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은 중학교 학생들의 3대 명절 중 하나인 ‘빼빼로 데이’이다. 학생들은 ‘밸런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와 함께 이날을 아주 중요한 날로 여긴다. 사탕, 초콜릿, 빼빼로 과자를 잔뜩 들고 와서는 서로 나눠 주고 함께 먹으면서 마치 축제인 듯 즐긴다. 빼빼로 과자를 가방과 양손에 가득 들고 온 학생들은 서로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를 견주며 자신의 우정과 인기를 가늠해 보기도 한다.

올해 11월 11일에 출근해 보니 손가락 굵기의 빼빼로 과자 한 개씩이 선생님 책상 몇 곳에 놓여 있었다. 선생님들은 수업하는 반을 추리해 보면 어떤 반 누가 과자를 선물했는지 알 것 같았지만 그걸 알면 빼빼로 과자가 ‘뇌물’이 되기에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말자며 웃었다. 방과 후 선생님들이 각자 반에서 있었던 일들로 담소를 나눌 때도 빼빼로 과자와 김영란법이 화제였다. 어떤 아이는 선생님 앞에서 빼빼로 과자를 먹으면서 “어차피 선생님은 김영란법 때문에 이것 못 드시죠?” 하면서 혼자 다 먹더란다. 또 빼빼로 과자를 자꾸 권하는 아이와 ‘안 먹겠다’고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김영란법에 걸려서 못 먹는다”고 솔직히 고백한 선생님도 있었다고 한다. 나는 저희들끼리만 먹고 있던 빼빼로 과자 하나를 빼앗아 먹으며 “뺏어 먹는 것은 김영란법에 안 걸리지?” 하며 아이들과 웃은 적이 있다.

얼마 전 한 학생이 등교하면서 사온 커피를 담임 선생님 책상에 놓으려다 서로 언성이 높아진 적이 있었다. 다혈질인 그 학생은 전날 반에서 문제를 일으켜 담임 선생님과 몇 시간 면담을 했었다. 그 학생 말로는 면담 후 밤새 생각해 보니 죄송한 생각이 들어서 커피를 사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끝까지 커피를 거절해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그 학생은 “선생님들 커피도 못 마시게 한다”며 교장실을 찾아가겠다, 교육청에 따지겠다는 등 소리를 지르다가 커피를 선생님 책상에 놓고 교실로 올라가 버렸다. 방과 후 교무실 청소를 하러 온 그 학생이 책상 위에 그대로인 커피를 발견하고는 교무실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쳤다. “아직도 안 먹었어?! 씨~이.”

요즘 학교는 ‘최순실 사태’로 어른 사회 못지않게 시끄럽다. 내가 중·고등학생 때는 나라 걱정하시는 어른들의 혼잣말에 ‘나라에 무슨 문제가 있나 보다’ 하며 어렴풋이 의구심을 품는 정도였다. 그런데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요즘의 청소년들은 어른들 못지않게 최근의 나라 일에 대해 빠짐없이 알고 있고 관심도 높다. 중학교 3학년은 11월 초가 기말시험이라 사회가 어찌 돌아가는지 모를 줄 알았는데 기말시험 후 미술 수업시간에 ‘최순실 사태’를 그림으로 표현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나를 놀라게 했다. 학생들은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아줌마를 그리며 축제 시화전에 출품할 ‘시국 개탄 시’를 쓰고 있었다. 학교 축제에 올릴 동영상을 만드는 학생들도 ‘최순실 사태’를 다루겠다고 해서 담당 선생님을 진땀나게 한다. 수업 중에 “촛불집회에 가도 되느냐”고 묻는 아이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아이들은 “촛불집회에 가고 싶은데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는다”며 아쉬워했다. 자기가 무엇을 왜 하고 싶은지 뚜렷하게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교사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다. “중학생은 아직 어리니 부모님 말씀 따르는 것이 좋겠고, 나라 일은 어른들에게 맡겨라. 정의의 이름으로 용서하지 않을 테니까!” 겨우 이 정도다.

강재남

서울 중계중학교 교사

강재남 서울 중계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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