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남학생들은 게임 없이 못살고 여학생들은 화장 안 하고는 못산다. 남학생들은 시험 마지막 날에는 종례시간도 못 참고 빨리 끝내달라고 아우성이다. 조금만 늦게 가면 근처 PC방에 자리가 없다며 청소도 빼먹고 튈 기세이다. 반면 여학생들은 1학년부터 화장에 관심이 많고 2학년쯤 되면 반 이상이 진한 화장을 한다. 화장을 지우도록 지도를 해도 다음 시간에 또 화장을 하고 앉아 있다.

화장이 서투르니 무조건 얼굴은 하얗게 두드리고 입술은 빨갛게 칠한다. 교실이나 학교 계단에 걸려 있는 거울 옆 벽에는 입술에 너무 많이 발라 남은 틴트(입술에 바르는 화장품) 찌꺼기를 손가락으로 바른 자국들이 무수히 찍혀 있다. 얼마 전부터 수업 중에도 마스크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있어서 아픈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진한 화장을 숨기려고 꼼수를 부린 것이었다.

이제 학생들이나 교사들이나 입술에 연한 틴트를 살짝 바르거나 볼에 비비크림을 바른 것 정도는 화장으로 치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눈에 아이라인도 그리고 마스카라도 하고 서클렌즈도 끼어 인형 눈동자를 만들어야 화장했다고 인정한다. 투명한 아기 피부를 가진 학생도, 한창 여드름이 올라와 울퉁불퉁해진 피부를 가진 학생도 쿠션(피부에 밀착시켜 잡티를 가리는 일종의 분)으로 덕지덕지 발라 가까이에서 보기 민망할 정도이다.

내 기억으로는 아이들이 학교에 화장품을 가져와 바르기 시작한 것이 1990년대 말쯤인 것 같다. 물론 그전에도 전교에서 ‘논다는 언니들’ 한두 명은 화장을 하고 다니긴 했지만 그건 정말 소수였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입시인 연합고사가 사라지고 공부를 못해도 특기 하나만 있으면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교육정책이 발표되었다. 여기에 체벌금지와 함께 아이들은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1학년 신입생인 우리 반 아이들이 모여 앉아 얼굴에 뽀얗게 분칠을 하다가 한 교사에게 끌려오는 일이 있었다. 당시는 학교에서 화장을 하는 것이, 그것도 1학년이 화장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아이들을 많이 혼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은 중학교가 아닌 초등학교에서부터 화장을 시작한다. 화장을 지우느니 학교 등교를 거부하겠다는 아이들도 생기게 되었다. 아이들은 이동수업을 하면서도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은 안 가져와도 화장품과 빗은 들고 다닌다. 필통을 열어 보면 펜이나 연필보다 화장품이 더 많이 들어 있다. 쉬는 시간에 화장을 고치면 고맙겠는데 수업 중에 돌려가면서 바르다가 빼앗기면 꼭 한마디씩 한다. “언제 줄 거예요?” “이거 뺏어서 선생님이 바르려고 그러죠?”

교사가 학생의 화장품을 압수하는 것도 ‘학생인권 침해’로 간주돼 곧 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은 아이들을 화장의 굴레에서 지키고 싶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화장은 좀 더 자신을 아름답게 보이고 싶어하는 여자의 본능이라고 하지만 그것도 남성중심사회가 만들어 놓은 이데올로기일 수도 있고 화장품 회사가 만들어 놓은 마케팅 전략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여성에게는 태어난 그대로의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사는 기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나는 외모 때문에 차별받지 않으며 능력과 성실함으로 인정받는 세상에서 내 여자 제자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강재남

서울 중계중학교 교사

강재남 서울 중계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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