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에서 북쪽으로 1㎞ 정도 떨어진 듀퐁서클에 위치한 스시타로. ⓒphoto 유민호
백악관에서 북쪽으로 1㎞ 정도 떨어진 듀퐁서클에 위치한 스시타로. ⓒphoto 유민호

퍼블릭 디플로머시(Public Diplomacy). ‘공공외교’로 해석되는 이 말이 최근 외교무대에서 각광받고 있다. 정부나 공적 기관이 아니라 민간단체나 개인을 상대로 한 외교를 뜻한다. 소프트파워의 일종으로 여론조성, 문화교류 등을 통해 국익을 증진하려는 게 주 목적이다. 문화와 교양에 기초한 선진국형 외교라고 볼 수 있다.

지난 1월, 워싱턴에 새로운 스타일의 도쿄발(發) 퍼블릭 디플로머시 행사가 열렸다. ‘테이스트 오브 재팬(Taste of Japan)’이란 행사로, 일본대사의 공관에서 열렸다. 주최자는 일본 농림수산성. 이 행사에는 워싱턴을 대표하는 일본 요리 최고 셰프 2명이 초청됐다. 워싱턴 초고가 호텔인 만다린호텔의 일본 레스토랑 시티 젠(City Zen)의 에릭 지볼트(Eric Ziebold)와, 1986년 개업한 스시타로(寿司太郞)의 야마자키 노부(山崎信博)다. 각자 일본 요리의 정수를 보여온 인물들로 농림수산성이 주는 상장을 받은 유명 셰프들이다. ‘테이스트 오브 재팬’은 2015년부터 시작된 일본 농림수산성의 퍼블릭 디플로머시 행사다. 워싱턴만이 아니라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도 열린다. 올해의 경우 10월 현재 전 세계 25개국에서 열렸다. 막 시작했기에 아직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지만, 일본 음식에 대한 관심을 고려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일본판 미슐랭’으로 부상할 수도 있다. 민간이 주도하는 서양과 달리 관(官) 중심으로 진행하는 것이 일본 소프트파워의 실체다.

흥미로운 것은 테이스트 오브 재팬의 주요 내용이다. 셰프 선정이 전부가 아니다. 요리 시식회와 조리법 강의 등도 행한다. 한국 정부의 음식 관련 이벤트와 비슷한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국은 전통음식, 나아가 역사를 자랑하려는 것이 이른바 ‘K푸드 이벤트’의 주된 목적일 듯하다.

일본은 다르다. 음식의 전통과 역사도 자랑하지만, 보다 중요한 목적은 다른 곳에 있다. 일본산 재료의 수출이다. 농림수산성 이벤트는 단순히 일본 요리를 즐기자는 차원이 아니라 ‘일본산 재료를 이용한 일본 요리를 맛보자’는 데 방점을 둔다. 철저히 비즈니스에 기초한 이벤트다. ‘전 세계 가정의 식탁 위에 일본산 간장(醤油)을!’이 테이스트 오브 재팬이 내건 슬로건 중 하나다. 일본산 간장도 서양 가정의 상비 재료로 만들겠다는 의지다. 간장만이 아니라 일본 요리에 관련한 모든 것을 ‘메이드 인 재팬’ 제품으로 대체해 전 세계에 뿌리겠다는 것이다. 이 행사의 주최 기관이 농림수산성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워싱턴에서 30년간 스시타로를 운영해온 셰프 야마자키 노부. ⓒphoto 워싱턴 시티 뉴스
워싱턴에서 30년간 스시타로를 운영해온 셰프 야마자키 노부. ⓒphoto 워싱턴 시티 뉴스

‘테이스트 오브 재팬’의 주인공

워싱턴 레스토랑인 ‘스시타로’는 테이스트 오브 재팬의 하이라이트에 해당한다. 만다린호텔의 일본 요리도 특별하지만, 농림수산성이 추진하는 일본산 재료의 수출 첨병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일본인이 경영하는 스시타로가 적격이다. 스시타로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워싱턴을 대표하는 일본 레스토랑의 대명사이기 때문이다. 스시타로는 백악관에서 북쪽으로 1㎞ 정도 떨어진 듀퐁서클(Dupon Circle) 근처에 있다. 일본인은 물론 미국인, 나아가 177개에 달하는 워싱턴 내 각국 대사관 대부분이 스시타로를 알고 있다.

