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태어난 독일의 소도시 아이스레벤 시청 앞 루터 동상. ⓒphoto 조선일보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태어난 독일의 소도시 아이스레벤 시청 앞 루터 동상. ⓒphoto 조선일보

20여년 전, 서울에서 교회를 개척하기 위해 지역 조사를 할 때의 일이다. 가는 곳마다 교회에 대해 부정적 얘기가 많았다. 교회가 하나 서는 것을 동네 구멍가게 하나 들어오는 것처럼 생각하고 목사를 사업하는 사람과 비슷하게 보았다. 교회 터를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 사무소를 찾아갔을 때 “동네마다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또 교회를 개척하려고 하느냐? 종교도 사업이고 목회적 비즈니스다”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런 얘기를 듣고 나면, 나는 차마 그들 앞에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왜 또 다른 교회를 개척해야 하는가’에 대한 당위성을 스스로 정립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교회다운 교회를 세우리라. 끝없이 개혁하는 교회를 세우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환골탈태하는 심정으로 교회를 개척했다. 어떤 경우에도 교회 문제 때문에 언론에 보도가 되어 하나님과 한국 교회에 누를 끼치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그런 다짐으로 개척 멤버 한 명 없이 서울 가락동 지하 76㎡(23평)에서 교회를 시작했다. 교회는 비가 새고 쥐들이 우글거렸다. 교인이라야 장모님과 집사람밖에 없었다. 주일날 예배를 시작하면 쥐들이 짹짹거리며 예배당을 돌아다녔다. 강단에 서서 쥐를 쫓아봐도 소용없었다. 쥐들은 그냥 지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여유 있게 우리를 노려보고 제 갈 길을 갔다. 비 오는 날이면 물을 퍼내며 예배를 드렸다. 그래도 나는 개혁과 부흥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으려는 꿈과 이상에 하루하루가 설레었다. 내가 개척하고 섬기는 교회를 통해 영혼 구원은 물론 시대와 사회를 섬기는 꿈을 꾸면서 단 하루도 꿈 없이 잠들지 않고 꿈 없이 깨어난 적이 없었다.

루터의 저항과 개혁교회의 탄생

당시에 나는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1483~1546)를 생각했다. 루터는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바로 옆에서 친구 한 명이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루터는 그 일을 계기로 사제의 길을 걷는다. 그러나 그 당시 로마 가톨릭의 종교적·도덕적 타락은 땅에서 하늘까지 사무쳤다. 먼저 신론(神論)에 있어서 유일신인 하나님을 범신론적인 하느님으로 바꾸어 버렸다. 또한 오직 믿음으로써의 구원이 아니라 사람의 공덕을 축적함으로써 이신득의가 아니라 이행득의를 가르쳤다.

일부에서는 성경보다 교회의 결의를 더 앞세우고 우선시했다. 사람들이 죽은 다음에도 생존자의 선행으로 말미암아 여러 번의 구원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내세관을 가르치는 곳도 있었다. 66권의 정경 외에 외경과 가경을 성경으로 받아들였으며 교황무오설, 마리아 무죄, 경배 사상을 가르쳤고 성상, 성화, 성골, 천사 숭배 그 외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온갖 미신과 우상, 유물 숭배 사상이 판을 쳤다.

그것도 모자라 성베드로 성당의 완공을 위한 막대한 공사비 충당을 위해 속죄권(일명 면죄부) 판매를 시작했다. 또 성직매매를 통해 막대한 부를 쌓아갔다. 이처럼 타락한 로마 가톨릭의 모습을 보며 루터는 밤마다 분노와 통한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로마 가톨릭이 행하는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너무도 다른데, 사람들은 왜 침묵하고만 있는가? 가톨릭 교회는 왜 이렇게 타락해가고 있나?”

그때 루터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던 게 ‘아드 폰테스(ad fontes)’, 즉 신앙의 본질이다.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로마 교황청이 하나님의 뜻과 성경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부패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다. 루터의 가슴에 거룩한 분개가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스칼리 산타라는 계단을 올라가던 중 갑자기 로마서 1장17절의 말씀이 섬광처럼 루터의 심장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때부터 그는 종교개혁을 결심하고 로마 가톨릭이 잘못하고 있는 속죄부 판매를 비롯한 모든 악행과 관습을 일일이 지적하고 나섰다. 총 95개 조항의 폐단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뒤 비텐베르크 성당문에 붙였다. 역사적인 종교개혁의 물줄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그가 주장한 종교개혁의 골자는 크게 네 가지였다. 첫째 ‘솔라 피데’-오직 믿음으로, 둘째 ‘솔라 그라티아’-오직 하나님의 은혜, 셋째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경, 넷째 ‘솔라 글로리아’-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바로 그것이다. 루터는 로마 가톨릭을 상대로 본질, 근원,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다. 그는 교권에 불만을 품었던 게 아니다. 제도를 개혁하고 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복음의 근원으로, 본질로,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일개 신부에 불과했던 루터. 그가 이런 주장을 하면서 당시 절대권력이었던 교황청과 맞서 싸웠다. 그러자 로마가톨릭은 루터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회유하기도 하고 달래 보기도 했다. 일반 신부였다면 회유를 받아 넘어가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주교가 대주교가 된다든지, 아니면 총장이 되는 식으로 회유할 경우 눈앞에 보장된 출세를 걷어차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교황청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비텐베르크대학에서 교황청의 잘못을 가르치고 오직 말씀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교황청은 루터를 파면시키고 추방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급기야 사형에 처하겠다는 교황의 칙령까지 하달됐다. 그러자 루터는 비텐베르크대학 교수들과 학생들 앞에서 교황의 훈령과 칙령을 불로 태워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 “나는 하나님이 두렵지 당신이 두렵지 않습니다. 나의 생명은 로마 교황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루터는 그 당시 상황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감행했다. 평범한 일개 수도사요, 신부에 불과한 사람이 목숨을 걸고 개혁을 부르짖은 건 지금도 경외로울 따름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작사한 ‘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노래를 즐겨 불렀다. 그는 작센 제후의 보호를 받으며 독일어 성경 번역을 했다. 당시는 성경이 라틴어로만 기록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이 성경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 루터가 종교개혁을 외친 지 500주년을 맞았다.

