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4일 서울 종로구의 셰어하우스 ‘우주’ 3호점에서 만난 김정현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2월 14일 서울 종로구의 셰어하우스 ‘우주’ 3호점에서 만난 김정현 대표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photo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하는 사람, 기혼자는 지원할 수 없습니다. 이 조건에 부합하는 만 35세 미만인 사람이라면 지원 가능합니다. 친화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더욱 환영합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한 구인광고가 올라왔다. 까다로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뜨거웠다. 경쟁률은 4대 1을 기록했다. 지원자들은 주로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들이었다. 대체 무슨 광고였기에 젊은이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일까. 이 광고는 구직광고도 결혼할 대상을 찾는 구인광고도 아니었다. 바로 셰어하우스의 하우스메이트를 찾는 광고였다. 셰어하우스란 다수가 한 집에 살면서 침실은 각자 따로 사용하고 거실과 화장실 등은 공유하는 생활방식이다. 1~2인 가구가 많은 일본, 캐나다 등에 많은 주거 형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 청년 1인가구 주거빈곤율은 36.3%이다. 전국 평균 주거빈곤율인 14.8%보다 2배 이상 높다. 계속해서 상승하는 서울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는 청년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취업난에 고시원과 단칸방으로 몰리는 청년들의 주거 문제는 고질적인 사회문제였다. 어떻게 하면 합리적인 가격대로 질 높은 주거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 청년 한 명이 있었다. 그 청년이 바로 셰어하우스 ‘우주’를 만든 김정현(30) 대표다. 그는 선진국에서 이미 대중화돼 있는 하우스메이트 제도를 떠올렸다. 그는 침실은 각자 사용하고 거실, 화장실 등은 공유하는 대신 보증금과 월세를 낮추는 주거 형태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월세는 40만원 내외이고 보증금은 월세의 두세 배 정도이다. 2013년 그는 2억5000만원으로 서울 종로구에 있는 주택 2곳을 빌려 셰어하우스로 선보였다. 당시 생소했던 셰어하우스를 선보인 실험은 대성공이었다. 현재 그가 만든 셰어하우스는 수도권 33곳, 300여명 청년들의 삶의 터전으로 성장했다. 회사명인 ‘우주’는 집 우(宇), 집 주(宙)를 합쳐서 만들었다. 지난 12월 14일 서울 종로구의 셰어하우스 ‘우주’ 3호점에서 김정현 대표를 만났다.

“셰어하우스는 돈을 벌기 위해서 창업했다기보다는 나와 같은 청년들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창업하게 됐다. 아무리 살기 어려워도 집만큼은 따뜻해야 힘이 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혼자보다는 타인과 함께 어깨를 부딪치며 사는 것도 위로가 될 거라고 판단했다.” 김정현 대표가 한 말이다. 그는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는 입주자들을 위해 가급적 역세권의 아파트, 연립주택 등을 선별해 셰어하우스를 만들었다. 입주자 선정은 입사시험을 방불케 할 정도로 까다로웠다. 취침시간, 출·퇴근시간, 코골이 여부까지 따졌다. 김씨가 이렇게까지 셰어하우스 입주자를 깐깐하게 선정한 이유가 있었다. 공동생활인 만큼 성향이 맞고 생활주기가 맞는 사람들이 하우스메이트가 돼야 만족도가 높다고 보아서다.

입주 대기인원만 5000명

그의 전략은 들어맞았고, 서울의 대학생들과 직장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그의 셰어하우스는 아파트를 소유한 집주인들 사이에서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김씨가 만든 셰어하우스는 매입 형태가 아닌 기존의 집주인과의 계약을 통해 제공됐기 때문이다. 일단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올 때 해줘야 할 인테리어 비용 등을 김씨에게 지불하고 맡긴다. 김씨는 청년들의 취향에 맞게끔 기존의 아파트를 야영장, 영화관, 경기장 등의 콘셉트로 꾸민다. 이 과정을 거치면 평범했던 아파트가 청년들이 사는 셰어하우스로 재탄생한다. 가령 월세를 100만원을 받던 방 3개짜리 아파트가 있다. 김씨가 이를 임대해 월세 40만원을 내는 입주자 5명을 모으면 월세 200만원의 아파트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김씨는 임대료에서 20%가량을 수수료로 가져간다. 집주인 역시 기존의 월세 대비 50만원 이상의 추가 수입이 생기는 구조이다. 임차 계약 기간은 6개월로 일반 임대 기간인 1~2년보다 짧은 편이다. 현재 셰어하우스 우주에 입주를 대기하는 인원만 500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가 폭발적이다.

“셰어하우스는 단순히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다. 함께 살림을 꾸려나가는 공동체의 공간이라 경제적인 것 이상의 장점이 있다.” 비슷한 나이대의 청년들이 모여 서로에게 힘이 되고 있다는 점이 인기 비결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지만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셰어하우스에서 마찰이 생겨나기도 했다. 입주자들 사이에서 사소한 말다툼이 싸움으로 번진 경우도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주로 체취, 생활소음, 공동구역 청소 문제 등이었다. 김씨는 “아무래도 사람 관련 문제가 가장 해결하기 어려웠다”면서 “현재는 다양한 교육과 혜택 등을 통해 하우스메이트의 유대관계를 높여 문제를 해결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셰어하우스 우주는 기업들과의 제휴를 통해 입주자에게 병원·음식점 할인 등의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 6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유엔빌리지 입구에 레스토랑을 오픈하기도 했다. 그가 레스토랑을 열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수익창출이 목적이 아닌 뇌성마비 장애인과 미술학도를 위해 만든 레스토랑이다. 레스토랑에서 판매하는 케이크는 모두 장애인들이 직접 만들었다. 수익금의 일부는 장애인과 미술을 공부하고 싶지만 학비가 없는 학생들에게 지원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을 만들기 위해 창업을 계속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실 김씨가 사회적 기업을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그는 저가 보청기를 판매하는 벤처기업 ‘딜라이트’를 창업한 바 있다. 가톨릭대 경영학과에서 사회적 기업을 공부하던 김씨는 저소득층 난청인들의 어려움에 대해 알게 됐다. 저소득층은 국가에서 지급하는 30만원의 보조금으로 100만원이 넘는 보청기를 구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김씨는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 두 명과 함께 34만원에 구매가 가능한 보청기를 내놓았다. 당시 그가 내놓은 보청기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년 뒤 김씨는 보청기회사 ‘딜라이트’를 제약사인 대원제약에 40억원에 매각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당시 대학생으로서 보청기회사를 제대로 이끌어갈 상황이 되지 못했다. 저가 보청기를 대량으로 사람들에게 선보일 수 있을 만한 전문 업체에 넘기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또 다른 창업 아이템을 궁리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학생 때 창업을 시작으로 현재 셰어하우스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창업 아이템을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김씨가 한 말이다. “아직 한국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해외에서 성공한 아이템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때 수익창출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았으면 좋겠다. 단순한 기부보다는 그 돈으로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 수익을 내면 수천, 수만 명의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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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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