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의 파친코 영업장.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의 파친코 영업장.

동아시아 카지노 전쟁의 포문이 열렸다. 일본이 오는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카지노를 전격 허용하면서다. 일본의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은 지난 12월 15일, ‘카지노 중심 복합리조트(IR) 정비추진법’ 일명 ‘카지노 해금(解禁)법안’을 통과시켰다. 앞서 하원에 해당하는 중의원을 통과한 카지노해금법은 이날 무려 16시간의 격론을 거친 끝에 통과됐다. 이로써 늦어도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 전까지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일본 주요 관광지에 일본 최초의 카지노 복합리조트가 개설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2014년 실시한 조사에서는 카지노 복합리조트 후보지로 도쿄(25.9%), 오키나와(14.2%), 오사카(13.2%), 요코하마(10.5%) 순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카지노 리조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오키나와가 지방선거 후 ‘카지노 반대’로 입장을 바꾸면서 인구, 경제력, 국제공항 등 배후기반이 튼튼한 도쿄와 오사카가 가장 유력한 카지노 복합리조트 후보지로 떠올랐다.

가장 유력한 곳은 일본 1, 2위 도시인 도쿄의 오다이바, 오사카의 유메시마다. 도쿄 오다이바와 오사카 유메시마는 각각 도쿄만(灣)과 오사카만을 메워 조성한 인공섬이다. 특히 오사카 유메시마는 미국의 카지노 재벌인 ‘MGM리조트’가 2014년 “카지노 복합리조트를 세우겠다”고 제안한 곳이다. 2008년 올림픽 유치를 놓고 베이징과 경합했던 곳으로, 현재 2025년 엑스포 개최를 두고 프랑스 파리와 경쟁 중이다. 일본 시장뿐만 아니라 한국과 중국 시장까지 겨냥한다면 상대적으로 비행거리가 가까운 오사카가 도쿄보다 적지(適地)라는 평가다. 일본 최초 카지노 복합리조트가 오사카에 들어서면 바로 인근 ‘유니버설스튜디오’와 함께 싱가포르의 마리나베이샌즈 못지않은 관광명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도쿄 오다이바냐, 오사카 유메시마냐

오사카 카지노 복합리조트는 ‘보통국가’로 개헌을 추진 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자민당 정권이 적극 지원할 공산이 크다. 역시 ‘보통국가’로 개헌을 추진해온 오사카를 지역기반으로 한 ‘일본유신회(維新会)’를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일본유신회의 전신인 오사카유신회 공동대표를 지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전 오사카 시장 때부터 카지노 복합리조트 유치에 가장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이에 자민당은 연정 파트너인 불교(일련종) 기반의 공명당(公明黨)의 카지노 반대에도 카지노 법안을 강행 처리했다.

일본 도박업계에서 카지노는 최후의 보루였다. 일본인은 중국인만큼 도박을 즐긴다. 일본 국내에서는 카지노를 제외한 경마, 경정, 경륜, 파친코 등 사행산업을 광범위하게 허용해왔다. 특히 일본 전역에 1만2000여개 사업장을 갖춘 파친코 인구는 2500만명으로, 파친코 업계의 연매출은 약 19조엔(약 192조원)에 달한다. 국내에서 유행한 ‘바다이야기’ 등이 들어온 곳도 일본이다. 이토록 도박업에 관대했던 일본 정부는 베팅액이 상대적으로 크고 중독성이 좀 더 강하다는 카지노 개설에 한해서는 줄곧 보수적 입장을 견지해왔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헤이세이(平成) 대불황’에 시달린 일본의 각 지자체에서는 줄곧 불황타개책의 일환으로 카지노 합법화를 요구해왔다. 도쿄에서 신칸센(新幹線)으로 50분 거리의 아타미(熱海)온천을 비롯해 홋카이도, 멀리는 오키나와까지 전국적으로 봇물 터지듯 카지노 개설 요청이 들어왔다. 2002년 당시 일본 집권 자민당 의원들은 ‘카지노를 생각하는 의원연맹’을 창립해 카지노 합법화에 군불을 때왔다. 2009년 카지노에 부정적인 민주당(현 민진당) 정권 집권 후에는 한동안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가 재부상한 것이다.

