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재개장 후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광주 송정역 앞 ‘1913송정역시장’. ⓒphoto 광주광역시청
지난 4월 재개장 후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광주 송정역 앞 ‘1913송정역시장’. ⓒphoto 광주광역시청

곽경욱(34)·선지혜(28)씨 부부는 40년 이상 양갱을 만들어온 사람을 찾아가 6개월 동안 제조법을 부지런히 배웠다. 이렇게 배운 것을 토대로 새로운 양갱 레시피를 개발해냈다. 전통 양갱은 팥과 설탕이 주재료다. 색깔도 팥색으로 고정돼 있고, 한결같이 단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양갱에 변화를 주어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보자고 부부는 생각했다. 파인애플, 망고, 블루베리, 딸기 등을 주재료로 삼았다. 신선한 과일을 갈아 둥그렇게 모양을 낸다. 색깔도 보라색, 노란색, 흰색, 초록색 등 8가지. 생김새가 작고 깜찍하다. 과일 향이 배어나오고, 색도 예쁘다. 설탕을 넣지 않아 건강에도 좋은 새로운 양갱이 탄생했다. 옛 맛을 토대로 새로운 맛을 만들어낸 셈이다. 이들 부부는 다시 소년 소녀로 되돌아가 양갱을 즐기라는 뜻으로 다시 갱(更) 자를 써서 양갱 가게 상호를 ‘갱 소년’이라 했다. ‘1913송정역시장’에 들어선 이 가게는 낮 12시와 오후 6시 각기 오전·오후에 만든 제품을 내놓는다. 선씨는 “기다리다 돌아가는 손님들도 많다”고 말했다.

장효근(32)·노지현(29)씨 부부는 2년 동안 부각을 만들어오다 송정역시장에 합류했다. 노씨의 친정 어머니가 만들어주시던 부각을 따라 만들어 당초 아파트 앞에 16㎡(5평) 상가를 얻어 장사를 시작했다. 온라인에도 가게를 열어 판매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경영 부문 전문가들의 조언도 구하고, 제품 디자인과 포장도 배웠다. 이후 송정역시장에 합류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제품도 생산하고 마케팅에도 나서고 있다. 창업비용은 4000만원. 직원 셋과 함께 일하고 있다. 장씨는 “점차 알려지고 손님들이 찾기 시작하면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느린 먹거리’라고 이름한 장씨의 가게는 월세를 광산구청에서 지원받고 있다. 이 시장에 진입한 장씨와 같은 창업자 업소는 이 가게와 마찬가지로 월세 도움을 받고 있다.

이한샘(25)씨는 작정하고 수제맥주 제조법을 다른 지역에서 배워왔다. 낮에도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양한 수제맥주를 즐길 기회를 제공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창업을 준비하던 중 송정역시장에서 개업할 기회를 마련했다. 시멘트 건물의 내외부를 그대로 드러내놓은 인테리어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매일 오후 이곳에는 술과 함께 젊음이 출렁인다.

이처럼 젊은 창업자들이 송정역시장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지난 4월 18일 재개장한 광주 송정역 앞 ‘1913송정역시장’의 업소는 당초 55곳에서 65곳으로 늘었다. 이곳의 창업자 가게는 17곳에 이른다.

지난 10월 16일 찾아간 광주광역시 광산구 ‘1913송정역시장’ 골목. ‘또아식빵’ 앞에 손님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달콤하고 고소한 식빵 향이 지나는 이들을 붙잡고 있었다. 임아름(26)씨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찾아왔다”며 “송정역시장을 둘러보면서 시간을 보내려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만 해도 빵이 동나 줄 서기를 대여섯 차례 반복했다. 시장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젊은이들. 이들이 즐기는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커피, 수제맥주, 계란밥, 국수, 칼국수, 닭강정, 독일식 족발과 소시지, 보리밥, 만두, 동파육 등 다양했다. 곳곳마다 젊은이들의 발길이 붐볐다. 광장에서는 송정역 이용객들을 위해 전광판으로 열차시간을 알려주고 있었다.

송정역시장에는 주말마다 하루 5000여명씩 손님이 다녀갔다. 평일엔 2000여명 선. 재개장 6개월을 맞은 이 시장은 새롭게 떠오른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으며 대변신에 성공했다. 재개장 전에는 손님이 끊기고 빈 가게가 즐비했다. 전선은 거미줄처럼 엉켜 있고 가게 건물들은 낡고 때가 끼었다. 시장이 처음 생긴 때가 1913년, 호남선 송정역이 생긴 이후다. ‘1003번지’라고 통하는 ‘특정가(特定街)’ 옆 골목이었다. 관련 법규에 따라 특정가 업소들이 모두 사라지자 2003년 무렵부터 시장은 급속하게 쇠락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따로 없을 만큼 변신에 성공했다. 토박이 방극종(69)씨가 “지난해만 해도 이곳을 찾는 이들이 없었다”고 할 정도다. 지난해만 해도 하루 200명가량의 손님만 찾았을 뿐이라고 했다.

시장에 역사를 입히다

시장을 재단장하면서 전선들은 모두 땅속에 묻었다. 시장 골목 바닥은 깔끔하게 사각형 벽돌로 깔았다. 시장 입구, 업소 입구 바닥에는 가게의 최초 입점연도를 동판으로 새겼다. 옛날 사진들도 하나씩 걸었다. 기존 업소에는 역사를 입혔다. 방앗간, 제분소, 국밥집, 젓갈집, 고추상회, 떡집, 닭집, 한과집, 국수공장, 굴비가게 등 새로운 시장의 변화에 동참한 업소들은 안팎을 깔끔하게 변화시켰다. 김인섭(57) 송정역시장 상인회장은 “시장에 젊은이들이 이렇게 몰려오는 것을 보면 우리 상인들이 ‘로또를 맞았구나’라고들 한다”며 흡족해 했다.

송정역시장 골목은 길이가 170m 정도다. 여기에 청년창업자들 업소가 17군데, 기존 건물주가 운영하는 업소가 20여군데 몰려 있다. 나머지는 임대하여 운영하는 업소들이다. 전통시장을 새롭게 탈바꿈시키는 데는 중소기업청과 광주시, 광산구의 예산 10억원이 지원되었다. 현대카드는 외부 인테리어와 경영컨설팅 등을 담당했다. 하지만 아직 주차장이 부족하고 화장실도 부족하다. 김도균 광주 광산구 민생경제팀장은 “주차장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늘리려 한다”고 말했다.

재개장 6개월 만에 안정궤도를 향해 가고 있지만 땅값도 갑작스레 3배 이상 급등하는 등 부작용도 거세다. 이에 따른 걱정이 없는 게 아니다. 장차 벌어질 임대료 문제가 바로 그것. 상인들은 지난 5월 임대료 인상을 자제한다는 자율협약을 맺기도 했다. 벌써 두 군데 업소에서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시장 상인들도 우려하고 전문가들도 앞으로 임대료 안정이 매우 중요하다고들 입을 모으고 있다. 임대료 폭등을 견디지 못하고 창업자들의 업소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 것인지가 지역사회에 새롭게 던져진 과제이다.

권경안 조선일보 호남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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