’이란 의미로 요즘 용어를 빌리자면 불법체류자들이다. 이들은 메소포타미아,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집트로 이어지는 소위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경제적인 자유를 찾아 떼를 지어 돌아다니던 사람들이다. ‘히브리인’들은 인종적이거나 민족적인 개념이 아니다. ‘출애굽기’ 12장28절에는 ‘온갖 잡족’들이 이집트로부터 나왔다고 기록한다. 이들은 경제적 안정을 찾기 위해 음식을 찾아 ‘비옥한 초승달’ 지역을 배회하던 사람들이다. 모세는 광야에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이들을 독특한 종교공동체로 만든다.

히브리인들이 만든 이념공동체의 핵심은 ‘나는 내 자신’이었다. 모세에 의해 내려온 이 독립적인 사고는 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면서 문제에 봉착한다. 기원전 11세기 고대도시들은 국가라는 새로운 기관을 만든다. 여러 도시들이 협력하여 우두머리를 내정했다. 이 왕이 전체 행정을 관장했다. 이들은 왕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상비군(常備軍) 체계를 갖췄다. 히브리인들은 새로 도착한 땅 팔레스타인에서 막강한 상비군을 갖춘 도시국가들과 대결하여 살아남아야만 했다. 히브리인들은 자신들이 거부하고 탈출한 왕정을 전술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왕 제도는 이들이 지향하는 공동체의 근간을 훼손하는 제도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왕’의 권한을 제어하기 위해 ‘예언자’라는 독특한 인물이 등장한다.

히브리어로 ‘왕’이란 단어는 ‘멜렉(melek)’이다. 이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상의하다/충고하다’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어에서 왕을 의미하는 ‘멜렉’은 ‘상의를 받는 사람/충고를 받는 사람’이다. 고대 오리엔트의 통치자들은 절대 권력을 지닌 자였으나, 히브리인들의 ‘지도자’는 성격이 달랐다. 그들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당시 그곳에 정착하며 살던, 성서에서는 ‘블레셋’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전쟁을 감행한다. 그들은 상비군과 정부조직이 있는 팔레스타인들과 효과적으로 대적하기 위해 상시적이 아닌 임시적인 지도자를 세운다. 이 임시적이며 카리스마가 넘치는 지도자를 ‘멜렉’이라 불렀다. 멜렉이 다른 제국들의 제왕과 같은 권력을 갖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예언자’라는 특별한 인물을 세웠다. 예언자에게는 왕을 지명할 권한이 있었다. 또 왕의 곁에서 항상 정치를 상의하고 충고하는 사람이었다.

다윗은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완벽한 남성이었다. 그는 고대 이스라엘을 통일시킨 첫 번째 왕으로 성서의 위대한 영웅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신약시대에 예수는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불렸다. 무명의 목동이었다가 돌팔매로 골리앗을 살해하여 성공적인 장군이 되고 후에 신을 잘 섬기는 통치자가 된 다윗은 인간으로서 지향해야 하는 완벽한 삶의 전형이었다.

다윗은 독보적인 ‘알파 남성’으로 인류 역사상 첫 번째 수퍼스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영웅에는 벗어날 수 없는 흠이 있기 마련이다. 다윗 삶의 정점에서 그는 비극적인 순간을 맞이한다. ‘오레스테이아’나 ‘오이디푸스 왕’의 주인공들이 그러하듯이 영웅이기 때문에 피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비극’이란 터널에 들어선다.

고대 올림픽의 육상 종목을 묘사한 그림.
고대 올림픽의 육상 종목을 묘사한 그림.

다윗을 비극으로 이끈 여인 밧세바

다윗을 비극으로 인도했던 밧세바라는 여인은 자신의 생각을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침묵은 오히려 다윗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만큼 의도적이며 미래지향적이다. 다윗과 밧세바와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완성된다. 바로 밧세바의 아들인 솔로몬이 이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밧세바는 인간 욕망의 대상이며, 아내였고, 어머니였으며, 무엇보다도 영향력이 있는 왕비였다.