스시타로는 이름과는 달리 스시만 팔지 않는다. 스시를 포함해 일본 요리의 전반을 다룬다. 출장요리 서비스도 스시타로가 유명한 이유 중 하나다. 30년 넘게 워싱턴에서 영업을 하면서 일본 요리를 선보이는 출장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발전시켜왔다. 일본 대사관이 애용하는 곳이란 소문이 나면서 다른 나라 대사관들도 출장 서비스를 찾을 정도가 됐다. 외교의 도시 워싱턴은 익히 알려진 대로 파티의 주 무대이기도 하다. 눈앞에서 곧바로 만들어주는 스시는 파티 음식에 제격이다.

필자가 스시타로에 주목한 이유는 워싱턴 일본 요리의 대명사란 관점에 국한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워싱턴 ‘아시아 외교’의 현장으로 정착된 곳이란 점이 더 중요하다. 스시타로는 아시아 관련 정책전문가나 외교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일본 소프트파워의 핵(核)에 해당한다.

워싱턴에 진출해 있는 일본 상사는 300개에 달한다. 이들은 단순히 물건만 팔기 위해 워싱턴에 주재하는 것이 아니다. 에너지 가격 변동에서부터 대통령선거에 따른 정책 변화, 무역과 통상 관련 주요 정책에 이르는 워싱턴의 생각을 파악하기 위해 파견된 정보원이기도 하다. 일방적으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생각을 미국에 적극적으로 알리기도 한다. 이들 상사맨들이 상대하는 인물들은 연방정부와 싱크탱크의 정책통들이다. 정보 수집이나 교환이 끝나면 곧바로 워싱턴발 리포트를 작성해 도쿄 본사로 전달하는데 이 과정은 보통 식사 자리를 겸해 이뤄진다. 그런데 이 같은 정보의 수집과 교환이 이뤄지는 대표적인 현장이 바로 스시타로다. 일본인이 워싱턴의 미국인을 상대하려고 할 때 떠올리는 첫 번째 장소가 스시타로다. 일본대사관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다는 점도 미국인 파트너를 스시타로로 불러들이는 이유 중 하나다. 필자의 판단이지만, 워싱턴의 아시아 전문가치고 스시타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하다. 시푸드 알레르기가 없는 한 스시타로 고객 중 한 명이라 단언한다.

미국인과의 대화가 한국이나 중국 레스토랑에서도 이뤄진다는 점을 떠올리면 스시타로가 왜 특별한가라고 반문할 듯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첫째 일본 레스토랑이 갖는 일반적 이미지다. 2013년 기준으로 일본 레스토랑에서의 1인당 평균 식사비는 62.73달러다. 한국은 42.10달러, 중국은 32.78달러이다. 최고 비싼 프랑스 레스토랑의 63.02달러에 이어 2등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일본 요리다. ‘비싸다’는 것이 평균 미국인의 일본 요리에 대한 이미지다. 스시타로는 일본 대사관 출장전문 업소로, 일본인 모두가 알아주는 명소다. 미국인의 대부분은 날생선을 입에 대본 적이 없다. 소문으로만 들은 비싼 음식을, 그것도 워싱턴의 대표 일본 레스토랑에서 처음 맛본다고 할 때 어떤 기분이 들까. 한국이나 중국 레스토랑에 대한 관심도 많겠지만, 대부분은 일본 레스토랑에 한층 더 훈훈한 점수를 주지 않을까.

둘째는 미국인이 갖는 일본에 대한 이미지 관련 부분이다. 지난해 4월 정평 있는 여론조사기관 PEW(www.pewglobal.org)가 조사한 미·일 종전 70주년 기념 양국 설문조사의 결과가 해답이다. 미·일 양 국민이 대하는 서로에 대한 이미지가 무엇인지 잘 나타나 있다. 일본이란 나라와 관련해 대부분의 미국인이 떠올린 가장 일반적인 이미지가 바로 ‘스시’다. 뒤이어 자동차가 2위, 2차 세계대전이 3위, 테크놀러지가 4위, 동일본대지진이 5위다.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이지만 지금 미국인에게 일본은 자살 가미카제(神風)가 아닌 스시로 통한다. 스시타로는 그 같은 미국인의 대일관(對日觀)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곳이다. 심각하게 과거 얘기에 고심하기보다, 간단히 먹고 즐길 수 있는 스시를 통한 일본인들과의 교류 현장인 셈이다.

스시타로의 스시 세트. 미국인 기호에 맞게 크게 만들어 제공한다. ⓒphoto 유민호
스시타로의 스시 세트. 미국인 기호에 맞게 크게 만들어 제공한다. ⓒphoto 유민호

245달러 오마카세 코스

“오마카세(お任せ)라고 하면 전부 비싼 줄 알았는데 스시타로에 가니까 가격도 적절하고, 특히 양도 많더라!”