마틴 루터 초상
마틴 루터 초상

한국 교회는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루터가 500년 전에 복음의 본질, 근원, 성경으로 돌아가자면서 일으킨 종교개혁 운동의 결과물이 오늘날 개신교다.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는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한국 교회의 자화상은 일그러지고 찢긴 모습이 아닐까. 왜 현대인은 교회를 비판할까. 과거에는 교회와 목회자를 향한 공격이 특정 교회나 목회자를 향한 개별적인 것이었다면 지금은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비판으로 번져 있다. 그 이유는 한국 교회가 그만큼 세속화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안티세력의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공격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교회가 종교개혁 정신으로부터 이탈하여 세속화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정작 개혁해야 할 것은 나 자신이고 우리 한국 교회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는 어떻게 개혁해야 할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개혁의 방향을 소개한다.

첫째, 모든 신학과 제도가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교회와 모든 성도들은 오직 복음의 본질을 붙잡았다. 죄를 지적하면 무조건 회개하고 매일매일 심령을 새롭게 하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 교회는 너무 제도화되어 있고 세속화되어 있다. 화석화된 제도가 본질 위에 군림하고 있다. 기득권이나 교권, 제도권 안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루터가 외쳤던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의 영광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

둘째, 성경적 교회론으로 돌아가야 한다. 에베소서 1장23절을 보면, 교회는 그의 몸이요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라고 했다. 교회의 머리가 주님이라는 말은 교회는 항상 주님이 주인이 되시고 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스코틀랜드의 언약도들은 그리스도의 왕되심의 교회론을 지키기 위해 1만8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래서 영국 국교로부터 정당하게 독립해서 주님이 머리 되는 영광스러운 교회론을 세우게 된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의 프로테스탄트 개혁교회가 생겨났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의 몇몇 목회자는 주도권 싸움을 하며 자기가 주인이자 왕 노릇을 하려고 한다. 일부 목회자는 자신만의 성에 갇혀 버렸다. 내가 개척한 교회라고 해서 교회가 내 것이 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것이다. 목회자가 내 교회라고 생각하니까 세습 목회를 강행하며 교인들의 반발을 사게 된다. 평신도도 마찬가지다. 자기 교회라고 생각하니까 자기 마음대로 끌고 가려고 한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목회자와 성도 간의 다툼과 분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셋째, 교회는 선교적인 비영리단체의 이미지를 보여야 한다. 한국 교회가 조국의 독립과 근대화, 산업화의 정신적 본류가 되고 진원의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급속한 성장주의와 속도주의적 시류에 편승하여 한국 교회도 물량화, 자본주의화, 세속화되기 시작하면서 기업의 모습을 닮아간다는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가 어느 날 수많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미국은 목회적 대형교회에 의해서 이끌려 갈 것”이라는 말을 했다. 목회적 대형교회란, 대형교회임에도 기업을 닮은 교회도 아니고 정치적인 교회도 아니며 순수한 교회의 모습, 교회다움을 가진 대형교회라는 말이다. 이런 교회는 적어도 선교적 비영리단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아주 투명하고 거룩할 뿐만 아니라 세상에 존경을 받는 교회다운 교회다. 한국 교회는 다시 선교적 비영리단체 이미지를 보여주며 역사와 사회를 섬겨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회 발전의 순기능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넷째, 투명한 도덕성과 윤리성을 회복해야 한다. 과거 태안반도의 기름유출 사건 때 총 120만명의 자원봉사자가 기름을 걷어내기 위해 현장을 찾았는데, 그중 80만명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국내 사회복지 관련 업무의 70%를 한국 교회 또는 유관기관이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국 교회를 욕한다. 그것은 한국 교회가 도덕성과 윤리성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자정운동을 통하여 깨끗하고 투명한 이미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다섯째, 공익적 사역을 통하여 세상을 향한 섬김과 소통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교회의 본질은 복음을 전파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1차 목표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시대정신을 주도하며 세상을 향한 섬김과 소통의 역할을 해야 한다. 사실 한국 교회가 무슨 나쁜 일만 골라 해서 공격당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공익적 사역을 안 했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 교회는 민족의 눈물을 닦아주고 상처와 아픔을 보듬어주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활동했다.

첫 삽을 뜨는 마음으로!

나도 대형교회 목사지만 과연 나는 제대로 사역하고 있을까. 내가 섬기는 교회도 한국의 대형교회 중 하나인데, 과연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을까. 이십수년 전, 교회를 개척할 당시의 초심을 나는 유지하고 있을까. 루터가 지금 한국 교회 목회자라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다시 한 번 자성해 본다.

우리 교회의 2017년 화두는 첫 번째가 개혁을 선도하는 교회다. 나부터 개척교회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가 교회 개혁에 앞장서고자 한다. 이 시대와 사회가 교회를 향해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마음의 문을 열고 경청하고 그들의 요구에 반응하는 목회를 하려고 옷매무새를 여미고 있다.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가 밝아왔다. 청년 사제 루터가 ‘아드 폰테스’의 정신으로 종교개혁의 깃발을 높이 올렸던 것처럼, 한국 교회도 개혁을 이룰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새벽에 일어나 다시 신발끈을 동여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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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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