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야시장 매니저 양소영씨. ⓒphoto 김정엽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야시장 매니저 양소영씨. ⓒphoto 김정엽

‘청년몰’의 성공에 힘입어 연간 수백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전북 전주 남부시장은 2010년까지만 해도 외지인들의 발길이 거의 없는 곳이었다. 20년 전 큰불이 나고선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한 채 점차 대형마트에 손님을 내주며 몰락의 길을 걸었다. 현재는 남부시장 6동 2층(1322㎡)에 청년 장사꾼들이 넘치지만, 당시엔 상인들이 이용하는 백반집 2곳만 있었다. 적막하기만 했던 이곳에 2011년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야시장 매니저 양소영(30)씨와 11명의 청년이 들어오면서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 지금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며 관광명소가 된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의 시작이었다.

양소영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두려웠지만 신나는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졸업한 그는 전주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그런데도 대부분이 일자리를 찾아 ‘인 서울 인 서울’을 외칠 때 그는 ‘탈 서울 탈 서울’을 생각했다. ‘적당히 벌고 잘 살자’라는 자신의 신념을 실천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만 바라보고 달려야 하는 경쟁 속에서 적당히 벌고 잘 사는 것은 사치였죠. 살아남기도 벅찬 일이니까요. 처음엔 지역에 대한 편견도 있었지만, 전주를 알면 알수록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양소영씨는 2010년 전주에 내려와, 서울에서 인턴 생활을 하며 알게 된 사회적 기업 ‘이음’에 들어갔다. 문화를 중심으로 도시를 재해석하고 지역공동체를 회복하자는 이음의 설립 철학은 그의 신념과 맞닿아 있었다.

이음은 2011년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모한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선정됐는데, 이 사업을 양소영씨에게 맡겼다. 양씨는 전주 남부시장 6동 2층을 청년 창업 인큐베이팅 공간인 청년몰로 설계했다. 이곳은 상인들의 공동 재산으로 남부시장 상인회가 위탁관리를 맡았는데, 월 임대료가 5만~8만원으로 저렴했다. 청년몰이 대박이 나더라도 임대료를 크게 올리지 않겠다는 상인회의 약속도 있었다.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과 양소영씨에게는 유토피아와 같은 곳이었다.

“청년몰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과를 내려고 욕심을 내다 보면 일회성 사업에 그칠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청년 장사꾼들이 시장 상인들과 하나가 되면 이들이 다음 세대에 남부시장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믿었어요.”

남부시장에 창업 인큐베이팅 공간 설계

양소영씨는 처음부터 청년들에게 점포를 열게 하지 않았다. 대신 상인들과 유대감을 넓히기 위한 일들을 먼저 시작했다. ‘한 평 갤러리’ ‘시장 영화제’ ‘창업교육 아카데미’ ‘일일 야시장’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상인들과 소통을 시도했다. 시장 청소와 물건 나르는 일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상인들과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데만 10개월을 썼다.

당장 창업을 원했던 청년들은 이런 활동을 왜 해야 하는지 불만을 쏟아냈다. 일반적인 창업지원인 줄 알고 청년몰 사업에 뛰어들었던 이들은 “지원 내용이 처음하고 다르다” “빨리 점포를 열게 해 달라”며 양씨를 압박했다. 양씨와 청년들은 격론을 벌였다. 양씨는 혼란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고민했지만, 시장 상인들과 동떨어져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결국 양씨는 청년들을 끝까지 설득해 2012년 5월 청년 점포를 여는 데 도움을 줬다. 중간에 이탈한 청년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음식점, 카페, 공방 등 11개의 청년 점포는 금세 유명세를 탔다. 청년 점포가 문을 열고서 1년 만에 남부시장 방문객은 15%가 늘었다. 청년 장사꾼과 전통시장이라는 이질적인 만남이 시장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고 청년실업을 해결하는 대안으로 떠올랐다. 전국의 전통시장 상인회와 자치단체는 청년몰을 배우기 위해 이곳에 몰려들었다. 2013년 문전성시 프로젝트가 끝나 정부의 지원이 끊긴 이후에도 시장 상인들과 청년들은 상생관계를 유지하면서 현재는 점포가 33개까지 늘었다. 전주 한옥마을에 오면 꼭 보고 가야 할 명소가 된 지 오래다.

“청년몰이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관광객들이 남부시장 2층에 있는 청년몰만 둘러보고 1층 상가에서 물건을 사는 경우는 별로 없었어요. 남부시장의 완벽한 부활을 위해선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전주 남부시장 2층에서 시작된 청년들의 작은 날갯짓은 시장 1층까지 전파돼 큰 태풍이 됐다. 2014년 행정자치부의 지원을 받아 문을 연 야시장이 대박을 터뜨렸다. 매주 금·토요일 오후 7시부터 12시까지(동절기 오후 6~11시) 시장 1층 중앙 통로에 마련된 35개의 간이 매대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야시장에는 남문꼬치, 땡초김밥, 장미호떡, 군대리아 등 먹을거리와 수공예품 등을 파는 매대에서 1일 평균 1매대당 70만원의 매출을 올린다. 야시장 개장 이후 방문객은 1일 평균 7000여명이 늘었다. 야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싶다는 시민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임대료 급등 상인회·청년몰 갈등

야시장은 취업난에 시달리는 청년들과 한국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 가족들에게 희망을 줬다. ‘총각네 스시’를 운영하는 이길연(26)씨는 이곳에서 번 돈으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했다. 이씨가 직접 개발한 소고기로 만든 ‘불초밥’을 먹기 위해 100여명의 인파가 긴 줄을 서기도 한다. 하루 평균 매출이 400만원에 달한다. 이씨는 “장사가 잘돼서 후배 5명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후배들이 이곳에서 일하며 꿈을 키워나가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시장에 나와 장사를 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던 다문화가정 남편들도 이제는 부인과 함께 매대에 나와 직접 운영을 하고 있다.

“외적인 성장은 어느 정도 이뤘다고 봐요. 그런데 사람들이 몰리고 매출이 증가하면서 우려했던 부분들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야시장 개장으로 남부시장은 새로운 도전을 맞고 있다. 오후 6시면 대부분 점포가 문을 닫는데, 야시장이 운영될 때는 100여개의 점포가 야간에도 문을 연다. 옷, 신발 등을 팔던 점포가 커피숍, 음식점 등으로 업종을 전환했다. 일부 상인들은 점포 앞에 간이 매대를 설치하고 세를 내줘 야시장 상인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부동산 거래 문의가 늘었고, 상가 임대료와 매매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 몰락했던 공간이 다시 번영하면서 원주민들이 내몰리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전주 남부시장에도 찾아왔다.

양소영씨는 “청년몰은 외부 위험 요소를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해관계 조정이 쉬웠다”며 “야시장은 위험 요소를 통제하기 어려운 구조라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주 남부시장의 부활은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라는 목표를 향해 모든 구성원이 함께 뛰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를 풀기 위해선 상인회, 청년몰, 야시장, 지방 정부가 초심으로 돌아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양씨는 지난 10월 12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조선뉴스프레스가 후원한 특강 행사 ‘청춘 수업’에 강사로 나서 전주 남부시장에서 일군 자신의 성공담을 소개하기도 했다.

김정엽 조선일보 호남취재본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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