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남덕 할머니, 아직도 많이 속상하세요? 이중섭 아저씨는 돌아가셨지만 여기에 많은 것을 남겨 주셨어요. 죽기 전에 못 보고 떨어져 속상하셔도 할머니 마음속에 계세요. 안녕히 계세요. 정원준 올림.

# 마사코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민국에 사는 박세연 학생입니다. 제가 이중섭 화가의 그림들을 보았어요. 보았더니 마음을 알겠더라고요. 슬픈 마음, 행복한 마음, 그리운 마음…. 그리고 마사코 할머니의 마음도 왠지 공감되고요. 할머니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 안녕하세요 할머니. 저는 정지원이라고 해요. 제가 일본어를 할 수 있다면 일본어로 편지를 썼을 테지만 아쉽게도 일본어를 하지 못하네요. 하하. 할머니의 애칭이 발가락이라는 것을 들었어요. 별명을 되게 잘 지으신 것 같아요. 굉장히 귀여워요. 그리고 굉장히 두 분이서 금실이 좋으신 것 같아요. 편지 한 장을 뽀뽀라는 단어로 채우신 이 시대의 사랑꾼, 이중섭 아저씨 ㅋㅋ. 그거 보고 되게 놀랐어요. 결혼한 지 꽤 되셨는데 금실이 좋다니 ㅎㅎ. 부럽습니다. 제 친구들의 작품을 보고 이중섭 아저씨를 다시 추억하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럼 할머니께서 좋은 추억에 잠기시게 저는 이만 비켜드려야 할 것 같네요.

# 처음 편지를 쓰니까 가슴이 떨리네요. 그래도 한번 써볼게요. 그림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건 황소가 싸우는 그림이에요. 왜냐하면 멋지고 재밌어서 그래요. 할머니는 잘 계시죠? 할머니가 제일 좋은 그림은 무엇인가요?

지난 5월 일본 도쿄 자택에서 결혼사진을 들고 앉아 있는 이남덕씨. ⓒphoto 황은순
지난 5월 일본 도쿄 자택에서 결혼사진을 들고 앉아 있는 이남덕씨. ⓒphoto 황은순

이중섭 화가 탄생 100년을 맞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이 새로운 신화를 썼다. 국내 작가로는 유일하게 개인전 관객 20만명을 돌파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라는 수식어에 맞게 이중섭의 예술과 삶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다. 전시는 1916년 탄생부터 1956년 사망까지 시대별로 4개의 방으로 구성됐다. 4개의 방 중에서 관객들이 유난히 오래 머무는 방이 있었다. 이중섭이 아내 이남덕(야마모토 마사코·95)씨와 주고받은 편지가 전시된 세 번째 방이다. 일본으로 돌아간 아내와 두 아이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이중섭의 편지 앞에서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돌아서는 관객이 줄을 이었다. 서울 전시는 10월 3일 막을 내리고 부산시립미술관(10월 20일~내년 2월 26일)으로 무대를 옮긴다.

1952년 부인 이남덕씨가 두 아들만 데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후 이중섭 가족은 이산가족이 됐다. 한·일 국교 단절로 생이별을 한 이남덕과 이중섭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은 편지였다.

이남덕씨는 현재 도쿄도(都) 시부야구의 한 주택에서 살고 있다. 평생 남편을 가슴에 묻고 살아온 이남덕씨에게 편지는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기도 했다. 남편과의 재회를 애타게 기다리던 이남덕씨에게 한국에서 온 마지막 편지는 1956년 9월에 받은 이중섭의 부음이었다.

60년 만에 이남덕씨에게 한국에서 반가운 편지들이 날아간다. 유치원생부터 중학생까지 345명의 아이들이 ‘이남덕 할머니’에게 보내는 그림엽서들이다. 스마트폰 키패드에 익숙한 아이들이 연필로 꾹꾹 눌러쓴 엽서들은 비뚤비뚤 글씨도 서툴고 맞춤법도 틀리지만 한 장 한 장 응원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편지가 적힌 엽서의 다른 쪽 면에는 이남덕 할머니를 위한 그림도 그렸다. ‘길 떠나는 가족’ ‘황소’ 등 이중섭의 대표 작품을 따라 그린 엽서도 있고 사모관대 입고 족두리 쓴 이중섭 부부의 결혼식을 그린 엽서도 있다. 그중 눈에 띄는 엽서가 있다. 이중섭이 부인·두 아이와 손을 맞잡고 활짝 웃는 가운데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고 한쪽엔 예쁜 집이 그려져 있다. 집 옆에는 ‘넓은 집’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불운했던 이중섭 가족의 사연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림 속에서라도 이중섭 가족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편지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기사 첫 부분에 소개한 네 편의 편지처럼 ‘힘내세요!’ ‘행복하세요!’ 응원 메시지부터 ‘나이가 드셨으니 너무 무리하지 말고 평범한 운동 하시라’ ‘이중섭 아저씨는 천국에 가셨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 등 어른스러운 위로의 메시지도 있다. ‘꼭 답장해주세요’ ‘한국의 화가인 이중섭 화가의 부인이라 좋겠어요’ 등 읽다 보면 순수한 동심에 절로 웃음이 나오는 내용도 많다.

