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일 중국 국경절 연휴를 맞아 방한한 중국 관광객들. ‘유커’냐 ‘요우커’냐 표기를 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지난 10월 1일 중국 국경절 연휴를 맞아 방한한 중국 관광객들. ‘유커’냐 ‘요우커’냐 표기를 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photo 김연정 조선일보 객원기자

2014년 12월 3일, ‘제118차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가 열렸다. 이날 안건은 급증한 중국 관광객을 뜻하는 ‘유객(游客)’이란 표기를 둘러싼 안건이었다. 이날 회의에서는 중국어 발음기호인 한어병음(拼音)으로 ‘youke’로 표기되는 ‘유객’을 어찌 표기할지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중국식 발음에 최대한 가깝게 ‘요우커’ 또는 ‘여우커’로 해야 한다는 주장과, ‘you’를 한 소리로 쳐서 ‘유커’로 표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섰다. 결국 이날 회의에서는 “중국어 표기일람표에서 you를 ‘유’로 표기하도록 되어 있어 ‘youke’를 ‘유커’로 표기한다”고 결론 내렸다.

국립국어원의 결정으로 지난해부터 신문과 방송에는 ‘유커’란 표현이 급증했다. 한데 중국어를 할 줄 아는 한국인과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중국인은 ‘유커’란 표현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you는 영어로 ‘유’라고 읽을지 몰라도, 중국어는 ‘O’와 ‘U’를 각각 따로 발음해 ‘요우’ 또는 ‘여우’에 가깝게 발음해서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는 ‘유커’에 관한 항의가 지금도 줄을 잇는다. “중국에서 7년 유학한 대학생이다. 유객은 요우커 또는 여우커에 가깝다” “중국인이 들었을 때 이해를 못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표기라면 과연 옳은 것이라고 할 수 있나?” “상하이 구베이(古北)에 사는 사람이다. 유커는 유가 아니라 ‘요우’라고 읽는다” “중국 사람들 100명한테 유커라고 해보세요. 아무도 못 알아듣습니다” 등등이다.

결국 국립국어원은 고심 끝에 재결론을 내리고 협조공문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유커보다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써주세요”란 내용이었다. 국립국어원은 지금도 여전히 ‘유커’ 표기에 대한 항의에 답변하느라 바쁘다. “중국어 주음부호와 한글 대조표에 따라 118차 정부·언론 외래어 심의 공동위원회에서 결정한 사항”이란 앵무새 같은 말과 함께다. 국립국어원 어문연구과의 한 관계자는 “유커에 관한 문의가 가끔 들어온다”며 “원어 발음과는 조금 다를 수 있으나 해당 언어를 배우기 위한 것이 아니고 우리말로 일관되고 알기 쉽게 적기 위한 것이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중국인도 못 알아듣는 중국어 표기

국립국어원의 외래어 표기법 규정이 뜻도 안 통하고 말도 안 통하는 ‘외계어’ 표기를 양산하고 있다. 최근 급속히 늘어난 중국어 표기는 심각한 문제다. 신문 지면에 늘 등장하는 ‘유커’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한국으로 시집온 중국 여성조차 “유커가 뭐냐?”며 한국어 독해에 어려움을 호소할 정도다. 이렇다 보니 국립국어원 규정에 따라 국내 언론사에서 쓰는 중국어 표기는 “외국어를 현지음에 가장 가깝게 표기할 수 있다”는 한글 고유의 장점도 못 살린 채 알듯 말듯 아리송한 말로 변질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된소리(경음)를 금기시하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외래어 표기법 규정 제4항에서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중국어 발음 가운데 상당수는 된소리에 가깝게 발음된다. 한데 국립국어원 규정이 ‘ㅆ’ ‘ㅉ’을 제외하고 된소리를 일절 배제하다 보니, 실제 발음과 동떨어진 엉터리 표기를 만드는 것. 일례로, 인맥 등을 뜻하는 중국어로 자주 쓰이는 ‘관계(關係)’는 ‘시’에 가깝게 발음된다. 조직의 큰형님을 뜻하는 ‘대가(大哥)’란 말은 ‘따꺼’에 가깝다. 모두 한글 된소리를 사용해 거의 100% 현지 발음에 가깝게 표기할 수 있는 단어다.