토요일 ‘해피아워 바’에서 우연히 만난 아르헨티나대사관의 젊은 외교관이 한 말이다. 오마카세는 ‘셰프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다’는 의미다. 하나씩 따로 주문할 필요가 없다. 그날 들어온 신선한 재료에 맞춰 조금씩 나눠 주는 가이세키(懷石) 스타일의 서비스다. 스시타로의 오마카세는 다섯 개 코스로 이뤄져 있다. 가격은 50달러다. 점심치고는 비싸지만, 오마카세치고는 싸다.

필자도 최근 평일 점심식사에 맞춰 스시타로를 다시 찾아가 봤다. 언제나처럼 늦은 시간인 오후 1시30분쯤이다. 손님이 드문 시간일수록 세심한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다.

일본 레스토랑의 공통점 중 하나지만 입구가 의외로 초라하다. 워싱턴 최고의 일본 레스토랑이라고 하지만 올 때마다 헤매는 곳이 스시타로다. 입구도 좁고 현란한 간판도 찾아보기 어렵다. 밖에서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는 ‘과시형’ 레스토랑과는 거리가 멀다. 일본 레스토랑은 뺄 수 있는 모든 거품을 뺀다. 현관에 들일 투자를 줄여 음식값을 낮추거나 음식의 질을 높이는 데 투자한다.

미국에 있는 일본 레스토랑의 70% 정도는 중국인이 경영하는 ‘짝퉁’이다. 엄청 싸지만, 한눈에 봐도 짝퉁임을 알 수 있다. 큰 글자에다 컬러풀한 간판을 달고 있거나 들어가는 입구가 넓고도 호화스럽다면 가짜다. 안으로 들어가서 생선 냄새가 나는 곳도 물론 가짜다. 스시 전문 레스토랑의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는 무취다. 레스토랑 안에서 생선 냄새가 난다는 것은 오래됐거나 관리를 잘못한다는 의미다. 스시타로는 식당도 1층이 아니라 2층에 뒀다. 보통 2층에 자리 잡은 레스토랑은 2류이거나 파리를 날리기 일쑤지만 스시타로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임대료를 낮추기 위해서라도 2층을 고집해왔다.

좁은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 문을 열면 곧바로 작은 바(Bar)가 붙어 있다. 한 치의 공간도 버리지 않는다.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오마카세를 시켰다. 재료 때문에 오마카세는 예약을 할 때 미리 주문해둬야 한다. 주문 손님 수에 맞춰 그날 아침 재료를 구입한다는 의미다. 오마카세의 특징은 신선함에 있다.

콩·멸치볶음·튀긴 두부로 이뤄진 에피타이저, 구운 고등어와 면 요리, 돼지고기 냄새를 죽인 일본식 동파육(東坡肉), 메인용 스시세트, 두부를 갈아 만든 아이스크림형 디저트. 5개 코스를 끝내는 데는 전부 1시간30분이 소요됐다. 즐기면서 먹으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워낙 양이 많기에 일부러 시간을 늦췄다. 전체적으로 위에 부담이 없는 음식들이다. 동파육도 기름을 빼서 담백하다. 스시는 미국인 취향에 맞게 상당히 크다. 스시의 원래 명칭은 에도마에스시(江戶前寿司)다. 현재의 도쿄를 중심으로 한 스시로, 하나하나의 크기가 작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작게 만들어 여러 가지 생선의 맛을 다양하게 즐기자는 것이 에도마에스시 요리의 진수(眞髓)다. 스시타로 스시의 크기는 정통 에도마에스시의 두 배 정도다. 코스 요리를 바꿀 때마다 차를 주문해 마셨다. 가이세키 요리의 원류는 사찰 음식에 있다. 술이 아닌 차가 기본이다.

스시타로의 메뉴를 보면 천양지차다. 12.95달러의 도시락용 점심에서부터, 평일 1일 6명에 한정된 245달러짜리 오마카세 코스도 있다. ‘노동자부터 왕까지’ 포괄하는 메뉴다. 그렇지만 전체 메뉴의 가짓수는 15개 정도에 불과하다. 음식 백화점 스타일은 아니다. 245달러 코스는 코베(神戶)의 와규(和牛)와 바닷가재를 주종으로 한다. 245달러 오마카세 요리는 코스 메뉴로는 워싱턴에서 가장 비쌀 듯하다. 고기의 양을 늘리는 식으로 조금씩 추가하면 값은 한층 더 뛴다. 언젠가 먹어 보고 싶지만, 245달러 오마카세 예약은 최소 한 달 후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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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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