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대교 바깥쪽에 있는 기존 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 오는 2020년까지 서해대교 안쪽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photo 평택시
서해대교 바깥쪽에 있는 기존 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 오는 2020년까지 서해대교 안쪽으로 이전할 예정이다. ⓒphoto 평택시

지난해 1월 개장한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은 총 사업비 2343억원을 들여 만든 국제여객선터미널이다. 부산 동구 초량동의 북항 3·4부두 일대에 연면적 9만3000㎡의 터미널과 함께 10만t급 크루즈선 1척을 비롯해 2만t급 국제여객선 5척을 세울 선석(船席)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 국제여객터미널은 반쪽짜리 국제여객터미널에 불과하다. 이보다 6개월 앞선 2014년 5월, 5384억원을 들여 준공한 부산항대교가 입구를 가로막고 있어서다. 북항 입구를 가로지르는 부산항대교의 선박 통과 제한높이(가항높이)는 60m. 수면에서 크루즈선의 굴뚝까지 수면 위 높이가 60m가 넘는 초대형 크루즈선들은 입항이 불가능하다. 한·중·일 동북아 노선에 취항하는 16만8000t급 ‘퀀텀오브더시즈’와 자매선박인 ‘앤썸오브더시즈’ ‘오베이션오브더시즈’는 부산항대교에 걸려 국제여객터미널 입항이 안 된다. 한 단계 아래인 13만8000t급의 ‘마리너오브더시즈’ 역시 다리 통과가 안 된다. 이들 선박의 수면 위로 드러나는 ‘선박구조물 높이(Air draft)’가 63m에 달해서다.

이를 파악한 항만당국이 부랴부랴 정밀조사를 벌여 부산항대교의 통과높이를 64m로 조금 올렸지만 이들 선박은 여전히 입항을 꺼린다. 부산항의 경우 조수간만의 차가 1.2m 정도에 불과하다. 썰물 때를 틈타 최고 67m까지 볼록 솟아오른 다리 한가운데를 통과하는 것도 아무래도 불안하다. 바닷물이 가만히 정지해 있는 것도 아니고 무리하게 입항하다가 자칫 다리를 스치기만 해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안전상 이유로 일부 선사들은 ‘항만당국 고시 기준(가항높이)보다 2m 이상 여유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자체 기준도 두고 있다. 이에 부산항대교는 “일제강점기 때 상판을 들어올릴 수 있게 만든 영도다리만 못하다”는 혹평도 듣는다.

할 수 없이 이들 선박은 부산항대교 바로 앞에 있는 컨테이너 화물부두인 감만부두에 크루즈 여객들을 하선시킨다. 비록 영도에 2007년 4월, 834억원을 들여 개장한 국제크루즈터미널이 있다고 해도 8만t급 선박 한 척만 접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싼 돈 내고 여행하는 ‘여객’들이 ‘화물’부두에 내렸을 때 받을 첫인상은 상상할 필요도 없다. 이에 항만당국은 영도에 있는 크루즈터미널 부두를 20만t 이상 선박이 기항할 수 있도록 기존 부두를 늘리고 접안시설을 보강한다고 또 425억원이 넘는 돈을 들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모든 시설에 9000억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지만, 돈은 돈대로 들고 제대로 활용조차 못 한다. 항도(港都) 부산에서 벌어지는 코미디 같은 일이다.

