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 때 김담이 편찬한 역법서 ‘칠정산 내편’. ⓒphoto 고등과학원
조선 세종 때 김담이 편찬한 역법서 ‘칠정산 내편’. ⓒphoto 고등과학원

서울에서 자동차로 2시간30분 거리에 있는 경북 영주시. 최근 인구 10만명의 소도시에 국내외 유명 천문학자들이 운집했다. 미국과 중국을 비롯해 멀리는 우즈베키스탄까지 13개국에서 온 18명의 외국 천문학자들도 있었다. 이들이 영주에 모인 것은 영주 출신의 조선 초 천문학자 김담(金淡·1416~1464) 선생의 탄신 6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11월 29일, 김담 탄신 6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열린 영주의 그랜드컨벤션에는 이들 외국 학자들을 비롯해 한복 두루마기를 걸친 예안(선성) 김씨 종친회원과 영주 일대 유림(儒林) 300여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외국 학자들은 김담의 고향인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에 있는 종택(宗宅)을 둘러보고, 이튿날에는 영주시 관내의 국내 최초 서원인 소수서원 옆 소수박물관에 모여 학술세미나를 이어갔다. 김담의 19대 주손(胄孫) 김광호씨는 “우리 선조(김담)와 칠정산을 함께 만든 이순지는 그간 드라마 등에서도 종종 소개됐으나, 김담 선생은 나이가 열 살 아래인지라 이순지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며 “예안 김씨 문중 차원에서 김담 선생의 선양사업을 펼치지 못해 자책하던 차에 이런 행사를 열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영주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영주시도 발벗고 나섰다. 고등과학원(KIAS)과 함께 이번 행사를 주관한 영주시는 영주 출신 천문학자 김담의 탄신 600주년을 맞아 수년 전부터 다양한 준비를 해왔다. 영주시는 2014년 중국 안후이성 허페이의 중국과학기술대(USTC)에서 열린 ‘동방천문학사 국제회의’ 때도 시 공무원들을 파견할 정도로 관심을 보였고, 당시 영주시 소수박물관의 관계자는 김담의 ‘별자리지도’를 소개해 주목을 끌었다.

영주문화예술회관은 지난 10월 ‘김담, 조선의 하늘을 열다!’란 제목의 뮤지컬을 공연하기도 했다. 이 뮤지컬은 역시 영주 출신으로 조선 왕조의 기틀을 설계한 정도전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정도전’을 제작·감독한 최대봉씨가 대본을 썼다. 장욱현 영주시장은 “영주는 성리학을 처음 도입한 회헌 안향 선생과 조선 500년 유교 국가의 초석을 다진 삼봉 정도전 선생을 비롯해 우리나라 천문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놓은 김담 선생을 배출한 유서 깊은 고장”이라며 “이번 학술대회로 김담 선생의 삶과 천문학자로서의 업적이 다시 한 번 조명될 것”이라고 했다.

김담 탄신 600주년 기념사업회 송상용 회장에 따르면, 천문학은 ‘제왕(帝王)의 학문’이다. 당시만 해도 왕조를 개창하면 주력 산업인 농사를 짓는 데 필수적인 달력을 정비해 절기를 나누고, 기후를 예측하는 것이 기본 임무였다. 이에 역법은 천하질서의 중심에 있는 황제만이 오직 반포하는 것이었고, 중화적 조공질서 아래 제후국에 불과했던 한반도의 역대 왕조는 이를 받아서 사용해왔다. 금의 대명력(大明曆), 원의 수시력(授時曆), 명의 대통력(大統曆), 청의 시헌력(時憲曆) 등이다.

경북 영주에서 열린 김담 탄신 600주년 국제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나일성 연세대 천문학과 명예교수. ⓒphoto 이동훈
경북 영주에서 열린 김담 탄신 600주년 국제학술대회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나일성 연세대 천문학과 명예교수. ⓒphoto 이동훈

우리나라 천문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청나라가 망하고 ‘양력’으로 불리는 ‘그레고리력’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소위 ‘음력’으로 불리는 이들 달력이 세상의 질서를 유지해왔다. 국제학술대회를 조직한 별똥 나일성 연세대 천문학과 명예교수(과학문화진흥원 이사장)는 “중국에서 베이징의 각국 외교사절들을 한곳에 불러모아 새로 나온 역서를 배포하는 ‘반삭(頒朔)’이란 의식이 있었다”며 “이때 배포한 역서 수량만 6만7000권에 달했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에서 고생 끝에 받아온 달력이 조선의 절기와 기후에 적합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반도와 그나마 가깝다는 산둥성(山東省) 일대를 표준으로 삼았는데, 실제와 차이가 컸다. 게다가 한족(漢族) 농민반란군이 세운 명나라의 역법은 색목인(色目人)을 통해 선진 이슬람력을 일찍 도입한 몽골족의 원나라에 비해서도 후진 면이 있었다. 명나라에서는 당시 조선을 비롯해 몽골, 만주, 류큐(琉球·오키나와), 안남(베트남) 등에 달력을 보급했다. 특히 10권만 보낸 안남·류큐 등에 비해 조선에는 100권을 보내면서 나름 대접을 했지만 애물단지와 같았다. 더욱이 조선 왕조 입장에서도 매년 베이징에 사신을 보내 역서를 받아오는 길도 멀고 험할 뿐더러, 이를 한양으로 가져온 뒤 다시 인쇄해 조선 8도에 재배부하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학자들은 “당시 50만부 정도를 배부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이에 조선 세종은 자체적인 달력을 제작해 중국산 역법의 정확성을 개선해 농업생산력을 높이고, 역서 배부에 따른 재정적 부담을 줄이려고 했다. 이때 천문기기 제작과 역법 마련에 투입된 인사가 이천, 장영실, 김돈, 정인지, 김담, 이순지 등 조선 최고의 과학자들이다. 특히 계산에 능했던 김담과 이순지가 역법 제작에 투입된 이후에는 활기를 띠었고 해와 달, 5행성(금성·목성·수성·화성·토성) 등 ‘칠정(七政)’의 움직임을 계산한 ‘칠정산 내외편’이란 조선의 현실에 맞춘 자체 역법을 제작할 수 있었다. ‘칠정산 내편(內篇)’은 수시력과 대통력을 한양(서울) 위도에 맞추어 교정한 것이고, ‘칠정산 외편(外篇)’은 ‘회회력(回回曆)’이라고 불린 이슬람력을 조선의 실제 절기에 맞춰 교정한 것이다. 이에 이순지와 함께 칠정산을 만든 김담은 “한양의 일출과 일몰 시간을 기준으로 한 자주적인 조선 천문학의 개척자”란 평가를 듣는다.

결국 ‘조선 천문학의 개척자’로 추앙받는 김담의 성과가 600년 만에 고향 영주에서 재조명된 것이다. 영국 더햄대의 리처드 스티븐슨 교수는 논문을 보내 “조선시대에 이룩한 가장 중요한 과학적 성과가 무엇일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육안으로 관찰되는 각종 천문 현상을 기록한 방대한 기록물이라고 말할 것”이라며 “고려시대와 비교해서 그 양이 월등하게 많을 뿐만 아니라 매우 자세하여 현대과학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나일성 명예교수는 “시간을 관장하는 것은 중국 황제의 고유권한이었는데 이에 도전한 것은 정치적으로도 대단한 일이자, 복잡한 수식계산을 해낼 실력이 있었다는 것”이라며 “김담을 발탁 기용한 세종대왕의 용단이 15세기 세계 천문학사를 빛냈다”고 평가했다.

키워드

#역사
이동훈 기자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