반면에 다윗은 밧세바 사건을 통해 자신이 지닌 역동적이며 대립적인 성격들이 오히려 확인된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영웅이지만 반항적이고 인간적이면서도 잔인했고 단순하면서도 계산적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밧세바 사건을 통해 영웅만이 가진 치명적인 흠을 가장 잘 드러내는 비극적 인간이 됐다. 다윗은 원래 야전사령관이었지만, 스스로 오만해지기 시작하더니, 자신의 일을 남에게 일괄하는 장님이 된다.

일생 동안 야전사령관으로 명성을 쌓은 다윗이 들판에서 다른 부하들과 진을 치고 대치하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느긋하게 한가롭게 지내기 시작했다. 다윗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 그는 아마도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예루살렘을 신이 거주하는 시온성으로 만들고, 그 후에도 많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자만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자신이 일생 해오던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없고 자신이 하던 일을 요압 장군에게 맡겨도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이 왕이 하는 일인데 다윗은 궁궐에서 빈둥거렸다. 대신 자신의 오른팔인 요압을 전투에 투입했다. 다윗은 요압이 충분히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고 믿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스 비극에서 영웅들을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는 피할 수 없는 그들의 성격을 ‘휴브리스(hubris)’, 즉 ‘자만심’이라고 부른다.

다윗은 왜 전쟁에 나가지 않고 예루살렘에 머물렀을까? 당시 주변국가인 암몬인들과 아람인들은 점점 세력을 키워가는 이스라엘을 저지하기 위해 군사적으로 결탁하여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이 예루살렘에 머문 이유에 대해 성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유일한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그가 자신의 전성기를 보내고 이제 황혼으로 들어선 데 있을 듯하다. 당시 그의 나이를 얼추 계산하면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다. 후에 요압 장군이 암몬의 수도 랍바성을 기습 공격하여 상수도와 연결된 시냇가 도시구역을 점령한다. 그런 후 그는 다윗에게 전령을 보내 이스라엘의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이 성의 중심부를 점령하라고 요구한다. 충직한 요압 장군은 랍바 점령을 다윗의 공적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그러나 다윗은 랍바에 가지 않았다.

성서는 명확하게 밝히진 않았지만 다윗이 이제 정신적·육체적으로 쇠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 같다. 다윗왕은 사막의 모래폭풍을 맞으며 뜨거운 낮이나 추운 밤을 벌판에서 보냈다. 그는 사울왕과 블레셋, 그리고 가나안 민족들과의 싸움에서 전략적인 지혜와 강력한 체력으로 승리하였고 그에 걸맞은 자기존경심이 넘쳤다. 그는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올 때 너무 기쁜 나머지 자신이 나체가 된 것도 모르던 전형적인 남성이었다.

그러던 다윗이 이젠 활력을 잃고 궁궐에서 뒹굴며 부인과 수많은 첩들과 함께 아이들의 재롱을 보는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골리앗의 머리를 자르던 다윗과는 사뭇 다르다. 그의 자존심과 자기존경심이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저녁, 다윗은 잠깐 눈을 붙였다가 일어나, 왕궁의 옥상에 올라가서 거닐었다. 그때 그는 한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옥상에서 내려다보았다. 여인은 아주 아름다웠다. 그 순간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남용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궁궐에서 다른 여인이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본 것이다.

