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한복판의 연방우체국 전경. ⓒphoto 황효현
맨해튼 한복판의 연방우체국 전경. ⓒphoto 황효현

뉴욕 맨해튼 매디슨스퀘어가든 바로 맞은편, 금싸라기 같은 맨해튼에 8에이커, 약 3만3000㎡(1만평) 크기의 거대한 코린트식 건물이 있다. 두 개의 블록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이 건물은 얼핏 보면 연방정부 건물이거나 중요한 정부 관련 기관인 것처럼 보인다.

정부 자산인 것은 맞지만 이곳은 우체국이다. 미국 우체국은 아날로그 시대 정보가 모였다가 흩어지는 중심지였다. 3만3000㎡나 되는 땅 위에 우체국이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정보의 흐름이 미국민의 생활에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 누가 고급정보를 많이 알고 있는가, 누가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비밀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때로 힘이 되고 때로는 권력이 된다. 그래서 이제 권력은 더 이상 총구로부터 나오지 않고 정보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다행히도 대중이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정보는 공개되어 있다. 공개되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바로 우리 손바닥 안에 있다. 스마트폰이 그것이다. 이것만 있으면 원하는 정보를 무엇이든 찾을 수 있다. 그것도 무료로. 그런데 우리가 정보를 이렇게 무한대로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사실 그렇게 오래된 사건은 아니다.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우리의 정보 소스는 신문과 방송이 전부였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실시간으로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정보는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물과 공기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100년 전 미국은 우체국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았다. 오늘날 통신회사들이 정보 유통의 핵심이듯이 당시에는 우체국이 그 역할을 했던 것이다. 바로 그것이 주요도시의 핵심 요지에 우체국이 자리 잡고 있는 이유이다. 미국의 우체국은 만성 적자 기관이다. 49센트 우표만 붙이면 미국 내 어디라도 메일을 보낼 수 있다. 이 메일 유통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수만 명을 고용하고 있고, 보편적 우편 서비스를 위한 우체국은 수익성과 상관없이 전국에 촘촘히 자리 잡고 있으며, 이들 우체국이 소유하고 있는 전국 각지의 부동산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그러니 아무리 애를 써도 적자를 면할 수 없다.

맨해튼에도 모두 59개의 우체국이 있다.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체통도 부지기수다. 조그만 길거리 우체국이 있는가 하면 3만3000㎡에 달하는 제임스 팔리 우체국과 같은 초대형 건물도 있다. 이 우체국은 1912년 착공되어 1914년 완공된 건물이다. 31가와 33가, 7가와 8가 사이 두 블록을 통째로 점유하고 있는 단일 빌딩이다. 초고층 건물이 즐비한 맨해튼에서 저층으로 넓게 퍼져 있는 예외적인 건축물이다. 이렇게 높이가 아닌 넓이를 중심으로 지어진 이유는 우편물을 접수할 수 있는 창구를 단일 층에 최대한 많이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 건물에는 ‘눈, 비, 더위, 밤의 어둠 그 어떤 것도 지정된 배달 임무 완수를 막지 못한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정시 배달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서비스였던 것 같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규모의 우체국이 맨해튼에만 해도 10여개가 더 있다. 만약 이 빌딩을 허물고 재개발을 하게 된다면 모르긴 해도 수십조원 이상의 자산가치를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이 우체국이 관할하는 지역이 우편번호 10001이다. 이것을 시초로 하여 맨해튼의 우편번호는 10002, 10003과 같이 순서대로 나아간다. 우편번호를 미국에서는 ZIP CODE라고 하는데 여기서 ZIP은 존 임프로브먼트 플랜(ZONE IMPROVEMENT PLAN)의 약자이다. 즉 특정 지역을 구분하는 숫자를 말한다. 아마도 가장 널리 알려진 미국의 우편번호 중 하나가 90210일 것이다. ‘비벌리힐스 90210’이라는 이 청소년 드라마의 제목에 붙여진 숫자 90210이 바로 비벌리힐스의 우편번호이다. 우편번호를 보면 개략적인 지역을 알 수 있다.

우편물 검열관이 우편번호 제안

미국에서 오늘날과 같은 다섯 단위의 우편번호를 사용하게 된 것은 우체국 검열관이었던 로버트 문(Robert Moon)의 제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1942년 우체국에 근무하던 그는 당시의 우편 분류 시스템이 우편물 운송수단이던 열차를 기초로 만들어진 것에 주목하였다. 미래의 우편은 기차가 아니라 비행기가 담당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행기 운항 정보를 기초로 미국 전역을 900개로 구분한 다음, 각 지역에 세 단위로 된 코드를 할당하여 그것으로 효과적인 메일 분류 시스템을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그의 이런 제안은 1962년까지 외면당하다가 우편물 분류 시스템의 개선이 절실해지자 비로소 그해에 로버트 문의 제안을 기초로 최초 3단위를 더욱 세분화한 5단위의 코드를 정하고 1963년 7월 1일부터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현재 사용하는 미국의 우편번호이다.

미국의 우편 서비스는 크게 세 가지이다. 가장 보편적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일반 우편은 퍼스트 클래스(First Class)이다. 이것을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와 혼동하여 가장 빠르고 좋은 서비스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정반대이다. 퍼스트 클래스보다 빠른 것이 프라이어리티 메일(Priority Mail)이다. 이것은 퍼스트 클래스보다 빠를 뿐만 아니라 트래킹 번호도 제공해주기 때문에 UPS나 페덱스처럼 우편물의 배달 과정을 추적할 수 있다. 물론 퍼스트 클래스보다 비싸다. 가장 빨리, 안전하게 우편물을 발송할 수 있는 것이 익스프레스 메일(Express Mail)이다. 트래킹 번호는 물론이고 웬만한 지역은 하루 만에 배송해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우편 시스템이 도입되던 초기에 우편물 분실은 상당한 문제였다. 이 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세터파이드 메일(Certified Mail)’이다. 이것은 메일을 보내는 사람이 메일을 발송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인데, 여기에 트래킹 번호가 있기 때문에 받는 사람도 메일을 추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으로 부족하여 받는 사람이 확실히 메일을 수령하였다는 증명을 요구하게 되었다. 이런 수요에 맞춰 등장한 것이 ‘리턴 리시트 리퀘스트(Return Receipt Request·RRR)’라는 서비스이다. 이것은 받는 사람이 수령증에 사인을 하면 그것을 다시 우체국을 통해 보낸 사람에게 그 수령증을 배달해주는 서비스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메일로도 법적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 쉽게 해결이 안 되었던 모양이다. 메일을 주고받는 양 당사자들의 분규가 발생할 경우 법적으로 우체국에서 우편물의 발송, 접수, 배달 전 과정을 기록하여 법원의 증거효력을 갖도록 한 것이 ‘레지스터드 메일(Registered Mail)’이다. 이렇게 미국의 우편물 관리 시스템도 인간관계만큼이나 복잡하게 진화해왔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자메일을 주고받고, 메신저를 통해 실시간 대화를 나누며, 각종 사회관계망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는 시대에 3만3000㎡ 우체국은 아날로그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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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효현 경기텍스타일뉴욕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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