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한 다큐멘터리 때문에 한참 눈물을 쏟았다.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다룬 KBS스페셜 ‘앎’은 3부작으로 제작되었는데 그중 내가 본 것은 젊은 엄마들의 암 투병기를 다룬 1부 ‘엄마의 자리’였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고 싶고, 초등학교도 보내고 싶고. 자녀를 키우다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은 그들의 가장 큰 바람이자 소망이었고, 그 평범한 일상을 염원하는 간절함이 보는 이를 울렸다.

지금 내 인생에 남은 시간이 일주일이라면 과연 어떻게 하루하루를 꾸려야 하는 걸까. 현재 나는 임신 5개월 차의 예비 엄마이다. 첫째 아이는 다섯 살이 되었고 지난해 하반기, 간절히 기다리던 둘째가 우리 부부를 찾아왔다. 기쁨도 잠시, 지독한 입덧에 절박유산의 위험마저 커 회사에 한 달 가까이 병가를 내어야 했고 결국 매일 하던 생방송 뉴스는 그만두었다. 임신 중반에 접어드니 이제야 좀 몸이 살 만하다. 그런데 내게 주어진 시간이 겨우 7일이라고?

웰빙만큼이나 웰다잉이 중요한 시대라고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난 죽음에 대한 준비는 고사하고 깊은 고민조차 해본 적 없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큰 충격을 받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몸져눕고 싶지는 않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하고 싶다. 천국에서도 잊지 않도록 내 두 눈에 그들의 얼굴을 영롱히 새겨 넣고, 사랑과 신뢰를 담은 내 눈빛 또한 그들에게 전하고 싶다. 혀 끝에서 아찔하게 살살 녹는 디저트도 먹고, 겨울바다도 보고…. 그리고 부끄럽지만 나의 일생을 반추하고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내용을 적은 짧은 글을 남기고 싶다. 흔히 지상에서 누릴 것이 많을수록 죽음이 두렵다고들 하던데, 한편으로는 내가 대단한 부나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이어서 감사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눠줄 부가 없어 싸움이 날 일이 없다. 높은 자리에 있지 않아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나의 가족이 급격히 쇠락할 일도 없다. 다만 부모님께 불효하니 죄송스럽고 남편에게 미안하고 무엇보다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내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건 불행 중 다행 아닐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슬프고 우울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 기왕이면 밝고 아름다운 감성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태어난 날을 기념하는 생일 파티처럼 생의 마감을 기념하는 고별 파티를 열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떠나는 때를 안다면, 내 주변 사람들이 이별을 준비할 수도 있다는 장점도 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여 남겨진 이들이 오랜 기간 힘들어하고 허망해하는 모습을 종종 봐오지 않았나. 무언가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는 것은 축복이다. 설령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모든 인간은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갈 운명임에도 왜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할까. 얼마 전 17세기 화가 프란스 할스의 그림 ‘해골을 든 젊은 남자’를 보고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을 했다. 두 볼이 발그레한 앳된 소년은 손에 시꺼먼 해골을 들고 있다. 이 소년도 결국에는 죽는다! 미래에 대한 계획에는 성공, 여행, 만남 등의 유쾌한 것뿐 아니라 죽음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반드시 찾아올 미래니까.

윤수영

KBS 아나운서

윤수영 KBS 아나운서
저작권자 © 주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