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 ‘문화대학’ 내에 설치된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사업(GYBM)’ 6기생들. 지난 9월  GYBM 설립자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가운데)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하노이 ‘문화대학’ 내에 설치된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사업(GYBM)’ 6기생들. 지난 9월 GYBM 설립자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가운데)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정확히 372일 만이다. 목적지는 하노이 ‘문화대학’에 있는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사업(Global Young Business Manager·GYBM)’.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만든, 한국 청년들을 위한 10개월짜리 미니 MBA코스다. ‘세계경영’은 김우중 회장을 상징하는 키워드다. 21세기 들어서는 상식이 된 말이지만 이미 1990년대부터 대우그룹의 이념이자 방향으로 자리 잡아왔다. 그 같은 세계관에 기초해 베트남·미얀마·인도네시아를 무대로 한 청년창업 교육 현장이 GYBM이다.

베트남의 경우, 2012년 이래 매년 90여명 정도가 이 코스를 졸업했다. 베트남어와 비즈니스 영어를 배우고 베트남과 글로벌 경제를 실전 무대 삼아 가르치고 있다. 지난 5년 동안 GYBM이 개설된 3개국에서 400명(베트남 310명, 미얀마 45명, 인도네시아 45명)의 졸업생이 배출돼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비즈니스맨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졸업생의 90% 정도가 취직한 상태다. 동남아에 진출한 한국 기업만이 아니라 외국계 기업에서도 일하고, 서울로 돌아와 근무하는 사람도 있다.

최근 필자는 하노이 GYBM에서 일주일간 강의를 했다. 국제 정세와 ‘세상을 대하는 정신자세’가 강의 주제였다. 이 강연은 50대인 필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대한민국 2030세대의 생각과 얘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년 전에도 경험했지만 현장감과 진지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던 어떤 ‘기운’ 같은 게 있었다.

‘미래’라는 단어는 2016년 겨울 한국 사회에서 실종된 말 중 하나다. 과거와 눈앞에 닥친 엄청난 난제(難題)에 빠져 정처 없이 둥둥 떠다니는 ‘난파선 국가’로 전락한 느낌이 든다. 광장의 촛불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칠흑 같은 어둠이 대한민국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곳곳에서 울리는 경고음에서 알 수 있듯, 위기는 도처에서 동시에 밀려들고 있다. 그같은 상황에서 GYBM은 외롭게 내일을 준비하고 있는 등불처럼 느껴졌다. 어둠이 아닌 밝음, 과거나 눈앞의 문제가 아닌 장기적 관점의 내일을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는 곳이다. ‘청년과 미래’라는 말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뛰기에 충분할 것이다. 즐겁고도 설레는 마음으로 하노이를 찾았다.

졸업생 90%가 취직

한국은 초겨울이지만, 하노이는 여전히 뜨겁다. 하노이의 대낮은 한국의 초여름 날씨 같다. 세계 125개 나라를 다녀봤지만, 삶에 대한 맥박지수로 따지면 베트남을 능가하는 나라도 드물 듯하다. 활기가 넘치고 바쁜 곳이 베트남이다. 평균 분당 70 정도 맥박이 뛴다고 할 때, 베트남인들은 거의 배 수준에 이르지 않을까? 아침 5시부터 아이들의 아스팔트 축구를 볼 수 있는 나라가 베트남이다.

베트남은 1인당 국민소득이 1910달러(2013년 기준)라고 하지만, 매일 신선한 꽃으로 집안을 장식하는 심미안(審美眼) 국가이기도 하다. 술이 없는 한낮의 가라오케도 일상사다. 대낮이 되면 거리 전체가 베트남 국수 포(Pho)와 과일 행상들의 좌판으로 변한다. 한국에서 이미 사라진 가위 든 엿장수들도 눈에 띈다.