이중섭 전시를 본 어린이들이 이남덕씨에게 쓴 그림엽서들.
이중섭 전시를 본 어린이들이 이남덕씨에게 쓴 그림엽서들.

“이중섭 아저씨는 아들바보였네요”

아이들의 편지 아이디어는 주간조선을 통해 진행됐다. 주간조선은 5월 23일자(2408호) 커버스토리로 도쿄에 있는 이중섭의 부인 이남덕씨의 자택을 방문해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국내 언론 중 자택 방문 인터뷰는 최초였다. 이남덕씨는 그동안 국내에서 잊혀진 인물이었다. 이중섭과 함께 과거의 인물이 된 이남덕씨를 현실로 불러낸 기사는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기사가 나간 후 6월 말 기자는 장문의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어린이 문화예술교육 전문 사설기관인 생각하는 박물관입니다. 여름방학 프로그램 중 하나로 덕수궁에서 열리는 이중섭전 감상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주간조선 기사 내용도 들려주고 전시 관람을 한 후 편지 쓰기도 할 예정입니다. 그 편지들을 주간조선 도움으로 이남덕 여사에게 전달해 줄 수 있으신지요? 어린이들이 쓴 편지가 실제로 유족에게 전달될 수 있다면 교육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고 어린이들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입니다. 어린이들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서울 종로구 계동에 있는 ‘생각하는 박물관’ 권선재 실장이 보낸 메일이었다. 주간조선은 이메일을 통해 이남덕씨에게 박물관 측의 취지를 전달했다. 이씨는 대단히 기뻐하면서 “아이들의 편지를 받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는 답을 전해왔다. 아이들의 편지를 받으면 답장도 보내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생각하는 박물관 측으로부터 다시 연락을 받은 것은 두 달여가 지난 9월 초였다. 여름방학 동안 이중섭전 감상 프로그램을 마친 아이들이 쓴 그림엽서가 345통에 달한다고 했다. 지난 9월 19일 북촌의 한 골목길에 있는 생각하는 박물관을 찾았다.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한 권선재 실장이 345통의 편지를 건네면서 말했다.

“이중섭 부인에게 직접 전달한다고 하니 아이들이 처음엔 반신반의했어요. 사진과 영상 속 인물에게 실제로 보낸다고 하니까 어찌나 진지하게 편지를 쓰는지 놀라웠습니다. 아이들의 정성을 생각해서 일어로 번역한 내용을 편지에 함께 붙여서 보내려고 작업 중입니다.”

권 실장의 말에 따르면 이중섭 전시에서 아이들이 가장 관심을 보인 곳은 ‘황소’ 등 대표 작품이 전시된 방보다 이중섭의 편지 앞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편지 한 장 한 장을 들여다보며 읽는 바람에 선생님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아 끌 정도였다. 정해진 교육시간이 부족한 적은 처음이었다. 격동의 역사를 겪어야 했던 화가의 불운 앞에서 눈물을 훌쩍이는 아이들도 많았다. 특히 원조 기러기 아빠였던 이중섭의 아픔은 요즘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내용이었다. 이중섭이 아이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고 “나도 아빠에게 저런 편지를 받아보고 싶어요.” “이중섭은 아들바보였네요”라며 부러워하기도 했다.

전시실 바닥에 표시된 제주 시절 이중섭 가족이 살았던 단칸방의 크기를 보고 “만약 내가 저 방에 산다면 너무 불편했을 텐데 이중섭은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하다니 새삼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됐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권 실장은 “작품이 예술적으로 주는 감흥보다 그의 굴곡진 인생이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서 얻은 교훈이 더 많은 것 같다. 이중섭의 작품도 편지도 부인의 손에 남아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린이들이 특히 안타까워했다. 자신들이 엽서에 그린 그림이라도 대신 보면서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다들 너무나 열심히 그려줬다”고 말했다.