반쪽짜리 국제여객터미널

해양수산부 등 항만당국이 부산항의 실수를 서해에서 반복하려 하고 있다. 서해대교 바깥쪽에 있는 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을 오는 2020년까지 서해대교 안쪽으로 옮기기로 하면서다. 해수부 항만개발과의 한 관계자는 “항만기본계획에 따라 서해대교 안쪽으로 옮기고 현재 설계를 진행 중”이라며 “다만 이전 시기는 검토 중”이라고 했다.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나는 서해대교의 선박 통과 제한높이는 62m로 64m로 상향조정된 부산항대교보다도 낮다. 자연히 부산항대교 아래를 지나가지 못하는 크루즈선은 서해대교도 지나가지 못한다. 항만당국은 평택항 국제여객부두를 신설하는 데 1317억원과, 그 위에 연면적 1만2900㎡의 국제여객터미널을 짓는 데 715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은 모두 2032억원에 달하는 돈을 쓰고도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처럼 반쪽짜리 국제여객터미널로 전락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사실 2000년 준공된 서해대교는 당시만 해도 선박 통과를 고려해 통과높이 62m로 제법 높게 지어놓았다. 이보다 9년 뒤인 2009년 준공한 영종도와 송도를 연결하는 인천대교의 통과높이도 66m에 그친다. 서해의 조수간만 차이를 이용해 좀 더 안전하게 입항하는 것도 가능하다. 교량의 선박 통과높이는 해당 수역의 수위가 가장 높을 때를 기준으로 측정한 높이다. 서해대교 입구 아산만의 조수간만 차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인 8m에 달한다. 바닷물이 빠질 때를 이용하면 어느 정도 통과높이가 확보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경우 선박이 항만에 입항하기 위해 서해대교 바깥에서 바닷물이 빠지기를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자연히 시간이 돈인 선사 입장에서는 서해대교 통과를 꺼릴 수밖에 없다. 바다에 오래 머물수록 선사는 운항비 부담이 커지고, 선박회전율이 떨어지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현재 한·중 노선을 오가는 선사들은 과당경쟁으로 인한 낮은 운임으로 전체적으로 경영 상황이 좋지 않다. 이 같은 이유로 평택항에 취항하는 기존 선사들은 “항해 시간이 길어진다” “내항에 깊숙이 들어가지 않는 현 위치에 신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해수부의 계획에 줄곧 반대해왔다.

심지어 일부 선사는 “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을 서해대교 안쪽으로 옮길 경우 서해대교 바깥의 당진항으로 기항지를 옮길 것”이라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평택~옌타이(烟台) 항로를 오가는 연태훼리의 한 관계자는 “시간도 늘어나고 서해대교 통과에 따라 예인선을 추가로 붙여야 해 비용이 늘어날 수도 있다”며 “항만당국과 지금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선사들의 강력한 반발에 해수부는 현재 주춤한 상태다. 평택지방해양수산청 항만건설과의 한 관계자는 “항만건설 기본계획상에는 옮기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현재 추가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말을 아꼈다.

현재 한·중 노선을 다니는 한·중 페리의 주력은 주로 3만t급 이하 선박이다. 한·중 교류 폭증에 따라 더 큰 선박이 투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서해대교 아래로 자유로운 통항이 가능한 선박은 5만t급 이하다.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는 선박은 갈수록 대형화를 거듭하고 있다. 평택항은 동해 속초항과 함께 해수부의 ‘크루즈항만 다변화’ 정책에 따라 기존의 부산항, 인천항, 제주항에 더해 추가 크루즈항만 지정이 유력한 곳이다. 특히 크루즈선의 대형화 속도가 빨라 세계 1위 크루즈선인 22만6000t급 규모의 ‘하모니오브더시즈’의 선박구조물 높이가 무려 72m에 달한다. 2, 3위인 22만5000t급 자매선박 ‘얼루어오브더시즈’ ‘오아시스오브더시즈’ 등도 비슷한 수준이다.

부산항대교, 서해대교를 비롯해 국내 75개 해상교량 가운데 이들 선박이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는 다리는 광양항과 여수를 잇는 통과높이 80m의 ‘이순신대교’ 하나밖에 없다. 크루즈 선사들은 지금도 기존 선박보다 훨씬 더 크고 높은 22만7000t급의 크루즈선을 건조 중이다. 특히 중국의 크루즈 열풍에 따라 더 큰 크루즈선 출현은 시간 문제로, 이 경우 국내 항만은 신흥시장을 고스란히 놓칠 수밖에 없다.

교량으로 물길이 막히는 것은 고질적인 문제다. 일례로, 한강만 해도 31개에 달하는 다리들이 겹겹이 쌓인 장벽과 같이 물길을 가로막고 있다. 강 위에 띄울 수 있는 것은 유람선과 수상택시가 고작이다. 서해대교 역시 평택 쪽은 그나마 서해대교 아래로 물길이 뚫려 있지만, 당진 쪽은 촘촘한 교각들이 마치 쇠창살처럼 안성천과 삽교천 물길을 가로막고 있다. 외국에서는 교량보다는 선박 통행에 방해가 안 되는 해저터널과 하저터널을 뚫는 것이 추세다. 국내에서는 건설비가 싸고 시공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교량 선호 현상이 여전하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은 이렇게 물길을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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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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