해가 넘어가면서 맥박지수는 한층 더 상승한다. 도시 전체가 들썩인다.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함께 열대성 식물들이 내뿜는 특유의 향이 밤거리를 휘감는다. 하노이 중심 호수인 호안끼엠 주변은 베트남의 상징인 시클로와 오토바이로 가득 찬 원형 경기장으로 변신한다. 프랑스 항전(抗戰) 70년을 기념하는 붉은 휘장도 드리워져 있다.

뛰는 맥박지수에 걸맞게 베트남인들의 미래에 대한 확신도 높아지고 있다. 1년 전에도 묵었던 호텔 지배인에게 베트남의 미래를 물어봤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좋아질 것이다. 부패와 거짓말도 많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베트남은 희망이다. 다음 달에 아내와 아들 둘과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는 불과 5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올해 GYBM 방문 기간 중 가장 주목한 것은 졸업생들의 현주소다. 지난해 인연을 맺은 베트남 GYBM 5기생은 물론, 2012년 GYBM 탄생 이래 사회로 진출한 졸업생들의 현황이 궁금했다. 470명 졸업생은 어떤 곳에서,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자세로 일하고 있을까? 10개월 과정을 마친 뒤 펼쳐지는 사회인으로서의 현실은 과연 어떤 것일까?

먼저 올해 5월 베트남 전역에 퍼져나간 5기 졸업생 96명에 대해 알아봤다. 대략 90% 정도가 취직한 상태였다. 10%는 다른 일을 준비하거나 서울로 돌아간 상태다. GYBM 성강민 팀장의 말이다.

“연수 과정이 끝난 직후에는 취업률은 100%입니다. 체력, 근무조건, 업무 내용 등에 관한 문제로 10% 정도가 중간에 그만둡니다. 90%대 취업률은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GYBM은 100%를 지향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최소한 2년은 꾹 참으라는 것이 저희들의 의견입니다. 이미 배출된 졸업생을 기준으로 삼자면, 취업 후 대략 3년이 지나면 베트남에서의 완전 정착이 이뤄집니다.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버리고 베트남을 기반으로 한 자신만의 비즈니스에 주력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아직 시작이지만, 졸업생 중 3명은 이미 창업에 돌입했습니다. ‘사장님’ 졸업생들이 앞으로 수직상승할 겁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하노이 주변에서 일하는 GYBM 졸업생 6명을 하노이로 초대했다. 이들이 근무하는 회사는 보통 하노이에서 50㎞ 정도 떨어져 있다. 그러나 비포장도로가 많기 때문에 시내로 나오기까지 보통 2시간 가까이 걸린다. 취직한 지 6개월에 불과한 정신없이 바쁜 신입사원들이지만, 소속 회사 직원이 아닌 익명의 GYBM 졸업생 자격으로 인터뷰에 응해줬다.

강의를 듣고 있는 GYBM의 6기 수강생들.
강의를 듣고 있는 GYBM의 6기 수강생들.

섬 같은 공장서 새벽까지 일해

“해가 넘어간 뒤 공장 주변을 보면 적막한 어둠 그 자체입니다. 그 흔한 베트남식 카페도 없습니다. 농담이지만, 광활한 행성에 관한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 속의 한 장면과 같은 곳이라 말합니다. 섬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너무 동떨어져 있기에 택시를 불러도 안 오려고 합니다. 주문이 밀릴 때는, 심야근무도 보통입니다. 물량도 많지만, 베트남 현지인들의 업무 스피드가 느리기 때문에 최종 포장작업이 새벽 5~6시에 끝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노이 인근 한국 봉제공장에서 보급·식사·회계 업무를 하고 있는 30대 초반 졸업생 이모씨의 분투기다.