한데 국립국어원의 규정에 따르면 ‘시(guanxi)’는 ‘관시’로 표기하고, ‘따꺼(dage)’는 ‘다거’로 표기해야 한다. 현실에서는 엄연히 ‘시’와 ‘따꺼’로 들리는 말을 ‘관시’ ‘다거’로 써야 하는 것. 결국 ‘시’와 ‘따꺼’ 특유의 끈끈하고 질척이는 느낌도 사라진 맥빠진 말이 되고 말았다.

1996년 ‘엄익상 표기법’을 고안한 한양대 중문과의 엄익상 교수는 “한국어의 된소리와 유사한 자음을 많이 사용하는 중국어를 한글로 표기함에 있어 된소리 사용을 억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마치 짜장면을 된소리를 피한 표기법대로 ‘자장면’으로 규정하면서 ‘짬뽕’은 관용음을 인정하여 ‘잠봉’으로 고치지 않는 모순과 같다”고 지적했다. ‘짜장면’은 국립국어원에 의해 줄곧 잘못된 표기로 낙인찍혔다가, 2011년에야 비로소 ‘자장면’과 함께 복수 표준어 지위를 획득했다.

전문가들은 “ㅑ, ㅖ, ㅛ, ㅠ 등 이중모음 표기를 꺼리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중모음으로 충분히 표기할 수 있는 말을 이중모음을 떼버리고 똑같이 표기하니 구분이 어려워진다는 것. 이로 인해 장제스(蔣介石), 장쩌민(江澤民), 장궈룽(張國榮), 장쯔이(章子怡)는 모두 다른 성(姓)씨를 쓰지만 한글로 표기하면 모두 똑같은 ‘장’씨 일가가 돼 버린다. 이들 인사의 경우 중국어 발음기호로 ‘Jiang’으로 표기하는 장제스와 장쩌민은 ‘쟝’ 또는 ‘지앙’으로 발음하고, ‘Zhang’로 표기하는 장궈룽, 장쯔이만 ‘장’으로 발음된다. 엄익상 교수는 “주스(juice)도 표기법은 규정상 ‘주스’지만 현실에서는 ‘쥬스’로 쓰지 않느냐”며 “구분할 수 있는 것도 왜 구분을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건국대 중문과 임동석 명예교수(전 한국중어중문학회장)는 “국립국어원과 국어학자들이 음성학적으로 구분이 안 된다고 하는데 영어 등 외국어 사용이 늘면서 이런 발음은 엄연히 구분된다”며 “한글이 대단하다는 것은 어떤 말이든 표기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시각적 변별력을 위해서도 구분해 써야 한다”고 했다. “한국어 음절이 2350개고, 중국어 음절은 418개밖에 안 된다”며 “418개만 결정해주면 되는데 뭐가 어렵냐”는 것이 임 교수의 주장이다.

베이징대(왼쪽)와 칭화대(오른쪽) 심벌마크.
베이징대(왼쪽)와 칭화대(오른쪽) 심벌마크.

표준 한어병음과 괴리, 갈수록 벌어져

“현행 중국어 표기법과 한어병음 간의 편차가 너무나 크고 갈수록 괴리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어병음’이란 중국 대륙에서 1958년 반포된 중국어 표준 발음 규정이다. 베이징대 도서관 사서 출신인 마오쩌둥의 ‘문자 개혁’ 지시로, 중국어 각 글자를 알파벳화해서 발음기호 형태로 표기화한 것이다. 표의문자인 한자를 표음문자인 라틴어를 빌려 바꾼 것으로, 한어병음은 전 세계적으로 확고한 중국어 표기법으로 자리 잡았다.

가령 베이징은 ‘Beijing’, 칭다오는 ‘Qingdao’, 타이베이는 ‘Taibei’라고 표기하는 식이다. 중국어 컴퓨터 자판 역시 한어병음에 따라 알파벳으로 음을 치면 해당하는 한자가 튀어나온다. 자판에서 Beijing을 치면 ‘北京(베이징)’, Qingdao를 치면 ‘靑島(칭다오)’가 화면에 떠오르는 식이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국어를 배운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어병음을 통해 중국어 발음을 익힌다. 중한사전 역시 한어병음 색인을 기초로 삼으며, 중국어를 배우는 전 세계 학생도 한어병음을 기준으로 중국어를 익힌다.