다윗은 그녀를 쳐다보면 볼수록 빠져들어, 자신이 왕이란 사실도 잊어버리고 신하를 보내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라고 시켰다. 신하는 그 여인이 히타이트 사람이며 이스라엘 군대 장교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라고 전했다. 다윗은 분명 그녀가 유부녀인 사실을 알았지만 그녀를 궁궐로 오라고 편지를 보낸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서 밧세바를 데려왔다. 밧세바가 다윗에게로 오니, 다윗은 정을 통하였다. 밧세바는 마침 부정한 몸을 깨끗하게 씻고 난 다음이었다. 그런 다음에, 밧세바는 다시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밧세바는 다윗과 정을 통한 뒤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여인이 간음을 하게 되면 유대법에 따라 투석으로 죽음을 당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남편이 이스라엘 군대의 고위 장교라면 더욱 더 일이 꼬이게 될 것이다. 밧세바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는 자신이 살 수 있는 길은 임신했다는 사실을 이스라엘의 최고권력자인 다윗에게 직접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다윗은 랍바에서 진을 치고 있던 요압 장군에게 편지를 보내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최전선에 내몰아 전사하게 만든다. 다윗은 이제 자신의 말과 행동이 거짓과 악으로 가득한 보잘것없는 파렴치한이 되었다. 밧세바는 우리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남편을 생각하며 울었다. 하지만 애도하는 기간이 지나자 다윗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을 보내 밧세바를 왕궁으로 들인다. 다윗은 이미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범부처럼 자신이 가진 권력을 사용할 수 있는 내적인 카리스마를 잃어버렸다. 사실 이때 이스라엘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다윗을 일깨운 나단

이 사건은 누가 보아도 악한 일이기 때문에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사실 이스라엘을 건국한 다윗이 이렇게 초라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는 없다. 그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 성서의 저자는 예언자 나단과 다윗의 만남 이야기를 ‘사무엘기하’ 12장에 삽입하여 다윗을 괜찮은 왕으로 다시 살려준다. ‘사무엘기하’ 12장을 보면 아무런 맥락 없이 예언자 나단이 등장한다. 나단은 후에 밧세바를 도와 솔로몬을 다윗의 후계자로 만들 인물이다. 나단은 다윗을 찾아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떤 성읍에 두 사람이 살았습니다. 한 사람은 부유하였고, 한 사람은 가난하였습니다. 부자에게는 양과 소가 아주 많았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에게는 사다가 키우는 어린 암양 한 마리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 어린 양을 자기 집에서 길렀습니다. 그래서 어린 양은 그의 아이들과 함께 자라났습니다. 어린 양은 주인이 먹는 음식을 함께 먹고, 주인의 잔에 있는 것을 함께 마시고, 주인의 품에 안겨서 함께 잤습니다. 이렇게 그 양은 주인의 딸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부자에게 나그네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부자는 자기를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는데, 자기의 양떼나 소떼에서는 한 마리도 잡기가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난한 사람의 어린 암양을 빼앗아다가, 자기를 찾아온 사람에게 대접하였습니다.”

다윗은 이 말을 듣고도 나단이 자신의 이야기를 빗대어 하는지 몰랐다. 다윗은 그 부자가 못마땅하여 그를 죽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단은 바로 그 순간에 다윗을 책망한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제 다윗은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이하였다. 그는 약관의 나이로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용사였고, 예루살렘을 수도로 만든 이스라엘 최고의 정치가였다. 그는 일개 예언자의 알레고리를 무시하고 그의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권력자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잘못을 바로 그 순간에 인정한다. “내가 신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은 이 말로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런 의미에서 성서는 냉정하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난 아이가 죽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리더로 존경을 받는다. 심지어 예수도 자신이 다윗의 자손이란 점을 강조한다.

다윗의 정치적·군사적인 업적이 그를 이스라엘의 리더로 만들었다면, 그의 신속한 실수 인정은 그를 위대한 리더로 만들었다. 로마 철학자 키케로가 말했다. “실수하는 것은 인간적이다. 그러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부인하는 자는 바보다.” 다윗의 카리스마는 그가 자신의 실수를 제3의 눈으로 관조할 수 있는 능력에서 온다. 그의 실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윗도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란 점을 알려주어 연대감을 형성했다. ‘잘못 인정’은 위대함을 갈망하는 위대한 인간에게만 주어지는 인격이다. ‘잘못 인정’은 아레테, 즉 탁월한 지도자의 방점이다.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