졸업생들을 만나서 얘기하는 동안 불과 1년 만에 6명 전원이 성숙한 어른으로 변한 듯 느껴졌다. 자세, 표정, 말투, 생각에서 모두 관록이 붙었다고나 할까? 신발공장에서 일하는 20대 후반 청년 김모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전체 직원은 800명 정도지만 한국인은 10명 정도에 불과합니다. 제가 막내이기에 베트남 직원들을 위한 공장 내 모든 일을 전부 책임져야 합니다. 800명을 관리하는 총사령관과 같습니다. 베트남어를 할 줄 알기에 이들 모두를 상대해야만 합니다. 식수 조달에서부터 쌀·반찬 관리까지 담당합니다. 물론 물건 납품에 따른 물류이동도 다룹니다. 조금만 틈을 보여도 지렁이가 들어 있는 식수가 등장합니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습니다.”

김씨는 180㎝의 큰 키에 건강한 모습이다. 몸 하나로 버텼지만, 일에 치여 과로로 쓰러진 적도 있다고 한다. “베트남은 아직 정전이 다반사입니다. 자동발전기도 있지만, 직접 확인하지 않으면 잘 돌아가지 않습니다. 정전이 되는 순간 발전소로 가야 합니다. 숨 넘어가듯 뛰어가서 발전기를 가동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베트남인들도 열심히 정성을 다합니다. 작은 사회 하나를 책임지는 해결사라 보면 됩니다.”

GYBM 졸업생들의 모바일 소셜네트워킹(SNS)에 대한 반응은 필자가 특이하게 생각한 부분 중 하나다. 메신저를 보낼 경우 답이 오기까지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린다. 필자가 상대한 그 어떤 한국인들보다도 대응속도가 늦다.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1시간은 보통이고 하루가 지난 뒤 오는 경우도 있다. SNS의 메시지를 들여다볼 틈도 없다는 뜻일 것이다. 베트남에서 만난 GYBM 졸업생들은 한국의 그 어떤 2030세대보다도 바빴다.

GYBM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졸업생들의 베트남어 능력이다. 10개월 연수기간 중 3분의 2 정도를 베트남어 공부에 투자한다. 베트남 현지인과의 언어소통을 통해 기업의 생산력과 활력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의류업체에서 일하는 정모씨의 말이다. “한국인이 보기에 베트남인들의 업무처리 능력이 느리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핑계나 이유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면 ‘절대’ 안 됩니다. 베트남인들은 아주 조용히 얘기를 나눕니다. 누구로부터 큰소리로 모욕을 당하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한국식 ‘빨리빨리’나 핏대로 대할 경우 ‘안컹비엣(Anh khng bit)’

이란 불만을 유도할 뿐입니다. 베트남인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는 상투어 중 하나인 ‘난 몰라!’라는 말입니다. 자존심이 상하면 뭘 물어도 ‘안컹비엣’이라 말하면서 소극적으로 나옵니다. 문제가 생기면 베트남어로 조용히 얘기를 나누면서 고충을 들어줘야 합니다.”

대학에서의 전공과 베트남 취업 현장에서의 관계가 어떤지 알아봤다. “제로부터의 시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하노이 주변 완구공장에서 회계·총무 업무를 맡고 있는 성모씨의 설명이다. “원래 복수 전공으로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회계 자격증은 없습니다. 회사에 들어온 뒤 회계에 처음으로 손을 댔습니다. 공부하면서 회사를 다니고 있어요. 어려운 점도 많지만, 배울 것이 많고 배워야 하는 것이 넘친다는 점에서 오히려 감사를 드립니다. 자신과의 싸움이라고나 할까요?”

베트남 현지 진출 한국 기업의 대부분은 노동집약형 산업에 주력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인건비 절약 비즈니스인 셈이다. 많아 봐야 총 직원 가운데 10%, 적게는 2~3% 정도가 한국인이다. 일이 몰리면 한국인들끼리 총력으로 대처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은 자국민에 대한 근로기준법을 엄격히 시행한다. 의류업체에서 공장장을 맡고 있는 졸업생 이모씨의 얘기를 들어보자.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해 전기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전기 관리를 제가 해야 하는데 전기에 관한 지식도 없거니와, 베트남어로 듣고 설명하는 것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현장을 지키면서 전선시설 보수나 유지에 대해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가 없습니다. 잘못하면 상사로부터, 베트남인으로부터도 욕을 얻어먹게 됩니다. 공부를 하고 또 하면서 대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GYBM 수강생들이 이용하는 구내식당.
GYBM 수강생들이 이용하는 구내식당.

