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교실을 둘러보니 빈자리가 눈에 들어온다. ‘범이’(가명)의 자리다. 조회를 끝내고 교무실에 와서 범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을 통해 나오는 컬러링의 노랫말이“됐어 이제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 이젠 족해 /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이 시꺼먼 교실…”.

범이는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오는 것을 힘들어 했다. 범이의 부모님은 이혼 후 몇 년이 지났는데도 범이의 양육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모양이다. 재혼한 아버지는 범이가 새엄마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엄마와 생활하라고 하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생활고에 시달려 아버지 집에 가서 살라고 한단다. 어쩔 수 없이 어머니 집에서 사는 범이는 하루라도 빨리 독립하고 싶어 했다. 어머니와 마주치는 것이 싫어서 밖에서 늦게까지 놀다가 새벽에 들어갔고, 늦게 일어나는 일상을 반복했다. 어쩌다 학교에 나와서는 주로 엎드려 있다.

범이의 빈자리가 보이면 전화를 걸고, 전화를 받지 않으면 이런저런 문자를 남긴다. ‘오늘은 몹시 추운데, 아픈 곳은 없니?’ ‘굶지 말고 학교에 나와서 점심이라도 먹어라.’ ‘학급대항 축구대회가 있는데 나와서 반을 위해 선수로 참가해줘라,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 ‘수행평가 기간인데 학교에 나와서 기본점수라도 받는 것은 어떠니?’ 그리고 쉬는 시간마다 전화를 건다. 범이를 깨우는 일종의 알람이다. 어쩌다 전화를 받으면 범이는 ‘알겠다’고 하고 1시간쯤 지나 학교에 나타난다. 오전에 전화를 받은 날은 늦게라도 학교에 나와 점심이라도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어느 날 범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주셔서 감사해요.” 마음이 아팠다. 범이는 고모님이 좋고, 고모님도 자신을 아끼고 좋아한다며, 사실은 고모 집에서 살고 싶다고 어렵게 털어놓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범이 고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사정 이야기를 하고, 학교에 와주실 수 있냐고 말씀드렸다. 다음날 고모님이 학교에 나오셨다. 연세가 꽤 있으시다. 자신이 범이 아버지의 제일 큰 누나라며, 범이 아버지가 딸만 여럿 있는 집에 늦둥이로 태어나 누나들의 사랑을 받기만 해서 자기밖에 모른다고 하셨다. 그리고 범이를 보자 눈물을 흘리셨다. 범이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범이를 자신의 집에서 보살피겠다고 하셨다. 며칠 후 범이 부모님과 고모님, 범이와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범이는 고모님 집에서 학교에 다니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부터 범이는 고모님과 함께 학교에 나오기 시작했다. 아침이면 고모님이 직접 범이를 데리고 오셨다가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범이를 데리고 가셨다. 범이는 고모네 식구들과 저녁식사를 하고, 사촌형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점점 달라졌다. 잠드는 시간도 빨라졌다. 학교에도 제 시간에 등교했고, 표정도 조금씩 밝아졌다. 수업 참여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고모에게 믿음을 받은 범이는 고모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으로 변했다.

학교생활을 힘들어 하는 학생들은 대체로 가정환경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상처받고 마음이 가난한 학생들에게 가장 큰 힘은 믿음이다. 어딘가에 자신을 믿어주고 힘이 되어주는 ‘인생에 의미 있는 한 사람’이 있다면 그 학생은 주저앉지 않는다. 포기 직전까지 간 학생이라도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 곁에서라면 그 믿음에 어울리는 의미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오봉학 서울 동성중학교 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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