국립국어원에서 중국어 표기법을 처음 마련한 것은 1986년이다. 한 학계 관계자는 “1985년 민간에서 ‘최영애-김용옥 중국어 표기법(C.K 시스템)’이 나오자 부랴부랴 1년 만에 급조한 것”이라고 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전으로 자연히 중국 대륙보다는 대만식 주음부호와 영어식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을 주 골간으로 삼았다.

주음부호는 복잡한 중국어 표기를 위해 1918년 중화민국(현 대만) 정부가 고안해 반포한 중국어 표기법이다. 복잡한 한자에서 한 획씩을 떼어내 일본 ‘가타카나’와 비슷하게 만든 일종의 문자였다. 20세기 전반에 중국어 발음 표기 기준으로 사용됐고, 장제스의 국민당은 1949년 대만섬으로 패퇴한 후에도 정통성 차원에서 주음부호 표기를 줄곧 고수해왔다. 하지만 그 난해함 탓에 대만에서도 천수이볜(陳水扁) 민진당 정권 때인 2002년 ‘통용병음’이란 새 표기법을 제정하면서 주음부호 표기를 폐지했다. 더욱이 2008년 친중(親中) 성향의 마잉주(馬英九) 정권 출범 후에는 대만과 중국과의 교류가 급증하면서 ‘통용병음’마저 ‘한어병음’에 자리를 내주고 사문화됐다.

국립국어원이 주음부호와 함께 기준으로 삼는 웨이드-자일스식 표기법 역시 문제가 있다. 웨이드-자일스식 표기법은 1840년 아편전쟁 때 중국에 상륙해 40년간 중국 주재 영국 외교관을 지낸 토머스 웨이드 케임브리지대 초대 중문과 교수가 고안한 중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다. 이를 역시 중국 주재 외교관을 지내고 같은 학교 후임교수로 부임한 허버트 자일스가 갈고 다듬어 1892년 완성한 것이 ‘웨이드-자일스식 표기법’이다.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은 서양인이 발음하기 힘든 중국어 발음을 최초로 표준화했고, 아편전쟁 이후 서양에서 중국어 표기법의 기준이 됐다.

서구 매체들은 한동안 웨이드-자일스식 표기법에 따라 중국의 인명과 지명을 표기했다. 모택동(마오쩌둥)을 ‘마오처퉁(Mao Tse-tung)’이라고 표기하는 식이다. 1900년대 이후 유럽에서 지명 표기로 굳어진 소위 ‘행정우편용 우정식 병음’ 역시 웨이드-자일스식 표기법에 중국 남부에서 쓰던 현지 발음을 가미해 만든 것들이다. 특히 자일스 교수는 상하이·닝보·대만 등 중국 남부에서만 외교관 생활을 했고, 국민정부의 기반이 있던 광저우·난징·상하이 등 남부 지방 말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북경을 뜻하는 ‘페킹(Peking)’이다. 1898년 개교한 중국 최초 대학인 베이징대 역시 ‘Peking’이란 말을 대학 심벌마크에 고수하고 있다. 북경의 한어병음식 공식 표기는 ‘Beijing’인데, 서양식 표기로는 ‘Peking’이다. 중국 대표 음식으로 서양에 소개된 ‘북경오리’는 여전히 ‘페킹덕’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양꼬치엔 칭따오’로 유명한 칭다오맥주병에도 여전히 한어병음에 따른 표준발음인 ‘Qingdao’가 아닌 ‘Tsingtao’란 서양식 표기가 적혀 있다. 금문(金門)고량주 병에도 표준 발음인 ‘Jinmen’ 대신 ‘Kinmen’으로 돼 있다. 1911년 개교한 중국 최고 명문대학인 칭화대학의 심벌마크에는 공식표기인 ‘Qinghua’가 아닌 ‘Tsinghua’란 표기가 여전히 적혀 있다.