30년 뒤 쏟아질 제2의 김우중들

관리직으로 들어간 한국 청년의 나이나 경험이 베트남인보다 일천하다는 점도 현장에서 부딪히는 시련이다. 신발공장에서 품질관리를 담당하는 서모씨의 말이다. “북부와 달리 남부 베트남인의 경우 영어도 잘합니다. 나이도 많지만, 현장 경험도 풍부하기에 얕보고 달려들었다가는 낭패를 보기 일쑤입니다. 베트남어는 물론 영어도 열심히 해야 하고 서로 존중하는 모습도 항상 보여줘야 합니다. 저의 경우 아예 처음부터 스스로의 한계를 시인하면서 배우겠다는 자세로 대했습니다. 술도 마시면서 덜떨어진 코미디언 행세도 했습니다. 거꾸로 호감을 얻어낼 수 있었고, 결국 생산성 향상과 회사 내 화합에 기여한 듯합니다.”

하노이 GYBM 졸업생의 주 무대는 베트남 전역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종적·횡적 네트워크는 그 어떤 한국인 아니 외국인보다도 강력하다. 매년 쏟아지는 GYBM 졸업생을 통해 청년 네트워크는 한층 더 가속화될 것이다.

완구공장 관리직으로 일하는 한 졸업생은 말한다. “바쁘고 멀리 떨어져 있기에 친구들과 자주 보기가 어렵습니다. GYBM 기수가 있기는 하지만, 나이나 대학 졸업연도 등을 감안해 서로가 예의를 차리는 관계입니다. 메신저나 이메일을 통해 서로 간에 정보를 교환하고, 가끔씩 토요일에는 시내로 와서 함께 놀면서 밤을 새웁니다. 일요일 아침에는 모두 나가서 운동도 합니다. 골프가 아니라 축구입니다. GYBM 졸업생들의 궁극적 목적은 창업입니다. 지금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언젠가 이룰 꿈을 위해 부지런히 정보도 모으면서 네트워크를 구축해가고 있습니다. 서로 도와야겠지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베트남에도 그 여파가 밀어닥쳤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미국 탈퇴가 확실해지면서 역내 최대 수혜국으로 점쳐졌던 베트남의 미래가 불투명해진 상태다. 그러나 그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2016년 초겨울 베트남으로 몰리는 투자의 손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은 그중 1위 투자국에 해당한다. 2016년 2분기 기준으로 한국은 누적 투자액 485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2위인 일본은 398억달러, 3위인 싱가포르는 379억달러다.

한국인 입장에서 볼 때 베트남은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Wild Wild West)’, 즉 비즈니스 신천지에 해당한다. 그러나 기술집약적인 일본에 비해 노동력 중심 산업에 올인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GYBM 졸업생들은 노동에서 기술자본집약 산업으로 연결해줄 한국 해외기지의 업그레이드를 담당할 주역이다. 김준기 베트남 GYBM 원장은 말한다.

“이제 막 시작입니다. 졸업 후 3년 뒤면 자기 분야에 달통하게 됩니다. 이후 10년 뒤면 자기 사업에 투신하게 되고, 30년 뒤에는 제2의 김우중이 수십 명씩 쏟아질 겁니다. GYBM은 미얀마, 인도네시아에도 있습니다. 1000명 단위의 졸업생들이 쏟아내는 해외 개척사가 동남아시아만이 아니라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될 겁니다.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첨단 글로벌 기업도 나올 겁니다. GYBM 청년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청사진이자 미래의 주인공입니다. 지켜봐주십시오.”

유민호 퍼시픽21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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