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군요. 우리가 태어나는 찰나 시간은 끝을 향하여 째깍째깍 흘러갑니다. 끝은 기어코 오고야 말 것이었지요. 남은 날이 엿새이건, 사흘이건 그건 문제가 아니란 뜻입니다. 이 유한한 시간을 마치 무한인 듯 살았다는 걸 뒤늦게 후회합니다. 엿새밖에 안 남은 걸 알고 이 고적한 온천 지대에 와서 끝을 맞으려 했는데, 마음을 돌려 당신에게 짧은 작별인사를 남깁니다.

작별인사는 짧을수록 좋겠지요. 안녕, 그 한마디로 충분할지도 모릅니다. 벽지(僻地)에서 보낸 며칠, 노란 모과 몇 알, 옛 시인의 절구(絶句), 밤 한가운데를 달리는 기차, 호수에 뜬 달, 늙은 매화나무 검은 가지의 꽃 몇 송이, 검은 물소의 슬픔. 지상의 슬픔과 기쁨들에게 안녕! 어쩌면 이마저 없어도 괜찮겠지요. 작별이라는 이상한 열매를 깨물 때 가장 슬픈 목소리로 부르는 노래가 있으면 좋겠지요. 빌리 홀리데이가 부른 노래. 당신, 내 옆에 있던 사람. 지금 내 곁에 당신이 없는 것은 이상한 일이네요. 내 오른쪽은 영원히 당신의 왼쪽일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그게 이별을 늦출 이유는 아니겠지요. 어느 해 여름 통영, 기억나지요? 태풍이 오고, 해안은 폐쇄되었어요. 시장통 건어물 가게들 간판이 떨어져 날아가고, 동피랑 언덕에선 지붕들이 뒤집혀 날아갔어요. 가로수가 뿌리 뽑힌 채 도로에 드러눕고, 파도는 하얗게 울부짖을 때 우리는 숙소에 갇혀 가져간 책 몇 권을 되풀이해서 읽었습니다. 새벽에 깨어나 작은 등을 켜고 책을 읽던 당신 모습은 보기 좋았어요. 그때 나는 여생을 당신을 위해 살리라고 다짐했는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어버렸지요. 그렇지만 미안하다는 말은 않겠어요.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겠지요. 당신의 아침은 어느덧 나의 저녁이 되겠지요. 아니 내 아침이 당신의 저녁이 되겠지요. 당신이 아침에 들른 식당을 나는 저녁에 갈 수 없겠지요. 우리는 언제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이마를 마주 대고 상의하는 일이 없겠지요. 헤어진다는 건 그런 겁니다. 우리는 함께 제주도에 간 적이 없습니다. 당신과 제주도에서 비자림을 둘러보고 우도에서 며칠 묵고 난 뒤, 다시 중산간의 오름을 오르고 싶었어요. 제주도에 가기 전 벌써 작별의 날이 닥쳤으니, 참 아쉽습니다.

잘 살아요, 당신. 우리가 함께한 동안 나쁜 기억과 좋은 기억들이 있었지만, 좋은 인연이었어요. 우리가 늘 사이가 좋았던 건 아니지요. 더러는 사소한 일로 맹렬하게 다투기도 했으니까요. 그러나 꽃게 철에는 서해안으로 꽃게를 먹으러 가고, 저문 봄날 목포에 삼합을 먹으러 갔다가 돌아왔지요. 그리고 어느 가을 지리산 골짜기 다원(茶園)의 방을 빌려 책을 쓸 때 당신은 내 곁을 지켰지요.

올 이른 봄 지리산 산수유 꽃은 피어날 테고, 윤중로에 흐드러졌던 벚꽃은 낙화를 하겠지요. 흰꽃 만개한 벚나무 아래를 지날 때 당신 까만 머리와 어깨에 눈송이같이 꽃잎들 분분히 내려앉겠지요. 가을에는 순천만 갈대들이 일제히 저문 빛 속에서 사각거리겠지요. 내가 세상에 없다고 계절이 안 오거나 시간이 멈추는 경우는 없어요. 부디 잘 살아요, 당신. 울 일이 있을 때 조금 덜 울고, 웃을 땐 더 크게 웃어주세요. 당신은 웃는 모습이 예쁘니까요. 당신, 아침마다 청송 사과를 깨물어 먹고, 날마다 만보씩 산책하며, 늘 세상에 보탬이 되기를 갈망하던 사람이 살다 떠났음을, 아주 가끔, 기억해주세요.

잘 있어요, 당신.

장석주

시인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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