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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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둘째 아이 방에서 알람이 울린다. 나는 이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일어나서 도둑고양이처럼 조용히 뉴스를 보고 있는 중이다. 10여분 후 2층이 소란해진다. 이제 첫째와 셋째도 잠을 깬 모양이다. 순식간에 집안이 부산스러워진다. 우리집의 블랙프라이데이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대단한 하루를 위해 우리는 나름의 풍성한 추수감사절 만찬을 전날 이른 시간에 마쳤고 모두들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전 세계인들의 쇼핑데이로 알려져 있는 블랙프라이데이가 미국 최고의 쇼핑데이로 등극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물건을 서로 구매하기 위해 난투극을 벌이기도 하고, 때로 살인까지 벌어지는 이날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에 비해 실속은 그리 크지 않았다는 말이다. 2002년까지 미국에서 일 년 중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한 날은 크리스마스 직전의 토요일이었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직전에 쇼핑을 많이 하는 경향 때문이었다. 그런데 2003년 처음으로 블랙프라이데이 매출이 크리스마스 직전 토요일 매출을 추월한 다음, 2004년을 제외하고 2005년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쇼핑데이로 자리 잡고 있다.

블랙프라이데이가 추수감사절 다음 날 농한기로 접어들어 더 이상 노예가 필요 없어진 농장주들이 노예를 시장에 내다팔면서 생겼을 것이라는 추정은 틀린 것이다. 사람들의 입에 블랙프라이데이가 오르내리기 시작은 것은 노예 해방이 이뤄진 때로부터 1세기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 말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흔한 설명 중 하나가 바로 회계장부의 손익 표기가 이날부터 붉은색(적자)에서 검은색(흑자)으로 바뀌기 때문에 블랙프라이데이라고 한다는 설이다. 소매상들이 거의 일 년 내내 적자에 시달리다가 추수감사절 다음 날부터 판매고가 올라가면서 비로소 흑자로 전환하여 이 흑자가 연말까지 계속 이어진다.

미국의 문서에 블랙프라이데이가 최초로 등장한 해는 1951년이다. 당시만 해도 추수감사절 다음 날을 유급휴가일로 인정하는 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그런데 모처럼 추수감사절에 가족들이 모여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신 다음 날 하루 쉬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 그래서 많은 근로자들이 이날 하루 무단결근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대개 무단결근의 이유는 몸이 아프다는 것이었는데 블랙프라이데이라는 말을 ‘공장 관리와 유지(Factory Management and Maintenance)’라는 잡지에서 최초로 사용한 머피의 다음 칼럼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효력 측면에서 추수감사절 다음 금요일보다 강력한 것은 임파선 전염병 정도일 것이다. 적어도 ‘블랙프라이데이’가 다가올 때 생산력이 메말라버린 사람들의 느낌이 그러하다. 가게의 선반은 절반이 비어 버렸지만 모든 결근자가 아프다고 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머피는 블랙프라이데이라는 용어를 그 이듬해인 1952년 칼럼에서도 한 번 더 사용하였다.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블랙프라이데이의 등장은 아마도 필라델피아 경찰이 먼저인 것 같다. 1961년 무렵까지 추수감사절 다음 날, 필라델피아 도심지로 몰려드는 쇼핑객들과 차량 홍수로 경찰이 몸살을 앓게 되면서 이날을 가장 골치 아픈 날이라는 의미의 블랙프라이데이 혹은 블랙새터데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필라델피아 불러틴’ 신문의 기자 조셉 배럿(Joseph Barret)이 1994년 그의 칼럼에서 1960년대 필라델피아 경찰들 사이에서 유명세를 떨쳤던 블랙프라이데이에 대해 소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이후 점진적으로 이 용어는 크리스마스 쇼핑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라는 일종의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아울렛 휩쓸고 간 중국인 쇼핑족

이렇게 새벽부터 서두르는 이유는 첫째 쇼핑객이 아무래도 조금 덜 모여들어서 조금이라도 여유 있게 쇼핑을 할 수 있고, 둘째 넘치는 차량과 제한된 주차공간 탓에 조금만 늦어도 주차를 할 수 없으며, 셋째 매장이 보유하고 있는 재고가 어느 정도 제한이 있기 때문에 원하는 색상과 사이즈의 제품을 구매하려면 서두를 수밖에 없으며, 넷째 일종의 명절치레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소매점들이 금요일 새벽 6시에 영업을 시작했지만 2014년부터는 대형 매장들 중심으로 아예 추수감사절 당일 오후 6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곳도 나타났다. 매사추세츠주와 같은 곳에서는 영세 소매상 보호를 위해 대형 쇼핑센터는 반드시 금요일 오전 6시에 영업을 시작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올해도 예외 없이 쇼핑객들 간의 다툼으로 2명이 사망하는 등 사고가 이어졌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바로 상상을 초월하는 할인 때문이다. 한정된 물품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정상 판매가의 20~30% 정도에 팔리는 대형 텔레비전, 컴퓨터 등을 서로 구매하기 위해 밤샘 줄 서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블랙프라이데이의 명성도 어쩌면 기억 속에서 사라질지 모른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 사이버먼데이 때문이다. 온라인을 통한 구매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추수감사절 연휴 기간에 크리스마스 쇼핑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월요일 사무실에 출근하여 온라인으로 쇼핑하는 것을 ‘사이버먼데이’라고 하는데, 스마트폰이 보급된 지금은 굳이 월요일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할 필요 없이 아무 때나 쇼핑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뉴욕, 뉴저지 인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우드버리 아울렛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쇼핑 장소가 되어 버렸다. 이곳을 방문하면 마치 맨해튼에 있는 것처럼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가장 눈에 많이 띄는 사람들이 중국인이다. 대형 쇼핑 캐리어를 끌고 다니면서 유명 브랜드 제품을 거의 싹쓸이하다시피 사간다.

우리가 새벽 6시 조금 전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도 밤샘 쇼핑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수많은 중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전 10시가 지나면서 눈에 띄게 쇼핑객이 늘어나 매장마다 입장을 위해 입구에 줄을 길게 늘어서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면 분실 우려가 있고 쾌적한 쇼핑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4시간여의 쇼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보니 주차장도, 고속도로도 이미 차로 만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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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현 경기텍스타일센터 뉴욕사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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