일본 파친코 업계도 줄곧 카지노 진출을 타진해왔다. 파친코 연매출은 1995년 31조엔(약 314조원)으로 정점을 찍은 뒤 인구고령화 등으로 19조엔까지 추락한 상태다. 이에 ‘파친코 대부(代父)’ 오카다 가즈오(岡田和生)로 대표되는 파친코 업계는 카지노가 막힌 일본 대신 해외에서 카지노를 통해 활로를 모색해왔다. 오카다 가즈오 유니버설엔터테인먼트 회장은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재벌 스티브 윈과 동업해 라스베이거스와 마카오에 윈리조트를 세웠고, 윈과 결별한 다음에는 필리핀 마닐라에 24억달러(약 2조8000억원)를 투자해 카지노 복합리조트인 ‘오카다 마닐라’를 지난 12월 21일 선보였다. 또 다른 파친코 기업인 세가사미는 현재 한국의 파라다이스그룹과 합작으로 인천 영종도에 카지노 복합리조트 ‘파라다이스시티’를 올리고 있다.

국내 최대 외국인 전용 카지노인 GKL 세븐럭카지노 강남코엑스점.
국내 최대 외국인 전용 카지노인 GKL 세븐럭카지노 강남코엑스점.

외국인 카지노 선발주자 한국은

일본의 카지노 복합리조트 개설이 현실화되면서 그간 마카오와 한국을 찾았던 중국인 ‘두커(賭客·도박관광객)’들도 대거 일본으로 발길을 돌릴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춘절과 국경절 연휴만 끝나면 ‘사장과 종업원이 바뀌고, 나의 부인이 남의 부인이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로 도박을 즐긴다. 두커들이 지난해 전 세계 카지노에서 쓴 금액만 무려 약 954억달러(약 114조1500억원)에 달한다. 국내 여행업계도 부족한 관광자원을 대신해 쇼핑과 카지노를 양축으로 중국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렸고, 나름 성과를 올렸다.

사실 외국인 카지노만 놓고 보면 한국은 일본에 비해 선발주자였다. 박정희 정부 때 일찌감치 ‘카지노 머니’에 눈을 떴고, 1961년 ‘복표발행·현상 기타사행행위단속법’을 제정해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1967년 인천 올림포스호텔(현 파라다이스인천 호텔)에 국내 최초 카지노 개설을 허가했다. 동아시아에서 마카오에 이어 두 번째였다. 이듬해인 1968년에는 한국 및 일본, 필리핀, 베트남 등 동아시아 주둔 미군들이 쓰는 외화유치를 위해 동양 최대 규모로 조성한 워커힐호텔에 서울 시내 최초 카지노를 내줬다. 관광단지 자체가 외화획득을 위해 조성된 터라 내국인 출입금지 규정은 별도로 없었으나, 1969년 내국인 출입금지 규정을 신설해 현행 체제를 갖췄다.

이후 속리산과 부산 해운대, 경주, 속초 설악산 등 전국의 유명 관광지의 특급호텔에 속속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들어섰다. 최종적으로 2000년 강원도 정선에 내국인 전용 카지노인 강원랜드 카지노가 들어서면서 현행 ‘16+1 체제’가 확립됐다. 단순히 카지노 숫자만 놓고 보면 한국은 외국인 전용 카지노 16곳에 내외국인 모두 출입가능한 강원랜드 카지노까지 모두 17곳으로 동아시아에서 마카오 다음 가는 카지노 선발주자다. 지금도 중국 여행사들은 8개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있는 제주도를 ‘한국의 라스베이거스’라고 홍보하며 두커들을 모객 중이다.

하지만 1967년 외국인 카지노를 첫 도입한 지 50년 된 지금, 전 세계 카지노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상이 지극히 미미하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강원랜드를 포함한 국내 17개 카지노의 총매출은 2조8037억원. 우리보다 약 43년 뒤인 2010년 두 곳의 카지노를 첫 도입해 지난해 48억달러(약 5조7000억원) 매출을 기록한 싱가포르의 딱 절반이다. 지난해 27억달러(약 3조2300억원) 총매출을 올린 필리핀에도 뒤진다. 지난해 288억달러(약 32조3000억원)의 총매출을 올린 세계 최대 도박도시 마카오의 11분의 1 규모다.

