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구치소 본관. 교정직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장소다. 재소자들이 있는 건물은 보안을 이유로 촬영이 허용되지 않는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서울구치소 본관. 교정직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장소다. 재소자들이 있는 건물은 보안을 이유로 촬영이 허용되지 않는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최순실 사건을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 1월 3일 핵심 인물들이 수감된 서울구치소와 남부구치소를 동시에 압수수색했다. 이미 구속기소된 피의자를 상대로 감방 압수수색을 실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 특검팀이 이날 압수수색한 대상은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구치소에 있는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이었다. 이들은 현재 특검 수사와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이규철 특검팀 대변인은 구치소를 압수수색한 이유에 대해 “재소자들이 혐의를 일관되게 부인하면서 서로 말을 맞추는 느낌이 들었다”며 “재소자가 가지고 있는 물품 중에 범죄의 단서가 있는지, 수사 대상 간에 공모하거나 증거를 인멸한 사실이 있는지, 서로 연락한 게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특검팀은 감방 압수수색을 통해 3명으로부터 접견기록, 반입물품, 서류, 메모, 편지수발목록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치소에 있는 피의자라고 해도 개인 소지품에 대해서는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법원의 영장이 있어야 수색이 가능하다.

김종 전 차관의 경우 지난해 11월 22일 수감된 이래 한 달여 동안 50통 가깝게 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검팀 관계자는 “50통의 편지는 주로 가족들과 주고받은 것이지만 가족이 아닌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재판이나 특검 수사에 앞서 이들이 서로 말을 맞추거나 조율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압수물 분석 과정에서 고의적인 말 맞추기나 증거 인멸의 단서가 포착될 경우 범죄 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

감방 압수수색은 매우 드문 일이긴 하나 전례가 없지는 않다. 검찰은 2008년 3월 BBK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경준 전 BBK 대표가 수용된 서울구치소를 압수수색한 적이 있다. 검찰은 당시 외국인 사동 독방을 2시간30분 동안 압수수색해 김씨의 메모, 노트가 포함된 문건 상자 1개를 압수했다. 당시 검찰은 “김씨의 기획입국설 및 서류 위조 등 추가 기소할 부분과 관련해 압수수색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앞서 2006년에도 법조브로커 김홍수씨 로비사건을 수사하던 중 김씨의 감방을 압수수색해 로비 내용이 담긴 편지와 진정서를 확보한 적이 있다.

교정시설의 각각 다른 방에 수용된 재소자들이 서로의 생각을 전하는 것을 흔히 ‘통방(通房)’이라고 한다. 교정시설에서는 서로 다른 방에 있는 공범들끼리 말을 맞추는 것을 막기 위해 공범 간의 접촉을 엄격히 통제한다. 이 때문에 재소자들은 서로의 생각을 담은 쪽지나 메모를 제3자를 통해 전달하는 방식으로 소통한다.

구치소 접견실로 들어가는 사람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구치소 접견실로 들어가는 사람들. ⓒphoto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통방’ 최적의 장소는

통방의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최근 재소자들이 통방을 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은 구치소 내에 있는 샤워실을 이용하는 것이다. 샤워실 앞에는 샤워실에 입장하기 전 벗은 옷과 소지품을 보관할 수 있는 보관함이 있다. 예를 들어 한 재소자가 이 사물함 셋째 칸에 자신의 의견을 담은 쪽지를 넣은 후 자신의 변호인에게 쪽지의 위치를 말하면, 변호인이 다른 재소자의 변호인에게 이 쪽지가 들어있는 위치를 알리는 식이다. 구치소에서 공범들끼리 서로 만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지만, 서로의 변호인들은 자유롭게 만날 수 있다.

교정시설 내에서 배식이나 청소를 하는 재소자들을 통방에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교정시설에서 식사시간을 알리거나 배식하는 사람, 청소하는 사람 등은 수용 행태가 우수한 모범수 중에서 뽑는다. 이 모범수들을 통해 쪽지를 몰래 전달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얘기가 통하는 재소자들끼리는 운동시간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모래로 된 운동장의 특정 위치에 쪽지를 묻어놓았다는 사실만 알린 후 자세한 이야기는 쪽지를 통해 나누는 방법이다.

과거에는 교정시설 내에 있는 교도관을 직접 매수해 통방에 활용하기도 했다. 교도관을 직접 매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도가 어렵지만 실행이 가능하다면 가장 편리한 방법이다. 빠르고 손쉽게 서로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방법은 교도관이 매수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어 위험성이 따른다.

형이 확정되지 않아 구치소에 수감된 경우 변호인을 통한 통방이 일반적이다. 미결수의 변호인은 시간과 횟수에 관계없이 재소자와 접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변호인을 통한 통방은 가장 합법적이고 안전한 방법이다.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했을 때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헌법상 권리를 악용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정호성 전 비서관의 변호인은 특검팀의 압수수색이 변론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는 지난 1월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서 “특검이 정씨가 변호인과 논의하고자 하는 쟁점, 변호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메모해놓은 것을 압수했다”며 “변론권의 핵심인 구치소에 있는 메모를 가져가 버리면 변론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통방을 할 경우 공범이 서로 말을 맞추거나 외부와 소통해 범죄 단서가 될 만한 물품을 숨길 수 있다. 형을 입증하는 데 필수적인 증거를 통방을 통해 손쉽게 인멸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구치소 측은 최순실 사건의 재소자들은 특별히 관리되고 있어 통방이 일어날 수 없는 환경이라고 강조한다. 서울구치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특검이 구치소를 압수수색한 것은 재소자들이 구치소에 들어올 때 가져온 개인 소지품에서 추가 단서를 찾으려고 한 것”이라며 “최순실 사건 관련 재소자들은 운동·목욕도 단독으로만 시키는 등 매우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통방은 절대 있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통방을 막기 위해서는 공범을 서로 다른 구치소에 분리수용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김복준 국립중앙경찰학교 외래교수는 전화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동, 인천, 수원 등 서울 근교에도 구치소가 다양한데 왜 특정 구치소에 공범들을 몰아넣는지 모르겠다. 잦은 통방을 방지하려면 이런 대형 사건의 공범들은 서로 분산해 수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검찰 수사의 편리성이 떨어져도 통방을 방지할 방안을 모색할 시점이다.

배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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