대만식 주음부호와 서양식 표기법 고수

서양식 표기법은 한어병음의 등장과 함께 소멸됐고, 오랜 역사를 강조할 때나 지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더욱이 한글을 쓰는 한국인은 웨이드-자일스나 우정식 병음 같은 서양식 표기법을 따라갈 필요가 전혀 없다. “전 세계 모든 언어를 현지음에 가장 가깝게 표기할 수 있다”는 것이 국어학자들이 주장하는 소위 ‘한글의 장점’이다. 중국어 역시 예외가 아니다. 굳이 이런 장점을 스스로 포기하고 서양식 억지 표기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을 기초로 만든 서양식 중국어 표기 상당수는 현재 표준어인 베이징 말이 아닌 지금은 사투리에 불과한 광저우, 난징 등 남부 지방 말에 기초한 것이다.

하지만 국립국어원이 정한 상당수 중국어 인명과 지명 등의 한글 표기에는 웨이드-자일스식 표기법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다. ‘유커’의 유(游) 자 역시 한어병음으로 하면 ‘you(요우)’로 표기되지만, 웨이드-자일스식으로 표기하면 ‘yu(유)’다. 여기에 한자 한 글자를 한글 한 글자로 1 대 1로 억지로 치환하려는 전통적 관념도 작용했다. 덕분에 요우커는 한국에서 졸지에 ‘유커’가 돼 버렸다.

방향을 뜻하는 ‘동(東)’ 자 역시 그렇다. ‘동’을 중국 대륙식 한어병음으로 표기하면 각각 ‘dong’이다. 이를 웨이드-자일스식으로 표기하면 ‘퉁(tung)’이다. 모택동의 웨이드-자일스식 표기인 ‘마오처퉁(Mao Tse-tung)’과 같다. 국립국어원은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의 영향을 받아 ‘dong’을 일괄적으로 ‘둥’으로 표기하도록 규정한다.

이렇다 보니 ‘동’ 자가 들어가는 모택동(毛澤東)은 ‘마오쩌둥’, 한국과 가까운 산동(山東)은 ‘산둥’, 남방의 광동(廣東)은 ‘광둥’, 북·중 접경도시인 단동(丹東)은 ‘단둥’, 만주를 뜻하는 동북(東北)은 ‘둥베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차라리 산둥과 광둥, 단둥은 한국식 한자음인 ‘산동’ ‘광동’ ‘단동’으로 표기하는 것이 실제 발음과 더욱 가깝다. 임동석 교수는 “중국어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옹’ ‘웅’ 발음의 구별이 없지만, 한어병음에 따라 ‘ong’는 ‘옹’으로 표기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심지어 일부 음운학자들은 한어병음에 된소리까지 충실히 반영해 ‘dong’를 ‘똥’(최영애-김용옥 표기법, 엄익상 표기법)으로 표기하는 것이 원음과 가장 가깝다고 주장한다. 국립국어원 어문연구과의 한 관계자는 “ㅗ, ㅜ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 바가 좀 다를 수 있다”며 “ ‘ㅜ’로 발음되는 웨이드-자일스식만을 따른 것은 아니고 ‘ㅗ’로 발음되는 한어병음을 함께 참고해 정한 것”이라고 했다.

디지털시대에 외래어 한글표기법은 하루빨리 정비할 필요가 있다. 표기법이 다를 경우 전혀 다른 사람이나 사물로 인식해 인터넷 검색 자체가 되지 않는다. 모택동, 마오쩌둥, 마오처퉁을 모두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고, 산동과 산둥을 다른 지역으로 보는 것이다. 이로 인한 지식전달과 축적의 단절은 심각하다. 임동석 교수는 “일본 언어학자들이 정해놓은 기준에 따라 굳어진 김포(Kimpo), 부산(Pusan), 제주(Cheju) 표기를 서울올림픽 전에 김포(Gimpo), 부산(Busan), 제주(Jeju)로 바로잡는다고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느냐”며 “국립국어원에서 사전을 낼 때 참여를 한 적이 있는데 이런 얘기를 했더니 전혀 안 듣더라”고 했다. 엄익상 교수는 “국립국어원에서 중국어 전공자를 뽑기 시작한 것은 불과 2~3년 전으로 국어학자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며 “학계에서 얘기를 해도 ‘뭐가 문제냐’ ‘번거롭다’며 전혀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엄 교수는 “이상한 표기법이 더 퍼지기 전에 하루빨리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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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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