업계 관계자들은 “세계 최대 두커를 바로 옆에 두고 이 정도 매출밖에 못 올리는 것은 미스터리”라며 “일본의 카지노 출범에 앞서 국내 카지노를 재정비할 필요가 크다”고 한결같이 지적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지역별·호텔별로 지나치게 분산돼 영세성을 면치 못하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를 재정비하는 것이다. 최근 카지노 업계의 트렌드는 마카오에서 보듯 특정 지역을 선정해 대형 카지노를 집중 배치하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를 통해 방문객의 적정 승률을 보장하고, 이를 통한 입소문으로 더 많은 두커들을 끌어오는 식이다.

외국인 카지노 재정비 시급

국내 16개 외국인 전용 카지노는 전국적으로 분산된 개별호텔에 소규모 카지노가 입주해 있는 소위 ‘호텔 오락실’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역대 정권에서 통치자금 조성 등을 목적으로 ‘원님 선심 쓰듯’ 운영능력조차 의심스러운 개별사업자에게 주먹구구식으로 카지노를 허가해준 탓이다. 그 결과 1960~1970년대 선보인 1세대 카지노 가운데 워커힐카지노를 제외하고 지금껏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드물다. 워커힐카지노는 2006년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의 세븐럭카지노가 들어서기 전까지 무려 38년간 서울 시내 카지노 독점을 허용받은 까닭에 살아남았다.

국내 최초 카지노인 인천 올림포스호텔(현 파라다이스인천호텔) 카지노를 비롯해, 속리산관광호텔(현 속리산 레이크힐스호텔), 경주 코오롱호텔, 속초 설악파크호텔 등에 있던 카지노는 문을 닫거나 영업이 안 된다는 이유로 사업장을 옮겼다. 특히 박정희 정부 때 제주 중문관광단지와 함께 국가급 관광단지로 조성한 경주 보문관광단지의 경우, 원래 코오롱호텔에 개설했던 외국인 카지노가 보문단지 내 힐튼호텔, 조선호텔 등 여러 호텔들을 전전하다가, 2010년 대구 인터불고호텔로 떠나버렸다. 결국 보문단지는 외국인 카지노 한 곳 없는 내수용 관광단지로 전락했다.

경쟁유인이 강한 것도 아니다. 광역지자체별 외래 관광객이 30만명 이상 증가하면 신규 허가를 내줘야 하는 면세점과 달리 신규 진입에 대한 특별한 기준도 없다. 카지노 인허가권을 쥔 문화체육관광부 국제관광서비스과의 한 관계자는 “면세점과 같은 기준은 없다”며 “정부에서 필요할 때 공고에 의해 사업자를 선정한다”고 했다. 이미 허가를 취득한 사업권은 유효기간도 별도로 없고, 양수양도도 자유롭다. 문체부의 한 관계자는 “사업권 유효기간을 제한하고, 양수양도를 신고에서 승인으로 바꾸려 한 법안은 19대 국회 때 폐기됐다”고 했다. 추가 투자 없이 적당히 구멍가게식 영업을 지속할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이다.

마카오의 경우 2001년 스탠리 호의 40년 카지노 독점을 깨뜨리고 미국과 홍콩의 자본을 과감히 받아들인 덕에 재도약을 이뤄냈다. 마카오는 전체 면적이 서울 강남구(39㎢)보다 작은 30㎢에 불과하지만, 36곳의 카지노들이 빼곡히 몰려 있다. 이 중 신규 카지노 13곳은 마카오의 콜로안섬과 타이파섬 사이의 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코타이스트립에 집중배치해 한곳에서 ‘카지노 쇼핑’을 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 심지어 후발주자인 필리핀도 마카오 코타이스트립을 모델로 마닐라만(灣) 매립지에 4개의 카지노 복합리조트를 집중배치하는 ‘엔터테인먼트시티’를 조성 중이다.