전시장에 걸린 이중섭 사진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은 어린이들. ⓒphoto 생각하는 박물관
전시장에 걸린 이중섭 사진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은 어린이들. ⓒphoto 생각하는 박물관

번역 작업이 이뤄지는 동안 10여장의 엽서를 찍은 사진을 먼저 도쿄에 있는 이씨에게 메일로 보냈다. 이씨의 근황을 묻는 질문도 함께 보냈다. 그림엽서를 본 이씨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전해왔다. 이메일을 받자마자 “귀여운 어린이들이 이렇게 상냥한 말을 전해주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그림을 그려준 것을 보니 너무 고맙고 기쁘다. 힘이 솟아난다”는 답을 보내왔다. 이씨는 국내에서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전시·공연 등이 잇따라 열리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씨에게도 한국 언론을 비롯해 일본 언론의 취재 요청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돌아가신 지 60년이나 됐는데 아직도 사랑받는 아고리상(이중섭의 애칭)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한국 방문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체력이 불안해서 이동이 어렵다”고 답했다. 무릎통증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일상생활은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말도 보탰다. 지난 5월 도쿄 자택에서 만난 이씨는 95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했다. 체구는 작고 걸음은 불편했지만 기억력도 또렷했고 강인해 보였다. 비록 헤어져 살았지만 100여통의 편지를 통해 그 시대 누구도 받기 힘든 사랑을 받아서일까. 그가 이중섭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나도 건강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게다가 당신의 편지와 사진이 더욱더 기운을 불어넣었습니다. 부디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또 곧 편지하겠습니다. 하루빨리 오게끔 서둘러주세요. 밤에는 당신의 사진을 안고 함께 자겠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당신의 아내 남덕. 4월 27일.’

그가 이중섭에게 보낸 편지는 어디론지 사라지고 몇 통 남아 있지 않다. 그의 편지 속에는 남편의 편지를 애타게 기다리는 내용이 많이 나온다. 60여년 만에 그의 손에 닿을 345통의 편지가 그에게 또 살아갈 이유를 줄 것이다. 편지가 도착할 즈음인 10월 12일은 마침 그의 95번째 생일이라고 했다. 아이들의 편지가 최고의 생일선물이 될 것 같다면서 손꼽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가 이중섭을 사랑하는 한국 국민들에게 전해달라는 말이다.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깊이 사랑해주는 아고리는 아주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 아고리의 사랑을 받아온 저나 아이들은 더더욱 행복한 사람입니다. 다시 한 번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아리가토 고자이마스.”

‘생각하는 박물관’은

“박물관, 미술관은 재미없다는 아이들에게 유리창 속 말 없는 유물과 그림 뒤에 숨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시작했습니다.”

박물관 교육사인 권선재 실장은 지인들을 데리고 박물관 견학을 다니다보니 주변에서 “나도 데려가 달라”는 요청이 너무 많아 아예 문화예술교육기관을 차리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엔 비슷한 교육기관이 거의 없었지만 요즘엔 셀 수 없이 많이 생겼다. 처음엔 박물관, 전시장 등에 견학을 가면 어린이들을 만나기 힘들었는데 요즘엔 견학팀이 워낙 많아 박물관 측에서 귀찮아할 정도라고 한다.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박물관은 주소를 갖고도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골목 깊숙이 숨어 있는 한옥이지만 이곳을 찾는 아이들이 한 달이면 1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이중섭 전시처럼 특별전시를 체험하는 1회성 프로그램도 있지만 ‘세시풍속’ ‘풍물기행 우리나라’ ‘조물조물 한국사’ ‘궁궐 나들이’ 등 6개월, 1년 과정 수업도 있다. 한 팀은 8명씩 소수로 진행된다. 전통명절 체험도 하고 김장김치 담그기도 하는 ‘세시풍속’ 수업은 특히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김장 담그기 수업을 하는데 한 초등학교 어린이가 손과 얼굴에 김치 양념 범벅을 하고 유난히 맛있게 김치를 먹으면서 즐거워하더란다. 나중에 부모 참관 수업을 하는 날 보니, 온 국민이 다 아는 재벌가의 자녀였다고 한다.

학부모 중에는 아이의 생일을 기념해 아이의 친구들과 함께 프로그램을 신청해주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생일파티 하고 노래방에 가는 대신 미술관에서 보내는 생일은 특별한 경험이라는 것.

유치원부터 다녔던 어린이가 중학생이 되어서 동생 손을 잡고 찾아오는 경우도 많다. “이중섭 프로그램처럼 작품에 앞서 그의 삶을 먼저 들여다보게 합니다. 작품보다 사람부터 탐구를 하고 인문학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더 흥미로워 합니다.” 권 실장의 말이다.

아이들에게 마당이 있는 집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 한옥을 마련했다는 권 실장은 “어렸을 때부터 미술관, 박물관을 꾸준히 다닌 아이들을 보면 분명히 다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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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순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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