반대로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 16개 가운데 8개가 영업 중인 제주도의 경우 면적 자체도 1848㎢로 마카오(30㎢)보다 60배 이상 크다. 하지만 외국인 대상 카지노들은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개별 호텔에 띄엄띄엄 분산배치돼 있다. 그렇다고 제주도의 경우 개별 카지노 업장의 영업면적 자체가 큰 것도 아니다. 제주 도내서 영업 중인 외국인 카지노 가운데 가장 작은 서귀포 중문관광단지 내 하얏트리젠시호텔에 있는 ‘란딩(藍鼎)카지노’는 영업면적이 803㎡에 불과하다. 제주에서 가장 크다는 중문단지 내 신라호텔 마제스타카지노의 영업면적도 2886㎡에 그친다.

특히 오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겨냥해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내 홀리데이인호텔에 개설된 알펜시아카지노는 영업면적이 689㎡로 국내 16개 외국인 카지노 가운데 가장 작다. 2012년 속초 설악파크호텔에서 옮겨왔다. 명색이 평창동계올림픽 본부 호텔에 들어선 카지노인데 ‘동네 오락실’ 수준이란 비아냥이 나오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일례로, 마카오와 싱가포르의 대표 카지노인 베네치안 마카오와 마리나베이샌즈의 카지노 영업면적은 각각 5만1000㎡와 1만5000㎡에 달한다. 국내 최대 외국인 카지노인 서울 강남 코엑스 GKL 세븐럭카지노(6093㎡)의 각각 8배와 2배에 달한다.

오픈 카지노 전향적 검토 필요

내국인도 출입 가능한 오픈 카지노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비행기로 1~2시간 거리의 일본에도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한국인 출입이 가능한 외국인 카지노가 들어설 마당에 국내에서만 내국인의 카지노 출입을 막는다 해봤자 별 실효성이 없다. 국내에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는 강원도 정선 폐광 지역에 들어선 강원랜드 카지노 한곳이 유일하다. 하지만 현실은 강원도 정선을 찾아가는 것보다 저가항공사 등의 급증으로 마카오,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지의 카지노를 찾기가 훨씬 더 쉽다. 내국인 카지노 출입은 출입자격 및 출입횟수 제한, 입장료 등으로 충분히 통제가능하다.

오히려 규제 일변도 카지노 정책 탓에 국내에서 돌아야 할 ‘카지노 머니’가 마카오,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멀리는 인도, 호주, 미국까지 유출되는 부작용도 심각하다. 국내 조직폭력배들이 국내에서 유출되는 카지노 머니를 따라 해외로 진출해 도박자금 환치기를 알선하며 생기는 국가적 위신 실추 역시 크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등 유명 기업인을 비롯 임창용, 윤성환, 안지만, 오승환 등 프로야구 선수들의 마카오 원정도박 역시 이 같은 상황에서 벌어졌다. ‘금주법(禁酒法)’으로 되레 마피아가 창궐한 것과 똑같은 현상이다.

해외자본의 국내 복합리조트 투자가 번번이 좌절되는 것도 큰 문제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16개 외국인 전용 카지노의 지난해 총매출은 1조2433억원으로, 내외국인 모두 출입 가능한 강원랜드 카지노(1조5604억원) 한 곳에도 못 미친다. 마카오 베네치안리조트,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등을 만든 셸던 아델슨 라스베이거스샌즈 회장은 2014년 방한해 박원순 서울시장과 만나 잠실 종합운동장에 106억달러(약 10조8000억원) 투자를 제안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오픈 카지노’ 허용에 난색을 표하자 투자 의사를 접었다.

지난해에는 라스베이거스샌즈 계열의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측이 서병수 부산시장과 만나 부산 북항 재개발지역에 최대 5조원을 투자해 카지노 복합리조트를 짓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샌즈의 부산 북항 투자 역시 ‘오픈 카지노’가 전제조건이었다. 부산시가 최근 내국인 카지노 허용과 관련해 전문가 라운드테이블을 만들었지만, 결론적으로 중앙정부를 설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결국 내국인 카지노 출입금지 조항 탓에 막대한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투자 기회가 날아갈 위기다. 카지노를 하면 돈을 잃지만, 카지노를 만들면 돈을 번다. 지금 싱가포르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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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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